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062. 4막 3장 - 다시, 티파나 (1) / Glinda (62/65)



〈 62화 〉062. 4막 3장 - 다시, 티파나 (1) / Glinda

돌아갈 곳이 있다는  얼마나 좋은 일인가
떠나간 발걸음이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 시, `되돌아올 곳` 中 발췌 -






차원문은 공간 이동보다 어지러움 같은 부작용이 없다. 대신 이동속도가 느리지. 공간 이동이 두 공간을 바로 이동한다면, 차원문은 그 공간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낸다. 그 통로를 걸어가는 것에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고.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지금 나는 오스왈츠 성의 하얀 성벽이 보이는 마을 중앙 광장에 서 있다. 높게 떠오른 태양이 성을 비추고 있다.


"으아아. 으아. 으어."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맥이 나타난다. 차원문을 지나오는 것이 충격이었나 보다. 차원문을 빠져나온 맥은 천천히 걸어서 내 옆으로 다가온다. 얼굴을 보니 혼이 약간 빠져나가 있다.

"차원문은 괜찮으셨습니까?


차원문을 지나온 마법사가 말을 걸어온다. 맥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젓는다.

"전 괜찮았어요."


"차원문 폐쇄."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마법사의 주문에 차원문이 닫힌다. 맥은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정말 한심하다.


"그럼 이제 성을 무너트리겠습니다. 지금 보는 게 마지막 모습이니 똑똑히 기억해두세요."


마법사의 말을 따라 성을 바라본다. 태양 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흰색의 성. 나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 그리고 내가 떠나야 할 곳.


마지막이라고 하니 왠지 감상적이게 된다. 다시는 볼  없게 되는 건가.

"그럼. 무너트리겠습니다. 후회 없으시죠?"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에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죽은 지금 나는 오스왈츠 가문과 연이 끊겼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저도 후회는 없어요.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맥의 동의까지 받자 마법사가 성을 가만히 바라본다. 성을 향해 손을 뻗고 주문을 외우며 강하게 움켜쥔다.

"바루스."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다. 첨탑이 무너져 내린다. 하얀 성벽에 검은색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가 살아왔던 곳이 무너져 내린다.

맥은 멍하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너지는 성을 바라본다. 마법사의 표정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 한때 산 중턱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웅성웅성 소란을 일으킨다. 성이 무너져 내렸으니 당연한 일이지.

"아! 맞다!"


마법사가 뭔가 떠오른 듯 박수를 친다. 표정에서 당황이 드러난다.

"무슨 일이데요?"

사람 되게 불안하게 하네. 마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성안에 기절한 사람들 있었는데."

에휴. 이미 늦었을 거다. 성은 완전히 부서져서 조각만 남아있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명복을 빌어줘야지. 불쌍한 사람들. 하필이면 이런 멍청한 마법사를 만나서.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저희는 떠나도록 하죠."


중요한 게 아닌 건가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법사가 인간인지 의심이 든다. 너무 사람 목숨을 쉽게 생각하는  같다. 기사 교육을 받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런데 어떻게 갈 건가요? 차원문은 눈에 너무 띄지 않아요?"

"당연히 공간이동이죠. 손을 잡아 주세요."


으윽. 공간이동이라니. 그런 걸 또 경험해야 한다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맥은 그저 마법사의 손을 잡는다. 마법사와 맥이 나를 바라본다. 한숨을 쉬고 마법사의 손을 잡는다.


"그럼 갑니다. 공간 이동. 목표 지점. 티파나."


눈앞의 광경이 일시에 변화한다. 보이는 것은 티파나 입구에 있는 황금 몰론상. 제대로 도착했다.

"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강한 어지러움을 느낀다.; 공간 이동의 부작용. 몸이 스르르 무너진다.

"괜찮으세요?"

마법사가 쓰러지는 나의 몸을 받쳐주었다. 맥은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서 땅에 쓰러졌지만.


"괜찮은 거 같아요. 그래도 최대한 공간 이동은  했으면 좋겠네요."

"저도 동감합니다."


땅에 쓰러졌던 맥이 일어나며 중얼거린다. 마법사는 웃으며 나를 놓아준다.

"일단 마르코스를 만나러 가야겠죠?"


"그래야죠. 그다음 도망을 치든 어딘가에 숨든 해서 아인카를 기사단의 추적을 피해야죠."


"추적이요?"

이 마법사 봐라? 이런 맹한 말을 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희는 무려 국경수비대장을 죽였다고요! 기사단장을 죽였다고요! 일반 병사는 몰라도 기사단은 당연히 저희를 추적해서 복수하려 하겠죠!"

"아. 그런가요?"

한숨이 나온다. 어쩌겠는가. 이 인간은 항상 이래 온걸.

"그런 겁니다. 일단 빨리 숙부를 만나러 가죠. 맥! 정신 차려!"


눈이 풀려 있는 맥을 불러 정신을 차리게 한다. 그대로 숙부가 사는 티파나의 시청으로 향한다. 뒤에서 걸어오는 마법사의 발걸음이 느껴진다.

티파나는 그대로다. 바뀐 모습이 없다. 하긴 떠나온 지 열흘도 되지 않았으니. 지난번 이동했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어간다. 피곤한 얼굴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나와는 다른 표정이다.

"저 여긴 어디인가요?"

나를 따라오던 맥이 머뭇거리며 질문해온다. 모르는 건가?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평생 오스왈츠 마을을 벗어나  적이 없었을 테니.

"티파나는 알고 있지?"


맥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의 상식은 있다는 거군.

"내 숙부님이 사는 곳이야."

"백작님의 동생분이신가요?"

