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039. 3막 1장 - Hangover (3) / Isaac? (39/65)



〈 39화 〉039. 3막 1장 - Hangover (3) / Isaac?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글린다는 배가 고프다고 한다. 아침밥을 먹자고 한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지만, 그냥 따라간다. 분명 뭔가 대화를 나눴는데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이 없다. 본능적인 대답만이 있을 뿐.


계단을 내려가고 여관을 떠난다. 하늘에는 태양이 떠 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먹고 싶은 게 있냐고? 있을 리가.

글린다는 내 코트의 소매를 붙잡고 움직인다. 반항하지 않고 그저 따라간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따라오세요. 제가 좋은 곳 알고 있어요."

입술을 깨물던 글린다가 코트의 소매를 붙잡고 끌고 간다. 나는 그저 끌려간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반항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며.

터덜터덜 걸어간다. 의지 없이 인도에 따라. 머릿속에는 메아리치는 의문만이 가득하다. 나는 누구인가. 답을 내릴  없는 질문.

글린다가 나를 끌고 간 곳은 거대한 건물. 겉보기부터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사과가 그려져 있는 간판. 글린다가 알고 있는 식당이 여긴가?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지. 모르겠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저기서 아침을 먹도록 해요."

원하시는 대로. 나는 그저 따라갈 테니.


"그래요."

내 대답을 들은 글린다는 살짝 눈을 찌푸리고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가게 곳곳에 있는 점원들이 일제히 인사한다. 마치 일본식 식당처럼. 물론 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 점원 하나가 다가온다. 앞에 있는 글린다와 대화를 나눈다.

길지 않은 대화가 끝나고 점원이 글린다를 안내해주기 시작한다. 글린다는 내 소매를 놓지 않은 채 점원을 따라간다. 귀찮아 죽겠다. 그냥 다 그만뒀으면 좋겠다.

점원은 가게 안쪽의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글린다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반대편에 앉았다.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많다.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사람들. 아름답게 웃는 사람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 사람들.

"여기 물과 메뉴판 가져왔습니다."

점원이 나무판 하나와 토기로 만들어진  주전자를 내려놓는다. 물을 담을 잔도 함께.

글린다는 나무판을 나에게 밀어준다. 나무판에는 이런저런 글자들이 쓰여 있다. 나는 읽지 못하는 글자들.


"메뉴 좀 봐 보실래요?"

"아니요. 글린다 양이 원하시는 걸 드세요."

어차피 읽지도 못하는걸. 뭐가 쓰여있는지도 모르는걸. 나무판, 또는 메뉴판을 들어 글린다에게 건네준다. 글린다는 한숨을 쉬며 메뉴판을 받아든다.

"알았어요. 적당히 고를게요."


글린다는 메뉴판을 보지 않고 손을 들어 올린다. 점원 하나가 빠르게 다가온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크림 수프 둘. 애플파이와 과일 샐러드. 그리고 오늘의 추천 요리로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점원은 떠나가고 글린다와 내가 남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글린다가 나를 부른다. 마법사님을 찾고 있다. 아이작을 찾고 있다. 그런데 여기엔 마법사가 없어. 퍼펙트 메이지 아이작은 없어. 그저 이유진이, 아직 죽지 못한 이유진이 있을 뿐이지.

그때 죽었어야 했다. 그냥 게임을 하다 죽었어야 했어. 그때 심장마비로 죽었으면 지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지. 지금처럼 나에 대한 의문도 없었겠지. 그냥, 아이작으로, 이유진이 아닌 아이작으로 죽을 수 있었겠지.


"음식 나왔습니다."

탁자에 음식들이 놓인다. 글린다는 침을 삼키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시선을 돌린다. 이곳에는 창문이 많다. 자연광이 잘 들어온다. 하늘은  그러하듯 파랗다.


하늘은 파랗다. 파랗다. 너무나 파랗다. 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파랗다.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살짝 시선을 돌려 글린다를 바라본다. 잔을 하나 들고 있다. 음식이 담겨 있던 접시는 치워졌고, 수제로 만든 것이 분명한 쿠키가 놓여 있다. 잔에 담긴 것을 마신 글린다는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와는 관련이 없는 감정을 얼굴에 떠올린다.


다시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태양을 받으며 걸어간다. 웃음도, 슬픔도, 행복도, 우울도 사람들과 함께 걸어간다.

글린다의 시선이 느껴진다. 왜 나를 바라보지?  나를 끄집어내려 하지? 그냥 이대로 두면  돼? 그냥 이렇게 죽어가게 두면 안 되는 거야?  관심이 너무 싫다.


"아이작. 당신은 죽지 않아요."


닫혀있던 귀를 열어 재끼며 목소리가 들려온다. 글린다의 목소리. 그녀는 아이작을 부른다. 내가 죽지 않는다고? 풉. 난 이미 죽어있어. 이미 한  죽었던 사람인데. 내가  죽는다고? 웃기는 소리로군.

고개를 돌려 눈을 바라본다. 글린다는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로 내가 죽지 않는다고 믿는 듯이.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경험한 죽음이라는 녀석은 한 마리의 사냥개와 같다. 공포의 냄새를 맡으면 끈질기게 쫓아오지. 나는 그 추적을 피하려고 미칠 듯이 노력했다. 사실은 이미 미쳐있다고 해야겠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당장의 재미로 덮어씌웠으니.

"제 눈을 보세요. 아이작."

