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043. 3막 2장 - 달려가는 길 (4) / Isaac
쾅쾅, 펑펑 같은 폭음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폭발에 흙먼지가 튀고, 나무들이 부러진다. 하아. 진짜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다.
[이 상황 좀 어떻게 해봐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농담이 나와요!]
글린다의 말이 맞다.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지.
우리를 뒤쫓던 추적자 중 한 명이 마법사가 아니었다. 네 명 전부 마법사였지. 해골 말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저 세 명이 전부 마법사란 거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마법을 쏟아내고 있다.
쾅하면서 마차의 앞쪽이 터져나간다. 땅이 깊게 패지만, 마법의 힘으로 강화된 두 마리의 말은 구덩이를 뛰어넘는다.
[너무 흔들리는 거 아니에요!]
흔들리는 마차는 글린다의 불만을 밖으로 표출시킨다. 지금의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소리를 지르다니. 정말 너무하는군.
땅이 흔들린다. 위에서 쏟아지는 포격은 끊어지지 않는다. 망할 놈들이다.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마법을 사용한다. 빈틈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 한 명을 제거하지 못했으면 마차는 진작에 파괴되었겠다.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동안 불덩어리가 하나 날아든다.
"흩어지는 마나."
마법으로 마법을 취소시킨다. 화염구는 공중에서 불꽃으로 흩어진다.
이게 문제다. 뭔가 해보려고 하면 정확하게 나를 노리고 마법이 날아든다. 나야 저런 거 맞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말과 마차, 그 안에 타고 있는 글린다는 위험해진다.
그런 상황이 몇 시간 째. 해는 숲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밤새 추격전이 펼쳐지겠는걸. 말에게 마법을 써서 달리게 하고는 있지만, 계속하다가는 말이 죽어버린다. 진짜 빠르게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저. 배고파요.]
글린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날 열 받게 한다. 진정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자. 그럴 수도 있지. 점심을 먹고 꽤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리고 글린다는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래도 쫓기고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
"마법 방패!"
내리꽂히는 벼락을 막아낸다. 저 자식들은 생각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못해요. 이를 갈며 하늘에 떠 있는 놈들을 노려본다.
심각한 문제다.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은 위력이 약해서 쉽게 막힌다. 강한 건 시간이 조금 걸리고 놈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날아드는 마법을 막으려면 방어하는 수밖에 없고. 그렇게 지금도 마차는 달리고 있다.
쾅쾅, 펑펑 같은 폭음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아까도 했던 말 같지만, 원래 세상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다. 멀리 달의 모습이 보인다. 별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에휴. 진짜 어떻게 하냐."
고민이 깊어진다. 날아오는 화염구를 막아내면서. 놈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쉬지 않고 마법을 사용한다. 마나가 무한이 아닌 이상 이렇게 쏠 수는 없을 텐데. 놈들을 자세히 바라본다.
한 명의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한다. 한 명의 마법사는 마법을 준비한다. 한 명의 마법사는 무언가를 씹어 먹는다. 아까부터 보던 건데 저게 뭘까. 내 추측으로는 저 뭔가로 마나를 회복하는 것 같단 말이지.
"초강풍."
떨어지는 얼음송곳들을 바람으로 밀어버린다. 매번 생각이 깊어지려고 하면 마법이 날아온단 말이지. 이런 식이니까 방법을 떠올리기 힘들다고.
[아. 배고프다. 정말 죽을 거 같다.]
[으아아!!! 진짜 사람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러는 거 아닙니다!]
결국. 소리를 질러 버렸다. 하지만 글린다가 계속 열 받게 하는걸.
[어떻게 제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배고프다고 하는 거죠? 걱정되지도 않으세요?]
[제가 마법사님 걱정을 왜 해요? 혼자서 검은 날개 지부 하나를 날려버린 사람인데.]
비꼬는 말이 아니다. 글린다는 나를 믿고 있는 거다. 거참 부담스럽군.
