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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에서 사내연애-5화 (5/129)

5화

이능력자 검색어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해당 기사가 마지막인 것 같았다. 이후에 가이드 공단을 검색했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표면적인 업무를 한 것만 나와 있지 가이딩이나 가이드에 관한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호은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걸 멈추고 한참을 화면만 바라봤다.

너무 깨끗하다. 매스컴에 보도된 에스퍼는 과거에 멈춰 있었다.

오늘 만난 에스퍼만 해도 여러 명인데 새로운 에스퍼의 존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정부는 에스퍼를 숨기고 있다. 에스퍼와 가이드 노출에 거리낌 없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에스퍼와 가이드 노출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었다.

커피를 내려온 호은은 이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며 해외 사이트를 열어 영어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처참했던 토익 점수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영어 울렁증이 재발하듯 속이 메슥거렸지만, 확실히 한국 사이트보다는 자료가 많았다.

동시 번역이 되지 않는 머리에 한쪽에는 구세주와 같은 번역 사이트를 열어 열심히 양쪽 창을 왔다 갔다 하자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알아낸 지식을 노트에 옮겨 적고 있을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모님이 퇴근하셨다. 평소라면 한심한 눈초리로 집에서 종일 뭐 했느냐 물었을 부모님이 오늘은 호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저녁상이 차려진 식탁에는 오랜만에 고기반찬이 있었다. 백 마디의 말보다 고기반찬 하나가 오늘 면접 보느라 고생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저 붙었어요.”

마치 오늘 반찬 맛있다고 말하듯 호은이 담백한 목소리를 뱉었다. 잠깐의 정적이 식탁을 감돌다 사라졌다.

“가이드 공단에?! 아이고 잘했네!”

“흐음. 옷 좀 사러 가야겠네.”

간만에 부모님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왔다. 기대에 찬 부모님의 표정에 호은은 어색하게 웃었다. 위험한 일을 시키는 회사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애통하기만 했다.

“옷은 나중에 살게요. 내일부터 한 달 정도 인턴 기간이라는데…….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요.”

“내일부터 바로 출근? 많이 바쁜가 봐. 우리 호은이 가자마자 바빠서 어떡해?”

“원래 바쁠 때 가서 일 배우는 게 좋은 거야. 사수들 말 잘 듣고.”

걱정스러운 목소리의 엄마와 조언하는 아빠의 말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한 달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동기들과 인턴 기간을 가지고 정직원 전환이 될 거라고 말했더니 잔뜩 기뻐하는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불고기를 밥 위에 올려 주셨다.

혹시라도 필기시험은 본 거냐? 보통 2차 면접까지 보지 않냐 질문할까 걱정했으나 부모님은 아들의 합격 소식에만 집중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아들이 공공기관에 취업했다고 자랑하는 통화 소리가 들렸다. 같은 공간에서 자식 자랑을 계속 들을 용기가 없어 호은은 회사 갈 준비를 해야 한다며 욕실로 도망쳤다.

목욕을 끝낸 후 한 달간 필요한 물건을 캐리어에 담았다.

생필품과 옷, 최근에 산 카메라와 졸업 후 잘 쓰지 않게 된 노트북을 캐리어에 넣고 마지막으로 검은색 우산은 현관 문거리에 걸어 놨다.

방으로 돌아와 지쳤다는 듯 침대에 쓰러지듯 눕자 던져 둔 공책이 베개 옆에 있었다.

“…….”

호은은 공책을 들고 자료 조사했던 내용을 정독했다.

1. 에스퍼는 일반 사람보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존재다.

에스퍼는 일반 사람보다 오감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한다. 덕분에 작은 소리도 소음으로 다가오고 냄새도 예민하게 맡아져 가만히 있는 것조차 괴롭다는 소견이 많았다.

2. 에스퍼는 일반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

에스퍼는 이능력을 사용할 때 수명을 갉아먹는 고통이 따른다. 해외에서 집계한 에스퍼 수명 통계는 50세를 넘지 못했다. 사망 사유는 하나같이 이능력 폭주였다.

3. 가이드는 에스퍼를 치유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가이드는 앞서 나열된 두 가지 문제를 가이딩이라는 능력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가이딩은 가이드 몸 안에 있는 능력인데 가이드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 예민해진 에스퍼의 신경은 진정되고 이능력으로 인한 폭주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가이딩 자체는 모든 국가에서 어떤 능력인지 기밀로 붙여 알 수 없으며 가이드는 신체적으로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한다. 오감이 뛰어나거나 가이딩을 사용한다고 수명이 짧아진 사례는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에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가이드의 존재를 찾는 건 에스퍼를 찾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유전자 조직으로 찾을 수 있는 에스퍼와 다르게 과거의 가이드는 오로지 에스퍼만 알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여러 실험을 걸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이드는 일반 사람보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으면서 그 불안정한 수치에도 신체에 이상 없는 자들로 밝혀졌다.

“……설마 모든 건강검진이 가이드 찾기를 위한 하나의 수단은 아니겠지?”

학생 때부터 유난히 건강검진을 많이 하는 대한민국이었다. 오죽하면 취업할 때 필수 서류로 채용 검진 결과지를 서류에서부터 넣는단 말인가?

“잠깐.”

그러고 보니 분명 면접관은 피검사에 가이드 특징이 있다 했다.

“설마……!”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시발점을 찾은 것 같아 호은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아……. 이제 더는 못 보겠다. 졸려…….”

평소 보다 머리를 많이 써서 그런지 눈꺼풀이 느릿하게 감기기 시작했다. 손에 힘이 빠지자 호은은 공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툭-

공책이 떨어진 소리에 감기던 두 눈이 말똥히 떠졌다.

