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057.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2) /Isaac (57/65)



〈 57화 〉057.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2) /Isaac

짜증 난다. 엄청 짜증 난다. 짜증보다는 화가 난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다.


캄캄한 복도를 걸어가는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끔가다 화염구를 아무렇게 집어 던진다. 폭발음이 발소리를 감춘다. 감추는 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폭발음이 들리는데? 나중에 생각하자. 화났을 때는 생각하는 거 아니다. 그냥 다 때려 부수는 거지.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가끔 벽을 좀 부수면서. 너무 많이 부수지는 말고. 무너지면 곤란하니까.

철문이 주르륵 놓여있는 복도가 나타난다. 내가 눈을 뜬 곳. 다시 살아난 곳. 보고 있으니까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박살 내자.

"화염구."


복도에 있는 철문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부숴놓는다. 다시는 쓰지 못하도록 완전히 무너트린다.

스무  정도의 방을 초토화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을 잡아먹기는 했지. 슬슬 본격적으로 글린다를 찾을 시간이다. 화도 조금 풀렸고. 역시 사람은 가끔 뭔갈 부숴줘야 한다.

"질풍의 발걸음."

바람이 발에 실린다. 바람을 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복도를 뛰어간다.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는다. 왔던 길의 반대쪽, 왼쪽으로 달려간다.

복도는 오른쪽으로 꺾여 있다. 방향을 다시 잡고 달려나간다. 높다란 계단이 나타난다.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이. 그냥 걸어가면 힘들겠지만. 마법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바람을 타고 계단을 오른다.  번에 네다섯 계층을 뛰어오른다. 그렇게 움직이는 데도 계단은 한참 남았다. 이거 너무 길지 않나? 기사들이 갑옷을 입고 내려오다가는 쓰러지겠는걸.


5분 가까이 계단을 올라가고 나서야 끝이 보인다. 그래 봐야 철문으로 막혀 있지만. 철문 앞에 멈춰 서서 힘을 줘 밀어본다. 역시나 열리지 않는다.

조용히 지나갈 생각은 없다. 기분도 나쁘겠다 최대한 소란을 피우며 움직일 거다. 다 부수면서 글린다를 찾아낼 거다.

"폭파."


철문이 터져나간다.  소리와 함께. 이쯤 되었으면 다들  탈출을 눈치챘겠지······. 탈출은 갇혀 있던 사람이 하는 거다. 죽어있던 사람이 하는 건 아니지. 정정하자. 누군가 침입했다는 것을 눈치챘을 거다.

질풍의 발걸음은 시간이  되어 효과가 사라진다. 내가 올라온 곳은 어딘가 창고 같은 모양새다. 나무로 만든 선반에 치즈나 빵들이 놓여있다. 말린 육류와 물고기의 모습도 보인다.

"저건 와인인가?"


한쪽에 쌓아둔 원형 통들이 보인다. 오크통이라고 부르는 그것들. 한쪽 구석에 잔뜩 쌓여있다. 갑자기 열이 확 받네. 딸을 죽이려던 인간이 이런 걸 먹고살아?

"불기둥."


식량 창고 중앙에 불기둥이 치솟는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보관된 음식들을 혀로 핥는다. 불이 옮겨붙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이 창고는 잘 타들어 갈 거다. 그러라고  마법이니까.

창고의 문은 나무로 되어 있다. 자물쇠가 걸려있어 열리지 않는다. 나무문 정도는 마법 없이도 부술 수 있다. 발로 문을 걷어찬다.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무문에 금이 조금 갔다.   더 강하게 찬다. 문에 구멍이 난다. 남아 있는 부분을 차서 깨버린다.

문에 생긴 구멍이 충분히 넓어졌다. 코트를 들어 올리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또 나타나는 복도. 다행이랄까. 이번에는 일방통행이다.  성은 도대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구멍 너머에서 타들어 가는 소리와 탄 냄새가 퍼져나간다. 주변에 보이는 사람은 없다. 돌로 만든 벽을 보며 복도를 걸어나간다. 복도 끝에는 나무문이 하나 있다. 문도 많고 복도도 많고. 편리함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문은 잠겨 있지 않다. 문을 열어젖힌다. 밝은 빛 눈을 찌른다. 태양이 높이 떠 있다. 뭐지. 분명 죽었을 때는 저녁 시간이었는데. 온종일 인긴과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건가.

"거기 누구냐!"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병사가 서 있다. 나를 발견하고 창대를 들이민 채 다가온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여기가 어딘지나 생각해보자.


내가 방금 나온 곳은 돌로 만들어진 건물. 아예 식량 창고를 따로 두는 건가. 앞에는 높이 솟아오른 성이 보인다. 뒷문으로 보이는 나무문도 보이고. 바닥에는 풀이 자라고 있다. 성의 뒤쪽인가?


"누구냐고 물었다?"


창날이 목에 들이밀어 진다. 창대를 쥐고 있는 것은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 열다섯 살 정도? 표정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얼른 말해!"

소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그렇게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겠다.

"빨리!"


이제 울먹이기 시작한다. 슬슬 선택할 때가 다가왔다. 이 소년을 죽일지 말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란 건 확실하다. 어떻게 할까.

"얼른 말하라니까!"


창대가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주자. 기사 정도까지만 죽이면 되겠지.


"마비."


소년이 창대를 움켜쥔 채 쓰러진다. 그대로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마법이 잘 들어갔다.

몸이 빳빳이 굳은 소년을 끌고 창고 근처에 내려놓는다. 여기 정도면 성이 무너져도 깔리지는 않겠지.


"좋아 이제 들어가 볼까?"

