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죽는다는 것을 왜 가정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머리는 착실하게 죽었을 때 받을 위로금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10억이면 지금 집을 팔고 합친 돈으로 서울에 집 하나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식이 죽는 것만큼 불효는 없다고 하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니 10억 받고 죽는 거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생각 정리를 끝내자 손이 먼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서명란에 이름 석 자를 적었다. 이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서명 하나로 호은은 완전히 가이드 공단에 묶인 셈이 되었다.
다음은 유언장이었다. 써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호은은 다섯 글자를 적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저 단어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설마 인턴한테 목숨이 위험한 업무를 바로 주진 않을 거라 생각하며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있다면 그때 조금 더 진정성 있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한 장은 권호은 씨가 보관하시면 됩니다.”
두 장의 근로 계약서는 겹쳐서 회사 직인과 호은의 서명을 끝으로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면접관이 허공에 손을 뻗자 판판했던 바닥이 꿈틀거리며 초록색 줄기가 튀어나온다. 이것도 두 번째 보는 거라 그런지 위화감이 안 들었다.
줄기는 면접관이 들고 있는 근로 계약서를 휘감더니 그대로 바닥에 끌고 들어갔다. 이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넝쿨째 꿈틀거리는 줄기는 직사각형의 보급 상자를 토해 냈다.
면접관은 보급 상자를 받아 책상에 내려놓았다. 상자 뚜껑을 열자 안에는 손목시계와 원형 모양의 은색 목걸이가 있었다.
“하나는 가이드 워치입니다. 방수 기능이 있지만 씻을 때는 빼고 씻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이상 차지 않게 되면 저희 쪽에 연락이 닿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현재 인턴 기간에는 가이드 워치 C 버전으로 배터리가 한 달 이상은 가는 거니 따로 충전은 필요 없습니다.”
“가이드 워치요?”
“일을 하다 보면 알겠지만, 가이드는 자신의 가이딩 수치를 알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가이딩을 소모하면 가이드의 체력을 갉아먹기 때문에 가이드 워치로 해당 부분을 보완하는 거죠. 그리고 C 버전에는 도청 기능이 있는데 이건 인턴 기간 동안 비밀 서약 부분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목적입니다.”
태연스럽게 도청이라는 말을 내뱉는 모습에 호은은 한국에서 도청이라는 것이 합법적인 거로 착각할 뻔했다.
아무리 근로 계약서에 비밀서약이 있다 하더라도 회사 몰래 말하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이러한 장치를 넣은 걸 보니 기밀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 B 버전으로 교체해 드리죠. 그때는 도청 기능이 빠지고 정부에 등록된 에스퍼들의 건강 및 가이딩 상태를 체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지금이야 말해도 이해 못 하겠지만.”
“……네.”
면접관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못 알아들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가이딩이라는 단어를 말하는데 눈치껏 가이딩이라는 게 가이드의 이능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가이딩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면접관이 친절하게 알려 줄 것 같지 않아 인터넷이라도 뒤져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호은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끝입니다. 내일도 같은 시간 집 앞으로 차 대기시키도록 하죠.”
“내일부터 바로 출근인가요?”
하루아침에 백수에서 회사원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건만 청천벽력 같은 면접관의 말에 호은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네. 내일부터 인턴 생활 시작입니다. 또한, 앞으로 한 달은 기숙사에서 지내야 하니 필요한 짐 들고 오시면 됩니다.”
도청하는 거로 끝인 줄 알았더니 한 달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야 한단다.
마치 죄인이 감옥에서 감시당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러다 나중에는 어디 돌아다닐 때 위치추적이라도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목걸이는 위치…… 아니. 입사 선물입니다. 채워 드리죠.”
면접관은 빨리 끝내고 싶은 모양인지 이제는 부연 설명도 없이 자기 능력을 써 호은에게 목걸이를 채워 주고 친절하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제 역할은 여기서 끝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나가고 싶을 때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허무할 만큼 쉽게 열렸다.
왼쪽 손목에는 가이드 워치를 목에는 목걸이. 마치 장사꾼에게 속아 이것저것 강매당한 모습으로 복도에 나온 호은을 여름의 뜨거운 바람이 맞이해 줬다.
“이제 끝났다.”
안도와 허무함이 섞인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어깨에 무거운 추가 매달린 것처럼 축 처졌다. 찌뿌둥한 목을 좌우로 꺾으며 호은은 건물을 나왔다.
건물을 나오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푸른 하늘이 호은을 반겨 줬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길게 뻗어 나가는 하늘이 경이롭기 짝이 없다.
“하하. 그래서 여기 어디야.”
어디길래 높은 건물 하나도 보이지 않는가 말인가. 눈부신 태양에 찌푸린 눈으로 애써 웃은 호은은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현대인답게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하자.”
대한민국에서 지도에 나오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지도 앱을 보려던 호은은 꺼져 있는 핸드폰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전원을 끈 기억은 없다.
‘혹시 녹음이나 사진 촬영 때문에 이능력으로 꺼 둔 건가?’
몇 분 만에 모든 현상이 에스퍼들의 능력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 호은은 지도 앱을 켜며 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빨리 나오셨네요? 보통은 깽판을 더 치다 나오는……, 아이고 조금 전 말은 잊으세요.”
갈색 머리카락과 중간에 흰색 브릿지가 섞인 남자가 호은을 아는 척하며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오늘 호은을 데려다준 운전석에 있던 남자였다.