"사촌 동생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청의 정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정문 앞에는 하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있다. 손에 쥐고 있는 고삐 끝에는 역시 하얀 마갑을 입은 말 한 마리가. 말에는 각종 짐과 눈에 띄는 검과 방패가 실려있다. 어디서 본듯한 사람인데.

"히익."


투구를 쓰고 있는 기사를 알아본 것인지 마법사가 싫은 소리를 낸다. 표정도 좋지 않다. 말을 정문 경비에게 맡긴 기사가 이쪽을 쳐다본다. 인기척을 느낀 건가?

"아! 글린다와 아이작이시군요!"


"아. 제발."

투구를 쓴 기사가 손을 흔들자 마법사는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머리를 짚는다. 기억났다. 티파나에서 오스왈츠로 갈 때 만났던 사람. 백룡 기사 에스나. 나를 잡아가는  임무였던 사람. 지금 분위기로는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다. 맥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야.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겁니까?"

에스나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법사의 눈은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인다. 길에서 만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마법을 쓸까 말까 고민 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뭡니까? 저랑 만난 게 안 반가우신 겁니까?"

마법사의 표정을 본 에스나가 질문한다. 마법사의 표정을 보니 대답조차  할 정도로 화가 나 있다. 이러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마법을 사용할 거다. 내가 말려야겠군.

"자. 거기까지. 거기서 멈춰주세요."


손바닥을 들어 올려 에스나를 제지한다. 다행히 에스나는 곧바로 멈춰 선다.


"마법사님도 진정하세요."

마법사는 심호흡을  번 하더니 잔뜩 구겨진 표정을 푼다. 마법으로 공격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너도 좀 진정해!"

안절부절못하게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맥에게 소리 지른다. 맥은 금방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눈동자만 굴린다. 이제 대화를 나눌만한 분위기가 완성되었다.

"그. 에스나 씨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백룡 기사  하나 에스나입니다."

에스나는 오른손을 뻗어 악수를 청한다. 마법사는 저걸 받아줄 심경은 아닐 테고, 내가 받아야지 뭐.

금속 장갑이 뿜는 냉기가 손을 타고 전해진다. 에스나는 가볍게 내 손을 쥐고 위아래로 흔든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군요."


"네. 그렇군요."


"아! 진짜!  여기  있는 건데!"

결국, 마법사가 소리를 지른다.


"당연히 임무 때문이죠."


에스나는 담담히 대답하지만, 그것이 마법사의 화를 돋우는 것 같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저기···. 어······. 저는 맥입니다?"

갑작스레 맥이 자신을 소개한다. 얼굴을 보니 자기도 당황했는지 눈이 엄청 커져 있다. 긴장감에 일어난 실수 같다.

"푸하하. 당신도 상당히 재밌으신 분이군요."


이 실례되는 행동도 에스나는 웃어 넘겨준다. 착한 사람 같다. 마법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무슨 임무 때문에 온 건데? 글린다가 엮여있는  아니지?"


"아닙니다. 전 그냥 티파나의 시장을 만나러 왔을 뿐입니다."

"숙부님을요?"

"숙부님? 아. 마르코스도 오스왈츠 가문 사람이었지요."

에스나는 숙부를 이름으로 불렀다. 서로 아는 사이였나?

"여러분도 마르코스를 만나러 가십니까?"

"일단은요."

"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분명 오스왈츠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시 돌아왔습니까?"


에스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투는 이상해도 생각은 하면서 사는구나.


"그게 뭐가 중요해? 비켜. 우린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

마법사는 말에 짜증을 가득히 싣고서 에스나를 지나쳐 간다. 마법사의 행동이 약간 당황스럽지만, 그냥 그 뒤를 따라간다.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맥도 우리의 뒤를 따라온다.

"같이 갑시다."

"따라오지 마!"


"에이.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갑시다."

에스나도 그대로 뒤를 따라온다. 마법사가 화를 내도 신경 쓰지 않고. 마법사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지만, 더는 제지하지 않는다. 한숨을 쉬는 걸 보니 어떻게 해도 따라올 거라는 걸 알고 있나 보다.

결국,  명이  번에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작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지난번에 지나갔던 복도를 지나 복도 끝에 있는 집무실의 문을 연다.


"숙부님!"

"글린다?"

나를 보고 정말 놀란  같다. 나 같아도 놀란다. 오스왈츠로 간 줄 알았던 조카가 갑자기 찾아오면 안 놀랄 사람이 없겠지.


"오랜만입니다. 마르코스."

"에스나?"

숙부는 에스나를 보고도 놀랐다. 이름이 바로 나오는  보니 아는 사이는 맞나 보다. 약속은 없었나 보지만.


"어떻게 같이 들어오나? 아니. 그전에 글린다. 너는 왜 여기 있는 거냐?"


"이런저런 일이 많았죠."


자연스레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는다. 예의가 아니란  알고 있지만,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좀 앉아서 쉬니까 좋다.

"어···. 안녕하십니까. 글린다 아가씨의 시종인 맥이라고 합니다."

맥은 어색하게 숙부에게 인사한다. 너무 놀라 제정신이 아닌 숙부는 인사를 받지 못한다.


"이···. 일단 자리에 앉게."


얼떨떨한 표정의 숙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권한다. 에스나와 마법사는 동시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것이 싫었는지 마법사는 에스나를 노려본다.


"뭐가 문제입니까?"


에스나는 그대로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는다. 마법사는 화를 삭이려는지 가만히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내 옆에 앉는다. 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뒤에 자리를 잡고 선다.

"좋아. 그럼 이제 대화를 좀 해보지."

숙부도 한숨을 쉬며 자신의 소파에 앉는다. 대화를 위한 자리가 완성되었다. 제대로 진행되면 좋을 텐데. 에스나를 노려보는 마법사의 표정을 보니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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