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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에서 사내연애-3화 (3/129)

3화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가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의자는 면접관과 면접자가 앉을 수 있게 한 개씩 놓여 있었고, 그 사이로는 커다란 책상이 있었다.

심지어 책상에는 호은이 낸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는 어디에 간 건지 채용 검진 결과지만 놓여 있었다.

“권호은 씨 편하게 앉으세요.”

얼굴 반 이상을 앞머리로 가린 남자는 호은을 앉힌 뒤 핸드폰만 만져 댔다.

꽉 쥔 주먹에 땀이 고였다. 호은이 자기소개라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면접관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서로를 바라보며 긴 침묵이 이어지자 호은은 이것마저 면접의 일부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앉은 자리가 불편해져 괜히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면접은 형식적이니 그렇게 불편하게 있지 않아도 됩니다.”

“아…… 그럼 자기소개부터 먼저 할까요?”

호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면접관은 공중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매만지듯 손을 들었다.

“방사 가이딩 들어오네요……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 아니! 뭐라고요? 합격이요? 제가 뭘 했다고.”

호은은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 시간 여행이라도 했나 싶었다. 1분 자기소개도 안 했고 지원 동기나 입사 후 포부도 말 안 했는데 합격이라니. 이건 사기가 분명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면접이라니.’

다단계 회사도 이러진 않을 것이다.

“인턴 기간은 가이드 교육을 위해 한 달 정도 진행합니다. 말이 인턴이지 한 달 뒤 등급 테스트 후 바로 정직원이 될 거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면접관은 궁금증을 해결시켜 줄 생각이 없는지 자기 할 말만 내뱉었다. 정해진 말만 내뱉는 로봇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욱하는 성격 좀 죽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호은에게 면접관의 태도는 발화점에 불을 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부담이고 뭐고 면접자인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저를 합격시키게요? 저 아르바이트도 해 본 적 없고 토익 점수는 낮고 자격증 제출 안 했는데! 그리고 자기소개서 제대로 본 거 맞아요?! 저 완전 대충 썼습니다.”

“…….”

“무슨 공공 기관이 면접을 이렇게 봐요. 가이드 공단 아니죠? 이거 신종 사기죠?”

목에 핏대를 세운 채 호은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면접장 들어오기 전에는 어쩌면 운이 좋아 합격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야 차에서 봤던 남자도 합격이라는 식으로 말했으니 기대를 안 했다고 하면 거짓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기대에는 면접을 잘 보려는 호은의 의지가 있었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백수도 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으려 했던 면접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진정하세요……. 가이드 공단 맞습니다. 그리고 스펙? 그런 건 일반 회사에서나 중요하지, 여기에서는 의미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하등 쓸모없는…… 그래요. 성인이 되고 나서 부모 등골이나 처먹는 당신 같은 ‘잉여 인간’도 가이딩만 할 수 있다면 오케이입니다.”

“이, 잉여 인간?”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사기는 아니니까 근로 계약서나 작성하시죠.”

면접관의 무던한 행동에 호은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1분이라도 시간을 허비한 게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집에서 만화책을 보는 게 더 알찰 것 같다며 나가려는 호은에 면접관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아- 매번 귀찮게 만든다니까.”

면접관은 투덜거리며 호은에게 다가왔다.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자 가려졌던 면접관의 검은 눈동자가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흙 하나 없는 대리석 바닥에서 자란 초록 줄기가 벽 주변으로 뻗어 나가더니 순식간에 벽과 문을 감쌌다. 그 모습이 마치 나갈 거면 나가 보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와 반대로 새하얗게 질린 호은의 볼을 툭툭 손으로 건든 면접관은 느리게 호은의 목을 쥐듯 손을 가져다 댔다.

호은은 목이 졸릴 거라는 공포보다 이상한 감각을 먼저 느꼈다. 면접관의 맨손이 자기 피부에 닿는 순간 찌릿하고 알 수 없는 전류가 느껴졌다.

마치 어제 만졌던 남자에게 느껴졌던 정전기와 비슷했다.

“머리가 나쁜 건가. 면접은 형식적인 거라 제가 말했죠. 이곳에 오는 순간 당신은 가이드로서 가이드 공단의 직원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내가 불합격을 줄 리가 없으니까.”

“불합격 주세요! 취업 안 할래요.”

가느다란 목을 쥐고 있는 손이 무섭지도 않은지 호은은 남자의 녹색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받아쳤다.

“저 솔직히 여기 다니고 싶어서 지원한 것도 아니거든요? 상황이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건데, 사기 같은 거 당할 정도로…….”

파사삭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호은의 몸에 초록색 줄기가 꽁꽁 감기기 시작했다. 조금 전 바닥에서 돋아난 줄기는 호은이 말할 때마다 조금씩 압박해 왔다.

“윽…!”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열받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인제 보니 울퉁불퉁 가시 돋은 줄기가 징그럽다.

여기서 몸을 더 조여 오면 옷을 뚫고 피부를 다치게 할 것만 같았다.

“아까부터 왜 자꾸 사기라고 하는 거죠? 밖에서 건물도 보고 왔잖습니까.”

“그, 그야, 전 가이딩을 못 하니까요!”

면접관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가이딩만 할 수 있다면 오케이입니다.”라고 말이다.

호은은 그런 문장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이딩이라니?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권호은 씨는 가이드입니다. 가이드가 가이딩을 하는 건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한 거죠.”

“그러니까. 제가 왜 가이드냐고요!”

