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038. 3막 1장 - Hangover (2) / Glinda (38/65)



〈 38화 〉038. 3막 1장 - Hangover (2) / Glinda

창문 너머로는 태양 빛이 푸르게 들어온다. 어젯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아예 못 잤다고 하는  옳은 표현이다. 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서 그렇다. 덤으로 마법사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메아리쳤다. 나를 놔주지 않고 흔들었다.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쳤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정신 차리자. 마법사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일단 나의 보호자다. 마법사가 없었으면 벌써 열 번도 넘게 죽었다. 믿자. 마법사는 나름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정신 차리자. 마법사가 저런 모양이면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찾아야 한다.


침대에서 나와 이불을 정리한다. 오늘은 여기서 나가야 한다. 새로운 여관을 찾아야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않으니. 마법사를 만나자. 약간 어색하긴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404호의 앞에 선다. 약간 긴장된다. 어제 마법사는 본 모든 것을 잊으라고 했지만, 그게 쉽게 되는  아니지.

"마법사님? 일어나셨나요?"

문을 두드리며 마법사를 부른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작 씨?"


이름으로 불러 봤지만, 대답은 없다. 적막한 침묵이 감돌 뿐. 방에 없는 건가? 그럼 어디 있는 거지? 막 이상한 선택 같은  한 건 아니겠지?

마법사의 마지막 눈빛이 떠오른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상상이다. 불안에 몸을 맡기고 옥상으로 걸어간다. 계단을 밟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옥상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조심스레 나무문을 연다. 밝은 태양 빛에 눈을 감는다. 살며시 실눈을 뜨자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는 마법사의 모습이 보인다. 뭘 하는 거지? 다행히 떨어질 생각은 없는  같다.

"마법사님?"


 목소리를 들었는지 마법사가 돌아본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힘없는 미소가.

"설마 여기서 밤을 새우신 거에요?"

힘없는 끄덕임. 눈에는 피로가 가득하다. 마법사는 입을 딱 다물고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그 등은 세상을 달관한 자의  같다. 여태까지 보여준 적 없는 모습. 너무 불안하다.


"상태는 괜찮으세요?"

"나쁘지는 않네요."


웃기고 있네. 길가는 꼬마한테 물어봐도 상태가 나쁘다고 할 표정이다.

"이제 하루 남았네요?"


마차가 수리되기까지는 하루 남았다. 밀란을 떠나 여행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3일 걸린다고 했었죠?"


마법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밀란에서 티파나까지는 3일. 이제 곧 내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 티파나라면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금보다 안전하게 오스왈츠 성까지 갈  있다.

"네. 3일이면 도착할 거에요."

그렇군요. 마법사가 작게 중얼거린다. 간신히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끝나는군요."


뭐가요? 도대체 뭐가 끝나는 거죠? 저희의 여행? 아니면 당신의 삶? 반문하지 못했다. 못하겠다. 정말 삶이 끝난다고 할까 봐 무서워서. 어제의 마법사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 따위 손쉽게 할 것 같았다. 지금도 만만치 않고.

"금방이죠."


"금방이네요."

아무 말도 없이 마법사의  난간에 몸을 기댄다. 마법사는 아무 말도 없이 거리를 내려다본다. 해는 점차 솟아오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아. 배고파. 밥이나 먹으러 가죠."

이 분위기 못 견디겠다. 얼른 벗어나고 싶다. 최대한 과장된 몸짓으로 빙글빙글 돌아 문을 향해 걸어간다.

"같이 가시죠."

마법사가 난간에서 몸을 떼고 나를 따라온다. 얼굴에는 어젯밤보다는 생기가 있다. 저것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를.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울린다. 마법사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밟으며 끼익끼익.  소리가 마법사의 존재를 입증한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산대의 점원이 공손하게 인사한다. 여관 밖은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발소리, 떠드는 소리, 상인들의 호객 소리, 가끔가다 들리는 마차 끄는 소리까지. 마법사는 그저 멍하니 있을 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침은 상당히 중요하다. 아침을 든든히 먹으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있지. 이게 마법사에게도 적용되면 좋으련만.


마법사는 한참을 생각하고 고개를 젓는다.

"별로 생각이 없네요."


한숨이 나온다. 저럴 줄 알았어. 마법사는 상당히 금욕적이다. 음식에 대한 욕구도 없고, 저번에 마법 물품점에서 보았던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는  같다. 그런 사람이 왜 나랑 같이 다니지?

"따라오세요. 제가 좋은 곳 알고 있어요."

마법사의 코트 소매를 잡고 끌고 간다. 마법사는 힘없이 따라온다. 터덜터덜 걷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제기랄.


비척이며 걷는 마법사를 끌고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불편하지만, 어제보다야 덜 따갑다. 어제는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시선을 받으며 마법사를 끌고 도착한 곳은 밀란의 중앙에 있는 식당. 평범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유명한 곳이다. 어떻게 아느냐면, 표지가 달려 있으니까. 아는 사람은 안다는 식당 `황금 사과`. 오스왈츠 영지에도 지점이 하나 있다.


