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요즘 신종 사이비 수업이 다양하다고 했다. 그중 일반인처럼 주변에 다가와 전도한다고 했는데 호은은 설마 그런 수법에 걸린 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검은 세단에 기대어 서 있던 남자는 반듯한 외모와 허우대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누가 봐도 사이비가 아니었다.
‘그래, 저 얼굴이 사기꾼일 리 없어.’
얼굴이 신뢰 그 자체인 남자는 얼어 있는 호은에게 다가왔다.
“권호은 씨? 일단 타세요. 가면서 말씀 나누죠.”
“…….”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 했는데.’
뒤에서 지켜보는 부모님의 시선이 등에 매섭게 날아온다.
여기서 물러서면 더 복잡해질 상황에 호은은 의심을 지우지 않은 채 차에 타기 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초등학생 시절 배웠던 호신술을 보여 주겠다고 남자에게만 들리게끔 말했다. 왠지 남자의 입이 살짝 올라간 기분이었다.
“…….”
자리에 앉자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서류 넘기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경계를 풀지 않고 고개만 살짝 내민 호은은 틀림없이 자신이 낸 자기소개서에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주세요!”
“?”
남에게 보여 주기 민망한 엉터리 자기소개서를 저 남자가 어째서 들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현재 상황은 사기가 아닌 진짜가 맞나 보다.
‘윽, 흩날리란 식으로 보냈던 입사 지원에 가이드 공단이 있었나 보네.’
남자는 호은이 빼앗은 자기소개서에는 미련이 없는지 달라는 말없이 채용 검진 결과지로 시선을 돌렸다.
“호은 씨는 가이드가 뭔지 아시나요?”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남자의 질문에 답하기 직전 밖에서 쿠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가끔 들리는 커다란 소리와 진동.
과거 세계는 변이능력(變異能力)으로 인하여 또 다른 인류를 받아들여야 했다. 비현실적 힘을 가진 존재를 발견한 거다. 변이능력이 있는 인간을 이능력자(異能力者)라고 명명해 사람들은 그들을 에스퍼라 불렀다.
지금 들리는 소음도 에스퍼가 낸 소음일 것이 분명했다. 불, 물, 바람 같은 자연계부터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치료, 괴력, 초능력에 속하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자들이다.
한국에서는 에스퍼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지만, 그들은 인명구조나 자연재해 등 이능력이 없는 일반인을 위해 움직인다고 들었다.
이능력자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적었고, 이능력을 사용함으로 그들은 생명력을 갉아먹어야만 했다. 그런 이능력자의 생명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가이드였다.
“가이드는 에스퍼의 영혼의 단짝 같은 거 아닌가요?”
남자는 호은의 대답에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아닌가…?’
에스퍼와 함께 일하는 거로 알려진 가이드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호은은 정의하기 어려웠다. 에스퍼 캐릭터가 있는 미디어에 가이드는 조력자나 연인으로 나왔다. 두 관계는 필연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만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필수 과정으로 이능력 이해란 과목이 있었으나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나지 않았다. 또한, 가이드는 에스퍼보다 더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으니 관심도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이능력 현장에 가이드가 나와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한민국에 세워져 있는 가이드 공단이라는 시설은 국민들에게 세금 도둑이라는 취급당하고 있었다.
“제가 잘못 말했나요?”
“으하하. 아니, 아닙니다. 그냥 답변이 재미있어서요. 영혼의 단짝이라.”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상체를 흔들며 웃는 남자에게 호은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사람 무안하게 저렇게 웃다니.
“호은 씨도 가이드가 되어서 에스퍼의 영혼의 단짝이 되시면 좋겠네요.”
“네? 면접에서 붙으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붙으실 거예요.”
“?”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이 차에 타지도 못했을 거니까요.”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 못 한 채 몰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호은은 읽지 않은 문자를 뒤졌다. 알람이 쌓인 문자에는 불합격 통보 속 유일한 합격 통보가 있었다.
[Web 발신 - 201x년 상반기 경영지원팀 서류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더 보기)]
‘저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엄하시지만, 책임감 강한 아버지 사이에……. 이딴 식으로 썼던 거지 같은 자기소개서가 합격이라니.’
심지어 자기소개서를 제대로 안 보는 중소기업도 아니고 공공 기관 서류 전형을 통과한 거다.
‘공공 기관이 이렇게 사람을 대충 뽑아도 되는 거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을 서류 전형에서 가려내야지!’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면접을 보러 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폴, 슬슬 이동하자.”
남자는 온화한 목소리로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곧이어 자동차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본 창밖이 마치 바다에 떠다니듯 위아래로 흔들렸다.
“우욱…!”
순간 속은 울렁거리기 시작하고 귓가에선 이명이 들렸다. 두통까지 다가와 머리를 부여잡은 호은이 헛구역질하듯 당장이라도 차에서 뛰쳐나갈 듯 굴었다. 남자는 호은의 등을 두드려 주며 옆에 있던 생수를 건넸다.
“토는 하지 마세요. 치우기 귀찮으니까.”
“걱정할 부분이 그겁니까!”
차가 조금이라도 더 흔들렸다면 호은은 토했을 게 분명했다. 흔들림이 멈춤과 동시에 태연하게 차에서 내린 남자는 호은의 차 문을 열어줬다.
차 안으로 바깥 공기가 들어오자 속은 괜찮았지만 반대로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방금 골목길이었는데 여기는 어디지?’
주변을 둘러보자 낯선 곳에 도착했다. 지금 혼자만 상황 파악 못 하나 싶어질 정도로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가이드 공단이라 써져 있는 건물의 이름을 확인함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사람들 에스퍼였어?!’
