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도인호 외전 1)
“이렇게 어린아이가 결정체를 받아들이는 건 처음인데 지난번보다 회복 속도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 의미 없이 발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린 내가 듣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갔다.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내 몸을 만진다. 나는 평소처럼 저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엄마와 떨어지고 이상한 병원에 온 지 한 달째였다. 초반에는 울면서 엄마를 찾았던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엄마뿐만이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것. 싫어했던 것. 학교에 다녔던 것. 마치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이내 머리는 더는 생각하지 말라는 듯 고통을 준다.
“자 인호야. 이번에는 능력을 써 볼까?”
온화한 얼굴을 한 여자가 내 손을 잡고 특수한 방으로 나를 들여보낸다. 맨발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걸으며 모두가 잘 보이는 중앙에 서서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 열기가 올라온다고 느꼈을 때 푸른 불꽃이 커다랗게 솟아오른다.
통유리로 된 창문 너머 사람들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다. 저들이 웃으면 웃을수록 반대로 내 웃음은 사라진다.
어른들은 내가 불꽃을 만들면 좋아한다. 나는 손바닥의 피부가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데. 쓰고 나면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요구 사항이 많아 제법 오랜 시간을 방에 있었다.
이 방은 내가 아무리 불을 내뿜어도 타지 않는 신기한 방이다. 덕분에 방안을 불로 가득 채웠다. 저 웃는 모습이 보기 싫어 나는 창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커다란 불꽃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축구공 크기의 불꽃밖에 못 만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방 전체를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불 다루는 게 익숙해졌다.
이능력이라는 걸 사용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문밖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나는지 모를 여러 가지 냄새가 섞여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형상은 나밖에 못 느끼는 건지 괴로워 죽을 것 같은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내 괴로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이능력과 내 심장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체념했던 건 아니었다.
“선생님. 저 머리가 너무 아파요. 속도 울렁거리고.”
“심장 수치는 멀쩡하니까. 그런 쓸데없는 건 신경 쓰지 마.”
심장을 제외하고 나라는 존재는 필요 없다. 도인호는 아파도 된다. 괴로워도 된다. 그 몸 안에 있는 심장만 괜찮으면 도인호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거였다.
밤이 되면 개인 숙소로 돌아간다. 방 안에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창문이 다였다. 매일매일 같은 풍경. 침대에 앉아 있으면 벽이 보인다. 이 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무지 색의 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게 유일한 취미이다. 그렇게 한참을 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노크 소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린다.
“안 자면 키 안 큰다.”
남자는 자고 있지 않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남자의 말에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으니 재미없는 꼬마라고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이능력은 이제 익숙해졌나 보네?”
“…….”
남자는 평소처럼 내 옆에 앉아 내 왼손을 꼭 잡아 준다. 그럼 그 순간 내 세상은 조용해진다.
금발의 머리를 넘기며 남자는 반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그가 내뱉는 말은 패턴이 매번 같아 이제는 외울 지경이다.
“아 귀찮아.”
“…….”
“사는 것도 귀찮고 매번 가이딩 하러 다니는 것도 귀찮고 인생이 재미없어.”
남자는 중얼거리더니 한숨과 함께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죽고 싶다.”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흘리다 순간 정적이 찾아온다. 남자는 나와는 다르게 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귀찮고 재미없는 걸까.
남자는 감았던 눈을 뜨고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가끔 그의 눈동자에 부러움이 깃든 게 보일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것에 어떤 게 부러운 걸까.’
남자는 나를 쳐다보다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왼손에 온기가 느껴진다. 누군가가 내 손을 이렇게 잡아 줬던 것 같은데…. 남자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가녀린 손이 내 손을 꼭 잡아 줬던 것 같다. 배가 아플 때 쓰다듬어 주고 등을 토닥여 주고.
“약 다시 주입해야겠네.”
남자는 무덤덤한 얼굴로 내 볼을 닦아 준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거지?
“이래서 어린애는 하지 말자고 했는데.”
잡았던 손의 온기가 사라진다. 나는 비어 있는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자는 고개 숙인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꾹 한번 누르더니 어깨를 툭툭 쳤다. 나간다는 신호였다.
남자가 나가면 밖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들어온다. 물 한 컵과 알약을 가져온 사람은 내가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간다. 이걸로 내 하루는 마무리가 되는 거다.
졸리지 않았지만 억지로 누웠다.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머릿속 안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분명 조금만 더 떠올리면 생각날 것 같았는데. 머리가 무거워진다.
졸리지 않은데 뇌가 꼭 잠에 빠진 것처럼 아무 생각도 못 하겠다. 이렇게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 간다.
***
“모든 수치가 안정적입니다. 이제 현장으로 투입해도 될 것 같네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봤던 나뭇가지의 초록 잎은 어느새 다 떨어지고 마른 가지만을 보여 줬다.
밖에는 눈이 내린 건지 온 세상이 하얗다. 저 흰 눈을 밟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었다.
“…….”
