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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033. 2막 4장 - 검은 날개 (5) / Isaac (33/65)



〈 33화 〉033. 2막 4장 - 검은 날개 (5) / Isaac

감옥은 복도 형식으로 되어 있다. 기다란 통로와 양옆에 놓여 있는 감옥들. 안에 사람은 없지만, 흔적은 남아있다. 핏자국이라든가, 찢어진 옷조각이라든가. 글린다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앞만 바라본다.


아. 장비 정리해야지. 다른 건 몰라도 독 저항 반지는 필요하다. 그런 다른 반지를 하나 빼야 하는데. 뭘 빼야 하려나.

지금 끼고 있는 것은 다 최적화된 장비들. 하나를 빼면 뭔가 모자라진다. 이게 다 소을이  반지 때문이야. 그렇다고 빼기에는 뭔가 걸린단 말이지.


"무슨 생각하세요?"

"독 저항 반지를 어디다 낄지 고민 중이에요."

글린다에게 손을 들어 보인다.

"그거 다 마법 물품이죠?"


"그렇죠."

"가격은?"

으음. 얼마 정도 할까. 기초 마법만 걸려도 4~5천 트리탄 은화였으니까. 대충 환산하면,

"2,000만 트리탄 은화? 반지 하나에요."

캑. 글린다가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번 한다. 가격을 듣고 꽤 놀랐나 보다.


"얼마라고요?"


"2,000만 트리탄 은화요."

"작은 영지의 다섯 달 치 세금이요?"

그렇게 되는 건가? 도대체 이 트리탄 은화의 가치를 어떻게 환산해야 하는 건가. 글린다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얼른 움직이죠."


"네."

대답에 기운이 없다. 그래도 걸어가기는 한다.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본다. 분명 하나는 빼야 하는데. 왼손 엄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서 물품 창에 집어넣는다. 마나 최대치를 늘려주는 역할을 하는 반지. 마나 최대치를 올려주는 건 다른 장비도 많이 있으니 괜찮겠지. 비어있는 손가락에 독 저항을 올려주는 반지를 낀다. 이제 독 공격은 걱정 없다.

"여기서는 공간 이동이 되나요?"

글린다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다. 뭐 사실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도망가기 싫단 말이지. 나를 팔아먹으려고 했으면 그에 걸맞은 선물을 선사해줘야지.

"어쩔 수 없네요."


글린다는 한숨을 쉬고 걸음을 옮긴다. 을씨년스러운 감옥 복도에 발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저기가 출구인가 보네요."


기나긴 복도의 끝이 보인다. 닫힌 강철 문의 틈으로 빛이 보인다. 다른 간수는 없는 건가?  한 명이 끝?


"열릴까요?"


"설마요."


우리를 감시하던 그 사람에게는 열쇠가 하나밖에 없었다. 아마 이 문은 밖에서 여는 형태겠지. 그렇다는 것은 문 앞에 누군가 있다는 거고.

투시 마법을 사용해 밖을 본다. 덩치가 큰 두 명이 문 양옆에 기대고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긴장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군.


양팔을 벌려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벽에 손을 가져다 덴다. 글린다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잠잠히 지켜보고 있다.


"절멸의 가시."


마법이 발동한다.  손바닥에서 가시가 튀어나온다.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는 벽을 뚫는다, 그 뒤에 놓여있을 살과 뼈를 뚫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투시 마법으로  거긴 하지만.

가슴, 정확히 심장이 뚫린 두 남자는 그대로 무너지며 쓰러진다. 이제 문  열면 된다. 염동으로 들어 올리는 게 편하지만, 염동 마법은 눈에 보이는 대상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투시 마법과 동시에 사용할 수도 없고.

"글린다 양."

"네?"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는지 글린다가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이런 순간에 멍을 때리다니. 신경줄 하나 단단하군.

"문을 폭파할 겁니다."


"에엑?"


이번에는 정말 놀란 거다. 글린다의 얼굴에 당혹감이 드러난다.

"포···. 폭파요?"

"네. 쾅! 하고 터트릴 겁니다."

