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자 투박한 외관과 다르게 실내는 반들거리는 대리석으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다.
“인턴 가이드 맞으시죠?”
흰색 정장에 곡선 부분마다 주황색 선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안내 데스크 직원이 세 사람을 반겨 줬다. 가이드 인턴 실습이라 말하자 안내원은 지하 2층 B-1 관을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형광등이 복도를 밝혀 주고 있다. 일자형으로 된 복도를 지나 세 사람은 B-1관에 들어갔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벽면과 100평 이상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체 때문인지 공간에 비해 비좁아 보였다.
가장 안쪽에 배치된 소파에 앉은 세 사람은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듯 주변을 둘러봤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배웠던 이론 교육은 사실상 일반인을 가이드로 세뇌하는 교육이라 판단했다. 때문에 2주 차 실습 교육도 그런 세뇌 교육이면 어쩌지 하는 묘한 두려움과 실용적인 걸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섞였다.
실습이라 하면 정직원이 되고 나서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
모두의 아닌 척 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때마침 철제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살짝 열리는 문으로 먼저 보이는 건 눈에 띄는 금발이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남자가 걸을 때마다 춤추듯 따라 움직였다. 창백한 피부와 적색 눈동자로 이 세상 화려한 색은 다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떼기 어렵다. 장미로 물들인 것 같은 붉은색 재킷과 바지. 세 개 정도 풀어진 흰색 와이셔츠 안으로 보이는 속살.
세 사람 모두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위험한 분위기까지 폴폴 느껴지는 남자는 시작부터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부터 실습 교육 담당을 맡은 호수다.”
고운 미성의 목소리가 귀찮다는 티를 내며 흰색 막대기를 꺼냈다. 크기와 길이가 지휘봉처럼 생긴 물체를 휙휙 몇 번 휘두르자 1인용 소파와 혈압 측정계처럼 생긴 기계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전엔 가이딩 측정할 거야.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와.”
훈련장 안은 조용했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이 넘쳤지만, 호수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평소라면 특유의 발랄함으로 분위기를 풀었을 김세희조차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아. 이건 분위기에 압도된 게 아니라 외모에 홀린 건가. 꽤 단순한 소개는 예의 없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거 보니 다들 외모에 압도당한 게 맞는 것 같다.
“저분 에스퍼인 걸까요?”
김세희와 다르게 류윤재는 이능력을 쓰는 것 같은 호수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졌다.
외모 또한 에스퍼들은 하나같이 연예인 같았으니 충분히 호수를 에스퍼라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란색 사원증인 걸 보면 가이드일 겁니다.”
“아. 맞네요!”
호수와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삭이며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빨려 가듯 호수의 앞으로 당겨졌다. 앞으로 몸이 쏠렸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인턴들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호수가 든 지휘봉이 약한 빛을 내는 걸 보아하니 그가 이능력을 쓴 게 분명했다.
구석에 있던 소파가 어느새 호수의 앞으로 이동했다. 이능력품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호은은 기분 나쁘단 표정으로 호수를 쳐다봤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자. 가이딩 측정을 하는 이유를 먼저 알려 주지. 사원증에 적혀 있는 등급 보이지. S, A, B, C, D로 높은 등급일수록 가이드가 가진 가이딩 양이 많다는 뜻이다. 가이드는 자신이 어느 정도의 가이딩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만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어. 이능력자가 폭주하듯 가이드 또한 한계를 넘어서면 몸이 망가진다.”
“헉.”
호은과 다르게 가이딩해 본 적이 없는 김세희와 류윤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때….’
도인호를 직접 가이딩해 줬을 때 닿았던 유난히 몸이 피곤하더니 체력을 소모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가이드는 일반인이다. 이능력자처럼 본인의 몸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 직접 가이딩은 특히나 체력 소모가 심하다. 가이딩으로 계속 몸을 혹사당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게 가이드다. 그래서 등급을 측정하는 거야. S등급의 가이드라면 S등급의 이능력자를. D등급의 가이드라면 D등급의 이능력자를 케어할 수 있도록.”
호수는 말을 멈추더니 자신이 찬 가이드 워치를 가리켰다.
“지금 차고 있는 가이드 워치. 가이드의 신변에 위험이 가하거나 몸이 이상할 경우 가이드 공단으로 연락 가게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다.”
호수의 시선은 가이드 워치에서 기계로 옮겨졌다.
“눈앞에 보이는 기계에다 팔을 집어넣는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파악하는 만큼 정확성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지.”
“…….”
“1차로는 이 기계로 방사 가이딩과 내부에 쌓여 있는 가이딩을 측정해 몇 퍼센트가 있는지 분석하고 2차는 이능력자에게 접촉 가이딩을 해 가이드의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한다. 이 두 개의 결과를 합치면 최종 등급이 나올 거다. 2차 측정은 가이딩 실습으로 금요일에 진행하는 거 다들 알지?”
1차는 비접촉 가이딩으로 가이드 몸에 잠재된 수치를 측정한다. 2차는 접촉 가이딩으로 에스퍼에게 가이딩하는 과정을 측정이라……. 호은은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자 그럼 김세희. 먼저 측정하게 나와.”
세 사람은 차례대로 나와 측정을 시작했다. 기계 안에 팔을 넣자 작동하는 소리와 초록색 레이저가 팔 주변에 쏘아졌다. 레이저는 전류 같은 것을 내뿜는지 장비와 닿은 피부가 따가웠다. 검사를 끝나고 나자 호수가 결과지를 들고 세 사람 앞에 섰다.
“김세희 49%.”
“낮은 편인가요?”
“보통 45% 50% 수준으로 나오니까 낮은 편은 아니야. 자 다음 류윤재, 62% 제법 높은 편이네.”
“감사합니다.”
