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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에서 사내연애-10화 (10/129)

10화

‘도인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호은은 망설임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사내 식당은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도인호도 사람이니 반드시 이 공간에 오게 될 것이라는 권호은다운 생각이었다.

호은은 숙소에 들러 노트북을 챙겨 식당으로 향했다.

입구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오늘 교육받은 것과 호수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노트북에 정리하며 틈틈이 입구를 확인했다.

그러나 도인호는 밤 10시가 될 때까지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이 밥을 안 먹으러 오다니.”

어디 아픈가? 호은에게 있어 밥을 굶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을 때 검은색 사원증을 차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게 적다는 것이었다.

‘에스퍼는 음식을 잘 안 먹나?’

인간의 오감에는 미각도 있다. 에스퍼의 뛰어난 미각은 음식을 먹기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은 밥심아닌가?

“오늘이 수요일이고 실습 교육은 다음 주 금요일이니 이번 주 동안 한 번은 식당에서 마주치겠지. 뭐.”

아직 영양소를 다 채워 주는 끼니 해결용 알약이 없으니 식당에 죽치고 있는 게 답이라 결정 내리고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

숙소로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눕자 어제와는 다르게 졸음이 아닌 걱정이 몰려왔다.

호은은 여전히 가이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론을 배우고 있다고 하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입력하려니 이해고 뭐고 될 리가 없었다.

자신은 분명 평소와 같은데 방사 가이딩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다고 한다. 실체가 보인다면 좋을 텐데 실체가 없으니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책이나 다시 봐야겠다.”

‘슬기로운 가이드 생활’ 침대 탁자 옆에 뒀던 안내 책자를 빠르게 넘겼다. 교육 때 배웠던 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글이 빽빽한 앞부분은 순식간에 넘겨 버렸다.

마지막 장에는 슬기로운 성생활로 성교육 내용이 담겨 있다.

단계별 접촉은 손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 그 이상의 것을 올바르게 진행하는 방법이 나와 있었는데 마지막 삽입 행위가 있는 장이 조금 특이했다.

가이드와 에스퍼가 연인 이상의 스킨십을 해야 하는 것도 흐린 눈으로 피하고 싶었는데, 가장 마지막 단계는 보통 알던 상식에서 여자가 남자를 리드하는 방법,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다양한 성별 조합이 있었다.

“제작하신 분이 편견이 없으시네.”

누가 볼세라 호은은 빠르게 책을 덮었다. 삽입 행위는 직접 가이딩 중에서 최고 단계였다. 교육 담당자는 최고 단계까지 가이딩하는 건 오로지 가이드의 선택이라 했다. 그러니 원치 않으면 그 직전 단계인 키스로도 가이딩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기껏 공단에 취직했는데, 가이드의 주 임무가 에스퍼 만지작거리기밖에 없을까 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기 직전 호은은 그동안 알람이 많이 쌓인 너튜브를 확인하려고 했다.

어제부터 신경 쓰였으나 이렇게까지 알람이 쌓인 걸 보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확인을 미뤄 뒀다.

“오류인가?”

영상 조회 수가 천 이상을 넘어 본 적 없는 호은은 40만이라는 숫자를 보고 눈을 비볐다. 마지막에 올린 영상이 너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 선택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조회 수만 잘 나온 건 줄 알았더니 댓글 알람도 몇백 개다.

‘내가 뭐 실수라도 했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감에 호은이 댓글을 확인하자 예상과 다르게 앓는 내용의 댓글들이 많았다.

“역시 요즘 대세는 브이로그였어.”

호은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빠르게 댓글을 읽어내렸다.

[힘을숨김 ▶5 : 27 뭐야? 얼굴 더 줘요. 이 얼굴을 왜 1초만 보여 줘!!!!]

[하이 ▶아니 사람 마음 다 홀려 놓고 이게 마지막 영상이라뇨??? 뇌절해~!]

[kkk ▶먹는 건 나랑 비슷한데 피지컬 뭐임? 저렇게 많이 먹는데 왜 이렇게 몸이 좋아?]

[빵돌이 ▶취업 축하드립니다 ^^. 영상 보면서 많이 위안받고 있었는데 아쉽네요. 일 익숙해지고 나면 가끔 찾아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댓글을 보다 보니 이유를 알았다. 아무래도 업로드 전 컷 편집을 실수한 건지 얼굴이 나왔나 보다.

1초 정도 나온 게 다인데 대부분 얼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걸 보아 영상에서 얼굴이 괜찮게 나온 덕인 것 같았다.

늘 하던 패턴처럼 호은은 꾸준히 댓글을 달아 준 빵돌이의 댓글에 하트를 눌렀다. 첫 구독자이자 매 영상에 댓글을 달아 주는 구독자였다.

‘빵돌이님 저도 아쉽네요.’

답글을 달고 나서 호은은 핸드폰을 침대에 던졌다.

“에휴, 이제 영상 올릴 수도 없는데 인기가 많아진들 무슨 소용이야.”

너튜버로 성공하기 전까진 얼굴 공개도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공개되어 영상이 대박 날 줄은 몰랐다.

너튜브는 부모님께 절대 비밀이었기에 호은은 영상을 삭제하려고 손을 움직였지만, 그대로 멈췄다.

“어차피 저게 마지막 영상이고…….”

이제는 취업도 했으니 부모님께 들킨다고 하더라도 문제없겠지.

“잠이나 자자.”

***

밤새 몸을 뒤척이며 잠을 설친 호은은 퀭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다.

‘이제 겨우 목요일이라니. 평일은 왜 이렇게 긴 걸까?’

취업한 지 일주일도 안 됐지만, 호은은 어느새 직장인의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피곤한 정신과 다르게 몸은 착실히 이른 시간인 새벽 6시에 일어났다. 간단하게 씻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호은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

현관문을 열자 코끝을 찌르는 비린 냄새에 호은이 인상을 찌푸렸다.

