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035. 막간 - Lost Isaac / Third Person (35/65)



〈 35화 〉035. 막간 - Lost Isaac / Third Person

울지 말아라
죽어가는 자를 위해 울지 말아라
죽은 자, 죽어가는 자, 죽을 자를 위해 흘리는 눈물만큼
의미 없는 것은 없으니
눈물은 산 자를 위해 흘려라

웃어라
죽어가는 자들을 위해 웃어라
죽은 자, 죽어가는 자, 죽을 자를 위해 짓는 미소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으니
웃음은 죽은 자를 위해 지어라

죽어가는 자들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미소로 장식해라
눈물을 보며 죽는 것은 너무 슬프니
아름다운 죽음에 웃음을 보여줘라

눈물은 산 자의 것
웃음은 죽은 자의 것


죽어가는 자들에게
아름답게 미소 짓자

시, ` 죽은 자를 위한 웃음` 전문 -





정장을 입은  무리의 사람들이 빈 테이블에 앉아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 비해 젊은 사람들. 나이도 성별도 직업군도 가지각색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나는 아이작을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맥컬린, 정확히 말하면 김준수라고 불리는 남자가 잔에 담긴 소주를 목으로 넘긴다.  잔은 옆에서 뻗어온 손에 들린 잔이 채워준다.


"그러게. 한 번 얼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이렇게 보여주네."


김준수의 잔을 채워준 것은 이카야. 실제 이름은 제임스 휴. 아이작, 이유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한부였다니.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 없었는데."

중얼거리며 잔을 들어 올린 여자의 이름은 오유리. UMO 내에서는 유리카쨩으로 활동한다. 총천연색의 간부진을 제외하고도 이유진이 아이작으로서 쌓아올린 인연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장례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기에 모든 절차는 일사천리. 사실 총천연색의 인원들이 모르고 넘어갔을 수 있을 정도. 그런데도 이들이 모인 것은, 이유진의 주치의 김현의 도움 덕이었다.


이유진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두 시간 뒤. 김현은 이유진의 계정으로 UMO에 접속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접속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사망 신고서가 정식으로 접수된 이유진의 계정은 미리 등록돼 있던 김현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아이작의 원주인인 이유진은 사망하였습니다."


김현이 아이작으로서 처음 한 일은 총천연색 길드 채팅에 이유진의 죽음을 알린 것. 당연히 쉽게 믿는 사람은 없었다. 김현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아이작의 본명을 알려줬다. 덤으로 이유진의 사망 신고서도 올렸다.

"진짜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길드원이 말했고, 금세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김현은 이유진의 장례식 일정을 말해주고 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 유리카쨩의 연락을 받고 아이작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장례식에 모여들었다.


이유진의 부모와 형제는 심하게 당황했다. 이유진의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한가득. 심지어 미성년자부터 40대까지 나이도 다양. 김현이 말을 해줬기에 제지 없이 들어올 수는 있었다.

"우리 이제 어떡하냐?"

"뭐가?"

이유진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은 굉장히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분위기 덕에 모인 사람들도 이유진의 죽음에 깊이 집중하지 않는다. 이유진의 가족 또한 유언에 따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이유로 총천연색 맴버들에게 장례식은 정모가 되어버렸다. 다른 테이블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대화의 장. 사실대로 말하자면, 총천연색을 제외한 사람들은 이유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다 이유진의 부모, 형제와 관련 있는 사람들.


"아이작이······. 없잖아. 총천연색의 무력 담당이 사라진 건데. 괜찮을까?"

죽었다를 대신할 단어를 신중히 선택한 오유리가 말을 이어간다. 길드장의 말에 간부진은 잠시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는다.


"여태까지 쌓아올린 게 있으니까 문제없지 않을까?"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뭐 어떻게든 되겠죠. 아이작이 항상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연히 특별한 계획도 없이 모인 모임이기에, 의미 없는 말만이 오간다. 술잔만이 오간다.

"잠시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린다. 남자는 양복  주머니에서 종이봉투를 꺼낸다. 고운 글씨로 `유언장`이라 적혀 있는 노란빛의 봉투. 남자는 봉투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하나 꺼낸다.

"지금부터 고 이유진 씨의 유언장을 읽겠습니다."

이유진은 살아있는 동안 스물다섯 번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전부 수기로. 저 남자가 들고 있는 유언장은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작성된 최신판.  상태가 갈수록 안 좋아졌기에 필체는 엉망이다. 접힌 종이가 펼쳐지고 남자가 글을 읽기 시작한다.

"먼저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우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남자의 입에서 이유진의 의지가 전파된다. 모두 그 목소리에, 남아있는 이유진의 말에 집중한다.

"하나. 이유진의 이름으로 등록된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


"재산도 있어?"


"찾아보니까 부모님이 크게 사업하시더라고."


"오. 장난 아니네."

총천연색의 일원들은 사회자가  줄을 읽을 때마다 자신들끼리 대화를 나눈다.


"둘. UMO 계정에 있는 모든 것의 소유권은 총천연색의 길드장 유리카쨩에게 넘긴다."

"만세!"

오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올리고 소리친다. 양옆에 앉아 있던 길드원들이 옷을 잡고 끌어내린다.

"이 미친년이!"


"으앗! 죄송합니다!"


오유리는 앉은 채로 연신 사과를 한다.


"소유권 양도는 김현의 손에 맡긴다."


"또 나? 너는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는구나."


김현은 깊은 한숨을 쉰다.

"셋. 지금 당장 유리카쨩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총천연색의 구호를 외친다."


"켁."

오유리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옆에 앉은 김준수는 오유리를 독촉한다.


"얼른 하자! 이게 다 길드를 위해서라고!"


"으으.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구호를 외치라니."


오유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노을처럼 새빨갛게.

"화답은 해줄게."

"어차피 자기가 만들었으면서."

주변에서 떠밀자 오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 한다?"

"얼른 해."


"우리는 총천연색!"

""모든 삶은 아름다우리!""


"너무 부끄러워!"

소리 지르며 오유리는 자리에 앉는다. 총천연색 인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에 웃는다. 오유리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오른다.

"게임 속에서는 잘만 하더니만."

"거기서는 얼굴이 안 팔리잖아!"

오유리는 김준수의 어깨를 치며 답한다.


"이것으로 이유진 씨의 유언장 낭독을 마칩니다."


이유진의 장례식은 웃음으로 가득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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