“하. 거기서부터 설명해야 합니까.”

바들바들 떨면서도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할 말을 하는 호은의 모습에 면접관은 생각에 빠지더니 손뼉을 한번 쳤다. 그러자 호은의 몸을 둘러싼 줄기들이 빠르게 바닥으로 사라졌다.

“제 앞에 보이는 채용 검진 결과지 보입니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채용 검진 결과지가 눈앞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몇 살에 각성할지 모르는 가이드를 찾기 위해 에스퍼 선진국은 가이드 검사가 있어 매년 검사를 합니다만, 한국은 아쉽게도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모색한 방법은 가이드의 특징을 찾는 거였습니다.”

“…….”

“가이드의 특징은 피검사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적합한 사람을 찾은 후 2차에 에스퍼를 투입합니다. 에스퍼는 가이드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거든요.”

“그렇단 말은…….”

“당신을 데려온 남자. 그 역시 에스퍼입니다. 당신이 가이드가 아니었으면 가이드 공단에 오지도 않았을 거란 말이죠.”

채용 검진 결과지를 위아래로 열심히 훑어봤지만 어떤 부분이 가이드 특징인지 모르겠다.

“에스퍼에게 가이드라는 존재가 맞는다고 확인되면 면접은 그저 형식적인 것. 근로 계약서만 쓰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면접관의 목소리가 아득히 먼 우주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평범하게 길을 걷다가 요란하게 엑셀을 밟는 자동차가 멈춰 서더니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일단 타!”라고 외쳐서 얼떨결에 자동차를 탔더니 “사실 넌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어. 히어로야. 지금 당장 싸워야 해!”라는 시나리오의 가이드 버전도 아니고.

“내가 가이드로 각성 했다니.”

넋이 나간 호은의 손등을 면접관이 어루만졌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정전기로 피부가 따끔거렸다.

“에스퍼는 말이죠. 가이드랑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라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번 발견한 가이드는 놓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몰랐던 가이드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도대체 이해가…….”

“알아듣게 말씀드리죠. 입사 축하드려요. 권호은 씨.”

처음으로 싱긋 웃은 면접관은 간이 서랍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책상에 올려 뒀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넘어와서 근로 계약서를 써 볼까요. 아, 가장 중요한 걸 안 꺼냈군요.”

“……?”

“자, 가이드의 필수품 바로 유언장입니다.”

“미친…….”

본인이 입 밖으로 욕을 내뱉은 것도 자각 못 한 호은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망했다. 제대로 채용 공고도 안 보고 이곳저곳 서류 던졌다가 인생 말아먹게 생겼다. 어떤 미친 회사가 첫날에 유언장을 쓰게 하는 걸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게 만들려는 속셈인가? 방금처럼 심기를 거스르면 죽인 다음에 자살로 위장시키려는 그런 스토리?’

볼펜을 쥐고 있는 호은의 손이 떨렸다. 도망가고 싶어도 면접관이 이상한 줄기를 꺼내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 거다.

결국, 멀쩡히 문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근로 계약서에 서명과 유언장을 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런 거로 너튜브를 뽑으면 조회 수 이백이 아니라 이백만은 갈 것 같았다. 제목은 면접 첫날 유언장을 적게 되었습니다-

‘이것 참, 어그로 제대로 끌겠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애써 유언장에서 시선을 돌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근로 계약서를 천천히 읽어 가던 호은은 연봉이 적혀 있는 부분에서 숨을 멈췄다.

“일, 십, 백, 천, 만…… 억?”

볼펜으로 숫자 0을 세던 호은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다시 한번 중얼중얼 숫자를 읽던 호은은 1억이라는 연봉에 실소를 터트렸다.

‘하, 그럼 그렇지. 역시 사기구나.’

아무래도 정부에 불만을 품은 에스퍼가 반역하고 이런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는 연봉 부분이 설명되지 않았다. 신입 연봉이 1억이라니.

“일억을 정말 주신다고요?”

“지금은 적다고 느껴질 수 있어도 연차가 쌓이고 현장 임무를 맡게 된다면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디를 가든 신입은 연봉이 낮을 수밖에 없죠.”

면접관의 말에 호은은 숨을 들이켰다. 적다고? 누가 연봉 1억을 적다고 생각하나? 신입 초봉에 1억이 말이 되는 소리인지 물어본 건데 오히려 적은 것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다.

‘정말 사실이라면…… 1년에 1억 정도면 유언장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이 정도 돈을 보니 협박을 받지 않아도 당장 가이드인지 뭔지 되겠다고 외치고 싶어졌다. 처음부터 연봉을 제시했다면 호은은 지금보다 차분하게 면접에 응했을지도 모르겠다.

“저. 유언장은 왜 있는 거죠.”

“근로 계약서에 보시면 기밀 유지 사항이 있죠? 권호은 씨가 가이드인 사항은 일단 기밀이지만 상황에 따라 밝혀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권호은 씨가 하실 업무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임무도 있는데 죽게 된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죽게 되면 가장 먼저 가족에게 알려 줘야 하니 미리 써 두는 겁니다.”

1억은 목숨 값이 맞았나 보다.

‘과연 나는 1억에 자신을 팔 것인가. 1억에 아들이 죽었다 하면 부모님이 슬퍼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던 호은은 면접관의 다음 말에 결정을 내렸다.

“아. 그리고 권호은 씨가 사망하게 될 경우 위로금 10억이 나옵니다.”

죽어서 효도하자! 어쩐지 그런 문장이 호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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