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도인호 외전 2)
밖에 있는 사람들은 두꺼운 점퍼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내가 입은 옷은 그들과 비슷해 보였으나 신발이 문제였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 나가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으려나.
여러 냄새와 소음이 섞여 들어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괴롭지 않았다.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다 천천히 걸음을 뗐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다. 가게 전광판과 조명 덕인지 거리는 눈부시게 밝았다.
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저들의 얼굴에는 어둠이 없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고 있다.
나는 어색하게 내 입꼬리를 만져 봤다. 일자로 다물어져 있다. 힘을 주어 입꼬리를 올려 보아도 금방 쳐져 웃는 표정을 짓는 걸 그만뒀다.
목적 없이 길을 걷다 나는 한 군데서 멈췄다.
통유리로 가게 내부가 훤히 보이는 곳은 안에 식사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한 남자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음식을 먹고 있다.
‘저렇게 많은 음식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커다란 그릇을 비운 남자가 타이머를 들고 사장을 불렀다. “성공입니다.” 남자는 사장이라고 불린 남자에게 흰색 봉투를 받고는 밖에서 봤던 사람들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성큼 일어서더니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배고파?”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몇 없는데. 심지어 이 사람은 에스퍼나 가이드도 아닐 거다. 일반 사람……. 일반인은 어떻게 대하는 거더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가만히 있는 나를 바라보던 남자는 문을 활짝 열더니 들어오라 했다.
“뭐 먹을래? 여기는 돈가스가 맛있어.”
나보다 한 뼘은 큰 키의 남자가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갈 곳이 없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받았던 봉투를 내밀며 사장에게 주문했다. 분명 아까 먹은 걸 봤는데 또 음식을 먹는다.
“밥 먹고 어디 갈 데 있어?”
남자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종업원이 건네준 돈가스를 먼저 받아 칼질하더니 내게 줬다. 잘 썰린 돈가스 조각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달짝지근한 소스가 다른 재료의 맛을 가려 다행히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형은 오늘 학원 가기 싫어서 도망쳐 나왔어.”
남자는 익살맞은 표정과 함께 너도 그렇냐고 물었다. 도망쳤다기보다는 강제로 밖으로 쫓겨난 거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다 먹고 나오자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신기해 손을 내밀어 눈을 받고 있자 남자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남색 목도리를 내게 둘러줬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급하게 자리를 떠난 남자를 의아하게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발가락 끝이 차갑다. 후우. 흰색 입김을 내뱉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숨을 가쁘게 쉬며 남자가 쇼핑백을 내게 내밀었다.
“……?”
“맨발이면 춥잖아.”
남자는 쇼핑백을 열더니 양말을 꺼냈다. 계단에 앉아 남자가 건넨 양말을 신고 있자 또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색 운동화였다. 남자는 지저분한 바닥에 망설임 없이 무릎 꿇고 앉더니 내 발에 직접 신발을 신겨 줬다.
“조금 크네. 그래도 슬리퍼보단 낫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얼른 집에 들어가.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어?”
남자는 뒷덜미를 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방금 질문은 좀 그런가.”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그 끝에 걱정이 묻어 있다.
집에 일은 없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돌아갈 집이 아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곳으로 돌아가 봤자 맨발인 나를 걱정해 줄 사람은 없다. 한겨울에 얇은 옷차림인 내게 목도리를 둘러 주는 사람도 없다. 내가 춥다고 내 심장이 추운 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디 살아? 형이 데려다줄까?”
말 없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남자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계속해서 자신을 형이라고 호칭하는 남자에게 나는 속으로 형이라는 단어를 말해 보았다.
‘형….’
형은 처음 보는 내게 너무나도 다정했다. 이 사람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내게 누군가를 다치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나에게 물어봐준다. 명령이 아니라 대화를 원한다.
“흠. 부끄러움이 많은가 보네. 그래도 이름은 알려 줄 수 있지?”
이름……. 협회에 오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나는 이름이 사라졌다. 내게 이름은 필요 없다고 했다. 나중에는 잊어야 하는 사람인데 이름을 기억해 봤자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별명이라면 있다.
‘시폭.’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형에게 내 이름을 알려 주면 그는 나를 기억해 주는 걸까?
“도…….”
이름을 알려 주려는 순간 계단으로 정장을 입은 협회 사람이 들어왔다. 내쫓을 땐 언제고 다시 나를 데리고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가족이야?”
“…….”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형이 부드럽게 내 손을 쥐었다. 마치 자신이 지켜 주겠다는 듯. 그것이 신기했다. 형도 아직 어리면서. 어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형은 상대방이 성인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누구세요?”
“보호자입니다.”
“가족 아니라는데요?”
“가족 아니고 시설 보호자입니다.”
형은 뒤를 돌아 내게 정말이냐 물었다. 형과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지만,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조심스럽게 잡은 손을 놓았다.
“신발 잘 신을게요.”
협회 직원에게 다가가자 형이 꼬마야! 하고 나를 부른다.
“무슨 일 있으면 아까 그 가게로 또 와. 도와줄 테니까.”
“…….”
