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호수의 손길에 호은이 고개를 돌리자 위쪽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냥감의 약점을 찾듯 날카로운 눈길이 얼굴에 닿는 게 느껴졌다.
“이능력자는 가이딩을 제대로 못 받으면 이능력을 못 버티고 폭주해. 1차는 이능력 폭주. 2차는 이능력자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주.”
이론 시간에 배운 내용이라 지난번처럼 얼빠진 얼굴이 아닌 제대로 이해한 얼굴로 호은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놈은 폭주 예정자라 가이딩에 제한받고 있어.”
“네? 폭주 예정자라니요? 가이드는 절대적으로 에스퍼를 가이딩하는 존재 아닌가요? 그쪽은 가이드니까…… 가이딩하러 오신 거 아닌가요?”
“절대적? 푸흡, 아하하. 뭐 옛날에는 그런 가이드들도 있었지.”
금발 머리카락을 손으로 꼬며 호수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관찰했다. 순수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 괜한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설명을 안 해 줬구나. 결정체 이식자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해.”
“네?”
“지난번에 물었지? 결정체로 도구를 만드는 법 말이야. 기존 이능력자 몸에 있던 결정체를 사람에게 이식한 순간 결정체는 융합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가 돼. 독립된 상태로 가이딩을 모으는 거지. 도인호 같은 이식자들은 그저 가이딩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야.”
“전달하는 역할이요?”
“결정체에 가이딩을 전달하는 역할을 10년 정도 하게 되면 결정체는 가이딩이 필요 없는 그저 하나의 자재가 돼. 그래서 가이딩 소모량이 많은 거고.”
“그러면 시한부라는 말이.”
“그래. 10년 후면 강제로 폭주 상태를 만들어 몸을 없애는 거다. 결정체 이식자의 폭주는 신체만 타 버리고 결정체는 무사하거든. 그래서 지금 이 녀석은 10년을 다 채워 가서 폭주 날짜가 잡힌 상태지.”
새하얗게 질려 가는 얼굴을 만족스럽게 관찰한 호수는 음산한 미소를 걸쳤다. 희망을 짓밟는 건 언제나 쾌감을 가지고 온다.
“사람 취급을 안 한다는 이유가…….”
“이능력자로서 사는 건 10년. 이후에 도구의 삶을 사는 존재에게 이보다 올바른 취급은 없겠지?”
뒤에서 도인호의 숨소리가 들려왔으나 눈앞에 남자는 철저하게 그 존재를 부정했다. 구겨진 호은의 옷을 퍽 다정스럽게 털어 주며 호수는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마저 말했다.
“이능력품이 뭔지 아니.”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에 호은은 고개를 저었다.
“이능력이 담긴 물건을 그렇게 불러. 이능력품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 하나는 물건에 이능력자의 이능력을 담는 것. 능력을 담는데 시간과 가이딩을 갉아먹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지. 만든다고 사람이 죽어 나갈 리는 없다는 거야. 하지만 해당 이능력품은 에스퍼와 가이드밖에 다룰 수 없어.”
호수의 귀에 찬 날개 모양의 귀걸이가 흔들렸다.
“두 번째 이능력품은 결정체로 만든 이능력품. 가이딩이 필요 없고 에스퍼, 가이드, 일반인 상관 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지. 단점은.”
“…….”
“이렇게 사람을 죽여 가며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낫지. 이건 그냥 도구야. 너도 인식을 그렇게 바꾸는 게 좋을걸? 안 그러면 살인자 공범이 되는 거거든.”
사람의 목숨을 도구로만 여기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에 호은은 토기가 올라왔다.
“이런 녀석한테 가이딩 낭비하지 마. 이런 몸이 된 순간부터.”
호수의 걸음은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다. 몇 걸음 움직여 잠든 도인호의 앞에 멈추더니 도인호의 상의를 가슴팍까지 올렸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가 보이자 심장 부근에 있는 흉터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그저 폭주해 죽길 기다려야만 하는 운명이니까.”