“나한테 감사할 일은 아니지.”
호수는 마지막으로 호은의 결과지를 들었다. 1차 측정 기계는 정확성은 떨어졌지만 보통 기존의 능력치보다 낮게 잡히는 수준이다. 여기서 90% 이상의 수치가 나오는 녀석들은 S등급 확정이라고 보면 된다.
“권호은 십팔…….”
호수는 들고 있는 결과지의 숫자를 잘못 봤나 싶어 말을 잇지 못했다. 세 자릿수다. 18% 가 아니라 108%라니. 가이드 공단에 소속된 S등급의 가이드들도 1차 측정에서 100%를 넘었던 적이 없다.
“갑자기 왜 욕하세요.”
상처받은 척 호은이 입술을 내밀었다. 옆에서 김세희와 류윤재가 호은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호수는 실소를 터트리며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들고 있는 결과지가 험악하게 구겨졌다.
“권호은.”
“네.”
“넌 기계 오류로 재측정이다.”
호수는 세 사람의 손에 차인 가이드 워치를 흘긋 쳐다봤다.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저기에는 도청 장치가 있다. 여기서 섣불리 입을 놀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호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측정 기계를 손으로 몇 번 쳤다. 열 받아서 잠깐 고장 났나? 태평한 그의 모습에 세 사람은 그가 연기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잠깐 쉬는 시간을 갖도록 하지.”
자연스럽게 호수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텅 빈 복도를 지나 흡연실로 들어온 호수는 익숙한 동작으로 입에 담배를 물고 구겼던 결과지를 폈다. 정말로 기계가 열 받아서 숫자가 잘못 나왔을 확률도 있을까. 108이라는 숫자를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 내뱉은 호수는 재킷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냈다.
“왜.”
-차장님. 이렇게 바쁜데 무슨 실습 교육을 하러 가십니까! 팀장급도 아닌 차장님이! 네?! 차장님 안 계셔서 지금 일하나 터졌다고요!
“아아. 귀에서 피 난다. 조용히 좀 말해. 일이 터지긴 무슨 일이 터져.”
-오늘 아침 회의에서 도인호 징계 결정됐다고 합니다.
“그놈이 징계받을 일이 뭐 있다고 또 징계야.”
-저희도 차장님이 안 계신 회의라 보고만 받았을 뿐이에요. 보니까 이번 정직원 전환 예정인 안오혁 가이드가 도인호 에스퍼를 가이드 폭행죄로 신고했다고 합니다. 인턴 가이드 한 명 꼬셔서 그 가이드를 통해 다른 가이드를 폭행하고 다닌다며 말이죠…….
“하, 증거는?”
-증거로 본인 병원 진료 확인서 냈고요, 해당 안건이 일주일도 안 됐는데 바로 처리되어 회의 시간에 공유된 겁니다.
호수는 도인호가 꼬셨을 리 없는 인턴 가이드 대상자 한 명을 떠올리며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그래서 징계는?”
-공식적인 가이딩 및 약물 치료제 처방 금지라고 합니다.
“골치 아프군.”
호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별것도 아닌 일인데 징계를 내리는 것이 뭔가 했더니 이건 누가 봐도 폭주 시기를 앞당기려는 행동이었다.
“회의 참여한 사람들 명단 보내 놓고 일단 끊어.”
-네 알겠습니다. 차장님. 빨리 돌아와 주세요. 이것 말고도 급한 일이……!
호수는 뭐라 말하는 부하직원의 전화를 끊고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정해진 폭주 시기가 아닌 폭주는 협회에서 결정체를 회수할 명목이 사라진다. 일찍 터진 폭주로 남긴 결정체는 말 그대로 줍는 사람이 임자인 셈이다.
“누군가 도인호의 결정체를 노리고 있군.”
뻔한 패턴으로 가이딩을 못 받게 한 상태로 여러 임무를 맡길 게 분명했다. 여러 임무를 맡게 되면 가이딩 퍼센트가 빠르게 깎일 거고.
함정을 만들어 자신들이 결정체를 채갈 장소에 도인호만 혼자 둔다면 협회에서 10년을 공들인 탑이 고양이 손짓 하나로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도인호의 결정체는 이능력자 협회장과 약속해 자신과 나눠 가지기로 했으니 다른 누군가 채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어디서 결정체를 가져가려는 건지 몰라도 가만히 당할 순 없다.
“어떻게 할까.”
징계로 공식적인 가이딩은 막혔다. 비공식적인 가이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도인호 정도의 이능력자를 감당할 수 있는 가이드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잠깐만.”
자연스럽게 한 녀석이 떠올랐다. 지난번 도인호를 가이딩하고 나서 두 발로 멀쩡히 서 있었으며 1차 가이딩 측정 결과가 108%인 놈.
협회에서 말한 공식적인 가이딩은 정직원에 속해 있는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 말의 뜻은 인턴사원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거다.
애초에 이 사건은 도인호가 꼬셨다는 가이드로 인해 일어난 건데 징계 대상에서는 쏙 빠져 있다. 징계에선 책임을 피했지만, 호수에게서는 아니었다.
‘정의감도 넘치고 오지랖도 많아 보이니 같이 책임지게 만들어 줘야겠어.’
호수는 담배 연기를 내뱉고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버렸다. 핸드폰을 들어 본부에 있는 인턴 담당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72기 인턴 실습 교육 담당을 맡은 호수다. 인턴사원 1차 가이딩 측정 결과 보고한다. 김세희 49%, 류윤재 62%, 마지막으로 권호은 18%.”
지퍼 라이터를 달칵거리던 호수는 호은의 결과지에 불을 붙였다. 빠르게 번져 나가는 불길로 타오르는 결과지. 흔적도 없이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진다.
어차피 금방 들킬 거짓말이지만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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