입을 벌리자 입김이 나온다. 눈을 밟으니 푹푹 발이 바닥으로 꺼진다. 그 촉감이 재미있어 남들 몰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자, 검은색 세단이 내 앞에 멈췄다. 이곳에 왔을 때 탔던 자동차와 같은 거였다.
이 자동차를 타면 기억이 흐려진다. 이번에도 이 자동차를 타면 병원에 있던 기억이 사라질까? 묘한 기대감을 갖고 탄 자동차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더는 지워야 할 행복한 기억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새로 간 곳은 에스퍼 협회 인천 지사였다. 전에 있던 곳보다 굉장히 넓은 곳으로 새로 받은 숙소도 너무 커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병원이 아닌 사람이 살 것 같은 곳에 왔다는 것에 기대와 설렘이라는 감정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조차 나는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히 고립된 상태로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이능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나는 이능력으로 곧잘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왜 내가 남을 다치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설명받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처음과 같다. 하라고 했으니 나는 따를 뿐이다.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
착한 아이 같은 거 바란 적 없는데.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그들은 꼬투리를 잡았다. 그들이 시키는 거에 토를 달면 안 된다.
오늘은 사람을 죽였다. 여전히 이유는 모른다. 죽이라 했기 때문에 죽였을 뿐이다. 분명 이능력으로 사람을 지킬 수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것이 누군가를 죽여야지만 얻을 수 있는 건가. 나는 처음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스스로에게 지쳐갔다.
“죽고 싶다.”
죽으면 모든 게 끝. 죽음으로부터 모든 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가 내 방에서 했던 말은 그런 의미였던 것이다.
예전보다 더 넓어진 숙소는 넓어서 그런지 비어 있는 게 더 눈에 잘 보였다.
나는 소파에 앉아 두 손을 펼쳤다. 이 손으로 사람의 목을 졸랐다. 맥박이 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그라졌다. 그 사람은 괴로워하다 죽었다.
혼자 있는 숙소에서 이능력을 썼다. 어두운 방에 푸른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이능력. 여전히 내 피부도 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 이상의 고통은 없다.
나는 손을 들어 내 목을 쥐었다. 조금 전 느꼈던 맥박이 손에서 느껴진다. 손에 힘을 풀자 손자국이 남았을 피부는 빠르게 원래 형태로 돌아왔다. 내가 죽인 남자와는 다르게.
‘나는 괴물이 된 걸까?’
태어났을 때부터 괴물인지 아니면 갑자기 괴물이 된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 손에 죽어 가던 남자도 나를 보며 괴물이라고 말했다.
괴물은 나쁜 역할이다. 사람을 괴롭히고 폐를 끼친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과 미안하다는 감정을 모르는 괴물 같은 나는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도구’가 될 거라고. 그렇게 되면 더는 괴물처럼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된다. 도구가 됨으로써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불을 만든 손을 천천히 들었다.
“야 이놈아.”
“…!”
아무도 없는 숙소에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와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였다.
남자는 신기한 막대기를 꺼내더니 불이 나고 있는 주변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내가 만든 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죽으면 안 돼.”
“아직……?”
“그래. 어차피 너 죽어야 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저 죽어요?”
“응. 죽을 거야. 앞으로 몇 년 안 남았어. 그러니까 자살 같은 건 곤란하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알려준 죽는다는 소식에 어쩐지 안심이 되어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 죽는구나.’
목을 조르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나는 어차피 죽는다. 죽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죽으면 도구가 되어 모두를 도와줄 수 있다.
“별로 안 놀라네.”
“…….”
놀래야 하나? 가끔 남자가 예전에 내뱉던 이해 못 하던 말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늘 같은 일상. 그건 정말 재미없다. 남들을 다치게 하는 주제에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건 괴롭다. 그리고 점점 지쳐 간다. 그런 내가 조금 있으면 죽을 수 있다. 권태로운 일상에 끝이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나는 그동안 왜 남자가 나를 부러워하는 눈으로 쳐다봤는지 이제야 알았다. 분명 당신은 죽지 못하는 거겠지. 죽음이라는 자유를 경험할 수 없어 날 부러워한 거야.
나는 순간적인 우월감을 느꼈다. 어쩌면 나보다 저 남자가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남자는 상기된 내 얼굴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건방지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쩐지 남자는 굉장히 화가 난 얼굴로 내 멱살을 잡았다.
“감히 네가 날 동정해?”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나는 순간 후회했다. 저 남자 앞에서는 아무 생각도 하면 안 되는구나. 내 속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면 절대로 저런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다.
아주 잠깐 눈을 깜박였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채 시내 한복판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상황 판단이 안 되어 가만히 서 있었지만 내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사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밖?”
화려한 전광판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를 환히 밝혀 준다. 무슨 축제라도 하는지 거리마다 초록색 트리와 사슴 장신구가 여러 개 눈에 보인다.
거리에 혼자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다들 누군가와 같이 어울리고 있다.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있는 맨발을 꼼지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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