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056.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1) / Isaac (56/65)



〈 56화 〉056. 4막 2장 - 분노하는 마법사 (1) / Isaac

분노는 나의 것, 나의 검, 나의 
분노로 태어나 분노로 잠들리라.


- 시, `분노는 나의 것` 中 발췌 -






깨어났다. 눈을 뜬다. 돌로 만들어진 천장이 보인다. 목이 따끔거린다. 기사한테 목이 베인 자리. 목을 쓰다듬는다. 등 뒤가 차갑고 딱딱하자.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인긴이 보여준 화면에서 보았던 곳.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곳이지만, 쓰고 있는 티아라에 어둠을 꿰뚫어 보는 기능이 있다.

"특이하게 생겼네."

사람을 해부해서 마력으로 추출하는 곳 이랬던가? 마법진이  바닥에 잔뜩 새겨져 있다.  중심에는 내가 누워 있던 돌침대가 있고.


주변 풍경을 구경하는 건 그만하자. 글린다를 구해야 하니까. 몸 상태를 점검한다. 일단 죽었다 살아난 건 처음······. 이 아니구나.  한 번 죽었다 살아나서 여기 있는 거지.

몸 상태는 정상적이다, 끼고 있는 장비도 그대로고. 죽었어도 장비는 못 빼는 건가. 돌침대에서 일어난다. 글린다는 어디 있을까. 인긴한테 물어보고 올 걸 그랬나. 그냥 마법이나 쓰지 뭐.

"파티원 추적. 글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혀를 찬다. 한 번 죽어서 파티가 끊겼나. 이러면 일일이 찾으러 다녀야 하는데. 귀찮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일단 이 방에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주변을 자세히 바라본다. 돌침대를 중심으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정육면체의 방. 한쪽에 철문이 달려 있다. 일단 확인해 볼까. 내가 죽어있었으니 안 잠가 뒀을 수도 있다.

닫혀있을  같은 철문에 다가간다. 손잡이를 잡고 밀어도 보고, 당겨도 본다. 역시나 잠겨 있다. 하긴 이게 정상이지.


"마법으로 열까."

원래 이럴 때는 터트려서 여는 게 적성에 맞는다. 그래도 바깥 상황을 모르니 소란은 일으키지 말자. 글린다도 인질 비슷한 상황이고. 터트리지 않고 여는 방법이 있겠지?


잠깐만. 열 필요 없잖아? 나가는 게 목표 아니야?

"유령화."


몸이 반투명하게 변한다.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을 지나간다. 마법의 힘으로 문제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역시 시간이 짧은 게 흠이야.


주변을 확인한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벽돌로 만들어진 복도가 있을 뿐. 마력을 추출하는 곳이 한 곳이 아닌지 복도 한쪽 벽에 철문이 주르륵 나 있다. 마력을 추출할 수 있는 사람을 이렇게 많이 구할  있는 건가. 여러모로 놀랍다.


그리고 놀라고 있을 시간은 아니지. 좌우로 펼쳐진 복도. 하나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겠지. 어딘지 모를 때는 운에 맡기자.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다섯 개의 철문을 지나자 복도가 오른쪽으로 꺾여있다. 그에 맞추어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어차피 이쪽이나 저쪽이나   점 없는 건 마찬가지. 그런데 왜 내가 걸어가는 곳이 더 어둡게 보일까.


아무것도 없는 복도에 내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진다. 철문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확신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 운이 좋았으면 병에 걸리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므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복도의 폭이 점차 넓어진다. 중간에 복도가 오른쪽으로 꺾였다. 몸을 돌리자 거대한 문이 나타난다. 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돌문. 도대체 얼마나 깊은 지하인 거냐. 문에는 거대한 뱀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큰뱀 전설에 나오는 뱀들인가?


"좋아. 들어가 보자. 유령화."


방에서 나왔던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투명해진 몸으로 거대란 돌문을 지나간다. 두께가 꽤 되는지 문을 지나가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문을 빠져나오자마자 마법일 풀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끼어서 죽을 뻔했다. 앞으로 유령화를 쓰려면 두께를 확인하고 써야지. 마법을 쓰다 실수로 끼어 죽으면 되살려준 인긴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

"우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여태까지 본 어떤 방보다도 넓은 공간. 여관 하나는 통째로 들어갈 정도의 넓이. 벽에 빼곡히 걸려있는 마법등이 찬란하게 빛난다.

벽과 바닥에는 기이한 문양이 잔뜩 새겨져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천장에도 문양이 있는  같다. 거대한 방 중앙에는 높이 솟은 구조물이 있다. 언젠가 TV로 보았던 잉카의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 용도도 같다면 제단 같은 거겠지.

"거기 누구냐!"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횃불을 들고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 아마 오스왈츠의 기사 중 한 사람일 거다. 어떻게 할까. 그냥 죽일까?

처분을 고민하는 사이 기사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제야 내 모습이 잘 보이는지 멈춰 서서 위아래로 훑어본다.

"당신이  마법사요?"

그 마법사? 그게 누군데? 마법사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마법사가 아니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맞다고 치자. 뭔지는 몰라도 여긴 중요한 시설 같다. 가까이 있는 편이 좋겠지. 필요하면 그냥 죽이고 떠나면 되는 거고.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군. 40세로 알고 있었는데."


"음······. 마법으로 젊어 보이는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변명이다. 그렇지만, 마법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먹히겠지. 기사는 잠시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지만.


"일단 따라오시오."

