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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049. 3막 4장 - 오스왈츠 성으로 (2) / Isaac (49/65)



〈 49화 〉049. 3막 4장 - 오스왈츠 성으로 (2) / Isaac

정말로 맛이 없었다. 밍밍하기만 하고 진짜 맛이 없었다. 글린다도 마찬가지인지 인상을 찌푸리고 숟가락을 움직인다. 맛이 없다는 것치고는 다섯 그릇째 먹고 있지만.

"정말 많이도 드시네요."


오손이 글린다에게 여섯 그릇째 수프를 퍼주며 웃는다. 물론 글린다의 눈총을 맞고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미하일이 준비해준 식사는 금세 끝이 났다. 미하일은 오손에게 냄비를 닦아오라 시키고 불을 발로 밟아 꺼트린다. 작은 불씨만이 타오르며 온기를 전달한다.

"내일은 출발할  있겠죠?"

"문제 없을 겁니다."


미하일의 대답을 들은 글린다가 한숨을 쉰다. 오손은 빗물에 닦아온 냄비를 미하일에게 전달한다. 미하일은 냄비를 천으로 닦은 후 다시 짐에 정리해 넣는다.


"담요를 드리겠습니다. 한숨 주무시길."


 속에서 담요가 두 개 꺼내진다. 도대체 저 짐 속에는 없는 게 있긴 할까.

글린다는 미하일이 건넨 담요를 덮고 바닥에 눕는다. 아까까지 자고 있지 않았었나. 먹고 나서 바로 눕는 것도 건강에 안 좋은데.

"마법사님도 조금 쉬시죠."

딱히 쉴 필요는 없지만. 일단 미하일이 건네준 담요를 덮고 자리를 잡아 눕는다. 호위병들도 한둘씩 담요를 꺼내 밤을 보낼 준비를 한다.

"불침번은 나부터 돌아간다."

미하일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말을 한다. 다른 호위병들은 담요를 덮고 자리에 눕는다.

재가 된 장작더미에 남은 불씨가 타오른다. 횃불은 미하일이 손에 들고 있다. 다른 두 개는 이미 꺼졌고.

눈을 감고는 있지만, 당연히 잠은 오지 않는다. 또 매우 지루한 시간이 시작되겠군. 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느껴진다. 딱딱한 바닥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미하일이 다른 호위병과 불침번을 교대한다. 커다란 하품을 하고 동굴 주변을 걸어 다니는 것이 보인다. 미하일은 그 호위병이 자고 있던 자리에 그대로 눕는다.


더는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다. 다른 사람이 깨지 않게 조심히 몸을 일으킨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호위병이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소란은 없다.

"안 주무십니까?"

"잠이   오는군요."

지금 불침번을 서고 있는 남자는 오닐. 막 소년티를 벗은 젊은 청년. 다섯 명의 호위병 중 가장 젊은 사람. 시간도 널럴하니 잠시 대화를 나눠볼까?


"오닐 씨는 어디서 오셨나요?"

"저요?"

고개를 끄덕여준다.


"저는 맥발라 시에서 태어났어요."

요정 잡이를 했던 곳이군. 덤으로 이상한 마법사도 만났었지. 이름도 모르는 마법사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부모님을 따라 장사를 배우다가 어쩌다 보니 이렇게 직업 병사를 하고 있네요."


오닐은 멋쩍은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원래 인생이란 어떻게 될 줄 모르는 법이지. 나도 내가 죽을병에 걸릴 줄 몰랐거든. 게임을 하다 심장 발작으로 죽을 줄도 몰랐고.

"마법사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저는 아주 먼 곳에서 왔답니다."

너무나 먼 곳이죠. 너무 멀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죠. 거리로 따지면 광년 단위가 나오지 않을까?

오닐은 더 묻지 않는다. 대화의 주제는 금방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주로 나와 글린다가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들. 오닐은  모든 일 하나하나에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마법사님은 대단하시군요. 그런 상황을 헤쳐오시다니···."

