36화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가이드 편의 영상 소스는 충분히 뽑아냈다. 현장 임무가 남아 있는 김한슬을 제외하고 세 사람은 지난번 갔던 치킨집으로 가 오랜만에 이야기를 풀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도인호의 숙소로 돌아간 호은이 현관문을 열자 소파에 앉아 책을 보던 도인호가 책을 내려놓고 호은을 반겨 준다.
신발을 벗고 도인호에게 다가가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던 호은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품에 안겨 오는 도인호에게 말하던 걸 멈췄다.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도인호의 어리광은 익숙해지다가도 이렇게 한 번쯤은 부끄럽게 만들었다. 도인호의 등을 토닥여 주며 호은은 다정하게 기다렸냐 물었다.
“조금이요.”
“너 빨리 퇴근할 줄 알았으면 부를 걸 그랬다.”
“그런데 형.”
호은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도인호가 고개를 서서히 든다.
“여기에 왜 다른 사람 냄새가 나요?”
번뜩이는 노란색 눈동자는 마치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짐승 그 자체였다. 척추를 따라 쭉 올라오는 소름에 호은이 몸을 움츠렸다.
킁킁. 도인호가 짐승처럼 목덜미와 가슴팍에 코를 갖다 댄다.
“어어, 냄새나면 씻어야겠다. 음, 책 보면서 기다릴래?”
호은이 양손을 들어 도인호의 볼을 감쌌다. 초등학생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모습이다. 도인호는 예민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같이 씻어요. 냄새 없어질 때까지.”
호은은 이마를 짚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녀석이 이래서 무섭다고 하는 걸까? 뭘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호은이 다시 한번 다 큰 성인 남자는 혼자 씻는 거란다 설명하려 했으나 호은을 가볍게 들쳐 어깨에 멘 도인호를 보고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작은 비명을 질렀다.
‘으악… 에스퍼 힘을 이렇게 쓰지 말라고…!’
오늘따라 욕실 형광등이 밝게 느껴진다. 도망갈 길을 내어 주지 않겠다는 듯 환하게 빛나는 조명에 호은의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그래, 남자끼리 같이 목욕할 수도 있지’
전혀 이상한 거 없다. 사나이의 우정을 다지러 사우나도 많이 다녔던 호은이지만 역시 그들과 도인호와는 다르다.
남자라는 성별을 묶기 전에 가이드와 에스퍼로 묶인다. 두 관계는 욕실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관계다. 같은 동성과는 전혀 상상도 못 해 본 행동이 상상 가능한 관계.
어젯밤부터 오늘 호수와 만났을 때까지 호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직접 가이딩 강도.
마치 하늘에서 이걸 못 받아먹으면 바보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호은은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신을 욕했다. 이런 타이밍 필요 없다고!
“벗겨 줘요?”
생각이 많아져 뚝딱거리는 호은과 반대로 도인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어느새 상의를 벗었는지 잘 잡힌 근육이 보인다. 현장 일로 다져진 생활 속 근육은 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근육질 몸을 보고 이렇게 침이 넘어가는 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도 잊고 호은은 천천히 도인호의 몸을 감상했다. 옆구리와 등뼈 쪽에 작은 흉터가 있다. 분명 에스퍼는 자가 치료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호은이 흉터 부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치료가 덜 됐네.”
“이능력에 상처를 입으면 흉터로 남기도 합니다.”
옷을 벗지 않은 호은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둘 풀어 주며 도인호는 점점 드러나는 호은의 맨살을 유심히 살폈다. 호은의 몸은 자신보다 흉터가 많았다. 도인호의 거친 손이 조심스럽게 호은의 흉터를 찾듯 매만지자 마치 그림 그리듯 손이 움직였다.
“아. 나는 그냥 놀다가 다쳤어.”
사뭇 진지한 도인호의 표정에 호은이 활짝 웃었다. 와이셔츠가 바닥에 떨어지고 거울로 자기 몸을 확인한 호은이 언제 다친 건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욕실로 들어온 순간부터 잔뜩 긴장한 호은이 신경 쓰였던 도인호는 재잘재잘 어린 시절 이야기하기 바쁜 호은을 보자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던 질투심이 스멀스멀 가라앉기 시작했다.
