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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044.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1) / Isaac (44/65)



〈 44화 〉044. 3막 3장 - 티파나에서 휴식을 (1) / Isaac

걸어가기 위해서는 휴식도 필요한 법
잠시 여기 멈춰서 저 하늘을 보자

시, `휴식` 中 발췌 -


마차기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말이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심하게 덜컹거린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쾅. 바퀴가 빠져서 마차가 주저앉았다. 정말 부서져 버렸네. 한숨을 쉬며 글린다가 마차에서 나온다.

"으아아. 결국, 부서졌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밀란에서 오스왈츠 백작령까지 사흘. 그동안 수십 번의 습격을 받았다. 밤에도 낮에도 쉬지 않고. 가끔 한 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전부.

첫 번째 습격을 제외하면 위험한 일은 없었다. 그냥 우리의 신경을 긁으려는 듯한 공격. 소용은 없었지만.

익숙해진 글린다도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었다. 배변 문제는······. 묻지 말자. 이 문제를 언급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글린다가 선포했다. 죽어 버리는 게 아니라 죽여 버리는 거다. 그 말을 할 때의 눈동자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는 습격에 결국 마차가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상태. 다행히 오늘 새벽부터 공격이 멈췄다.

"이제 어떻게 하죠?"

주변에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글린다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밥이나 먹죠."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나. 하지만 글린다가 먹겠다고 하면 말릴 힘이 없지. 평탄화 마법으로 땅을 정리하고 돗자리를 편다. 물품 창에서 아침 식사를 꺼낸다. 그래 봐야 샌드위치지만.

"다른  없어요?"

"말린 과일이나 말린 생선은 있어요."

글린다는 한숨을 쉬더니 샌드위치를 물어뜯는다. 다음에는 다양한 음식을 준비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내가 냉장고냐?

혀를 한  차고 말에게서 마구를 벗긴다. 건초를 꺼내서 먹이를 준다. 길을 막고 있는 마차도 마법으로 가장자리로 밀어 놓는다. 치우는 건 누군가 하겠지.

"잘 먹었습니다."

아침은 가볍게 끝났다. 이 가볍게라는 말에 대해 토의가 좀 필요해 보이지만, 나중에 하자.

글린다는 돗자리를 접어 나에게 건네준다. 돗자리를 받아 물품 창에 넣어둔다. 말은 아직 건초를 먹는 중.

"슬슬 움직여 보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글린다가 기지개를 켠다.

"방법이 있어요?"

"티파나까지 반나절이  걸릴 거에요. 그냥 말이나 타고 가죠."

글린다는 말에게 다가가 훌쩍 올라간다. 말이란  저렇게 쉽게 올라갈  있는 거야? 안장도 없는 말 위에 앉은 글린다는 고삐를 잡고 말을 진정시키기 시작한다.

"짐말이라 사람을 태우는  처음인가 봐요."

그런 것도 알아낼 수 있는 건가. 글린다는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과 교감하고 있다.

"얼른 안 타시고 뭐 해요?"

나 말  수 있겠지?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말에게 다가간다. 말을 조종하는 거야 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직접 말에 올라타는 것은 직접 몸을 써야 한다.

글린다가 했던 것처럼 말 위에 올라탄다. 약간 불안하긴 해도 떨어지지는 않겠군. 고삐를 살짝 움켜쥐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말 타는  처음이세요?"

"그렇게 눈에 띄는 겁니까."

"살짝?"

크헉. 마음에 충격을 입었다.

"이제 출발하죠. 목표는 티파나!"

글린다가 말에 박차를 가한다. 박차가 달라지는 않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글린다가 타고 있는 말이 앞으로 달려나간다.

"우리도 가자."

말은 조종할 줄 모르지만, 마법이라면 사용할 줄 알지. 마법으로 명령을 받은 말은 발굽으로 땅을 박찬다.

흔들리는  위에서 버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덕분에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지. 글린다는 한숨을 쉬며 나와 속도를 맞추어준다.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은 든다.

특별한 일은 없다. 그냥 바람과 태양을 맞으며 평화로운 들판을 다그닥 다그닥.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 정도.

"흐아암."

글린다가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눈을 비비기도 한다. 마차에서 엄청 잘 자지 않았나. 밖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편히 자던 인간이.

"졸리네요. 원래 말을 타고 달리면 졸리지는 않을 텐데. 누구 때문에 최고 속도로 달리지 못하네요."

쿨럭. 빤히 바라보면 진짜 피를 토할지도 모릅니다. 글린다의 눈동자가 번개를 쏘아낸다.

"그래도.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확실히 그렇죠."

밀란을 떠나고서 편히 쉰 날이 없었다. 그전에도 편히 쉰 날이 드물지. 항상 쫓기고, 공격받고, 싸우고, 부수고, 터트리고. 어마무시하군.

새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 넓게 펼쳐진 들판에는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름답고, 평화롭다. 앞으로도 이런 평화가 유지되면 좋겠다.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기! 저게 티파나에요!"

글린다가 손을 뻗어 정면을 가리킨다.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형태. 일단 벽이 올라가 있지 않다. 큰 건물들이 뱅 둘러싼 형태.

"오스왈츠 영지 최대의 곡창지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덤으로 테페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죠!

살짝 앞으로 나선 글린다가 양팔을 벌리며 자랑한다. 눈동자에는 흥분감이 서려 있다. 집에 돌아온 방랑자의 눈. 실제로 방랑했다 돌아오긴 했네.