"저기서 아침을 먹도록 해요."


"그래요."


마법사의 대답에는 영혼이 담겨 있지 않다. 진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말. 혀를 차고 가게의 문을 연다.

"어서 오세요!"


가게 곳곳에 서 있는 점원들이 일제히 인사를 한다. 교육이 잘 되어있다는 증거. 입고 있는 옷도 흰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관리가 힘든 흰색 옷을 입는다는 것 또한 가게의 분위기를 증명한다.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흰 셔츠를 입은 소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밝게 웃으며.


"두 분이세요? 자리를 안내해드릴까요?"


"조금 조용한 자리로요."

"안내해 드릴게요."

점원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을 걸어간다.  손에는 마법사의 소매를 꼭 붙잡고. 잠깐 돌아본 마법사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 앉으세요. 금방 메뉴판 가져다 드릴게요."


가게 안쪽에 우리 두 사람을 앉힌 점원은 꾸벅 인사하고 물러난다. 마법사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생긴 여유에 가게를 둘러본다. 황금 사과에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밀란의 황금 사과는 처음이지.

마흔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식탁들. 그리고 식탁을 빙 둘러싸는 의자들. 아침인데도 절반 정도가 채워져 있다. 점원들은 흰옷을 입고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닌다. 벽에 난 큰 탕으로는 햇빛이 들어온다. 주방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향기는 입맛을 살아나게 한다.

"여기 물과 메뉴판 가져왔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사람과는 다른 점원이 나무판과 물 주전자를 건네준다. 나무판에는 황금 사과의 메뉴들과 가격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확실히  비싼 편이긴 하네. 그래도 돈 걱정은 없지.


"메뉴 좀 봐 보실래요?"


"아니요. 글린다 양이 원하시는 걸 드세요."

내가 건넨 메뉴판은 마법사의 손을 거치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마법사와 대화를 나눴다.

"알았어요. 적당히 고를게요."

황금 사과는 전국에 퍼져 있는 음식점. 어딜 가나 똑같은 메뉴가 존재한다. 손을 들어 올려 점원이 오기를 기다린다.  교육받은 식당의 점원들은 빠르게 나에게 다가온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정돈된 머리를 하는 젊은 남자. 안경을 쓴 모습이 지적으로 보인다.

"크림 수프 둘. 애플파이와 과일 샐러드. 그리고 오늘의 추천 요리로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점원이 물러난다. 마법사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마법사님. 마법사님."


제대로 정신을 놓았는지 대답도 반응도 없다. 제기랄. 이게 뭐하는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말짱하던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니까 이렇게 변해버리네. 마법사의 상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귀 옆에서 박수를 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하아. 한숨만 나온다. 지금 마법사는 어떤 상태인 거냐.


"마법사님! 아이작 씨!"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이 인간이 정신을 차릴까. 생각해보자. 마법사가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뭐가 문제인지.


"음식 나왔습니다."


식탁에 음식이 놓인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 달콤해 보이는 애플파이. 그리고 싱싱한 과일 샐러드와 생선 조림. 좋아. 일단 먹고 생각하는 거로.

확실히 고급식당다운 고급스러운 맛이다. 식기를 열심히 움직여 음식을 양분으로 만든다. 마법사는 자기 앞에 놓인 수저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결국,  혼자 모든 음식을 먹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다. 마법사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마법사는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법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생각에는 당분이 필요하지. 손을 들어 올려 점원을 부른다. 신호를 받은 점원이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차와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생각하는  차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지. 차는 금방 나왔다. 다과로 준비된 건 간단한 쿠키.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다. 약간 씁쓸한 향이 퍼져나간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역시 차는 좋은 거다.

마법사는 역시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특별히 뭔가를 보는  같지는 않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볼 뿐.

이제 다시 생각에 잠겨보자. 마법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바뀐  눈치챈 건 어젯밤. 나보고 전부 잊어달라고 했을 때. 왜 그런 말을 했지?


`제 팔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이때였다. 내가 이 말을 하고 그랬다. 마법사가 술에 취한 일을 설명하자 표정이 바뀌었다. 얼굴이 굳어버렸지. 심각한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그 이전부터 이상하긴 했지만, 제대로 이상해진 건 그때부터다.

그럼  저 부분에서 그렇게 반응을  거지? 그게 중요하다. 차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다과로 준비된 쿠키를 씹는다.

침착하게 생각하자. 마법사가 살려달라고 했을 때를 떠올리자. 내 팔을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을 때를 기억하자. 그때 마법사의 눈에는 공포만이 가득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마법사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그 이전에는 공허로 차있었지. 공허라는 게 어딘가에 차오를 수 있는 거라면 말이야. 그 공허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만이 짓는 눈빛.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눈.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른다.

"마법사님. 제가 생각하는 게 사실일까요?"

마법사를 바라본다. 마법사는 역시나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뿐. 시도는 해보자. 이 정신 상태로는 아무것도  한다.


"아이작. 당신은 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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