[그러니까 놀지 말고 빨리빨리 일하세요. 저 진짜 배고파요.]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글린다 양도 좀 생각해 보세요!]
[배고파서 생각이 안 나요.]
으아아아아!!! 진정하자. 심호흡하고. 일단 글린다의 입부터 다물게 하자. 계속 대화하다 보면 내가 미쳐버릴 게 분명하다.
물품창에서 점심으로 먹었던 샌드위치를 꺼낸다. 마법으로 통로를 열어 마차 안쪽으로 보낸다.
[에. 점심으로 먹었던 거.]
[긴급 상황이니까 대충 먹어요!]
[네에.]
글린다가 말끝을 늘리며 대답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맘도 모르면서.
"폭풍의 장막."
다가오는 화염구는 돌풍에 휩쓸려 숲으로 떨어진다. 다행히 나무에 불이 옮겨붙지는 않았다. 저 자식들은 자연 보호라는 말을 모르는 건가.
[다 먹었다.]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약간 부족한 감이 있네요.]
샌드위치 다섯 개가 부족해? 도대체 얼마나 먹어야 성이 차는 거지? 글린다가 특이한 건가, 아니면 원래 이 세계 사람들은 많이 먹는 건가.
[뭐. 나름 배도 채웠고 같이 이 상황을 정리할 생각을 해 보죠.]
약간 못 미덥긴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낫겠지.
[지금 제가 못 미덥다는 생각을 하셨죠.]
켁. 분명 생각이 새어나간 건 아닌데 어떻게 알았지. 독심술이라도 배운 건가.
[우선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어요?]
마차 안에 앉아 있을 글린다는 현재 상황을 모른다. 폭음이나 마법이 날아다니는 소리로 짐작하는 정도겠지.
"기사의 수호."
머리 위에 기사의 형체를 가진 뭔가가 나타난다. 딱히 유령 같은 건 아니고, 그냥 마나가 마력에 반응해 형체를 가진 거다. 설정이 그렇다.
기사는 방패를 들어 올려 떨어지는 쇳덩어리를 막는다. 저건 무슨 마법이냐. 분명 마법 리스트에 적혀 있었던 거 같은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쇳덩어리를 숲으로 튕겨낸 기사가 사라진다.
[일단 위에 마법사가 세 명 있어요. 해골 말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네요.]
[실력은?]
[중상 정도?]
[그럼 쉽게 이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원래 그래야 하는 게 맞는데.
[저 세 명의 협동이 정말 뛰어납니다. 마법을 쓸 틈을 안 줘요.]
[에에. 마법사님 엄청 대단한 줄 알았는데···.]
다 당신을 지키려고 그러는 겁니다. 진짜 그냥 포기하고 저 자식들부터 없애볼까?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일단 모습을 숨길 수 있어요? 안 보이면 마법도 못 쏘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이다. 나도 이미 했던 생각이지만. 모습을 숨길 수 있는 대표적인 마법이 몇 개 있다. 투명화. 연막. 시각 왜곡 같은 거. 투명화와 시각 왜곡은 사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전에 마법이 날아들어서 사용 불가. 연막은 쓰자마자 바람 마법에 무효화. 생각보다 똑똑하고 효과적으로 싸우는 녀석들이다.
그런 간단한 설명을 들은 글린다가 간단한 방법을 말해준다.
[그냥 숲으로 들어가요. 거기서 마법 준비하고 나오면 되지 않아요?]
아. 이 생각을 못 했다. 역시 사람은 교육을 받아야 해. 쓰러지고 나서 교육이라고는 가끔 찾아오는 가정 교사가 전부. 그마저도 상태가 악화되고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바라모아와 컴퓨터로 익힌 잡지식에 가까운 것이 전부. 그래도 글린다보다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많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부딪히며 얻은 경험은 무시 못 하지.
마차 지붕에서 마부석으로 건너간다. 고삐를 꽉 붙잡고 말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럼 숲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말은 좀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명령에 따라 숲으로 돌진한다. 빽빽하게 자라있는 나무들과 땅을 헤집고 올라온 나무뿌리들. 마차가 지나가기에는 적합한 지형은 아니다. 마법이 없다면.