순간 이동을 했다. 아무래도 폴이라고 불린 남자는 순간 이동 에스퍼였나 보다.
태어나서 순간 이동을 겪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웹툰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에스퍼지만, 그건 가짜다.
실제로 에스퍼를 마주할 확률은 아마도 복권 당첨 확률과 비슷할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틀거리며 운전석으로 다가가자 이미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또 순간 이동을 한 건가?’
이제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호은은 이해하는 걸 멈추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머리 한구석엔 정부 허가 없이 에스퍼가 능력을 남발하지 못한다는 주입식 교육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상황판단 하느라 얼빠진 호은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 손가락을 튕긴 남자는 간단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에스퍼의 파트너인 가이드를 찾고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에스퍼의 능력은 굉장히 대단하지만, 가이드가 없으면 하루살이와 비슷한 존재라서 말이죠.”
“그럼 그 가이드는 무슨 일을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는 에스퍼 케어지만 거기서도 내근직과 외근직으로 나눌 수 있겠네요. 제가 맡은 일을 다 했으니 나머지 질문은 면접관에게 하시면 됩니다.”
“잠, 잠깐만요. 저 이, 이해가…”
“네~ 이해는 안 하셔도 됩니다.”
“허…….”
***
커다란 건물로 호은을 데리고 간 남자는 2층으로 안내했다. 2층에는 5개의 문이 있었고 각 문에는 체험형 인턴 경영 지원, 회계 등 아마도 채용 공고에 있던 거로 추정되는 관련 직무가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대기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면접까지 다 끝난 상태입니다. 권호은 씨만 끝까지 연락이 안 닿아서 저희가 직접 데리고 오느라 하루 정도 면접이 늦은 편이네요.”
“예…….”
‘아니 보통은 면접 안 보러 오면 그냥 탈락하고 끝내지 않나?’
일단 면접을 봐야 한다고 하니 호은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혼자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생기자 가장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이곳은 면접장이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잘 차려입은 검은색 단정한 정장과 유난히 광이 나는 구두 모양새와 다르게 연한 갈색빛이 도는 머리는 면접장과 어울리지 않았다.
새초롬하게 올라간 눈매는 주변을 훑느라 바빠 보였다.
매끈한 대리석 벽과 오물 한 점 없는 대리석 바닥은 고급 호텔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넥타이가 불편하기라도 한지 목 언저리를 손으로 긁는 남자는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면접장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을 준다고 한다면 호은은 냉큼 집어 들었을 테니.
“취업하고 싶지 않아. 조금 더 백수 생활을, 아니 너튜브 활동을!”
호은은 부모에게 기생충처럼 살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더라도 조금 더 백수 생활을 이어 가고 싶었다.
‘앞으로 평생 일을 하게 될 텐데 그전에 백수인 게 뭐 어때서? 해 보고 싶었던 걸 해 보는 게 어때서?’
따지듯 부모님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자신은 없어 거울 속 자신에게만 내뱉던 말이다.
주마등처럼 지난날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러닝을 하면 딱 맞게 아침 드라마가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보며 아침을 먹고 소화되기 직전 낮잠을 잔다. 그 후로 일어나서 핸드폰을 하다 보면 하루는 금방 지나가 있다.
호은의 일상은 오늘도 아무것도 안 했다는 사실의 우울감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 두 가지 감정을 들게 했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잉여롭게 산 건 아니다. 호은은 옛날부터 꿈이었던 너튜브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잘 먹고 양이 많았기에 대식가 콘셉트로 밀고 가면 백만 너튜버가 될 줄 알았다.
호기롭게 올린 영상은 쉽게 구독자가 붙지 않았고 1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몇백 명이 다였다. 하지만 호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생활을 유지해 줄 수 있는 너튜버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취업이 라니…….”
이불 밖은 위험하다. 아니 백수가 아닌 직장인 포지션은 위험하다. 호은은 준비된 인재가 아니었다.
“역시 지금이라도 관두는 게─”
인생 첫 면접에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 에스퍼 자체에는 흥미가 있다. 초능력자는 어린아이들의 우상이니까. 한국은 에스퍼의 존재감이 희미하지만, 미국은 국가 대표 에스퍼들이 팬클럽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차라리 에스퍼로 각성했다면 이렇게 싫지는 않을 텐데. 의미 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가이드는 어쩐지 초능력자라는 느낌보다는 일반인으로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현재 상황이 정말 일반 기업의 면접을 보는 것처럼 다가왔다.
호은은 대학교 교양 강의에서 만들었던 1분 자기소개를 떠올렸다. 벼락치기와도 같았다.
준비한 게 없어 면접에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반대로 책임감을 느끼며 뒤늦게 면접 준비를 부랴부랴 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해피 바이러스 지원자 권호은입니다. 해피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중…….”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지나갔다. 깔끔한 오피스 룩과 함께 차고 있는 사원증이 눈에 들어왔다.
호은은 사원증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회사에 입사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사원증을 착용하고 셀카를 찍어 올렸다. 사원증은 해당 회사에 소속됐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절대 모를 소속감…….’
하루에 몇 번이고 찾아오는 패배감이 올라왔다. 백수 생활은 정말 즐겁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불편한 정장 차림으로 인내심의 한계가 오던 호은이 면접장을 도망치기 직전 눈앞에 굳게 잠긴 것만 같았던 문이 열렸다.
분명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아직 면접관이 오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던 호은은 일어섰다.
“후.”
백수 탈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호은은 넥타이를 고쳐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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