글린다의 얼굴이 굳어진다.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다른 방법은 생각해 보셨나요?"

"음······. 네."


"그래서 결론이 폭파?"


"네. 가장 효과적입니다."

아마도 그럴 거다. 다른 방법 따위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네. 그리고 폭파 좋잖아? 쾅하고 터지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글린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뭐. 어쨌든 폭파할 거니까 뒤로 물러나 계세요."


글린다는 한숨을 쉬고 뒤로 얌전히 물러난다. 그럼 이제 터트려 볼까? 폭발을 일으킬 마법은 수두룩하다. 그중에 내가 원하는 폭발을 일으킬 마법도 있지.


"퍼벙!"

철문이 터져나간다. 폭음과 함께. 폭발에 육중한 쇳덩어리는 밖으로 힘차게 튕겨 나가 굉음을 내며 바닥을 구른다. 들은 사람이 없는 건지 다른 특별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미친."


뒤쪽에서 글린다의 욕설이 들려온다. 글린다는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나가죠. 밖에 아무도 없는 거 같아요."


"방금 그건 뭐에요?"

글린다는 그 자리에  박힌 채 서 있다.

"마법이요."

당연한 걸  묻지?


"그 퍼벙이 주문이에요?"


고개를 끄덕인다. 뭐 상당히 이상한 주문이란  이해한다. 다른 마법들과 비교하면 너무 성의가 없달까. 당연하지. 이 마법은 이벤트 전용 마법이었으니까. 장난기가 가득히 담긴 마법인 건 어쩔 수 없다.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통제된 폭발이 필요할 때는 아주 효과적이지.

"마법사는 이해할 수 없어. 그런  주문으로···."


글린다가 뭔가를 중얼거리며 감옥 복도를 벗어나다. 뭔가 상당히 찝찝한데···.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중요한  아니겠지? 일단 감옥에서 나가자. 어두운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하수도다. 내가 아까 걸어왔던 길. 대충 구조는 알겠군. 검은 날개는 버려진 하수도를 중심으로 개미굴처럼 퍼져나간 거다. 각각의 굴마다 필요한 방을 만들어두고. 설계자가 누군지 몰라도  만든  같다.


"왜 아무도 없을까요?"

"그러게요."

좌우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한산하다. 내가 이 길을 걸어왔을 때는 가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말 그대로 아무도 없다.


"수상하지 않아요?"

"네. 엄청 수상하네요."

그리고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마법이 있지.


"벗어날 수 없는 눈동자"

얼마 만에 쓰는 마법인지. 지도 작성 마법으로 만들어진 미니 맵에 빨간 점들이 나타난다. 전부 적들의 위치. 숫자는 서른 정도. 전부 내가 독에 취해 잠들었던 장소에 모여있다. 뭐하는 거지.


"뭐. 아무도 없으면 좋은 거죠. 빨리 탈출이나 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여기선 공간이동이 되는 거에요?"


글린다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본다. 어. 가능은 하지. 내가 할 생각은 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대장 얼굴 정도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요. 놈들이 모여있는 곳을 알아냈어요."


"잘됐네요. 거기를 피해서 가면 안전한 거죠?"

"피해서 가다뇨.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얼굴은 비치러 가야죠."


글린다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본다. 생각보다 무섭네 이거. 글린다는 눈을 피하지 않고 빤히 나를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게 할 정도의 위력.

"음. 글린다 양?"


"네.  그러세요?"

히익!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표정! 저 목소리! 저 말투! 너무 무서워!


"어. 음. 우리 조금 진정하는  어떨까요?"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요?"


"네."


"지금 당신이 우리를 납치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진정하게 생겼나요?"


안 되겠다. 조금 강제성을 띄어야겠어. 잔뜩 흥분한 상태의 글린다를 향해 손을 뻗는다.

"뭘 하시려고요!"

"진정."

"에. 제가 뭘 하려고 했죠?"


글린다의 눈동자가 약간 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이란 이름은 잘못되었다. 저 눈동자를 봐라. 해롱해롱하지 않는가. 저게 어떻게 봐서 진정 상태의 눈동자지. 그냥. 꼭. 약에 취한  같잖아!