글린다가 말을 빠르게 몰아간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서 흥분이 전달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을 타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졌기에 글린다의 속도에 맞추어 움직일  있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달려가는 글린다와 나를 비춘다. 바람이 들판에 몰아친다. 이제 보니  들판이 전부 곡식이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대충 쌀 비슷하게 생겼다. 이런 세계라면 쌀이 아니라 밀일까? 여관에서 빵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밀이 맞겠다.

글린다는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들썩인다. 저렇게 좋을까. 나는  모르겠다. 나에게 집이라는 것은 언제나 병실이었으니까.

"저게 바로 티파나의 자랑인 몰론의 동상이에요!"

글린다는 마을 입구에 있는 동상을 소개해준다. 금색으로 빛나는 반쯤 헐벗은 남자의 동상. 크기는 3m 정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니네.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쇠로 만든 동상에 마법을 쓴 것 같군. 확실히 그게 더 싸게 먹히지.

몰론이라는 사람(?)은 바지만 간신히 걸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바지도 아니다. 천 하나를 둘둘 말고 있을 뿐. 손에는 포도로 보이는 과일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화관을 두르고 있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모르시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줄 알았다는 글린다의 눈빛.

"몰론은 농부들의 수호자예요."

"신 같은 건가요?"

"엑?"

글린다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몰론을 몰랐다고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눈빛.

"마법사님은 다른 세계에서라도 오신 거에요?"

히끅. 딸꾹질이 나왔다. 다행히 글린다는 놀리는 투로 말했다. 그냥 내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한 말일 뿐. 그렇겠지?

"농담이에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세계에서 와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던 시절이 있었죠. 사람의 믿음은 생각보다 쉽게 깨어지더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좀 설명해 드릴게요. 중요한 거니까  들으세요."

몰론의 동상을 지나쳐 마을로 들어가며 글린다가 설명을 시작한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다음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인간이 짠하고 나타났습니다."

뭔가 상당히 생략된 느낌이다. 그것도 너무 많이.

"그리고 신은 자신을 돕기 위해 수 많은 천사를 만들었습니다. 몰론도 그런 천사 중 하나고요."

천사를 동상으로 만들어서 섬긴다고? 되게 특이한 종교네. 대부분 신을 섬기지 않나?

"신의 이름은 뭔가요? 신은 어떻게 생겼어요?"

글린다가 말을 멈춰 세운다.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나를 바라본다. 손가락을 세워서 입술에 올린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지.

"그런 말 함부로 하시면 신성 모독으로 잡혀가요."

으엑. 생각보다 종교가 가진 힘이 강하구나.

"신은 신이에요. 이름도 필요 없고 모습도 필요 없어요."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심만 하면 되겠지. 어차피 그런 말을 꺼낼 일도 드물 테고.

천사를 숭배하는 종교가 이해된다. 신의 이름도 모습도 모르니 피조물인 천사를 따를 수밖에. 그런데 천사는 모습을 가지고 있네? 이것도 되게 웃기다.

"천사들은 몇 명인가요?"

글린다는 천사들이라고 했다. 몰론 하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몰라요."

"네?"

"정확히는 몰라요. 신학을 전문으로 한 사람 아니면 아무도 모를걸요?"

그렇게 숫자가 많은 건가. 인도 신화만큼 억 단위는  넘겠지? 그리스 신화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것도 많은 편이지만.

"대표적인 천사들 좀 알려주시겠어요?"

"음. 일단 농사의 몰론. 저기 동상이 그의 모습이죠."

글린다는 몰론의 동상을 가리킨다.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생김새. 일단  차림새가 부담스럽다.

"그리고 공평의 유스티아, 거짓의 아이샤, 사랑의 벨파, 만안의 소효. 여기에 몰론까지 합쳐서 다섯이 가장 중요한 천사들이에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다 처음 들어본다. 그나저나 공평이랑 사랑은 알겠는데, 거짓과 만안은  있는 거지? 그리고 태양이나 빛을 담당하는 천사는 없는 건가?

"최근에 교세를 확장 중인 소을과 칼라모일이 있어요."

"소을?"

"네. 악의로운 순수 소을. 알고 계세요?"

직접 만나기까지 했지. 분명 내가 만난 소을과 글린다가 말한 소을은 같은 존재일 거다. 확실하다. 소을은 초월자고, 초월자가 천사면, 다른 천사들도 다 초월자? 으엑.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소을 같은 존재를 섬길  있는 거지?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데.

"설마 제가 알고 있겠어요?"

"그건 그렇네요."

글린다는 계속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간다.  세계의 종교관을 조금 알았다. 이해는  했지만. 뭐 그리 중요하진 않겠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착했어요."

멈춰 선 글리다를 따라 말을 멈춰 세운다. 앞에 있는 것은 3층짜리 저택. 마당도 따로 있는 것을 보면  돈 많은 사람의 집인  같군.

글린다는 말에서 내려 닫혀 있는 정문으로 다가간다. 정문 앞에 졸고 있던 경비가 발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난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글린다를 바라본다.

"글린다 아가씨?"

"네. 제가 맞습니다."

경비의 눈이 엄청 커진다. 죽었다고 알고 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 맞지만.

글린다와 경비가 대화하는 동안 말에서 내린다. 어디 묶어 둬야 하는데. 마구간은 없나?

"안에 숙부님 계시죠?"

"넵!"

"마법사님. 안에 들어가요."

경비가 닫혀 있던 문을 연다. 글린다는 정원으로 들어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말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문 앞에 있던 경비가 내게서 고삐를 받아간다. 뭔 문제는 없겠지. 이미 저택으로 향해 가고 있는 글린다를 따라간다. 이제 확실히 여행의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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