"철벽의 가호. 파괴의 질주. 시간 증폭."
다시 발동된 철벽의 가호가 말과 마차와 내 몸을 회색으로 바꾼다. 이름 그대로 나무 정도는 부수고 지나갈 힘을 부여해 주는 파괴의 질주가 말들에게 적용된다. 붉게 달아오른 말들이 콧김을 내뿜으며 숲을 향해 달려든다.
우지끈 같은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두 마리의 말은 앞을 막는 나무들을 전부 부수면서 나아간다. 글린다의 예상이 맞았다. 숲에 들어오자 마법이 날아들지 않는다. 이 정도면 마법을 준비할 시간은 있겠다.
심하게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마법을 준비한다. 하늘에 떠 있을 세 명을 한 번에 처리할 마법을. 적당한 마법이 몇 개 있지.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야.
사방에 벼락이 떨어진다. 내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서 마구잡이로 마법을 사용하는 거다. 눈먼 마법이라도 잘못 맞으면 위험하다. 철벽의 가호가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만.
[마법은 언제 준비돼요? 너무 덜컹거리는데.]
걱정하지 마시라. 준비는 끝났으니. 말에게 명령을 내려 방향을 도로로 튼다. 말들은 거치적거리는 나무들을 부수며 다시 도로로 뛰쳐나간다. 곧바로 마법들이 쏟아진다. 방어할 필요는 없다. 이런 말이 있지. 공격은 최선의 방어.
"천지난격."
요상쩍은 이름을 가진 마법이 시작된다. 날아들던 마법이 사라진다. 마나가 쭉쭉 빠져나간다. 역시 초월 마법. 효율성이 너무할 정도로 안 좋다. 그래도 쓰게 되는 게 초월 마법이지만.
하늘에 떠 있는 마법사들의 동요가 느껴진다. 하긴 갑자기 마법이 취소되었으니. 벼락이 떨어진다. 또 떨어진다. 그 옆에 한 번 더 떨어진다. 번개가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내린다. 마치 빛의 빗줄기를 보는 듯한 광경.
천지를 뒤덮는 빛무리. 천지를 뒤덮는 굉음. 천지에 내리꽂히는 번개들. 이름에 걸맞은 마법. 단 한 명만을 노리고 떨어지는 천벌과는 달리, 천지난격은 내 마력이 미치는 범위가 전부 대상이다.
[우와와. 장난 아니다.]
마차 안에서도 마법의 위력이 느껴지는지 글린다가 말한다. 확실히 놀라운 위력의 마법이지. 번개가 쉬지 않고 떨어진다. 주변을 전부 파괴하겠다는 듯이.
날아다니던 마법사들이 번개를 피하고자 사방으로 움직인다. 이 마법의 단점은 표적을 정할 수 없다는 것. 장점은 표적을 정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
사방에서 떨어지는 빛줄기를 피하는 방법이 인간에게 있을 리가 없다. 공간 이동을 쓴다 쳐도, 발동되기 전에 전기 통구이가 되겠지.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해골 말을 탄 마법사들은 열심히 하늘을 날아 도망친다. 천지난격의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쉽게 벗어나게 둘 생각은 없지만.
"화염 창."
손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창 한 자루가 나타난다. 가장 멀리 있는 놈을 조준해서 던진다. 강한 마법은 아니지만, 견제하는 용도로는 제격. 쏘아져 나간 화염창을 피하는 마법사. 그 위에 벼락이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살았을지 모르겠네.
도망가려는 놈들은 화염 창을 던져서 발을 묶는다. 마무리는 언제나 번개가 해준다. 세 명의 마법사가 전부 재로 변해서 흩날린다.
[이제 끝났습니다.]
마차 문이 열리고 글린다가 고개를 내민다. 번개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쉰다.
"역시 마법은 사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