글린다는 아이작을 부른다. 나는 아이작이란 거야? 26년의 이유진의 삶보다 열흘 정도의 아이작이라는 거야?


아니지. 나는 열  때부터 아이작이였지. 처음으로 게임을 접한 순간부터 나는 아이작이였지. 이유진보다 아이작으로서  오래 살았네. 참으로 묘한 일이군.


나는 여태까지 나를 이유진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제 술을 먹고 이유진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나는 이유진이 아니었다. 이유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 나는 순간의 재미를 추구하는 아이작.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아이작!"

글린다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나만의 생각 속에서 빠져나왔다. 글린다는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본다.

"네. 글린다 양. 부르셨나요?"

"이제야 대답하네요. 제가 얼마나 불렀는데."

눈이 마주친다. 글린다의 눈은 꼿꼿하게 나를 바라본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지?


"다시 말할게요. 당신은 죽지 않아요."

"제가요? 사람은 다 죽어요. 저도 죽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그래요. 사람은 언젠가는 죽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아마 내일도 아닐 거고."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오늘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해? 그런 보장이 있어? 내가 아는데, 사람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말했듯이 죽음은 사냥개와 같아서 안심하고 있을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내가 그렇게 죽었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불필요한 일이니. 내 생각을 글린다가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필요로 연결된 관계. 나는 글린다를 보호하며 오스왈츠 영지로 배웅한다. 나는······. 나의 필요는 없었군. 그냥 재밌겠다 싶어서 같이 다닌 거지.


우리의 관계는 그 정도다. 나의 일방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 것. 그러니까. 나한테 신경 쓰지 말아줘.

"아 진짜!"


글린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책상을 내려친다. 시선이 몰린다. 글린다는 그런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노려본다. 죽음만이 사냥개가 아니었군.

"정신 차리세요!"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 지른다. 쫓겨나겠군.

"저를 보세요!"

얼굴이 붙잡혔다. 글린다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자신에게 고정한다. 눈동자는 불타고 있다.


"다시 말할게요. 당신은 죽지 않아요!"

"저기 다른 분들이 불편해하니 조금만 조용히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꽤 큰 덩치를 가진 점원이 글린다의 어깨를 붙잡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글린다의 얼굴이 빨개진다. 저건 부끄러움 때문이다. 글린다는 얌전히 자리에 앉는다. 그것을 확인한 점원이 조용히 물러난다. 이제 소리는 못 지르겠군.

글린다는 한참을 조용히 있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고개를  하니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에는 짜증이 담겨 있다.


"어쨌든! 당신은 죽지 않아요!"


목소리가 확실히 작아졌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뭐가 그렇게 두려우신 거에요?"

죽음이요. 고통이요. 삶 그 자체요. 나는 그런 것들이 무섭습니다.


대답하지 않고 글린다를 빤히 바라본다. 어젯밤에 승부를 보지 못했던 눈싸움이 시작된다. 서로의 눈동자를 노려본다. 절대 지지 않으리라. 글린다도 질 생각은 없겠지만.

눈이 아파져 온다. 절대 감지 않을 거다. 눈물이 맺혀온다. 절대 감지 않을 거다. 눈알이 빠질 거 같다. 절대 감지 않을 거다.

"좋아요. 제가 졌습니다."


새빨간 눈동자를 한 글린다가 항복을 선언하고 눈을 감는다. 내가 이겼다. 그런데 난 왜 이걸로 좋아하는 거지?


"훗. 보세요. 그게 당신이에요. 죽음이 무서워도 당장은 이기고 보는 인간."

글린다가 날 비웃는다. 뭐지. 왜   같은 기분이 들지. 그래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그러니까 당신은 죽지 않아요."

"네. 죽지 않겠죠. 그래도 죽는 건 무서운 거에요."

"그럼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전의 나요. 이유진이 아닌 아이작인 나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현재의 즐거움을 쫓던 나요.

"그러니까 정신 좀 차려요. 보호자가 그런 식이면 제가 어떻게 믿고 따라가죠?"

그러게. 확실히 지금의 나는 믿음직스럽지는 않지. 글린다의 말이 맞다. 나는 지금 글린다의 보호자. 책임지고 집에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은 사람.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그래도······.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돕지?


글린다는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반짝이는 빛이 나를 바라본다. 넌. 내 질문에 대답해  수 있어?


"전 누구죠?"

"네"

내 질문에 글린다가 눈에 띄게 당황한다. 고정되어 있던 눈동자가 돌아간다.


"저는 누구인가요?"

"어······. 그건 무슨 의도의 질문인가요?"


"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그냥 대답해주세요."

내가 해답을 내리지 못한 대답. 다른 사람의 입으로라도 들어야겠다. 글린다는 눈을 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글린다가 눈을 뜬다. 그 눈동자는 반짝인다.

"당신은 아이작이죠. 마법사고요. 저를 보호해주는 사람이자, 재밌는 걸 최고로 치는 사람이에요. 다른  전 몰라요. 제가 본건 그게 전부에요. 뭐, 지금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바보로도 보이지만요."

......그러네. 내가 보여준 모습들은 그게 전부지. 이 세계로 넘어온 나는 그게 전부였지.


"좋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난다."

"에? 뭐가요?"


"일단 나가죠. 더 먹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 네···. 일단 그렇죠."

글린다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누구인지 답은 내릴  없다. 아직은. 그래도 당장 해야 할 일은 알겠다.

"가죠. 집으로."

"에?"

우선 글린다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준다. 생각은 그다음부터.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일은 해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