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사람이 아니라고요?”
“너 교육 듣고 있는 거 맞지?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서야.”
“어제 처음으로 수업을 들었어요.”
“아. 괜히 귀찮은 녀석한테 말 걸었네.”
눈웃음을 치며 독설을 내뱉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천사가 신의 언어를 전달하듯 경건해 보였다. 그 외모에 홀릴뻔한 호은은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 남자의 사원증을 확인했다.
파란색이면 가이드라는 뜻인데. 코드 네임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 호수라고 쓰여 있다. 거기다 등급은 S.
인턴 사람들은 모두 네임이라고 쓰여 있던 곳에 남자는 코드 네임이라고 적혀 있다. 사원증에 들어갈 이름은 실명과 가명 둘 다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교육 담당자의 이름은 하늘이었는데 뭔가 자연 친화적인 느낌으로 코드 네임을 맞춘 건가?
“이번엔 뭐가 궁금해서 눈을 그렇게 크게 뜨는 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난 아주 바쁜 사람이라 한가롭게 인턴 질문받아 주는 그런 수고는 사절이거든.”
호수는 생긴 건 귀공자처럼 생겨서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무례하기 짝이 없다.
초면부터 이렇게 핍박을 주고 귀찮은 걸 티 내는 사람은 처음이다. 어제 만난 인턴 선배를 떠올리며 이 회사 가이드들은 다 이렇게 성격이 더러운지 궁금해졌다.
“뭐 그래도 사람이 아닌 에스퍼는 설명해 줄게.”
여름 새벽녘의 하늘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이능력자를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네?”
아침을 밝혀 주는 태양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호수의 뒷말은 상쾌한 아침이 아닌 찝찝한 아침을 맞이하게 했다.
“심장을 꿰뚫어야 해. 이능력의 핵이 심장에 있거든. 몇 번이고 팔다리가 잘려도 이능력자의 몸은 재생돼. 심장을 꿰뚫어 이능력 핵에 손상을 입혀야만 죽일 수 있는 거지. 그게 아니면 이능력 폭주로 이능력 핵이 타 버리거나.”
“아…….”
“이능력 핵에 대해 조사하고 있던 어느 날 놀라운 가설이 세워졌어. 이능력의 핵을 결정체라 부르는데 이걸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면 이능력자가 되고 물체에다 넣으면 이능력 도구가 되고?”
호수는 적색 눈동자를 잔뜩 빛냈다.
“이능력 연구진은 실험했고 결과는 Yes였던 거야.”
“그 말은 일반인도 에스퍼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보통의 일반인은 안 되지만, 이능력자의 유전자 형질이 비슷한 사람에게 결정체 이식은 성공했어. 도구의 이능력화는 조금 나중 일이었지만 어쨌든 사람은 성공적이었지.”
“…….”
“자. 여기서 문제. 그럼 저렇게 만들어진 이능력자를 사람으로 취급해도 되는 걸까요? 아닐까요?”
“네? 사람이잖아요.”
“뭐 당연히 본체는 사람이긴 하지만. 수술을 통해 이능력자가 된 거니 인정하지 못한 시선도 있기 마련이지.”
“그게 무슨…”
“그들은 가이딩의 양도 일반 이능력자의 몇 배는 더 들거든. 따라서 구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고 한국 이능력자 협회에선 사원증으로 구분한 거야.”
어제 마주쳤던 도인호는 분명 사원증을 차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인호는 이능력자가 아닌 결정체 이식자라는 뜻인가?
“굳이 그런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요?”
“이능력자의 수는 국가 군사력을 나타내는 거야. 좋든 싫든 위에서 원하면 해야지.”
“그래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결정체 이식자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지. 이능력을 담고 있는.”
“……!!”
“결론은 사원증 잘 차고 다녀. 도구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면.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도구에 가이딩해 주려던 멍청한 인턴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설마 너는 아니겠지?”
“다들 말 없는 줄 알았더니 소문은 빨리 나네요.”
“멀쩡한 걸 보니 신기하네.”
호은의 옆선부터 시작해 턱 끝을 손으로 훑은 호수는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뭐, 얼굴 봤으니 이만 가 볼까.”
호수는 차고 있던 귀걸이를 손가락으로 두 번 건드렸다. 깃털 모양으로 생긴 귀걸이는 흰빛을 내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가이드 아니었어?”
분명 파란색 사원증을 차고 있던 호수가 눈앞에서 없어졌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알 수 없는 남자였다.
“그나저나 결정체 이식자라.”
도인호가 거절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에스퍼와 결정체 이식자 둘 다 이능력자라는 사실은 같은데 왜 구분하는 건지 호은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인데 도구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가슴이 답답해 숨 쉬는 게 불편해졌다. 아직 가이드와 에스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여기다 결정체 이식자라는 존재까지 추가하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호은은 머리를 헝클이며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랑은 상관없겠지.”
도인호에게 화려하게 거절당했으니 앞으로 다시 마주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을 유일하게 연결 짓던 우산도 이제는 아무 의미 없었다.
그렇게나 싸가지 없던 도인호가 우산을 돌려달라 말할 것 같지도 않고 현대인이라면 우산 잃어버리는 것 정도야 흔한 일이다.
인턴사원인 호은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못 들은 척, 아무것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안다. 분명 아는데.
‘못 하는 겁니다. 친구도, 실습 상대도.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왜 하필 아무 사이도 아닌 도인호가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내뱉는 말은 하나 같이 재수 없는데 위축된 모습은 또 언밸런스하기 짝이 없다.
잘생긴 얼굴과 다르게 생기가 텅 비어 버린 눈동자도 그렇고 190쯤 될 것 같은 체격은 허리를 굽혀 왜소하게 만들었다.