샤워기를 틀고 물 온도를 맞추며 두 사람은 이상했던 분위기가 뭐였냐는 듯 자연스럽게 서로를 씻겨 줬다. 일반 가정집에 비교하면 2배는 넓은 욕실은 욕조 또한 성인 남자 두 명이 들어가기 충분했다.
샤워만 하고 나가기 아쉬워 욕조에 물을 받고 도인호를 끌어다 자연스럽게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갔다. 긴장한 몸이 절로 풀어져 포만감 넘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입욕제 같은 거 있어도 좋은데. 전에 엄마가 입욕제를 좋아해서 나도 자주 했거든.”
“몇 개 사 둬야겠네요.”
키가 180이 넘는 호은과 190이 넘는 도인호의 다리를 뻗기에 넓은 욕조는 역부족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긴 다리를 어정쩡하게 접은 상태로 서로를 바라봤다. 마냥 편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도인호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이렇게 옷을 벗고 같이 씻으니 몸이 가까워진 만큼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진 기분이다.
무미건조한 얼굴이지만 탕이 마음에 들어 보이는 도인호의 심리 변화를 호은은 금방 눈치챘다. 지금이라면 물어봐도 될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들어 호은은 긴장한 목소리를 뱉었다.
“나 궁금한 거 있는데.”
“?”
나른한 눈으로 쳐다보는 도인호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호은은 하루 종일 고민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 가이딩 어디까지 받아 봤어……?”
뒤로 갈수록 호은의 목소리가 줄어든다. 이제 막 가이드가 된 호은은 이런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 어려웠다. 실례인가? 이런 걸 물어도 되는 게 맞나? 하지만 알아야만 행동을 정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직접 가이딩은 손잡는 거 이상으로 받아 본 적 없어요.”
“손 이상으로? 왜……?”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건들기 뭐하다고 말을 하긴 했는데, 저는 무슨 뜻인지 잘…….”
“아…… 호수 차장님 담, 담당 가이드였지?”
다행히 호수가 어린아이를 건드는 변태는 아니었나 보다. 아니, 다행히 아닌 건가? 습한 욕실은 숨쉬기 답답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호은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도인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탕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면……. 가이딩을 더 받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있어?”
“아뇨. 딱히…….”
“음…… 나는 잘 모르지만. 가이딩이 안정화될수록 에스퍼는 좋잖아? 그…, 행위 자체도 그렇고….”
도인호가 흥미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인호야. 너 설마 혼자서 그런 것도 안 해 본 건 아니지?”
“……?”
“아니, 이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그……. 자기 위로 말이야.”
“꼭 해야 하나요?”
“뭐, 뭐? 아니 꼭 할 필요는 없지만 남자라면 다 하잖아. 그 밑에 자극해서…….”
호은의 머리 위로 모락모락 김이 날 것만 같다. 못 알아듣는 도인호에 눈앞이 빙빙 돌고, 부끄러움에 당장이라도 탕에 머리를 박고 익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인호는 호은이 하는 말은 외계어라도 되는 것처럼 연신 갸웃거리기만 한다.
결국, 보다 못한 호은이 손을 들어 밑을 자극하는 동작을 보여 주며 해 본 적 없냐 물었다.
“안 해 봤는데요.”
“……정말?”
“네.”
두 눈을 감았다. 신이시여. 오늘부터 무교 청산하고 종교를 들어야 하나?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기도나 해야 할 것 같다.
호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만졌다. 도대체 도인호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 호은 또한 성에 대해 무지했던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자극했다.
자극하다 보면 기분이 좋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몽정도 하고 자기 위로도 하고 먼저 행동을 한 뒤 학교 성교육 시간에 자신이 어떤 걸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성인이 되도록 경험해 본 적이 없다니. 이러면 가이딩 목적이라 해도 건드릴 수 없다
“너무 아무것도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인호가 호은을 바라보다 손을 잡았다. 오늘따라 호은이 이상하다. 저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혼자 끙끙 앓는 모습도 귀엽지만 역시 아무 걱정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가장 좋다.
“뭐든 해도 돼요. 형이 어떤 걸 해 줘도 받아들일 거니까.”
“너 정말…….”
호은의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진다. 저런 얼굴로 자극적인 말을 내뱉는 주제에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남이다. 알려 주고 싶다. 위험한 생각이 꿈틀거린다.