서글서글 웃으며 말하던 남자는 본인이 뱉은 말에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곤 어색하게 웃는다.
‘보통은 더 깽판을 치다 나오는구나.’
호은이 생각해도 자신이 쉽게 인정하고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자. 집에 가셔야죠. 주소는 제가 아니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갈 수 있는데요.”
인간 불신에 걸린 사람처럼 호은은 단번에 거절했다. 면접관의 인상이 안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에스퍼인 남자를 경계하게 됐다.
“아 정말요? 저야 능력 안 써서 편하긴 한데.”
능력이라 하니 면접에서 당했던 불쾌한 기억에 호은은 쌀쌀맞게 남자를 지나쳤다.
보지 못한 핸드폰을 다시 확인한 순간 호은은 빠르게 뒤를 돌았다.
“잠시만요. 여기 위치가 왜…….”
왜 지역이 경주라고 뜰까? 호은의 집은 경기도였다.
벚꽃을 같이 보러 올 사람이 없기에 경주라는 곳은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집에서 경주까지 더럽게 멀다.
“제가 알아서 갈 수 없네요.”
“역시 그러시죠?”
“네……. 부탁드립니다.”
민망함에 목덜미를 손으로 매만지고 있자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손을 내밀었다.
“손? 손잡아 달라고요?”
“네.”
호은이 머뭇거리며 남자의 손을 잡자 맞닿은 부분에서 전류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리며 귓가에선 이명 소리가 들렸다. 주변 시야가 흔들리더니 빠른 속도로 주변 배경이 변했다. 그 속도감에 몸이 휘청거리자 남자가 익숙하다는 듯 호은의 허리를 붙잡았다.
바닥을 보며 쓴 침을 삼키자 어느새 호은은 자기 집 앞이었다.
‘순간 이동이라는 게 편하구나.’
역시 가이드보다는 에스퍼로 각성하는 게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호은과 맞닿은 손을 가볍게 몇 번 흔들었다.
“답례 좀 받아 갈게요.”
“네?”
손등에 남자의 입술이 스쳤다.
“허?”
남자한테 손등 뽀뽀를 받았다. 남자에게 잡힌 손을 빼고 싶었지만, 입술이 닿은 손등에 조금 더 강한 전류가 느껴져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음. 좋은 가이드가 되실 것 같네요.”
“뭐…….”
뒤늦게 뭐 하는 거냐 따지려 했던 호은은 남자가 사라짐과 동시에 힘없이 손이 툭 떨어졌다.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 것 같은 손등의 감각이, 나무에 매달려 시끄럽게 울고 있는 매미 소리가, 여름 햇볕의 뜨거움이 한데 모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평범했던 기존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자 복도 끝에 설치된 벽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집을 나오고 나서 한 시간밖에 안 지난 상태였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
한 시간 동안 그 모든 일을 겪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쁘게 나갔던 상황을 보여 주듯 치우지 못한 식탁에는 온기를 잃은 음식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음식을 봐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차가워진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호은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백수 생활이 끝이 났다. 그리고 부모님이 꿈에 그리던 공공 기관에 취업하게 됐다. 사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의 씨앗이 작게 꿈틀거리고 있지만 제시한 연봉 그대로 준다면 그 의심은 마음 한편에 친히 묻기로 했다.
“그래도 유언장은 아니지 않나.”
마른세수하며 나직이 중얼거린 호은에게 대답하듯 전자레인지 소리가 들려왔다.
밥을 한입 먹으면서 걱정도 같이 씹었다. 가이드는 에스퍼를 치유하는 능력밖에 없는데 왜 죽을 고비를 염두에 둬야 하는지 모르겠다.
게임 속 포지션에도 힐러는 안전하게 뒤에서 힐만 주고 있는데 가이드는 힐 주는 막대기로 몬스터도 같이 패 줘야 하는 걸까?
돈에 잠시 이성이 날아가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으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맛있네.”
이 와중에 엄마표 김치찌개는 식어도 맛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 집밥도 먹기 힘들 텐데. 준비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현실에 목이 멨다.
식사를 끝내고 불편했던 정장을 빠르게 벗고 평소에 입던 트레이닝복을 입자 긴장한 몸이 이완하는 게 느껴진다.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면접관이 알려 주지 않은 정보를 찾을 생각이었다.
첫 번째 검색어는 이능력자였다.
결과에 반은 이능력 소재의 미디어 매체가 전부였다.
쓸만한 자료는 몇 년 전 한국 에스퍼가 해결한 사건들의 기사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가이드의 모습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고 에스퍼 또한 얼굴까지 공개된 사진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기사 대부분의 내용은 이능력을 쓰는 에스퍼인지 아니면 소방대원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영웅! 자기 몸을 바쳐 아이를 지키다!]
여러 개의 기사 중 드디어 에스퍼의 얼굴이 나온 기사가 발견되었다. 헬멧과 전투복을 입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 불현듯 머릿속으로 한 남자가 떠올랐다.
“잠깐…….”
비 내리는 날에 마주쳤던 남자와 같은 복장이었다. 호은의 시선이 현관문 한쪽에 놓인 검은색 우산으로 향했다.
“엑스트라 배우가 아니었어…….”
영영 주인에게 못 돌아갈 줄 알았던 우산이 어쩌면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호은은 기숙사에 챙겨야 할 짐에 검은색 우산을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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