기사의 발소리를 따라간다. 제단이 있는 방 한구석에 철문이 놓여 있다. 그 위에도 문양이 새겨져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보고 지나칠 거 같다. 나는 안내자가 있지만.


철문이 열리고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특별해 보이는 건 없는 작은 방. 벽에 의자가 몇  놓여 있을 뿐.

"앉아서 쉬고 계시면 되오."


"감사합니다."

나무로 만든 의자는 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서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나를 안내해준 기사도 의자에 앉아서 자세를 편하게 한다.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온 거요? 문이 닫혀 있었을 텐데."

"어······. 마법사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역시나 웃기는 변명이지만 마법을 잘 모르는 상대에게는 언제나 잘 먹힌다. 기사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기사는 말없이 시간을 보낸다. 들고 있던 횃불은 벽 한쪽 횃불 걸이에 걸어놓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글린다 구하러 가야 하는데.


"그런데 말이야.  의식은 어떻게 하는 건가? 대충 들은 것만 있어서 조금 궁금한데."

한참을 가만히 있던 기사가 목소리에 궁금함을 가득 담고 질문해온다. 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도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럴 때는 일단 떠보는 거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보자.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내 질문에 기사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자기가 알고 있는 걸 정리하는 중이겠지.

"아가씨의 몸속에 있는 큰뱀을 빼는 것 정도?"

뭐야. 너무 기본만 알고 있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그리고 의식을 진행하면 아가씨가 죽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죽어? 글린다가? 표정이 무너질뻔했다. 간신히 정신력으로 붙들었다.

기사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자기가 모시는 사람의 딸인데.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죽는 건데.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 이 사람은 글린다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거요?"


아. 갑자기 열이 확 오른다. 여태까지는 그냥 뭔가로 뱀만  빼는 줄 알았다. 기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스왈츠 성을 박살 내려고  건 나를 죽였기 때문이다. 글린다를 납치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문제 없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죽여? 글린다를? 내가 열흘 넘게 데리고 다니던 사람을?

"마법사. 괜찮은가?"

"안 괜찮아!"


고함을 지르자 기사가 몸을 흠칫 떤다. 인긴에게는 오스왈츠 가문을 무너트린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인긴도 자제하라고 했고. 그냥 좀 부수고 조금 괴롭히고 조금 죽이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다.

글린다를 죽인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난다. 기백에 눌렸는지 기사가 의자에 앉은 채로 넘어져 버린다.

"글린다 어딨어."


기사는 몸을 떨면서 뒤로 기어간다. 입고 있는 검은 망토에서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이거 흥분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구나. 조심할 필요가 있겠군. 지금은 아니지만.


"다시 묻는다. 글린다 어딨어."

오들오들 떠는 기사는 입을 딱딱 부딪치며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마.


손에 얼음송곳을 만들어낸다. 기사는 바닥을 기어서 나에게서 도망간다. 바닥을 기려면 팔이 필요하지. 얼음송곳을 던져 오른쪽 어깨를 꿰뚫는다.


"흐아악!"

기사가 비명을 지른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왼팔만으로 갑옷을 입은 몸을 이끌고 도망가는 기사의 모습은 마치 굼벵이 같다.


"대답해!"


 어깨를 얼음송곳이 뚫고 지나간다. 기사는 울기 시작한다. 울음소리가 작은 방을 가득히 채운다.  인간이 우는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다. 침착하자. 고문에 가까운 방법이 아니라도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은 있다.


바닥을 기고 있는 기사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예전에 글린다 앞에서 썼던 마법을 사용한다.


"비밀 실토."


기사가 울음을 멈추고 멍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법은 제대로 작동했다.


"글린다는?"


"어딘가에 갇혀 있습니다."

"위치는?"

"모릅니다."

기사가 침을 흘리며 모든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한다. 글린다가 어디 있는지 모르면 쓸모가 없다.


"뼈 화살."


손에서 만들어진 뼈 화살이 쓰러진 기사의 목을 찌른다. 기사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기사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움직임을 멈춘다.

철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온다. 거대한 방과 그 중앙에 있는 제단이 보인다. 아마 저 제단에서 글린다를 죽일 생각이겠지.

"화염구."

만들어낸 불덩어리를 제단에 던진다. 제단이 폭발에 휩싸인다. 조금 금이 갔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완전 파괴."

마법이 발동한다. 제단에 간 금이 점점 커진다.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제단이 무너져 내린다. 흙먼지가 치솟는다. 조각난 파편이 바닥을 구른다.


"평탄화."


바닥의 마법진도 지우자. 평탄화 마법을 응용하면 마법진도 쉽게 지울 수 있다. 바닥에 새겨진 문양들이 사라져 간다.


이걸로 지하 시설은 파괴. 이제 글린다를 구할 때다. 들어왔던 문으로 걸어간다. 굳게 닫힌 돌문은 안쪽에도 이상한 문양으로 가득하다.

"터져나가는 화염."


손에서 작은 불씨가 날아가 돌문에 붙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돌문이 터져나간다. 파편이 밖으로 튀어 나간다.

작은 돌조각을 밟고 지나간다. 큰 파편들은 화염구로 터트려버린다. 지금 나는 엄청 짜증이  상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돌아다니면서, 글린다를 찾으면서, 눈에 띄는 걸 다 부숴버릴 거다.


자기 딸을 죽이는 아버지는 용서하지 않는다. 섬기던 아가씨를 죽이려는 기사들은 필요하지 않다. 너희는 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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