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036. 3막 서장 - 마법사에게 술을 주지 마세요 / Glinda
알코올은 중추신경계에 대하여 소량에서는 흥분작용이 있으나 다량을 섭취하였을 때 복합적 기능을 가진 부위(망상계, 대뇌피질)에 특히 예민하게 작용하여 기억·인지·판단·주의 ·정보처리 등의 사고기능, 반응시간·언어 등의 장애를 일으키고 동시에 중추신경계의 통제기능을 억제함으로써 흥분·공격성·충동성 등의 행동과 사회적으로 통제됐던 행동들이 나타나게 된다.
- 알코올과 중추신경계의 작용, 도로교통공단 -
"으아아.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취해?"
취해서 해롱거리며 울고 있는 마법사를 끌고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매섭다. 여자가 술에 잔뜩 취한 남자를 끌고 걷는다니. 여기에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목매달았다.
"흐헤헤. 저기 봐요. 사람들이 걸어 다녀요."
미친. 마법사는 웃기 시작한다. 방금까지 마법사가 흘린 눈물이 어깨를 적시고 있다. 시선이 더 따갑다. 더는 못 버틴다. 얼른 어디든 들어가자. 기왕이면 사람이 없는 곳에.
"안녕하세요! 마법사입니다!"
"으악! 입 닥치세요!"
갑작스러운 마법사의 자기소개에 주변 사람들이 웃기 시작한다. 알고 있다. 저게 나를 비웃는 게 아니란 건. 그래도 그렇게 느껴지는 걸 어떡해.
마법사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걸어간다. 나보다 키가 크긴 하지만, 다행히 순종적으로 내 움직임에 맞추어 준다. 입을 막는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제대로 취한 게 확실하다.
"어부으브 으브브."
"뭐라고요?"
입이 막힌 채 마법사가 웅얼거린다. 당연히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입을 놓아주지 않을 거다. 또 어떤 말을 할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말은 아닐 거다. 술 취한 사람이 제대로 된 말을 할 리가.
답답한지 계속 중얼거린다. 무시하고 끌고 간다. 나중에 조용한 곳에 가면 풀어줘야지 거리 한복판에서는 안된다.
마침 적당한 곳이 있다. 간판에 침대가 그려진 여관. 외관이 고급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돈이야 한가득 들고 있지.
"으브읍읍!"
들어가기 싫은 건지 버티는 마법사. 하지만 나는 들어가야 하겠다. 아까부터 따라붙어 있는 웃음 가득한 눈빛이 부담스럽다. 이제 밖을 돌아다닐 용기가 없다.
자세를 잡고 마법사의 허벅지를 후려친다. 부러지지 않게 힘은 조절해서. 마법사의 입에서 단말마가 울려 퍼진다. 조금 불쌍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저 여관에 들어가야 하겠다.
마법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축 처져 나에게 체중을 싣는다. 마법사를 질질 끌고 여관의 정문을 열어젖힌다.
"어서 오세······. 요?"
계산대에 서 있던 점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심지어 의문문으로. 그래. 이해한다. 이 상황이 쉽게 이해되는 상황은 아니지. 여자애가 자기보다 큰 사람을 질질 끌고 오는 것을 본다면 나라도 놀랄 것이다. 내가 그 상황의 주인공이라는 것에 특히 더.
"방 두 개요."
마법사는 상당히 무겁다. 문에서 계산대까지 끌고 오는 데 힘을 다 써버렸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동전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어···. 어···. 그러니까. 여기 열쇠."
한참을 버벅이던 점원이 두 개의 열쇠를 건네준다. 402호와 404호. 4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거야? 이 인간을 데리고?
잠시 마법사를 바라본다. 어느샌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제가 부축해서 올라갈까요?"
이 한숨만 절로 나오는 상황은 직원의 도움으로 무마되었다. 점원은 울고 있는 마법사를 들쳐메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 한심스러운 광경을 보며 한숨을 쉬고 따라간다.
4층까지 마법사를 업고 온 점원은 땀을 뻘뻘 흘린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더 꺼내 점원의 손에 쥐여준다. 점원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계단을 다시 내려간다. 마법사는 복도의 벽에 기댄 체 헤실헤실 웃고 있다. 머리가 아파져 온다.
"우헤헷! 여관이당!"
이제 혀도 꼬이기 시작했다. 저 인간 혼자 두면 큰일 나겠지? 일단 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404호의 문을 열어 마법사를 끌고 들어간다. 마법사는 팔을 사방으로 휘저으며 큰 소리로 웃는다. 난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뻗어있는 상태. 술에서 깨기만 해봐.
마법사를 대충 침대에 던졌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겨 방을 둘러본다. 밖에서 본 것처럼 고급이 맞는군. 점원과 직통 대화가 가능한 송화기도 설치되어 있다.
"우와! 여기 되게 좋네요!"
정신을 차린 마법사가 머리를 이리저리 돌린다. 실실 웃는 꼴이 보기 싫다. 정말 한 대 때리고 싶은 웃음. 진정하자. 제정신도 아닌 사람을 때려서 어떻게 하려고. 심지어 술을 권한 건 나였잖아?
아래에 연락해서 물 좀 달라고 하자. 찬물을 먹이면 지금보다는 상태가 좋아지겠지. 송화기의 금속관을 들어 올리고 물을 주문한다. 달린 수정구가 녹색으로 깜빡인다. 알았다는 표시. 이제 조금 기다리자.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글린다 양! 태양이 참 밝아요!"
