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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045.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2) / Isaac (45/65)



〈 45화 〉045.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2) / Isaac

"여기는 아버님의 사촌 동생분이 살고 계시는 저택이에요. 성함은 마르코스 보니 오스왈츠. 티파니의 시장이기도 하죠."

잔뜩 신이 난 글린다가 재잘재잘 떠든다. 솔직히 귀에 하나도  들어온다.

마르코스의 저택 내부는 생각보다 검소하다. 그림이나 장식이 잔뜩 달려 있을 줄 알았는데. 바닥에 깔린 융단을 빼면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검소한 사람인가?

글린다는 이곳이 익숙한지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갈 뿐.  신나 보이는 모습이다.

"숙부님!"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어젖힌 글린다가 소리친다. 문 너머에는 단정한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있다. 벌어진 어깨와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남자. 아마 마르코스겠지.

글린다는 양팔을 벌린 마르코스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마르코스는 인자한 미소로 글린다를 품어준다.

나는  안에 들어가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다. 나는 부외자다. 저들과 관련 없는 자.

마르코스는 글린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할 때까지 글린다를 껴안았다. 숨이 막힌 글린다가 등을 두드릴 때까지. 겨우 마르코스의 품에서 벗어난 글린다가 숨을 몰아쉰다.

"겨우 살아 돌아온 숙질을 질식사시킬 생각이세요?"

글린다의 농담에 마르코스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나에게도 기분 좋게 다가온다.

"너무 행복해서 그랬지. 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어떻게 된 일이니?"

마르코스의 눈동자가 변한다. 글린다는 한숨을 쉬고 방안에 놓여 있는 소파에 걸터앉는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죠. 납치도 당하고, 죽을 뻔도 하고, 습격도 당하고."

여태까지 겪어온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다.

"그래도 저기 있는 마법사님이 다 해결해 주셨어요."

그제야 마르코스는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정말 고맙소!"

마르코스는 내 손을 잡더니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한다. 팔이 빠질 것 같이 강한 악수. 겨우 손을 놔준 마르코스는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름이···?"

우리 통성명도  한 상태였구나.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질문에 답한다.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아이작. 으하하!"

마르코스는 솥뚜껑만한 손으로 내 등을 후려친다. 반가움의 표시인 건 알겠지만, 그만뒀으면 좋겠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내장이 터져 나갈 거 같다. 다행히 다섯 번으로 끝났다. 입가에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나 닦아본다. 그런 모습을  글린다는 한숨을 쉰다.

"두 분 다 자리에 앉으세요.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에요?"

신랄한 글린다의 비난에 마르코스는 하하 웃으며 소파에 앉는다. 나도 아직 따가운 등에서 신경을 돌리고 글린다의 옆에 앉는다.

이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 그 위에 올려진 각종 서류, 잉크 병,  펜. 마법으로 작동할  분명한 전등. 전등의 전은 전기를 의미하니 마법등이라는 표현이 맞을 거다. 벽면은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으로 되어있다. 집무실이나 그런 곳일 거다.

"시장님. 차를 가져 왔습니다."

닫힌 문이 두드려진다.

"들어오게나."

마르코스의 말이 끝나고 집무실의 문이 열린다. 집사복이라고 부르나? 아무튼, 옷을  차려입은 노인이 쟁반을 손에 들고 들어온다. 쟁반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이 세 개.

노인은 우리가 앉아 있는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는다. 노란빛의 액체에서 달콤한 향이 퍼져나간다. 맥발라에서 마셨던 그거랑 같은 종류군.

"오스왈츠 가문에 내려오는 방법으로 우려낸 것이지."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다. 옆에 앉아 있는 글린다의 눈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  내가 맛을 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기대를 저버릴 정도로 매정하지는 못하다.

잔을 들어 올린다. 손에 따스함이 전해진다. 달콤한 향 속에는 새콤함이 숨어 있다. 레몬은 너무 신 편이고, 사과 정도? 입에 한 모금 물어본다. 입안에 향이 퍼져나간다. 다시 한  느끼는 거지만, 내 미각감각은 괴멸적이군. 설명할 수 없는 맛. 달고, 새콤하고, 따스한 맛이 퍼져나간다.

눈을 감고 음미한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게 얼마 만인가. UMO에서 먹은 것을 빼면 3년은 넘었을 거다.

잔을 내려놓는다. 오스왈츠 사람들이 나를 기대에  눈빛으로 바라본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이런 차를 내올 정도면 당연히 그런 눈빛을 할 수 있지.

"맛있습니다."

시선이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는다. 그걸로 끝이냐고 묻고 있다. 하지만 어떡하라고. 내 미적 감각은 괴멸적인 데다, 언어능력도 만만치 않지. 그래도 저 눈빛에 담긴 기대를 꺾을  없다. 최대한 말을 고르고 고른다.

"여태까지 마셔본 어떤 것보다 맛있습니다. 마치 몰론의 축복을 받은 것 같군요."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몰론의 축복이 어쩌고 한 거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으하하! 그렇지. 그렇지. 몰론의 축복을 받은 맛!"

그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마르코스의 웃음에 덩달아 글리다도 웃는다. 글린다가 웃는 모습을 본  이번이 처음. 미소 정도는 보았지만, 저렇게 크게 웃는 건 처음이다. 안전한 곳에 와서 마음이 놓인 걸까.

한참을 웃던 두 가족은 이내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들과 분위기를 맞추기 힘들다. 저 두 사람이 웃는 동안 나는 준비된 차를 마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분위기 전환 너무 빨라!  따라가겠어! 글린다도 금세 진지한 표정을 되찾는다. 이건 가족 특성인가. 심히 당황스럽다.

"오스왈츠 성까지 가는 길에 호위병이 필요해요."