"하하하."


그냥 웃을 수밖에 없다. 저기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웃어넘기는 게 최고의 선택이지. 오닐도 어색하게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반지가 악의를 감지한다. 섬뜩한 바람이 불어온다.

"다른 사람 다 깨우세요!"

"네?"


"빨리!"

오닐이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힘껏 분다. 시끄러운 소리가 퍼지고 호위병들은 바로 일어나 무기를 꺼내 든다.


"무슨 일이냐!"


"적이 오고 있습니다. 짐을 정리하세요."

미하일은 침을 삼키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글린다는 잠이 덜 깬 듯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습격입니다."

오손이 글린다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한다. 훈련받은 호위병들이 준비를 끝내는 것은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글린다를 제일 뒷자리에 두고 내 앞으로 나선다.

"뒤로 물러서요."


"안 됩니다. 저희는 마법사님과 아가씨를 안전하게 모시는 게 목적입니다."

참 멋진 프로 정신이긴 한데, 지금 오는 게 여러분이 상대할 수준이 아니거든요? 느껴지는 바로는 최소한 그때의  수준. 일반 병사 정도는 한 손가락으로 압살할 수준이다. 도대체 글린다를 노리는 건 누구길래 이런 수준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거지?


"글리다 양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대충 처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얼른!"

잠시 망설이던 미하일이 호위병들에게 손짓으로 지시한다. 아직도 반쯤 졸고 있는 글린다를 데리고 굴의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미하일은 나를 보고 손을 올려 경례를 한다. 내가 고갯짓으로 대응을 해주자 그제야 다른 사람들을 따라간다. 이제 나만이 남아있다.

놈이 점점 가까워진다. 동굴에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꽤 무거운 발소리와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 갑옷 같은 거라도 입은 건가?

모습이 보인다. 새하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 얼굴은 투구로 꽁꽁 싸매고 있다. 왼손에는 몸통 크기만 한 하얀 방패. 울부짖는 사자의 옆모습이 양각되어 있다. 오른손에는 장식이 없는 새하얀 검을 쥐고 있고. 갑옷은 물에 하나도 젖어 잊지 않다.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건가?


"글린다는 어디 있습니까?"


하얀 갑옷의 기사가 말을 걸어온다. 깜짝 놀랄 만큼의 미성. 목소리 변조는 하지 않는 건가? 그보다 존댓말을 하는 거야? 적한테? 예의가 바르다고 해야 하나.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글린다 알폰소 오스왈츠는 어디 있습니까?"


"날 쓰러트리면 알려줄 수도?"

기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확실히 내 유머 감각에는 문제가 있군.

"그대가 아이작입니까? 마법사 아이작?"


"언제 이름이 알려졌데? 내가 그렇게 유명한가 봐?"


역시나 기사는 반응하지 않는다. 유머 감각을 키울 필요가 느껴진다.


"제 이름은 에스나. 백룡 기사  하나입니다."

정말로 기사다운 태도로군. 적에게 이름을 알려주다니. 여태까지 만나본 녀석 중에는 처음이다.


에스나는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전투를 준비한다. 대화는 이제 끝이라는 거군. 양손에 불덩이를 만들어낸다.  번 놀아보자 자식아.


"먼저 가겠습니다."

 친절도 하셔라. 에스나가 달려들며 검을 찔러온다. 빠르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검을 피해낸다.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에스나의 검이 계속 휘둘러진다. 생각보다는 느리게. 뭔가 이상하다.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반지가 전달해준 정보로는  정도 수준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화염 폭풍."

몸 주변에서 불꽃이 휘몰아치며 퍼져나간다. 에스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방패를 들어 올린다. 파도처럼 퍼져나간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에스나가 꼿꼿이 서 있다. 확실히 에스나의 장비들은 마법 물품들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마법에 그을음도 없을 리가.

"이것이 끝입니까?"


"설마."

에스나가 다시 공격 자세를 잡는다. 확실히 방어력은 뛰어나지만, 공격은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쉽게 제압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항상 뜻대로 안 된단 말이지.

