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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054. 4막 1장 - Over the Death (1) / Isaac (54/65)



〈 54화 〉054. 4막 1장 - Over the Death (1) / Isaac


죽음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캄캄한 어둠일까
온전한 공허일까


시, `죽음을 넘어서` 中 발췌 -





어두운 공간에 둥둥 떠 있다. 둥둥. 둥둥. 편안한 공간.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그러고 있을 건가?"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뜬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검은 망토로 온몸을 두르고 있는 젊은 남자가 서 있다. 아니. 남자라는  사람한테 붙이는 거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소을과 같은 존재. 초월자.


"역시 차원을 넘어왔다는 건가. 영안이 열려있군."


그것은 서서히 나에게 다가온다. 걸어오는 게 아니다. 날아오는  아니다. 그냥 공간이 접히듯이 나에게 다가온다.

"일단 자세를 바로 하도록. 누워있는 사람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취미는 없으니."

음. 어떻게? 손을 휘저어보지만, 자세를 바로 할 수 없다. 그냥 공허를 휘저을 뿐.


"몸을 움직이지 말고 정신을 움직이도록."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입은 벌어졌다 닫혔다가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정신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아오. 진짜. 일단 그것의 말대로 해본다. 몸을 가만히 둔다. 정신을 집중한다. 나는 일어선다. 누워 있지 않다. 몸이 서서히 움직인다. 발에 아무것도 닿지 않지만, 똑바로 선다.


"말하는 것도 같은 요령이다."

"가나다라마바사. 나오네?"


말은 쉽게 할 수 있었다. 똑바로 선 자세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너무나 깊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일단 내 소개를 먼저 하지. 나는 인긴. 죽음과 삶, 그 위대한 순환을 맡고 있지."


인긴. 발음도 어려운 이름이로군.


"그대의 추측대로 소울과 같은 초월자일세."


"아까 말씀하신 영안이라는 건 뭐에요?"


인긴은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성체,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지."

영, 혼, 육이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중요한 내용이라는 건 알겠다.


"영안은 영의 눈이다."

"....그걸로 끝?"


인긴이 얼굴을 구기고 한숨을 내쉰다.


"미안하군. 말은 내 주특기가 아니라. 이런 건 하라익이 잘하는데 말이지."

인긴은 또 한숨을 쉬고 머리를 긁적인다.

"영안이 뜨인 자는 영적인 존재를 보고 알아챌  있지. 나를 보자마자 인간이 아니란  알아차린 것처럼."

말을 마친 인긴이 나를 바라본다.  깊고 깊은 눈동자로.


"이해  했다는 표정이군."


고개를 끄덕인다. 인긴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벅벅 긁적인다. 설명을 못 하는 자신에게 짜증이 난 것 같다.

"그러니까 영안이 트이면 영적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다."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다. 자신도 그것을 느낀 건지 인긴의 얼굴이 구겨진다. 인긴은 머리를 긁적이고 한숨을 쉬고 가슴을 두드린다.


"저기···. 그 영안이란거 중요한 거에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럼 설명 안 해주셔도 돼요."


인긴이 한숨을 쉰다.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다.

"그래서 여긴 어딘가요?"


내 질문에 인긴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같다.

"여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라네."

맞다. 나 죽었었지. 그런데 죽음이면 죽음이지 삶과 죽음의 경계는 또 뭐야?

인긴을 바라본다. 인긴은 내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지 눈을 피한다.


"그러니까 자넨 아직 안 죽었어."

엥? 칼날이 목을 후벼 팠는데? 감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글린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죽었다. 그러고 보니 글린다는 어떻게 됐지?


"정확히 말하면 죽은 건데, 죽은 건 아니지."


.....  소리를 하는 거야? 인긴이 한숨을 푹 쉰다.


"이게 뭔지 알고 있지?"

인긴의 손에 공허가 뭉치기 시작한다. 뭉쳐진 어둠이 형체를 가진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반지. 녹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저 반지가 뭔지 알고 있다.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 손을 내려다본다. 반지의 보석에 금이 가 있다.

"원래 자네는 죽었어야 하네. 차원을 넘어온 사람이라도 목이 잘리면 죽지."

그렇지. 그게 정상이겠지. 문제는 인긴이 들고 있는 반지다. 저 반지의 이름은 소생의 반지. 착용하고 있으면 죽었을 때 즉시 부활이 가능해진다. 물론 UMO의 이야기.

"그런데 그게 작용을 했지. 그래서 너는 죽지 않았어."

오. 완전 신기해. 반지의  덕분에  죽었다는 거지?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지."

인긴은 말을 고르고 있다.


"세계는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 그런데 이 반지는 그것을 허용하지. 원래대로라면 이런 반지가 있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하지만. 자네는 존재 자체가 세계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


인긴은 정말 조리 있는 설명을 못 한다. 다시 정리하자.


나는 원래 죽었어야 했다. 반지 따위는 존재조차 못 해야 했다. 그게 규칙이니까. 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차원을 넘어온 자. 그 자체로 규칙에서 벗어난 존재. 그 모순이 반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자네는 설명에 재능이 있군."


내 생각엔 인긴이 설명에 재능이 없는 편이지만.

"어쨌든 그런 것이지."

뭐가 그런 건데. 제대로 된 설명 하나도 없이 그런 거라고 하면 어떻게 이해하라는 거냐.


"음. 일단  살아있는 거죠?"