“잠깐만 업로드!”

잠자리에 들려던 호은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취업으로 인해 너튜브를 까먹을 뻔했다.

한 달을 감시와 함께 갇혀 살게 되면 너튜브 업로드를 못 한다. 나중에 구독자 200명 됐을 때 꺼내려던 영상이 컴퓨터에 잠들어 있었다.

현재 구독자 수 189명.

너튜브로 성공하고 싶어 열심히 영상을 올렸지만,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그저 많이 먹기만 하는 호은의 영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동안 콘텐츠의 문제를 절실히 느낀 호은은 영상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요즘 너튜브에서 유행하는 VLOG 형태의 촬영과 편집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기껏 열심히 영상을 만들었지만 취업했으니 너튜브는 잠깐 중단해야 했다.

“그래도 영상 찍은 거 아까우니까.”

200명 기념으로 올리려던 영상이 마지막 영상으로 올라가게 된다니. 갑작스러운 이별에 호은의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나름 애정이 들었던 상태라 구독자가 공지를 볼지 모르겠지만 취업으로 인해 당분간 영상을 못 올린다고 글을 올렸다.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어. 내일은 첫 출근이니까 이제 잠이나 자야겠다.”

평소라면 올렸던 영상을 실시간 모니터링했겠지만 취업과 가이드로 가득 찬 머리가 한계라고 외치는 탓에 호은은 오늘만큼은 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그때는 몰랐다.

기존 먹방 영상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얼굴이 나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해당 영상이 업로드되고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조회 수가 올라가며 댓글이 달렸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건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였다.

***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은 호은이 비장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 밖에는 어제 봤던 검은 세단 대신 순간이동 에스퍼가 손을 흔들며 반겨 주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폴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좋은 아침입니다. 호은 씨.”

어제의 손 뽀뽀 사건 때문에 혼자 어색한 인사를 건넨 호은은 여기서 머뭇거리면 더 그림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폴의 손을 잡았다.

곧 부모님 출근 시간이라 마주치기 전에 순간 이동을 할 생각이었다.

이능력에 익숙해진 듯 다짜고짜 손부터 잡은 호은의 행동에 살짝 놀란 폴은 알겠다는 듯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세 번째가 되니 울렁거리던 속도 익숙해졌는지 초반보다 괜찮은 호은이었다.

‘벌써 도착했나? 자동차 타고 갈 거리를 몇 초 만에 오다니. 참 편리한 능력이네.’

두 사람은 가이드 공단이 아닌 다른 장소에 도착했다.

“여긴 어디인가요?”

“한국 이능력자 협회 지사 중 한 곳입니다. 인턴 생활은 이곳에서 진행할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자 대학교 캠퍼스 보다 더 넓어 보였다. 버스를 타고 다녀도 될 정도의 규모는 여러 채의 건물과 편의 시설 그리고 공원까지 구성된 게 웬만한 생활은 이곳에서 다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실제로 에스퍼와 가이드가 현장 업무를 할 때 이용하는 곳으로 서울 본사 외에 지사로는 인천, 부산, 제주 총 3개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권호은 씨가 지내실 곳은 인천지사입니다.”

“지사가 제법 많네요.”

“기숙사 안내 먼저 도와드리죠.”

정문으로 들어가 10분 정도 걷자 낮은 높이의 아파트가 보였다. 가이드 공단처럼 이곳도 시내 한복판같이 높은 건물을 보긴 어려웠다.

“왼쪽부터 A, B, C, D, E동입니다. 권호은 씨 숙소는 E동입니다.”

10층 정도 되는 아파트 형태의 건물 5채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건물 내 엘리베이터를 탔다.

폴은 점점 올라가는 숫자판을 바라봤다. 몇 년 만에 E동 10층에 사람이 들어오는 건지.

원래 신입 가이드는 평수가 넓은 아파트로 배정되는데 하필이면 인사이동 문제로 집을 빼지 못한 직원이 많아 넓은 평수는 이곳밖에 남지 않았다.

인천지사 내에 모두가 기피하는 대상이 옆 호수에 살고 있지만, 신입인 호은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1010호가 권호은 씨 숙소입니다. 캐리어 두고 나오시면 인턴 동기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안내해 드리죠.”

폴은 도어 록을 열 수 있는 카드를 호은에게 건넸다.

카드를 도어 록에 갖다 대자 삑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캐리어는 신발장에 대충 두고 호은은 집을 살폈다.

50평 정도는 되어 보이는 내부는 필요한 살림살이는 전부 채워져 있었다.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거실을 대충 훑으며 호은은 내버려 뒀던 캐리어를 들고 가장 안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가장 커다란 평수의 방이 나왔다.

넓은 창가에 더블 침대가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드레스룸이 방 안에 숨겨져 있었다.

드레스룸의 복도를 지나 더 걷자 화장실까지 있는 걸 확인한 호은은 이능력자 협회가 돈이 많은 건지 가이드 공단이 돈이 많은 건지 궁금했다.

이 정도의 아파트 평수를 혼자 살라고 주다니.

“얼마나 돈을 많이 벌길래 연봉부터 숙소까지 이런 거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던 호은은 뒤늦게 폴이 밖에서 기다리는 걸 떠올렸다. 집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서둘러 현관문에서 나오자 앞집이 보였다.

1009호.

요즘 같은 시대에 이웃사촌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앞집에 직장 동료가 사는 거라면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고민하던 호은이 앞집으로 발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왔어요!”

“아, 갑니다!”

호은은 앞집에 인사는 나중에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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