글린다는 차를 한잔 마시며 말한다. 마르코스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는다.

"왜지? 말을 타고 사흘이면 도착하지 않나?"

여기서 사흘을 더 가야 해? 오스왈츠 영지 생각보다 아주 넓구나. 백작이라고 해서 중간 정도 가는 줄 알았는데.

"맥발라 숲에서 여기까지 몇 번 습격받았는지 아세요?"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많이 습격을 받았거든. 횟수로 따지면 서른이 넘어갈걸? 위험했던 적은 서너 번뿐이지만.

"잠깐만. 맥발라 숲? 거기까지 갔단 말이냐?"

마르코스의 눈동자가 커진다. 정말 놀랐나 보군.

"네가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났지?"

"십이 일? 그쯤 되지 않았나요?"

마을에서 하루. 맥발라에서 하루. 힌다에서는 머물지 않고 바로 밀란까지 움직였고,  시간이 6일. 밀란에서 티파나까지 3일. 11일이군.

"정확히는 십일 일입니다."

"맥발라 숲까지 가는 시간이 거의 그쯤인데. 설마?"

"그 설마가 맞아요. 공간 이동으로 그곳으로 갔어요."

마르코스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 싶지만, 그런가 보다 하자.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마르코스가 머리를 붙잡는다.

"도대체 왜? 솔직히 널 납치한다고 도움이 될게 하나도 없지 않으냐."

그런 거였어? 나는 엄청 중요한 뭔가 있나 보다 했지.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공간이동으로 맥발라 숲까지 데려가고, 수십 번이나 공격을 시도할만한 가치가 저한테는 없거든요."

자기 객관화가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판단하고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아마 오스왈츠 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공격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지."

마르코스가 혀를 차며 팔짱을 낀다. 찻잔에 담긴 차는 서서히 식어간다.

"그래서 호위병이 필요하시다?"

"네. 집까지 다 와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여태까지는 어떻게 버텨왔지?"

글린다가 나를 가리킨다. 나를 이 대화에 끌어들이지 말아 주세요.

"실력이 좋은가?"

"왕실 마법사 정도는 될걸요?"

마르코스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 뭐랄까.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바라보는 눈.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평가하는 눈. 손이 떨리려는 것을 틀어막는다.

"그럼 그 정도 마법사만 데리고 다니면 되지 않나?"

"그러면 좋겠지만······."

글린다가 나를 바라본다.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지 말아줘.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앞에 있잖니.

"이제 습격할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금보다 더 위험해 질 거에요. 역시 호위병이 있는 편이 좋겠죠."

나도 그게 편할 거 같아. 아무리 내가 최강의 마법사라고 해도, 수십 명이 동시에 덤벼들면 처리가 곤란하다. 맞아주면서 싸우면 몰라도 글린다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건 진짜 무리.

"그럼 내가 호위병을 빌려주면 대가는?"

대가? 조카 아니었어? 조카를 보호하는데 대가를 받는 게 정상이야? 글린다를 바라본다. 하지만 글린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이 세계의 문제인가, 아니면 귀족이라 이런 건가.

"뭘 원하세요?"

"세금을 조금 줄여줬으면 좋겠는데."

마르코스의 얼굴은 무섭기 짝이 없다. 글린다도 만만치 않지만.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한다. 그 중간에서 번개가 파직 거린다. 으아아 여기서 나가고 싶다. 얼른. 최대한 빨리. 오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야.

글린다는 마르코스의 눈빛을 받으면서 찻잔을 들어 올린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를 목으로 넘긴다.

"세금 문제는 저와 의논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목소리에서 냉기가 느껴진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부둥켜안았던 사이라고 믿지 못하겠다. 내 눈이 잘못됐나 의심을 해야겠지.

"하지만 형님께서 너를 지극히 아낀다는 것은 상식이지."

찻잔이 테이블에 부딪힌다.  사람은 물러서지 않고 눈빛을 나눈다. 깜빡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살벌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그런  저를 안전하게 돌려보내고 아버님과 상의하시죠."

"난 일단 약속을 받아야겠네."

두 달 한 발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협상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정확하게 얼마나 줄여달라는 거죠?"

조금  급한 쪽인 글린다가 숙이고 들어간다.

"3년간 지금의 절반."

콧방귀를 뀌는 글린다.

"저한테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없어도 오스왈츠 가문은 잘 돌아갑니다."

"가치란 건 책정하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지."

잔에 남은 차를 마저 마신다. 분위기가 나를 옥죈다. 목이 타들어 간다. 조금 더 마셔야겠는데, 그런 걸 부탁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3년간 절반은 너무 많네요. 그전에 세금을 줄여달라는 이유가 뭐죠? 티파나는 지금의 세금으로도 풍족하게 지내고 있을 텐데?"

글린다의 말에 마르코스가 한숨을 쉰다.

"농지 하나에 괴물이 나타났네. 덕분에 수확이 처참해질  분명하지."

그건  문제네.

"아버님께 말은 해 두었나요? 기사들을 부를 상황인 것 같은데."

"불렀지. 론다란트 놈들과 소규모 전투가 이어지고 있네. 아직 피해가 발생하지 이곳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군대가 출병하지 못하는 상황인가? 론다란트라는 건 위쪽에 있는 다른 국가겠지? 오스왈츠 가문은 국경 수비대 역할을 한다고 했으니까.

"아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요?"

글린다의 질문에 마르코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격을 하지 않고 있지. 영역이 너무 넓어 제대로 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만 빼면, 아무런 피해도 없네."

"저기···."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린다. 글리단 둘, 마르코스 둘, 합계  개의 눈동자가 나에게 날아와 꽂힌다.

"어···. 음···. 제가 그 괴물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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