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034. 2막 종장 - 글린다 양과의 점심 식사 / Isaac (34/65)



〈 34화 〉034. 2막 종장 - 글린다 양과의 점심 식사 / Isaac

하루의 중간
마음의 쉼표
잠시 쉬어가며 배를 채우자

편히 쉬며
떠오른 태양을 보고
맛있게 먹어보자


- 시, `점심` 전문 -




"저기, 글린다 양?"


글린다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나의 시선을 피한다. 나는 그 기세에 눌려 다시 탁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밀란의 검은 날개의 본부는 박살 났다.  그대로 초전박살. 관련 인원은 전부 소각되었다. 덤으로 문서, 약물, 무기, 귀금속들도 태워버렸지.

검은 날개의 본부를 대충 정리하고 나서 글린다에게 걸린 시간 정지를 풀었다. 당시의 글린다는 진정 마법의 효과를 받고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대로 공간 이동으로 하수도를 빠져나왔지.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진정 마법의 효과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상태. 글린다는 나와 말을 하려 하지 않고, 나는 어떻게든 글린다의 화를 풀기 위해 노력 중.


"저기···. 그···. 주문은······."


덤으로 옆에 서 있는 점원도 얼어붙은 상태. 그래. 누구든 현재 글리다의 모습을 보면 몸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정말 무섭거든.

글린다는 주문을 받으려는 점원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점원은 울먹이는 눈으로 나와 글린다를 번갈아 바라본다. 이러다가 울겠다. 그건 또 안되지. 주문은 내가 해야겠군.

"여기서 파는 모든 음식을 전부다."

물품 창에서 트리탄 은화를 한가득 집으며 탁자 위에 쏟는다. 검은 날개 친구들이 돈도 많더라고. 트리탄 은화도 있고, 처음 보는 동전들도 많았다. 그래서 다 챙겼지.

"좀 많은데요······."

점원의 눈에 물기는 메말랐다. 대신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최악은 간신히 면했다.

"그 돈을 전부 써서 음식을 준비해주세요."


"넷!"

점원은 기합이 가득 들어간 대답을 하고 동전을 주워담는다. 주머니에 다 들어가지 못한 동전은 옷으로 싸서 주방으로 가져간다. 이제 다시 나와 글린다만 남았다.

"저. 글린다 양? 대답이라도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글린다가 나를 째려본다. 위압감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진짜 무섭다.

"대답."

"네?"


방금 대답이라고 대답한 거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심히 당황스럽다. 글린다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좋은 징조.

"글린다 양. 제가 잘못 한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용서해주시겠습니까?"

글린다의 눈동자가 살짝 돌아서 나를 본다. 금세 콧방귀를 끼고 시선을 돌리지만. 진전이 있는 것 같다.

"저기···. 음식이 나왔습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까의 그 점원이 쟁반 한가득 음식을 들고 있다. 엄청 빨리 나왔네.


점원은 떨리는 손으로 쟁반 위의 음식을 하나씩 탁자에 올려놓는다. 글린다의 눈동자가 움직인다. 음식을 내려놓는 점원의 손을 주시한다. 글린다의 눈동자를 눈치챈 점원의 손은 더더욱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저기요."


"히익!"

글린다가 말을 걸어오자 점원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온몸을 떨며 뒷걸음질 친다. 그러면서도 용케 쟁반에 담긴 음식은 쏟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투철한 직업의식이로군.

"그렇게 놀라지 마시고요."

"넵!"


글린다의 한 문장에 점원이 차렷 자세를 취한다. 물론 한 손으로는 쟁반을 받히고 있다. 뻣뻣하게 몸이 굳어버린 점원을 글린다가 바라본다.


"맥주 다섯 잔."

"네?"


나와 점원이 동시에 묻는다. 글린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맥주 다섯 잔. 얼른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음식도 얼른 가져오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점원은 접시의 남은 음식들을 탁자에 올려놓고 빠르게 주방으로 돌아간다. 탁자에는 온갖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고기를 간단히 구운 음식에서부터 생선 조림까지. 닭이나 각종 채소도 한가득. 이것들은 꽤 맛있어 보인다.

"식사하시죠. 글린다 양."


음식을 바라보고 있던 글린다는 내가 말을 걸자 고개를 홱 하니 돌린다. 그랬으면서 눈동자는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다. 배는 고픈데 나랑 같이 먹기는 싫단  말이군.


"저는 잠시 밖에 나가 있도록 하죠. 편하게 드시고 계세요."


"앉으세요."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글린다가 막는다. 글린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눈동자가 매섭다. 다시 의자에 얌전히 앉는다.


"지금 저 혼자 여기 두고 가려고 한 거에요?"

"어. 불편하신 거 같아서."

"그래서 혼자 여기 두고 가겠다?  외롭고 쓸쓸하게 밥을 먹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당장 앉아서 식사하시죠."


제대로 된 문장 대화를 나누었는데 전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다. 일단 다시 의자에 앉았다. 글린다는 눈을 음식으로 돌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올린다. 글린다의 식사가 시작된다.

"안 드시나요?"

"아니요. 먹어야죠."

저 눈이 무섭다. 얼른 식기를 들고 음식을 먹자.


어색한 침묵 속에서 식사가 이어진다. 글린다는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군.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진다.


"맥주 나왔습니다."


탁자 위에 토기 잔 다섯 개가 놓인다. 글린다는 맥주를 가져다준 점원에게 눈짓으로 인사한다. 점원은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돌아간다. 아직 나오지 않은 음식들을 가져오기 위해서겠지.