“약속이다?”
“응…….”
지킬 수 없는 약속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심장에 시린 눈이 내리고 있는 기분이다.
눈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아파 온다. 건물 밖에 주차된 차에 타 떠날 때까지 형은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옆에서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때? 잠깐의 자유는?”
출발한 차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피부에 닿은 눈은 차갑다. 차가운 감각을 주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제법 내린 눈은 길가에 쌓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이면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눈은 천천히 바닥을 하얗게 물든다.
찬바람을 오래 맞자 코끝이 시려 나는 목도리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니까 잘 곱씹으라고.”
다시 아침부터 밤까지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조금은 억울함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다 저렇게 다정한 걸까? 다들 내 이름을 궁금해하는 걸까?
갖고 싶다. 저 일상을, 다정함을.
아직도 남자가 그날 왜 시내로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자유라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고 싶었던 걸까? 남자는 성격이 포악하므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보여 줘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종류의 자유를 맛본 나는 이전만큼 죽음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
시간은 금방 흘렀다. 이제는 시폭이라는 별명이 무엇인지 안다. 시한폭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거다. 지루한 일상도 몇 년이 계속되다 보니 지루하다는 생각 자체도 멈추게 된다. 내게 가이딩하러 와 주는 남자. 그러니까 호수의 키를 넘은 건 작년의 이야기다.
올해로 스무 살. 지겨운 인생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는 걸 몸이 아는지 옛날 꿈을 꾸었다. 밖에 나갔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흐릿한 기억은 그것이 꿈인지 추억의 하나인지 헷갈리게 했다.
“야 도시폭!”
“…….”
“어쭈 이게 우릴 보고도 인사 안 해?”
“시폭아. 나 같으면 그냥 무릎 꿇고 제발 가이딩 좀 해 주세요 하고 빌겠다. 혹시 몰라? 시폭 시간 좀 늘려 줄지.”
“…….”
해마다 노란색 사원증을 찬 인턴들에게 모욕을 듣는 건 너무 당연해서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나보다 키가 작은 가이드를 위해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지난번에 고개를 들고 있었단 이유로 공격했으니까. 이번에는 미리 고개를 숙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야, 시폭. 무시하냐? 엉? 무시해? 우리 인턴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에이 설마 감히 그러겠어? 우린 조금 있으면 정직원인데.”
오늘 건 패턴이 식상해 지루하다. 몰래 한숨을 내뱉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이 잠깐 마주쳤다.
처음 보는 노란색 사원증. 그러고 보니 다음 기수 인턴사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것 같다. 남자는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 사람들과 일행인가.
“안녕하세요.”
내게 다가온다 생각했던 남자는 인턴사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제가 앞에 사정은 모르지만 여러 명이 한 명 괴롭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 안에는 인턴 여러 명 향한 공격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다.
자기 이름이 권호은이라 밝힌 남자는 인턴 선배를 내팽개쳤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잘못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비명을 질렀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눈앞의 남자. 권호은만이 아무렇지 않은 건지 태연한 얼굴로 내 앞에 선다.
“괜찮으세요?”
“다음에는 그냥 무시하세요.”
“아니 기껏 도와줬는데. 그냥 고맙다고 하시면 되잖아요.”
“도와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하?”
“이런 일 익숙하니까.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아니. 상처받는 게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가 받는 상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이번 인턴 가이드는 이상하다.
“이럴 때는 고맙다고 악수하면 되는 겁니다.”
“이거 놔!”
가이딩이 들어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으나 떨어진 손은 금방 잡혔다. 가이딩이 닿자 머리가 찢어질 듯 고통이 일었다.
‘저 돈가스 드실래요?’
순수한 얼굴로 말을 거는 권호은이 떠올랐다. 가이딩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은 기억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손이 다시 닿는 순간 권호은을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제 이름은 권호은인데 그쪽은 이름이?”
권호은이 이름을 물어보는 것에서 나는 데자뷔를 느꼈다. 옛날에도 이런 적이 있던 것 같았는데. 그게 언제지? 머리의 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 더 남았다는 것처럼.
‘그래도 이름은 알려 줄 수 있지?’
머릿속에 얼굴이 흐릿한 남자의 인영이 희미하게 그려진다.
“도인호…….”
내 이름을 중얼거린 권호은은 따뜻한 온기로 내 손을 감싸 쥐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도 이런 온기를 가진 사람이 내 손을 잡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 사람에게 그 남자와의 추억이 떠오르는 걸까? 권호은은 의아한 내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
“아…….”
아닐 거라 거부했던 사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권호은이 누구인지 하나하나 증거를 꺼내 들었다. 머리의 두통이 점점 멈추고 사라졌던 기억이 차츰 돌아온다.
감았던 눈을 뜨자 필름처럼 지나간 장면이 멈췄다.
63 스퀘어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건물은 아직 타고 있는 불의 잔재로 연기가 자욱했다. 그 안엔 이번에도 나를 구하러 온 권호은이 있다.
왜 몰랐을까. 이렇게 따듯한 손은 그 사람밖에 없었는데.
“형…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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