"어디다가 정신을 파십니까!"


칼이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간다. 딴 생각하다 죽을 뻔했군. 에스나의 공격은 확실하다. 그만큼 정직해서 문제지. 처음  세계에 왔던 나라면 피하지 못했을 거다. 글린다와 함께 여행하며 수십 번의 공격을 받은 나는 피할 수 있고.

발을 계속 움직이며 에스나의 공격을 피해낸다. 틈이 생기지 않아 반격은 힘들지만, 맞을 일도 없다. 그리고 반격이란  언제든 할 수 있는 거고.

"땅울림."


땅을 살짝 차며 마법을 사용한다. 땅이 흔들린다. 땅이 흔들리면 그 땅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있는 생명체의 중심도 같이 흔들린다. 나는 마법의 시전자라 제외되지만.


에스나는 균형을 잃는다. 균형을 잃었으니 공격도 끊긴다. 이제 내 차례다.


"화염의 꽃."

에스나의 하얀 갑옷 위에 빨간 꽃이 피어오른다. 타오르는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붉은 꽃. 활짝 꽃잎을 펼친 화염의 꽃이 폭발한다.


폭발 때문에 에스나가 나가떨어진다. 몇 바퀴 구르더니 금방 일어난다. 갑옷에는 흠집 하나 없다. 진짜 명품이구나.

"방금은 좀 놀랐습니다."


놀라지 말고 좀 기절하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에스나는 방패를 정면으로 들어 올린다.

"이제는 저도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


강철의 부츠가 땅을 박찬다. 에스나가 빠르게 달려든다.


"대지의 장벽."


 앞의 땅이 위로 솟아오른다. 단단한 장벽이 되어 에스나를 가로막는다. 이런 거로 막을 수는 없겠지.


생각이 들어맞았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대지의 장벽이 조각나 깨어진다.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흙덩이 사이에서 울부짖는 사자가 새겨진 방패가 나타난다. 맞아줄 생각이 없기에 옆으로 피한다. 에스나는 그대로 달려가다 멈춰 선다.

"피하시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맞아주는 것도 이상한 버릇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사라면 상대의 공격을 직접 막아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안한데 난 마법사라서."


에스나가 혀를 찬다. 뭔가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다.

"그런데 넌 그게 끝이야?"


"무슨 의미입니까?"


"너 너무 약한  같아."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화났다. 평온하던 이전과 목소리의 톤이 달라진다.


"너 너무 약해."

"그렇군요."


에스나가 심호흡을 하고 있다. 화를 참고 있다는 게 확실히 전해진다. 이를 가는 소리도 들려온다.


"상대를 모욕해서 정신을 흐트러트리다니. 마법사는 참으로 치졸한 전투법을 사용하는군요."

정말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재주다. 에스나는 검을 들어 올린다.

"정말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에스나의 분위기가 바뀐다. 조금 위험한 거 같은데. 변신을 기다려 주는  악당이 하는 거지. 난 선역에 가까우니 반칙도 허용이다.


"하늘을 꿰뚫는 화살."

검은색으로 빛나는 화살이 에스나를 향해 날아간다. 바로 쓸 수 있는 마법 중에서는 가장 관통력이 높은 마법. 에스나는 방패를 들어 올린다. 화살과 방패가 부딪친다. 화살은 힘을 잃지 않고 방패를 밀어붙인다. 에스나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러나 방패에 큰 흠집을 낼 뿐 관통하지는 못했다. 미친. 얼마나 단단한 거지.

에스나가 검을 바닥에 꽂는다. 뭔가 시작된다.

"백룡이여. 당신의 종을 주목하소서. 당신을 따르는 이에게 힘을 내리소서."

에스나의 주변에 마나가 몰아친다. 모두 에스나의 몸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갑옷과 검과 방패가 빛을 내기 시작한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네. 빨리 제압하고 가려고 했는데 좀 시간이 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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