"으하. 살겠다."


맥주를 그대로 들이켠 글린다는 어딘가의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낸다. 그나저나  다섯 잔을  마시는 거야? 그러면 취하지 않나?


다시 맥주잔을 들어 올린 글린다는 잔을 내려놓지 않는다. 맥주를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잔에서 입을 땐 글리다는 머리 위에서 잔을 거꾸로 들어 올린다. 쏟아지지 않는다. 다 마신거야? 700mL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은 글린다는 전투적인 식사를 재개한다. 음식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음식 나왔습니다."

점원이 쟁반에 음식을 가득히 담고 등장한다. 빈 접시와 음식이 담겨 있는 접시를 바꾼다. 탁자 위에는 다시 음식이 한가득. 글린다의 눈이 반짝인다.

식사는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다른 테이블이   회전되는 시간. 글린다는 움직이지 않고 맥주와 함께 접시를 싹싹 비웠다.


"후우. 이제 좀   같다."

글린다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만족한 듯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글린다가 먹은 음식은 계산상으로 10인분 정도. 맥주 다섯 잔과 함께 말이다. 놀라운 식욕이로군. 마법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정도다. 이제 기분이 좀 풀렸겠지?

"저기···. 글린다 양?"

내가 말을 걸자 글린다가 나를 노려본다. 매서운 눈빛으로. 아직 화가 안 풀렸다.

"말씀하세요."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주는구나. 빠르게 머릿속에 떠도는 단어들을 정리하고 배합한다.

"음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우선 사과로 시작하자.


"뭐에 대해 반성하고 계신 거죠?"

"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고 계신가요?"

...... 음. 뭘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힘든데.

"이것저것?"


이게  최선의 대답이다.


"하아."

글린다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잘못된 대답이었군. 다른 대답을 생각해보자. 내가 뭘 잘못했을까.

"글린다 양의 말을 안 들은 거?"


"다른 생각은 안 들어요?"

솔직히 안 들어요. 어차피 목표가 되었으면 박살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뭘요?"


아. 도대체 뭐가 문제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미안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뭐가요."

나와 글린다는 눈을 마주친다. 글린다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따갑기 그지없다. 나도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응시한다. 왠지 눈싸움이 된 것 같지만, 쉽게 져줄 생각은 없다.

눈이 아파지기 시작한다. 글린다의 눈도 빨갛게 변해간다. 내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래도 눈을 감지는 않을 거다.

"슬슬 눈이 아파져 오지 않으십니까?"

"전혀요."

그래. 우리 둘 다 자존심 하나는 대단하지. 글린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나도 뺨을 타고 흐르는 따스한 눈물을 느낀다.

"저기요. 접시 치워도 될까요?"


탁자 옆에서 점원이 머뭇거리며 물어본다. 그 덕에 나와 글린다의 눈싸움은 끝이 나버렸다. 여기서 결판을 냈어야 하는데.


점원은 머뭇거리면서도 탁자를 깨끗하게 치운다. 가지고 온 접시에 그릇들을 옮겨 담는다. 글린다는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


"맥주 두 잔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준비해 주세요."

더 먹게?

"알겠습니다."

점원은 그릇을 가득히 담은 접시와 함께 돌아간다. 글린다는 잠시 나를 노려보고 콧방귀를 낀다. 참자. 일단 내가 저 인간의 보호자다. 일단은 더 나이 많은 어른이고.


"맥주 나왔습니다."


금세 돌아온 점원이 맥주 두 잔을 글린다 앞에 놓아준다. 채소를 볶은 것으로 보이는 안주도 함께. 글린다는 잔 하나를 내 쪽으로 밀어준다.

"혼자 마시니까 재미없어요."

어. 음. 맥주잔을 잡고 잠깐 머뭇거린다. 글린다는 나를 바라보며 의문에 찬 표정을 짓는다. 술이라. 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당연하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가 술을 마시게 하는 의사는 없을 테니. 병실에 눕기 전에는 너무 어렸고.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맥주가 인생 최초의 알코올이다.

아니지. 알코올 솜은 많이 접해봤으니까.


"술 마셔본 적 없으세요?"


글린다의 얼굴에 비웃음이 드러난다. 아. 뭔가 욱하고 올라온다.

"설마요."

손잡이를 잡고 잔을 들어 올린다.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긴다. 이게 무슨 맛이냐. 혀가 맛을 거부한다. 텁텁하고 씁쓸하고 달지도 않다. UMO내의 술은 달았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 없어서  참고 목으로 넘긴다.

잔을 내려놓는다. 글린다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떠냐. 이게 바로 내 힘이다. 으하하.

"생각보다  마시네요."

글린다가 자기 잔을 들어 올린다. 자기 잔을 박력 넘치게 내려놓는다.


"마법사님? 괜찮으신 거죠? 얼굴이 빨간데."

"에?"

그 소리를 듣고 보니 몸에 열이 오르는  같다. 갑자기 울적해지기 시작하고. 글린다가 나를 바라본다. 왜 글린다는 나를 미워하지? 왜 내가  일을 이해해 주지 않는 거지?


"글린다 양."


"마법사님? 지금 울고 계신 거예요?`


"왜 저를 싫어하세요. 저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흐에엑! 진정하세요! 여기 손수건!"

글린다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제가 재밌다고 검은 날개를 공격한 건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안 미워해요!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 설마 방금  잔으로 취한 거에요?"

"흐에엥."

너무 슬퍼. 너무 슬퍼.

"으아악! 미치겠네!"

글린다가 소리 지른다. 나는 울지 않으면  버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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