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063. 4막 3장 - 다시, 티파나 (2) / Isaac
"그래서 에스나는 여기 어쩐 일이지? 백룡 기사의 임무인가?"
마르코스의 질문에 에스나가 입을 연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임무죠."
"그나저나 에스나 씨와 숙부님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글린다의 질문. 에스나는 마르코스를 바라본다. 마르코스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표정을 보니 진실을 말할지 얼버무리며 넘어갈지 고민 중이다.
집사가 내놓은 차가 식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마르코스는 입을 연다.
"사실은 나도 백룡 기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지."
"에?"
글린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놀라도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나도 만만치 않지. 마셨던 차를 다시 컵에 옮겼으니까.
"마르코스는 백룡 기사의 후원자 중 한 사람입니다."
"어···. 어···. 어···."
얼이 빠져버린 글린다는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한다. 글린다 뒤의 맥은 그냥 뭔 상황인지 이해 못 하고 있고.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럴 때는 내가 나서야지. 에스나와 마르코스가 잠시 시선을 나눈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입을 연다.
"우선 백룡 기사에 대해 알아야겠지."
"백룡 기사는 오래전 승천해서 용이 된 뱀을 섬기는 일종의 종교집단입니다. 시작이 그랬다는 겁니다. 지금은 그냥 준군사조직이죠."
지금은 처음과는 다르다는 건가? 그나저나 준군사조직이라니. 군사조직이면 군사조직이지 준군사조직은 뭐야.
"백룡 기사의 목적은 세계의 균형입니다. 주로 악마를 퇴치하거나 초월적 존재가 나타나지 않게 사전에 제어하지요."
"에?"
글린다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대충 알 것 같다. 악마가 실제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초월자도 만나봤으니. 잠깐만. 악마를 퇴치하는 건 사신의 일 아니었나? 소을에게는 그렇게 들었는데. 그럼 백룡 기사가 사신?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오른손에는 소을이 준 반지가 있다.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려 에스나가 볼 수 있게 한다. 만약 에스나가 사신이라면 알아볼 것이다.
에스나의 시선이 반지에 머무른다. 투구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동요가 전해진다.
"왜 당신이 초월자의 증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에스나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뭔가 상당히 기분이 나쁘네. 마르코스도 글린다도 맥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 못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말도 안 돼! 설마 당신이 차원이탈자입니까!"
"야!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말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까?"
내 지적에 글린다가 오히려 놀란다. 말해도 되는 거였어?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건 일단 비밀 아니야? 역시 저 인간이랑은 안 맞아.
"어···. 저기···. 제가 이해를 못 해서 그런데 설명을 좀?"
옆에 앉아 있는 글린다가 손을 들어 올린다. 설명······. 해줘야겠지? 어디서부터 해줘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단. 제가 말하는 모든 것은 진실입니다. 과장과 착각은 있더라도 진실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밑밥을 깔자. 내가 하는 말은 누구든지 믿기 힘든 말이니까. 나 같아도 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하면 믿지 못할 거다.
글린다는 고개를 끄덕이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맥과 마르코스도 마찬가지의 눈동자. 어느 정도 나에 대해 알고 있을 에스나만이 팔짱을 끼고 침착하게 나를 바라본다.
침을 한번 삼킨다. 입술을 한 번 핥는다.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렵군. 어려워. 좋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저는 다른 차원에서 왔습니다."
"풉."
제기랄. 글린다가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있다. 눈을 보니 웃음을 참지 못할 거 같다.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란 건 알고 있다. 웃기는 말이라는 것도 알고. 그래도 얼굴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확 밀려온다.
"웃지 마세요."
"푸흡. 아니. 그게 죄송 풉. 그러니까 너무···. 웃겨서.. 풉."
아. 스트레스받아. 글린다는 몸을 떨면서 말을 한다.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맥은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다. 마르코스는 믿는 것 같고. 아마 백룡 기사에게 들은 바가 있겠지.
"아이작의 말은 사실입니다. 그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차원이탈자 입니다."
에스나가 내 말을 보충해준다. 이럴 때는 쓸만하군.
"지···. 진짜요?"
웃고 있던 글린다도 에스나가 말하자 웃음을 그친다. 표정도 진지해진다. 반신반의 정도의 상태라 부르겠다.
"사실입니다. 저는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넘어왔습니다."
죽어서 넘어왔다는 말까지는 필요 없겠지.
"그래서 그렇게 강한 거였군. 차원이탈자들은 언제나 규격 외의 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마르코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까?"
"백룡 기사의 기록에 따르면 다섯 명의 차원 이탈자가 있었습니다. 당신까지 포함하면 여섯이 되겠군요."
나 말고도 다섯이라. 이거 상당히 흥미로운 정보인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사실···. 대전쟁 당시에 백룡 기사의 본부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기록 대부분도 소실되었고요. 몇백 년 전 사람들이니 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 죽었을 거다. 한 번 영혼 상태를 겪은 사람은 늙어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하기에는 너무 강하고. 분명 어딘가에 살아있겠지. 자기를 숨긴 채로 말이야.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좋아요. 마법사님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건 알겠어요. 그러면 심각한 상식 부족도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고 믿을 정도로 제 상식이 부족했군요. 반성하겠습니다. 확실히 이 세계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겠다.
