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046.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3) / Glinda (46/65)



〈 46화 〉046.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3) / Glinda


"나쁘진 않은 방법이로군."

확실히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지. 하지만 좋은 방법도 아니라는 거. 분명 유리하게 협상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마법사가 훼방을 놓았다. 그냥 세금 좀 줄여주고 편하게 갈 생각이었는데.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마법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참아야지.

"만약  괴물을 내쫓아 준다면 호위병력을 빌려주지."

숙부는 마법사의 제안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 나랑 협상을 진행하면 결과가 어떨지 뻔히 알기 때문이겠지. 나와 숙부는 실질적인 입지 차이가 꽤 크다. 물론 내가 위. 이게 방계와 직계의 차이.

"괴물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네. 지금 움직일 텐가?"

마법사가 나를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인다. 오스왈츠 성이 아닌 곳에서는 완전한 안전은 없다. 빠르게 돌아가야 한다. 나는 죽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 따라오게나."

숙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간다. 나도 마법사도 그 뒤를 따라 복도를 걷는다.

"간단하게 설명해주겠네."

숙부는 복도를 걸어가며 농지에 나타난 괴물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다리 여섯 개짜리 도마뱀 비슷한 무언가. 날개가 달린 것으로 봐서는 드래곤의 아종이라 생각된다. 다행히 불을 뿜지 않지만,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힘은 시의 경비부대로 해결할 사항이 아니라 한다.

마법사는 숙부의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눈을 보아하니 이해는 못 했군. 숙부는  어벙한 눈동자 어디서 신뢰를 느낀 걸까. 아무리 봐도 괴물을 물리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최대한 농작물에 피해가 없게 잡아줄 수 있겠나?"

"걱정 붙들어 매시죠!"

마법사가 당당하게 대답한다. 뭐랄까 좀 과장된 몸짓을 취한다. 밀란에서처럼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 좋은데, 이 상태도 정상은 아니다. 숙부는 그런 마법사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건지 크게 소리 내 웃는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나요?"

"말이 편하겠나? 아니면 마차가 편하겠나?"

내가 던진 질문은 마법사를 향한 질문으로 바뀐다. 마법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한다.

"마차가 좋습니다."

확실히 말을 잘 타는 것 같지는 않더라.

"그럼 마차를 준비하지."

숙부는 복도를 걸어가던 시종 하나를 불러 세운다. 시종은 그 자리에 딱 멈춰 서서 숙부의 말을 듣는다. 교육이 상당히  되어있다. 오스왈츠 성에도 저런 수준의 시종은 많은 편이 아니다.

"사두마차를 준비해주게. 호위는 최소한으로. 간단히 먹을 점심거리를 준비해주게. 20인분 정도면 되겠군."

시종은 곧바로 복도를 빠르게 걸어나간다. 그나저나 점심으로 20인분? 너무 많지 않나? 최소한의 호위면 다섯 명 정도밖에 안 될 텐데. 마법사도 그 부분이 걸리는지 의문에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20인분은 많지 않나요?"

숙부는 소리를 내어 웃는다.

"글린다와 여행을 해봤으면 얼마나 많이 먹는지 알고 있지 않나."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이 먹습니다. 마법사는 나와 숙부의 눈치를 보며 입가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미소를 짓는다.

숙부의 농담 같은 진담 때문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복도를 걷는다. 숙부만이 신이 나서 주절주절 떠들고 있을 뿐.

복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숙부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어젖힌다. 나타나는 것은 마구간. 십수 마리의 말이 각자의 우리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 나와 마법사가 타고 왔던 짐말의 모습도 보인다.

"이게 우리가 타고  마차일세."

화려하지 않은 장식이 달린 마차. 작은 창도 달려 있다. 오스왈츠 백작가의 상징인 검과 방패가 작게 새겨져 있다. 검소함을 중요시하는 숙부와 딱 어울리는 마차다.

"시장님. 말들을 준비했습니다. 식사는 조금  걸릴 겁니다."

마차에 말을 묶던 시종이 숙부에게 다가와 말한다. 숙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마차에 타지."

숙부가 마차의 문을 연다. 마법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따라 내가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숙부가 마차에 올라탄다.

주인의 취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내부. 서로를 마주 보는 여섯 개의 좌석. 단순하게 천으로 감 쌓인 의자들. 귀족 보다는 상인의 마차에 가까운 모습.

"너무 아껴쓰시는 거 아니에요?"

숙부는 그저 으하하 웃으며 대답을 피한다. 마법사는 마차가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설마 처음 타보는 건가.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숙부가 마차 문을 연다.  명의 시종이 보따리에 쌓인 무언가를 들고 있다. 아 저게 오늘 점심이겠지.

"수고 많았네."

숙부는 시종들에게 보따리를 받는다. 시종들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난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언제 마부가 올라탔는지 마차가 움직인다. 숙부는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마법사는 작게 감탄을 내뱉으며 창문에 달라붙는다.

숙부가 풀어놓은 보따리에는 샌드위치가 한가득.  샌드위치다.  제대로 된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그래도 일반 음식점에서 만든 것보다 맛은 좋겠지.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씹는다. 확실히 여태까지 먹었던 샌드위치와 비교하면 급이 다르다. 이 정도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겠군. 그렇게 마차가 이동하는 동안 계속 샌드위치를 씹어먹었다.