비릿한 쇠 냄새를 코가 먼저 눈치채고 복도 바닥을 뒤덮인 붉은 피를 눈으로 확인했다.

사람이 흘렸을 흥건한 피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직 잠에서 덜 깼나?’

평범한 숙소 아침 풍경이 피로 가득한 게 말이 안 됐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애써 떼며 호은은 살짝 열려 있는 앞집 문을 보고 갈등했다.

‘살인사건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 피는 옆집 사람이 다쳤다는 건가?’

아니 다쳤으면 병원에 가야지 집에 오다니. 그게 더 이상하다. 영화 보면 꼭 여기서 오지랖 부리는 사람이 제일 먼저 죽던데. 호은은 두 눈을 질근 감고 절규했다.

“하.”

들어갈지 말지 갈등하는 호은에게 열려 있는 현관문은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반대로 점점 짙어지는 피 냄새는 절대 들어 오지 말라는 경고 같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 결국 옆집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집에 들어서자 현관문 복도부터 안방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핏자국이 이어졌고 방 안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숨소리가 들려. 아직 살아 있다.’

상황 판단이 끝난 호은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방으로 뛰었다. 운동화를 벗는 것조차 까먹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피 냄새로 인해 심장은 요동치고 불규칙한 호흡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 피 흘린 사람이 멀쩡할 리 없겠지만 그래도 호은은 안에 있을 사람이 멀쩡하길 바랐다.

쾅!

닫힌 방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광경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약통이었다.

“약? 설마 이걸로 버틴 거야?”

복도보다 더 많은 피가 방바닥에 고여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를 감싼 흰색 시트는 제 색을 찾기 어려웠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린 건지 이 정도면 과다 출혈로 문제가 심각할 것 같았다.

호은이 누워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알약이 밟혔다.

으드득, 으득, 작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호은의 귓가에 정확히 들어오는 소리는 공포감을 들게 했다.

“이봐요!”

흰색 시트를 거두자 검은색 옷을 입어 바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복부에 출혈이 있었던 건지 피로 옷이 축축하다.

서둘러 상의를 올리자 복부는 날카로운 것에 긁힌 것처럼 상처가 미세했다.

이런 상처로 이만큼의 피가 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호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잡았던 옷을 놓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괜찮아요?”

남자의 어깨를 흔들자 굳게 닫힌 눈꺼풀이 파르르 움직이며 서서히 떠지기 시작했다.

“……!!”

황금빛 호박을 눈에 담고 있는 것 같아 자꾸 시선이 가던 눈동자.

애타게 찾았던 도인호가 초점을 잡지 못한 눈으로 호은을 쳐다본다.

“도인호 씨?”

도인호를 애타게 찾긴 했지만 이런 모습으로 보길 원한 건 아닌데. 도인호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다시 스르르 닫혔다. 무의식중에 눈이 떠진 것 같았다.

호은은 다시 도인호의 윗옷을 올렸다. 조금 전 상처를 확인하자 이제는 긁힌 자국도 없이 탄탄한 복근이 호은을 반겨 줬다.

“몸도 좋네…….”

손바닥으로 느리게 복부를 매만지던 호은은 자기 행동에 깜짝 놀라 순식간에 뺨을 손바닥으로 쳐 버렸다.

짝-, 마찰음이 방에 울리고 쓰러진 상대로 정신이 있는 거냐며 호은은 자신을 질책했다.

사리사욕을 채우긴 했지만 어쨌든 만졌던 복부는 역시 매끈한 피부만 느껴졌다. 상처는 그 어디에도 없다.

“말도 안 돼.”

복도에서 침대 시트까지 더럽힐 정도로 피를 흘리며 다친 상처가 그 어디에도 없다.

상처를 찾기 위해 도인호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참고로 이번에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정말 이 많은 피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

“분명 복부에서 출혈이 난 것 같은데.”

“에스퍼잖냐. 자가 치유 능력.”

“!!”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호은은 펄쩍 뛰며 놀란 토끼 눈이 된 채 뒤를 돌았다. 분명 방에 들어왔을 때 사람의 기척을 못 느껴서 더 깜짝 놀랐다.

“또 보네.”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어제 자판기 앞에서 봤던 호수가 눈부시게 황홀한 미모를 자랑하며 제게 인사하고 있었다.

호수가 찬 날개 모양의 귀걸이가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저 귀걸이에 순간 이동 이능력이 담긴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발소리도 안 내고 호수가 이 방에 들어오는 건 불가능이었다.

“멍청하게 약으로 해결하려 했네.”

호수는 바닥에 떨어진 약통을 들어 침대 바로 옆 선반에 올려 뒀다.

도인호를 방어하듯 지키고 서 있던 호은은 호수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가이딩 대체 약이야.”

“네?”

“가이딩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약으로 연명하고 있는 거지.”

“……!!”

“뭐 그래도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 내가 말했잖아. 이능력자는 결정체가 다친 게 아닌 이상 안 죽는다고. 이렇게 피를 흘려도 시간이 지나면 자가 치유 능력으로 금방 몸을 회복시키거든.”

“그럼 도인호 씨는 괜찮은 건가요?”

“이놈은 가이딩을 제대로 못 받아서 자가 치유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지. 좀만 자고 나면 외적인 부상은 다 치료된다. 뭐 내부가 문제지만.”

“내, 내부요?”

진도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듯 어눌한 호은의 목소리에 호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몰래 고양이처럼 들어왔길래 난 또 도둑 가이딩이라도 하러 왔나 했더니만.”

한 걸음 다가온 호수가 호은의 턱을 치켜들었다.

“그냥, 호기심 많은 고양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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