뒷문으로 짐작되는 문을 연다. 성  나타나는 복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양옆으로 갈라진 복도. 어디로 가야 글린다가 나올까.

일단 왼쪽. 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오른쪽으로 간다. 나는 운이 안 좋은 편이니 반대로 선택하면 좋은 쪽으로 갈 수 있겠지. 내가 생각했지만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 여긴 어디냐."


길을 잃었다. 이 성은 너무 복잡하다. 미니 맵이 있기에 정말로 잃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간 이동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고. 그런  쓰면 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쓰지 않고 있지.

복잡하게 꼬여있는 복도와 방들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도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보고 지나갔다. 시종들과 시녀들뿐이었지만. 성 내부에서 무장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글린다는 어디 있을까."

이런 방식으로 찾아다니는  그만둬야겠다. 절대 못 찾을 게 분명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당장 떠오르는 건 소란을 일으켜서 기사들을 내 쪽으로 불러 모으는 것. 그중 한 명만 잡아서 글린다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자. 어차피 기사들은  죽일 생각이니 크게 일으키자.

"불덩이 작렬."

화염구의 상위 마법. 발동이 느려서 자주 쓰이는 마법은 아니지만, 파괴력은 발군이다. 양손에 생겨난 거대한 불덩이를 벽을 향해서 던진다. 천천히 날아가던 불덩이가 벽에 닿고 굉음과 함께 터져나간다.

복도 일부가 무너진다. 성 전체가 흔들린다. 거리를 잘못 잡은 나는 폭발에 휘말려 뒤로 튕겨 나갔다.


"으갸갸갸. 아파라."


벽에 등을 부딪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다. 거리 계산 잘해야지.

등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킨다. 아직은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발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럼 한  더 해야지.


"불덩이 작렬."


복도에 불덩이를 던진다. 천천히 날아간 불덩이가 폭발한다. 이번에는 폭발에 휩싸이지 않았다. 그냥 충격에 조금 뒷걸음질 쳤을 뿐. 복도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 정도면 찾아오는 사람이 있겠지.

"무슨 일이야!"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소리가 묵직한 게 기사인 것 같다.

"벗어날 수 없는 눈동자."


미니 맵에 빨간 점들이 생겨난다. 나에게 달려오는 세 개의 빨간 점.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다.

기사들이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는다.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오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투구를 쓰지 않은 채 갑옷으로 무장한 모습.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있다.

"뇌격."


손끝에서 두 줄기의 번개가 뻗어 나간다.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기사를 향해 날아간다. 번개에 얻어맞은 두 기사가 그대로 쓰러진다. 가운데 있던 기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달려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마찰 무효."


달려오던 기사가 밟는 땅의 마찰계수가 0이 된다. 당연히 기사는 그대로 넘어진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 등부터 쿵.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상당한지 소리도 크다.

넘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기사를 향해 다가간다.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기절했나. 발로 얼굴을 툭툭 건드려 본다. 반응이 없다.


기사의 머리 부분에  웅덩이가 생겨난다. 넘어질 때 머리가 깨진 건가. 다시 기사를 발로 건드려본다. 역시 반응이 없다. 죽었나 보다.

이 방법은 안 되겠다. 상처 없이 사로잡아서 글린다의 위치를 물어야지 죽이면 안 된다.

미니 맵에 보이는 빨간 점들을 찾는다. 가장 가까운 건 혼자 있는 빨간 점. 소란을 듣지 못한 것인지 움직임이 느리다. 순찰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돌아다니는 건가? 일단 목표는 저놈이다. 그리 멀지 않다. 아예 이쪽으로 다가온다.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무너져 내린 복도의 파편이 보인다. 이걸 보면 다른 사람들 불러오겠지? 글린다의 위치도 모르는데 귀찮아지는 건 좋지 않다.

"유령화."


무너진 잔해들을 통과해 지나간다. 벽돌과 흙더미를 지나가자 마법이 풀린다. 다가오는 적은 아직 모퉁이를 돌지 않았다. 사로잡을 방법을 생각할 시간이 잠깐 있겠군.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미니 맵의 빨간 점도 가까워진다. 적당한 방법이 생각났다.

"아까 무슨 소리 들리던데 거기 누구 있어?"

목소리와 함께 모습이 나타난다. 기사는 아니다. 아니지. 갑옷을 입지 않고 있다고 기사가 아니란 법은 없지. 그냥 휴식 중인 기사일 수도 있는 거잖아? 일단 빨간 점으로 뜨는 적이니 제압하자.


"구덩이."

적이 발을 디딘 곳이 움푹 파여 들어간다. 움푹 수준이 아니라 사람 하나 정도는 꿀꺽 삼킬 정도의 구덩이다. 놈은 그대로 구덩이에 빠진다. 어딘가 부러졌는지 두둑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으윽."

신음이 들려온다. 구덩이로 다가가 안쪽을 살펴본다. 놈은 부러져 뼈가 튀어나온 다리를 붙잡고 바닥을 뒹굴고 있다.

"이봐! 나 좀 구해줘! 다리가 부러졌어!"


나를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내가 구덩이를 팠다는  눈치 못 챈 건가? 남자는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구해 줄 수는 있는데. 그전에 질문 하나만 하자. 글린다는 어딨어?"


쓰러져 있는 남자의 표정이 바뀐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나를 노려본다.


"너. 누구야."

뭐라고 소개해야 멋있을까. 원래 자기소개는 무조건 멋들어지게. 특히 이런 상황이라면.

좋은 대답이 떠올랐다. 약간 오글거리지만, 그것 또한 멋이지.


"나는 너희들의 죽음이어라."

 멋있는 대답이었다. 구덩이에 있는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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