"저도 하나만."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마법사가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간다. 숙부도 식사를 시작한다. 마차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샌드위치를 먹는 소리만이 마차 안을 채운다.

"잘 먹었습니다."

준비된 20인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그럴 수도 있는 거니 넘어가도록 하자.

마차는 적절하게 흔들리며 목적지로 나아간다. 그 편안한 흔들림.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 먹고 바로 자면 몸에 안 좋은데···.


"글린다 양. 글린다 양."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몽롱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눈을 뜬다. 숙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한 건지 마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도착한 건가요?"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비빈다. 마법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네.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갈 거랍니다."

하품하며 기지개를 켠다. 마법사는 마차 문을 열고 내려가서 나를 기다린다.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마차에서 내린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몸을 부르르 떤다. 숙부의 모습이 보인다. 그 주변에 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도.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긴장했는지 침을 삼키고 있다.

"저기. 저게 그 괴물이네."

넓게 펼쳐진 농지는 익어가고 있는 밀로 가득하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검은 형체. 주먹만 하게 보이는 크기이지만, 떨어져 있는 거리를 생각하면······. 도대체 얼마나 큰 거지.

"엄청 커 보이네요."

"저택보다 조금 작은 크기라네."

숙부의 저택은 무려 3층짜리.  정도 크기의 드래곤 아종이라니. 마법사가 처리할  있는 거 맞아? 마법사를 살짝 바라본다.

"많이 크네요."

크기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와 표정. 마법사는 크게 하품을 하고 땅에서 날아오른다. 숙부는 놀란 표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본다. 숙부의 호위 병력은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다. 이게 마법사를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나도 처음 마법사를 보았을  저런 기분이었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마법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괴물을 향해 날아간다. 마법사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닌데, 왜 이리 불안하지. 마법사의 모습이 점보다 작아지며 사라진다. 뭐. 어떻게든 하겠지.

멀리서 번개가 친다. 폭발이 일어난다. 불꽃이 치밀고, 괴성이 들려온다.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긴 하구나."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혼자서 해결하던 사람이니까요."

숙부는 마법사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를 성까지 데려다주고 할 일이 없다면 티파나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숙부라면 마법사의 급에 걸맞는 대접을 해 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뭔가 터져 나간다. 멀리 있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마법사도 꽤 고전하는 모양.

"시장님. 마법사란 건  저런 사람입니까?"

호위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숙부에게 질문한다.

"설마. 모든 마법사가 저 정도였으면 대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지. 그냥 저 사람이 특별하게 강한 편이라네."

멀리서 번개가 반짝인다. 또 폭발이 일어나고. 곡식을 안 망치면서 잡아야 하는  아니었나. 저러다 다 태워 먹겠네.

마법사가 괴물을 내쫓는 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멀리서 날아오는 마법사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거대한, 정말로 커다란 괴물의 시체가 함께 날아오고 있고.

다리 여섯 개의 거대한 도마뱀은 이곳저곳 몸이 성한 곳이 없다. 이곳저곳 터지고 불에 그슬린 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 다녀왔습니다!"

도마뱀의 사체가 쿵 하고 떨어진다. 무게가 상당한지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숙부의 호위병은 그에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선다. 시종의 교육과 다르게 병사들의 훈련 상태가 좋지는 않네.

마법사는 가볍게 도마뱀의 사체 위에 올라선다.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편 마법사. 내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라는 게 얼굴에 드러난다.

"정말 고맙네!"

숙부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주변의 호위병들도 덩달아 박수를 친다. 마법사는 도마뱀의 사체 위에서 관심을 즐기고 있다. 한숨이 나오는 모습이다.

"이 사체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깔끔하게 제거해주게."

"그럼 뒤로 좀 물러나 주세요."

마법사는 도마뱀의 사체에서 뛰어내린다. 병사와 숙부가 뒤로 물러난다. 마법사가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다. 나도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린다.

"소각."

도마뱀의 사체를 향해 뻗은 마법사의 손에서 불꽃이 일어난다. 작은 불꽃은 천천히 사체를 향해 날아간다. 불꽃이 사체와 닿자 확하고 큰불이 일어난다.

열기에 한걸음 뒤로 더 물러난다. 도마뱀이었던 것은 불에 휩싸여 타들어 간다. 타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단지 뭔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릴 뿐.

바람에 흩날리는 불꽃은 주변에 옮겨붙지 않는다. 오직 도마뱀만 확실하게 태우고 있을 뿐.

거대한 도마뱀이  줌의 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남은 재는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간다. 이것으로 오늘의  일은 끝났다.

"좋아. 그럼 마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도록 하지."

숙부가 마차에 올라탄다. 호위병들도 자신들이 타고 온 말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마법사도 나도 마차에 들어간다.

"저택으로 돌아가면 식사가 준비돼있을 걸세.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떠나게나."

드디어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오는구나. 최대한 빨리 떠나는 게 좋지만, 가끔은 휴식도 필요한 법. 오늘은 좀 편히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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