인긴이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라면 이 반지의 효과로 바로 깨어나야 하지만, 대화를 나눠야 해서 이곳으로 부른 거지."

그런데 이렇게 말주변이 없는 존재를 붙여주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반지는 전부 압수일세. 그 물품창에 있는 건 전부 가져가도록 하지."

인긴의 손에 소생의 반지가 다섯 개 생겨난다. 다섯 개나 가지고 있었구나. 1,000레벨 이상의 적에게서 매우 낮은 확률로 뜨는 물품을 다섯 개나 가지고 있었다니. 너무 게임을 많이 했군.


"음. 반지도 압수했고. 이제 또  해야 하느냐면···."

인긴이 망토에서 뭔가를 꺼낸다. 하얀 종이.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있는 존재가 하얀 종이를 들고 있으니 되게 이상하다. 그것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저기 적어 다니는 거야? 뭐랄까. 되게 멋없다.


인긴은 종이를 이리저리 돌린다. 가까이도 대보고 멀리 떨어트려도 보고. 머리를 긁적이고 나를 바라본다.


"좀 읽어줄 수 있나?"


".....네······."

인긴이 건넨 종이를 받는다. 글씨가 쓰여있다. 글씨 맞겠지? 삐뚤빼뚤 그림에 가까운 모양. 내가  읽는 글자인가 보다.

"못 읽는 건가?"

"처음 보는 글씨네요."

"그럴 리가.  종이에 적힌 글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거네."


종이를 자세히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이건 좀 기역처럼 생겼군. 요건 니은. 이건 아고. 그냥 엄청난 악필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정도 읽힌다.


"이거 누가 쓴 거에요?"

인긴이 깊은 한숨을 쉰다.

"소을······. 확실히 읽기 힘든 글씨지."


소을. 글씨 진짜 못 쓰는구나. 따로 배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어떻게든 읽을 수 있겠다.

"우선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다음 반지를 회수합니다. 질문을 받습니다. 바깥상황을 설명해줍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묻습니다. 다시 살려줍니다. 집에 돌아와서 맛있게 저녁을 먹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받겠다."


정말 대충대충 돌아가는군. 인긴에게 종이를 건네준다. 질문이라. 당장 궁금한 건 바깥 상황이지만, 그건 알아서 설명해줄 거다. 종이에 적혀있었으니까.


다른 궁금한 건······. 있군.


"저는 누구인가요."


"처음부터 설명하기 힘든 걸 물어보는군."


설명하기 힘든 건가. 안 그래도 설명을 잘  하는 인긴에게는 어려운 일일까.

"노력은 해보도록 하지."

"노력해주세요."

인긴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말을 정리하고 있는 거겠지. 시간이 걸릴 거다. 그동안  앉아서 쉬고 싶은데.


정신을 움직이랬지. 나는 앉는다. 서 있지 않고 편히 앉는다. 몸이 움직인다, 소파에 앉은 자세로 변한다. 실제로 등과 엉덩이를 뭔가 잡아준다. 나는 지금 앉아있다.


내가 정신을 움직여 날아다니거나 거꾸로 서 있거나 하는 동안 인긴은 계속 고민 중이다. 설명을 못 한다고 해도 너무 고민이 길다. 슬슬 대답을 듣고 싶다.


"저기요. 인긴."

인긴은 대답하지 않는다. 눈을 꼭 감고 생각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말했지만 웃기는 표현이군.


"인긴!"

"앗!"

인긴이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미안하군. 너무 깊게 잠겨있었나."

인긴은 고개를 끄덕인다. 뭘 하는 건지.

"설명할 내용을 정리했다. 거기 앉아서 듣도록."


아까의 요령으로 적당히 어둠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인긴도 공허 속에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자네의 물음을 한마디로 정리하겠네."

한마디로 정리가 되는 질문이었나요. 되게 불안하네.


"자네는 자네일세."


역시나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그런 대답을 들으려고 질문은   아닌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 설명이 모자란 건가?"

"많이요. 그렇게 오래 고민하고 나온 대답이 고작 그거에요?"


인긴은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제기랄. 또 한참 걸리겠네.


정신을 움직여서 인긴의 주변을 날아다닌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인긴은 반응하지 않는다. 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음. 좋아. 생각을 정리했다."

인긴이 눈을 뜨고 날아다니는 나를 바라본다. 아래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인긴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연다.


"자네는 자네다."


"똑같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 질러 버렸다. 인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일단 침착하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미안하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군. 어떤 일이 있어도 자네는 자네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


인긴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그래도 설명이 부족해. 정말 말을 못 하는 존재다.

나는 나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나다. 뭔 일이 일어나도 나다. 아이작으로 살아왔고, 이유진이 깨어나도 나는 나다. 인긴은 그걸 말하고 싶어 하는 거다.

"대충 알아들었어요."


"다행이군. 내가 말을 잘  해서 걱정했는데."


아니야. 걱정해야 해. 말을 너무 못하잖아. 나야 대충 알아들었지만,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거야. 말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소을은 글씨 좀 연습하고.

"다른 질문 있나?"

"떠오르는 질문은 없네요."


"그럼 바깥 상황을 설명해 주면 되겠나?"

"네."

인긴이 손을 뻗는다. 그곳에 뭔가 나타난다. 하얀 화면 같은 거.

"잘 나오는 건가?"

"잘 나오는 거 같아요."


화면에 뭔가 나타난다. 아직 흐릿하지만, 조금씩 형태가 나타난다. 붉은 코트를 입고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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