“그런……. 그런 운명을 왜 당신이 정하는 거죠. 도인호 씨 허락은 받았어요? 심장 이식인지 뭔지 할 때 동의받았냐고! 10년만 살다 죽을 거라는 말 했냐고요!”
결정체 이식자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호은은 당연히 이능력자가 되고 싶은 일반인 중에 수술 동의를 받고 이뤄지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10년 만에 죽는다니, 거기다 결정체 하나만 남기고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이걸 다 감수하고 수술받겠다 하는 사람이 있을까?
“뭐 그렇네. 본인한테는 안 받았지만. 50억 준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오케이하던데?”
본인이 원하지 않았을 거란 예상은 맞았다. 결국, 이 모든 행위에 도인호의 의견은 없었다.
“쓰레기.”
호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 취급 안 하는 에스퍼? 도인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람이다. 말을 하고 감정을 느끼며 생각하고 움직이는 틀림없는 사람이다. 돈으로 사람을 살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정할 수 있다는 상식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단 말인가?
“그 운명에 도인호 씨 의지는 없습니다. 도대체 이런 끔찍한 짓을 왜 하는 거죠? 이것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건가요?!!”
두서없는 말을 내뱉으며 호은은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쓰러져 있는 도인호의 몫까지 대신 소리쳐 주고 싶었다.
“왜 네가 열받아?”
“열받는 게 아니라 이건 윤리적으로도 아닌 거잖아요! 억지로 폭주를 진행하다니. 왜 멀쩡한 사람 인생을 마음대로 정하는 거죠?”
“그럼. 네가 정할래?”
“무슨…….”
“이능력자로 각성한 순간부터 그 녀석들의 목숨은 가이드가 정하는 거야.”
호은의 손을 낚아채듯 잡은 호수가 그 손을 도인호의 가슴팍에 올렸다. 두근두근 심장 진동이 느껴졌다. 순간 몸에 있는 피가 손바닥으로 몰리는 기분이 들었다. 빠져나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정전기가 손바닥을 자극한다. 기묘한 느낌을 못 견딘 호은이 손을 떼자 죽은 듯 잠들어 있던 도인호가 무의식적으로 멀어지는 호은의 손을 잡았다.
방안은 조금 흐트러진 호은의 숨소리와 차분해진 도인호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호수는 턱을 쓸었다. 가이드끼리는 서로의 가이딩 양을 느낄 수 없다. 호은의 등급이 어느 정도로 나올지 기대가 됐다. 결정체 이식자를 만지고도 멀쩡한 신입이라.
“재미있네.”
도인호의 폭주 날짜를 맞추기 위해 가이딩 수치가 떨어진 걸 일정 수준으로 올리려고 찾아왔던 호수는 손목에 차진 가이드 워치를 바라봤다.
11%였던 도인호의 가이딩 수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호은이었지만 쓰러지지도 피를 토하지도 않은 걸 보니 점점 흥미로워졌다.
일반 가이드였다면 도인호의 몸에 닿자마자 끔찍한 고통을 느꼈을 거다.
본인이 직접 가이딩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호은이 결심한 얼굴로 호수를 쳐다본다.
“이러면 살릴 수 있는 건가요.”
“아핫, 너 정말 재미있다.”
단시간에 퍼센트가 20% 올라간 거까지 확인한 호수는 귀걸이를 매만졌다.
“7월 30일.”
그날은 인턴 기간 마지막 날로 즉 호은이 입사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도인호의 폭주 예상 날짜야. 그날 폭주를 막으면 살릴 수 있겠지.”
“그걸 저한테 알려 주는 이유가 뭡니까.”
의심의 눈초리로 호은이 호수를 쳐다봤다.
“그야. 바로 전에 가이딩하는 걸로 희망에 찬 네 얼굴이 재미있어서 말이야.”
“네?”
“내가 말했지. 이능력자의 인생은 가이드가 정한다고. 한번 막아 볼래? 네가 살릴 수 있는 가이드가 될 수 있는지.”