냉소 가득한 단어로만 말하는 목소리는 작고 끝말이 흐려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도인호를 보고 느꼈던 점을 하나씩 나열하자 묘한 위화감이 생겼다. 단점들이 하나같이 따돌림당해서 생긴 것 같지 않나?
“에스퍼 인권 협회 같은 거 없나. 아니면 파업을…….”
말도 안 되는 대안을 생각하다 호은은 신경 끄기로 했으면서 누구보다 신경 쓰는 자기 모습에 비음을 터트렸다.
“아. 이놈의 오지랖.”
벤츠에 앉아 시선을 하늘로 올리자 어느덧 강렬해진 햇빛이 눈을 찔러 댔다.
이럴 때 검은 우산이 있었으면 햇빛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호은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
“오늘은 일반인에서 에스퍼가 된 결정체 이식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곳에 앉은 호은은 귀신 같은 타이밍에 결정체 이식자를 다루는 교육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능력의 핵이라고 불리는 결정체는 에스퍼의 심장에 해당합니다. 결정체 중심은 가이딩이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에스퍼가 이능력을 쓸 때 가이딩이 결정체에 흡수되는 형태인데 이때 결정체에 들어갈 가이딩이 모자라는 순간 에스퍼는 이능력이 폭주할 수 있습니다.”
이능력 폭주. 아직 그 단어가 주는 무게를 호은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에스퍼의 등급이 높을수록 많은 가이딩을 필요로 하고 그중 결정체 이식자는 조금 더 까다로운 가이딩이 필요합니다. 일단 가이딩 양이 많아야 하며 파장이 높아야 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A등급 이하의 가이드는 결정체 이식자를 가이딩할 수 없습니다. 그 이하가 가이딩하게 될 경우 쇼크사할 수도 있으니 인턴사원은 결정체 이식자를 보면 최대한 피해 주세요.”
“쇼크사라니 무섭네요.”
옆에서 김세희가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인호가 자기를 못 만지게 하거부하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런 거면 그냥 말로 위험하니까 만지지 말라고 하든가. 꼭 그렇게 기분 나쁘게 내쳐야 했던 건가.’
“……따라서 과거 가이드 취급은…….”
호은은 자리에서 죽을 것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엎드렸다.
결정체 이식자 내용은 저게 다였고 가이드의 유래부터 시작해 어제보다 한층 더 쓸모없는 걸 배웠다.
가이드 역사를 열심히 떠들어 대는 하늘을 영혼 없는 얼굴로 쳐다보다 자신만 집중을 못 하나 싶어 동기들을 확인했다.
김세희는 몰래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고 류윤재는 졸고 있어 내심 안도한 호은이었다.
오늘 하루 어떻게 교육 일정이 끝났는지 모르겠다.
그 좋아하는 밥도 코로 먹는지 귀로 먹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몽사몽인 정신 상태로 이론 교육은 끝이 났다.
가방을 정리하는 김세희를 보던 호은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세희 씨. 혹시 실습 상대 구했어요?”
“아니요. 아직 못 구했어요. 뭔가 다들 어른이고 저는 학생이니까 무시당할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초능력 같은 걸 쓰는 분들이라 생각하니 조금 무섭기도 하고요.”
두 사람의 대화에 류윤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들어 보니까 에스퍼 쪽에서 먼저 권유하러 온다고 합니다!”
류윤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의실 앞에 검은색 사원증을 찬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인상이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실습 가이딩의 파트너가 되어 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단, 호은을 제외하고 말이다.
“자자. 여기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카페라도 가서 어느 분과 실습 상대할지 얘기를 나눠 볼까요?”
덩치 큰 에스퍼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던 남자 한 명이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최근에 본 얼굴 같은데.’
한쪽 팔에 깁스를 한 남자를 본 호은은 입을 벌렸다.
“권호은 씨는 시폭이랑 한다고 하셨으니. 세희 씨, 윤재 씨. 두 분만 따라오시면 되겠네요. 카페에 다른 에스퍼 분들도 더 불렀으니 실습 상대 구하기 편할 겁니다.”
‘저 새끼가…….’
어제 두고 보자고 협박했던 게 장난은 아니었는지 인턴 선배는 유치한 복수를 시작하고 있었다.
호은만 콕 집어 말하는 남자에게 당황한 얼굴로 김세희와 류윤재가 힐끔힐끔 호은을 쳐다보며 정말 파트너가 있냐고 물었다.
호은은 잘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풉.”
웃고 있는 인턴 선배의 사원증을 보자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오혁. 저 경박한 웃음소리는 도인호를 데려올 수 있으면 데려와 보라는 비웃음이었다.
아무래도 가이딩 실습 상대해 달라고 했다가 까인 모습이 소문이 난 게 분명했다.
“시폭이가 실습 상대해 주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한번 잘 데려와 보세요, 후배님.”
“네. 데려갈 겁니다. 선배님.”
불꽃 튀는 시선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안오혁이 모두를 데리고 떠나는 거로 일단락됐다.
안오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호은은 주저앉았다.
“미쳤어 권호은! 무슨 자신감으로 도인호를 데려간다고 한 거야?!”
안오혁의 유치한 행동을 보고 똑같이 응수해 주었지만, 이 거짓말은 다음 주가 되면 들통날 게 분명했다.
호은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오혁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잠깐. 데려오면 그만이잖아? 할 수 있다. 권호은.”
도인호가 호은을 거절한 건 결정체 이식자이기 때문이다.
신입 가이드가 결정체 이식자를 가이딩하다가 큰일이 날 수 있으니 가이딩할 때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면 도인호가 허락해 줄지도 모른다.
상황은 오히려 꼬이고 있었으나 아침부터 신경 쓰이던 도인호를 만날 구실이 생겼다는 사실에 호은의 마음은 왜인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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