"그럼 저를 왜 도와줬나요?"
"네?"
갑작스러운 글린다의 질문. 너무 갑작스러워서 질문도 이해 못 했다.
"처음부터 의문이었어요. 마법사님처럼 강한 사람이 왜 저 같은 소 귀족을 도와줬을까 하는 의문이요. 왜였죠?"
으으. 눈빛 무서워. 글린다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나를 쏘아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뭐라고 하긴 진실을 이야기해야지. 어차피 글린다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실."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그때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직후였습니다. 제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깨닫고 숲을 빠져나가려고 돌아다니고 있었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눈을 떠보니 숲이었지. 진짜 당황스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벙한 채로 돌아다녔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글린다 양을 붙잡고 있는 무리와 만났고 일단 본능에 따라 해치웠습니다."
당황스러웠지. 수풀을 해치고 나오니 검은 복면을 쓴 무리가 한가득. 그전에 반지에게 경고를 받긴 했지만.
"그리고 글린다 양을 구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서 도와줬고요."
"끝?"
"네."
그게 끝이다. 글린다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뭔가 기대한 것 같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구해주고 도와준 거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같이 다닌 거지.
"전···. 저한테 한눈에 반한 줄 알았는데."
내가? 풉. 이건 또 재밌는 말이네. 글린다는 얼굴에 허무와 당황이 드러난다.
"푸하하하. 우리 숙질이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군."
마르코스가 크게 웃는다. 어느샌가 자리에 앉은 에스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습니다. 글린다. 그럴 수 있는 겁니다."
에스나가 글린다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뒤에 서 있던 맥도 방긋 웃으며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동정 어린 시선에 글린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몸을 부들부들 떤다. 이거 분명 폭발한다.
"그래도 첫눈에 반했을 거라니. 너무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아니십니까?"
결국, 에스나의 말에 글린다가 폭발했다.
"으아악! 그 정도만 하세요! 다 제가 잘못했다고요!"
일어서서 소리친 글린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대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다. 한동안 저러고 있겠군.
"자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죠. 어디까지 했죠?"
"자네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부분부터."
"아니죠. 그 부분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백룡 기사를 설명하던 부분으로 돌아가야죠."
에스나의 말이 맞다. 내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것은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게 아닌 게 맞나?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백룡 기사에 관해 설명을 재개하도록 하겠네."
"백룡 기사는 말했듯이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자입니다. 사신의 일종이기도 하고요."
사신.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존재. 악마를 처단하는 집단. 백룡 기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의미겠지.
"그리고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것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나 같은 후원자들이 존재하는 거지."
"후원자들은 백룡 기사를 위해 물적, 인적 자원들을 가리지 않고 지원해줍니다."
"그 대가는?"
백룡 기사야 사명감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후원자마저 사명감으로 움직일 리는 없지. 마르코스는 살짝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린다. 식어버린 찻물이 마르코스의 목으로 넘어간다. 찻잔을 내려놓은 마르코스가 입을 연다.
"오스왈츠 백작이 되게 도와준다는 약속을 받았지."
그렇군. 하긴 그 정도는 돼야 후원을 해줄 만하지.
"에엑!"
부끄러움에 머리를 파묻은 글린다는 듣지 못했다. 저 비명은 뒤에 있는 맥의 비명. 맥은 자신이 지른 비명에 놀라 얼른 입을 막는다. 마르코스는 그런 맥의 모습을 보고 허허 웃을 뿐이다.
"그래. 놀랄 일이지. 계승권 따위는 없는 내가 백작위를 노리다니."
현 영주의 사촌 동생이 계승권이 있을 리가. 당장 글린다가 있기도 하고. 아마 다른 남자 형제도 있겠지.
"백룡 기사로서는 마르코스가 백작위를 물려받는 게 좋았습니다. 오스왈츠 가문의 본가는 대대로 큰뱀을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큰뱀은 세계의 균형을 깨기 아주 좋은 존재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백룡 기사인 에스나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사실 그래서 글린다를 공격한 겁니다. 큰뱀이 깨어나지 못하게요."
"납치도 백룡 기사가 한 거야?"
에스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당신들이 제 목숨을 노렸다고요?"
몸을 숙이고 있던 글린다가 놀라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이제 정신을 차렸구나. 에스나는 잠시 침묵을 유지한다. 분노에 씩씩거리는 글린다가 진정하기를 기다린다. 조금 침착해진 글린다에게 에스나가 대답을 해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너무 급하게 움직였습니다."
말을 마친 에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글린다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너무나도 확실한 사과에 글린다는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 그저 어버버 거리며 양손을 휘저을 뿐.
에스나는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글린다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마르코스는 그 모습을 지켜만 본다. 글린다는 이를 갈다 한숨을 쉰다.
"알았어요. 어차피 당신이 직접 시킨 일도 아닐 거잖아요? 용서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제야 에스나는 허리를 펴고 자리에 앉는다.
"시장님! 긴급입니다!"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가벼운 무장을 한 병사가 들어온다.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아. 되게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