“방금 내가 보여 준 건 자기 위로라고, 밑에를 자극해서 성적 쾌감을 주는 거야. 그런데……. 높은 단계의 가이딩도 성적 쾌감을 주거든. 여기를 자극하는 것보다 더한 거를.”
처음에는 남자와 남자끼리 접촉해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도인호에게 그런 거부감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얼굴이 잘생겨서 그랬던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손을 잡아도, 볼에 입 맞춰도, 그리고 키스했을 때도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아래쪽에 피가 몰렸다.
‘나 남자한테도 서는 거냐고…….‘
호은은 열이 오르는 아랫도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변명할 요지가 아무것도 없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도인호에게 성적으로 자극받았다. 만지고 싶다.
호은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도인호가 호은을 당겨 자기 다리 위로 앉혔다.
“에스퍼는 모든 감각이 남들보다 예민한 거 알죠.”
“……응.”
“아까부터 엄청나게 빨리 뛰고 있어요.”
“…….”
“터질 것 같아.”
도인호가 호은의 가슴팍에 귀를 갖다 댔다.
“인호야. 거기가 아니라.”
호은이 도인호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줄 테니까. 중간에라도 하기 싫어지면 알려 줘.”
***
잠옷으로 갈아입은 호은이 지쳤다는 듯 침대에 들어가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다시 씻고 나온 건지 도인호가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다 호은이 누워 있는 침대로 들어왔다.
자신과 같은 바디워시 향이 나는 호은에 기분이 좋아 목덜미에 파고들어 자꾸 향을 맡게 된다.
“내일 아침은 스튜로 할까요.”
“응. 죽도 좋고…….”
졸음이 잔뜩 묻은 호은이 웅얼거리듯 대답한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도인호는 호은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는다.
“동기들은 잘 만나고 왔어요?”
“으응. 촬영도 다 했고…… 너는?”
“저도 현장 일정 잡았어요. 내일 촬영하러 가면 될 것 같아요.”
“…….”
대답이 들리지 않아 호은의 턱을 살짝 위로 들자 어느새 잠에 빠졌는지 호은의 두 눈꺼풀이 굳게 닫혀 있다. 달을 가리고 있는 구름에 밤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 까맸다.
도인호는 호은의 입술을 엄지 손으로 매만졌다. 양옆이 살짝 찢어진 건지 피부가 거칠었다.
“또 이러네.”
도인호는 난감하다는 듯 열이 오른 자신의 아랫도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기존에는 배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제는 그 느낌이 밑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호은이 분명 앞으로 그 행동은 혼자 스스로 하는 거라 알려 줬지만 도인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조금 전 호은의 행동만 떠오르면 아래가 이렇게 반응하는데 어째서 자신이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일에서 항상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이 책임졌던 도인호지만 이번 일만큼은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욕실에서 호은이 지었던 표정을 떠올리면 입안이 바싹 말라 갔다.
입술을 벌리는 호은을 눈으로밖에 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만큼 아름다웠다.
눈으로 담는 건 부족하다. 계속 그 얼굴을 만들 수는 없으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남들이 들으면 놀랄 위험한 생각을 했다.
도인호는 분명 키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에스퍼와 가이드의 가이딩이 어떤 단계로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었지만, 호은과 그 이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가 사과의 맛을 알아버린 것처럼 오늘 이전의 자기 생각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도인호는 그 이상을 원하게 되어 버렸다.
이런 행동을 해야만 볼 수 있는 호은의 표정이라면 더한 짓도 하고 싶어진다.
“호은 형…….”
깊게 잠든 호은의 이름을 부르며 도인호가 호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밑으로 갖다 댔다. 호은의 말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다. 죄책감보다 갈망이 더 컸다.
“하아…… 호은 형.”
“…….”
잠든 호은의 귓불을 씹으며 도인호가 욕망 서린 말을 뱉었다. 이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삐빅. 샤워 후 다시 찬 호은의 가이드 워치에서 소리가 났다.
조명이 꺼진 방이라 그런지 호은의 가이드 워치 화면이 유난히 잘 보인다. 70% 흰색 숫자를 보며 도인호는 탁자에 있는 물티슈를 꺼내 손바닥을 닦았다.
화륵-
제 할 일을 다 끝낸 물티슈를 이능력으로 불태워 없앤 도인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호은을 소중히 자신의 품에 가둬 놓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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