“못 될 이유도 없죠. 내 눈에는 사람입니다. 도구니, 뭐니 그딴 게 아니라.”
“하나만 묻자. 뭐를 위해서 도인호를 살리려는 거야? 뭐 각별한 사이야?”
“그야 당연하잖아요. 멀쩡한 사람을 죽인다는데. 막을 수 있으면 전 막을 겁니다.”
“대단하신 성모 마리아의 탄생이네. 뭐 지금보다 가이딩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말에 신뢰성이 생기겠지만 말이야. 나만 고생이겠군.”
“그쪽이 고생한다고요?”
“아 맞다. 넌 날 모른다고 했지. 친히 소개해야겠네. 한국에 있는 3명의 S등급 가이드 중 한 사람. 이번 인턴 가이딩 교육을 담당한 호수다. 다음 주 가이딩 실습은 나에게 받게 될 거야.”
“교육 담당?”
“아주 친절하게 직접 가이딩에 대해 알려 줄게.”
호은의 귓가에 야릇한 목소리로 뒷말을 한 글자씩 끊어 말한 호수는 굳어 버린 얼굴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
호수의 손이 닿았던 부위를 황급히 손으로 막았으나 이미 사라진 이후였다.
저런 사이코 같은 놈이 다음 주부터 가이딩 실습을 가르치는 교육 담당자라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호은은 도인호가 잡은 자기 손을 봤다.
“따듯하네.”
그래. 도인호는 사람이다. 도구 따위가 아니라.
사념에 빠졌던 호은은 일어나려는 듯한 도인호의 모습에 놀라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쩐지 들키면 안 될 거 같아.’
열려 있던 도인호 현관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은 후 자기 집으로 도망친 호은은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스르륵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어. 얼마나 긴장하고 있던 거야.’
손을 들어 마른세수하던 호은은 양손에 묻은 피를 보며 낮게 욕을 삼켰다.
“꿈이다. 꿈이야. 제발 꿈이라 해 줘.”
이런 이상한 회사에 취업한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든 건 현실이다. 거기다 불합리한 사연이 있는 도인호까지 발견해 버렸다. 이런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호은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가이드로서 도인호의 폭주를 막아야 했다.
가이딩 양이 많이 필요하다는 결정체 이식자의 폭주를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호은은 어떻게든 폭주를 막겠다고 다짐했다.
-끼익
앞집 현관문이 열린 소리에 호은은 손으로 입을 막고 쥐 죽은 듯 있었다.
걷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게 이상해 모든 감각을 청력에 집중했다.
혹시라도 도인호가 눈치채 자신의 숙소로 올까 쫄아 있던 호은은 몇 초 뒤 현관문이 닫히는 소를 듣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우산꽂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검은 우산을 보자 막막해졌다. 우산 돌려주는 간단한 행위도 못 했는데 폭주는 어떻게 막아야 할까. 머릿속이 폭주로 가득 찼다.
“아?”
폭주를 연신 중얼거리자 도인호를 시폭이라고 불렀던 인턴 선배가 떠올랐다.
인제 보니 시한부 폭주 예정자를 줄인 말일까? 아니면 시한폭탄? 어떤 뜻이든 간에 죽는 걸 알고 놀려 댄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쁜 새끼들.”
정했다. 도인호의 폭주도 막고 인턴 선배에게 보란 듯이 도인호를 실습 상대로 데려가기로 말이다.
“할 수 있어.”
이번 일을 통해 알아차린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인턴사원인 호은이 도인호에게 가이딩해도 기절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걸 자연스럽게 도인호에게 어필하며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한 호은이었다.
쥐가 난 다리를 풀어 주며 호은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운동을 포기하기로 했다. 혹시 나갔다가 도인호라도 마주친다면 새벽에 있었던 일을 기억할까 봐 최대한 늦게 마주치고 싶었다.
누구나 보여 주기 싫은 부분이 있을 테니 호은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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