"태양은 원래 밝아요."
"글린다 양! 하늘이 엄청나게 파래요!"
"하늘은 원래 파래요."
"글린다 양! 구름이 하얀색이에요!"
"구름은 원래 하얀색이에요."
마법사 때문에 쉬지를 못하겠다. 침대에 올라가 창문을 내다보는 마법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감탄 중이다. 나를 부르면서. 대답을 안 하면 볼을 부풀리고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 꼴을 볼 수가 없어서 일일이 대답해주고 있지.
"물을 가져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법사는 얌전히 침대에 눕는다. 뭐지 이건. 왜 저렇게 얌전해진 거지. 일단 난 물을 좀 마셔야겠다. 마법사도 먹이고.
"들어오세요."
방문을 열자 그 앞에는 계산대에 있던 점원과는 다른 사람이 있다. 하긴, 이 정도 고급 여관이면 점원 한둘쯤이야 쉽겠지. 물 주전자와 컵을 들고 있는 점원이 들어온다. 방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가벼운 묵례와 함께 나간다. 마법사는 그 모든 순간 동안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고.
주전자의 물을 잔에 따른다. 전을 그대로 들이킨다. 시원한 물이 식도를 따라 내려간다. 하아. 좀 살 것 같다.
마법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뭔가 눈이 풀려있는 거 같은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불안이 확 밀려온다.
"마법사님?"
마법사는 고개를 서서히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동자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마법사의 혼이 반쯤 나가 있다.
"마법사님? 괜찮으세요?"
말을 걸어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 잔에 물을 담고 마법사에게 다가간다. 마법사는 아무 말도 없이 시선으로 나를 쫓는다.
"물 좀 드실래요?"
침대 옆에 서서 마법사를 바라본다.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눈이 풀려있는 게 아니다. 저건 반쯤 죽어있는 눈이라고 하지.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법사는 그저 빤히 나를 바라본다. 내가 물잔을 건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어···. 음···. 마법사님?"
반응이 없다. 시체처럼.
"아이작 씨?"
이름으로 불러도 매한가지. 약간의 공포마저 느껴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 어디서 봤나 했더니 죽기 직전의 사람의 눈동자다. 나는 저걸 본 적이 있다.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던 눈빛. 자기 죽음을 짐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눈빛.
"정신 차리세요!"
너무 놀랐다. 잔을 떨어트리고 마법사의 어깨를 흔든다. 마법사는 마치 인형처럼 흔들릴 뿐. 이미 죽어버린 사람처럼 흔들릴 뿐.
"으어. 으아. 으어어."
어떻게 하지 못하고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죽으면 안 되는데. 죽으면 안 되는데. 머릿속으로 되뇌는 게 전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글린다 양."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의 눈은 아직 죽어 있다. 그래도 말을 했다. 나를 불렀다.
"부르셨어요? 괜찮으세요? 어떻게 된 거에요?"
질문이 빠르게 튀어나온다.
"저는 살 수 있을까요?"
"네?"
지금 살아있지 않나? 뭔가 병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이건 무슨 질문이지?
"저는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요? 아무런 문제 없이? 고통을 받지 않고?"
마법사는 내 팔을 붇잡고 질문한다. 죽어버린 눈으로. 두려움이 가득 찬 목소리로.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마법사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기 일단 진정하시고."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너무 두려워요. 죽고 싶지 않아요."
마법사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팔이 아파질 정도로. 이거 분명히 손자국 남는다.
마법사의 눈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런데 저걸 생기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마법사의 눈에는 불꽃만이 타오른다. 공포와 삶에 대한 욕망으로 타오르는 불꽃.
"죽기 싫어요. 죽기 싫어요. 살고 싶어요.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
"진정하세요! 마법사님은 안 죽어요!"
어깨를 잡고 흔든다. 마법사는 울고 있다. 울면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려 옷을 적신다. 마법사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는다. 붙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진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상태로 침대에 쓰러진다.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든다. 살짝 어깨도 흔들어보고. 좋아. 잠들었군. 한숨을 쉬고 마법사의 침대에 걸터앉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마법사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 의문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같이 지내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술이 마법사의 본심을 말해준 거 같다. 그렇다는 것은 마법사는 항상 자신을 가리고 살아왔다는 것. 언제나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삶을 살았다는 것. 마법사가 불쌍하게 보인다.
창밖에는 태양이 떠 있다. 밝게 빛나며. 땅을 비추며. 마법사는 태양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것조차 마법사의 본심이라면, 마법사는 태양을 볼 수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거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던 거죠?"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당연하지. 자는 사람한테 뭘 바라나. 자신을 속이는 사람한테 무얼 바라나. 제정신일 때 질문해도 답을 해주지 않을 거다. 술에 취했으니 저런 말을 하지.
404호 열쇠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혼자 둔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어차피 잠에서 깨면 술도 깰 테니. 침대 옆에 흘린 물은······. 마법사보고 치우라고 하자.
마법사를 홀로 두고 402호로 들어간다. 답답한 옷을 풀고 침대에 눕는다. 잘 시간은 아니지만, 나도 취기가 오르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마법사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저렇게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위급한 순간에 저렇게 되면? 여태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어도 걱정되는 것은 사실.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