"저랑 같이 검은 날개의 초대를 받아서 만나러 가려고 했습니다."

글린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죄책감이 장난 아니다. 그보다 마법이 풀렸을  나는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검은 날개? 거긴 범죄 조직 아닌가요?"


"네. 저희를 납치했었고, 이제 제가 박살을 내러  겁니다."


"좋아요. 얼른 가죠."


글린다는 콧노래를 부르며 내가 기절했던 장소로 걸어간다. 그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다. 계속 죄책감이 나를 짓누른다.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을 확실하게 초전박살 내야겠다. 그래야지 마음이 편해질 거 같다.


그렇게 기다란 하수도를 걸어서 전에 봤던 철문 앞에 다다른다. 놈들은 모두  문 너머에 있다.


"와! 완전 큰 문이다!"

글린다는 제정신이 아니다. 이 상태로 같이 들어가면 위험해질 게 분명하지. 뭔가 조처를 하자.

"시간 정지."


초월 마법이라 마나가 많이 사라진다. 그래도 초월 마법이라 그런지 효과는 확실하네.

글린다가 멈추었다. 그 주변의 공기도 멈추고. 글린다 주변의 시간이 완전히 멈추었다. 시간이 멈춘 상대에게는 어떠한 공격도 불가. 즉, 일시적인 불사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


"그럼 박살을  봅시다!"

양손에 화염구를 만들어낸다. 평범하게 여는 방법도 있지만, 그럼 재미가 없지. 재미가 없는 것은 재미가 없고.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다. 재미없는  재미없잖아.


손을 휘두른다. 불덩이가 날아가 철문을 격하게 열어젖힌다. 안쪽의 모습이 보인다. 흉흉하게 치켜뜬 눈들. 의자에는 전에 봤던 일곱 명이 앉아 있다. 그 일곱을 제외한 사람들은 전부 무기를 들고 있는 상태. 칼이나, 창이나, 활 같은 것들. 마법사는 없는 건가?

"솔직히 놀랐네."

나와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이 말을 시작한다.

"설마 탈출할  있을 줄이야."


"하하하. 제가 좀 놀라운 사람이죠."

"그런데 어째서 이곳으로 왔나? 왔던 것처럼 공간 이동으로 도망가지 않고?"


저 사람은 이게 정말 궁금한가 보다. 잔뜩 변조된 목소리에서도 궁금증이 흘러나온다.


"그거야 당연히."

중간에 말을 끊어 긴장감을 높인다.

"여길 박살 내기 위해서죠."

박수를 경쾌하게 친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법이 실행된다. 땅이 흔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이 방만 흔들린다. 격한 흔들림에 서 있던 사람도 앉아 있던 사람도 균형을 잡지 못한다.

"이게 뭐냐!"

"이거요? 마법입니다."


마법명 통제된 지진. 이름 그대로 통제된 장소에 통제된 위력의 지진을 일으키는 마법. 대규모 난전에는 쓰기 힘들지만, 이런 작은 방이라면 효과가 확실하지.


"얼른 공격해!"

책상을 짚고 비틀거리며 명령하는 오른쪽에서 세 번째. 그 명령에 따라 복면인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손에 불꽃을 피워올린다.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불덩이를 던진다. 날아오는 화살은 목걸이의 힘을 믿고 무시. 자연스럽게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발을 들어 땅을 박찬다. 마법에 의해 몸이 위로 떠오른다. 손을 아래쪽으로 뻗고 얼음 화살을 난사한다. 얼음들은 사람을 뚫고 붉은 피를 머금은 상태로 깨어져 간다.

"화살! 화살을 쏴!"

미안한데 안 통해. 화살은 전부 나를 스쳐 지나간다. 화살로 나를 맞추려면 최소한 500레벨은 넘고 오라고!

"화염의 목소리."


손에서 화염이 파도를 치며 퍼져나간다. 모든 것을 불사르며. 재조차 남기지 않고.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땅에 내려앉는다. 땅의 흔들림은 멈추었다. 미니 맵에 다른 적들은 보이지 않는다. 끝났다. 이야!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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