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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032. 2막 4장 - 검은 날개 (4) / Isaac (32/65)



〈 32화 〉032. 2막 4장 - 검은 날개 (4) / Isaac

편하다.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듯한 기분. 이 기분을 오래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안 되지만.


눈을 뜬다. 눈을 몇 번 깜빡 인다. 흐릿한 시야가 조금씩 돌아온다. 귀에 누가 말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마법사님!"

글린다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앉아 있자. 등에 뭔가 닿고 있다. 차갑고 눅눅하고 딱딱한  감옥 벽이라고 해도 믿겠다.

"마법사님! 정신 차리세요!"


"으. 머리가 엄청 아프네요."


이제 좀 정신이 든다. 주변을 살펴본다. 돌로 쌓인 벽과 바닥과 천장. 한쪽은 철창으로 막혀 있다. 감옥 같다고 했던  진짜로군.

"괜찮으세요?"

"죽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글린다의 한쪽 발에는 족쇄가 달려 있다. 벽에 연결되어서 멀리 까지 움직이지는 못하겠군. 옷도 조금 찢어져 있고. 나도 비슷한 처지. 발목에는 족쇄가 달려있다. 심지어 양손을 수갑 비슷한 뭔가로 묶어 놨다. 나무판자에 양손을 끼워준 모양새. 수정 구슬이 달린 거로 봐서 마력 봉인 장치 같은 거겠지.

손에는 반지가 그대로 달려있다. 옷도 입고 있던 그대로고. 머리를 만져보니 티아라도 있다. 목에는 목걸이가 느껴진다. 잡았으면 이런 건 빼야 하는 거 아닌가?   거겠지. 지금 끼고 있는 장비들은 전부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한 것들이니.


"구하러 오신 거에요?"


"일단은요. 잡혀버렸지만."

손을 들어 올려 수갑을 보여준다. 글린다는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잡아두고 있다는 건 죽일 생각은 없다는 거네요."


"그런 거에요?"

"검은 날개니까요."


아까부터 검은 날개 검은 날게 하는데 도대체 그게 뭐야? 글린다를 빤히 바라본다.


"검은 날개에 대해 모르시죠?"


"당연하죠. 제가 뭐 알고 있는 게 있었나요?"


글린다가 깊은 한숨을 쉰다. 저를 그렇게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저 꽤 뛰어난 사람이랍니다. 이렇게 잡혀 오긴 했지만요.

"검은 날개는 테페리 최대의 범죄 조직이에요."

마피아나 삼합회 같은 거로군. 국가급 범죄 조직이라. 뭔가 상당히 잘못 걸린 느낌이다. 이런 놈들이랑 엮이면 끝까지 골치가 아파진다. 아예 박살을 내버릴까? 어느 정도의 조직인지 몰라도 작정하면 할  있을 거다. UMO 내에서도 몇 번 해봤고 말이야.


"자세한  하나도 알려지지 않았어요."

당연하지. 범죄조직에 대해 잘 알려졌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아마 저희는 납치된 걸 거에요. 몸값을 받거나 노예 시장에 팔려가겠죠."

"노예도 있어요?"

여태까지 여행을 하면서 노예 비슷한 사람의 얼굴도 못 봤다.


"테페리에서는 불법이에요. 주변국은 그렇지 않지만요."


노예 밀수출을 한다는 거군.


"아마 제가 오스왈츠 백작가의 여식이란 걸 알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럼 저는 왜 잡았을까요?"

글린다야 귀족이라 쳐도 나는 왜?

"마법사라서? 마법사 노예는 꽤 가격이 비싸다고 들었어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진짜  잡고 괴멸시켜야겠네.

"뭐 어쨌든 지난 시간 동안 고마웠어요."

갑자기? 나 당황해도 되는 거지? 글린다는 말을 하고 내 반응을 살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눈을 찌푸린다.

"제가 고맙다고 했는데  표정이 그래요?"

"아니. 좀 당황스러워서요."


"좀 있으면 다시는  만날 텐데요 뭐."


"누가 그래요?"


글린다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는 당황했다고 열심히 주장한다.


"지금 저희 붙잡힌 거 아니에요?"


"붙잡혔죠. 그런데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당황하고 있다. 눈동자가 멈추지 않는다.

"어. 마력 봉인 장치 끼고 있으시지 않나요?"

손을 들어 올려 보여준다. 글린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요? 아무 문제 없어요."


"하지만···. 어···. 그거 끼면 마법 못 쓰는 거 아니에요?"

글린다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 글린다의 말이 맞다. 마력 봉인 장치는 마법사의 마법 사용을 막는다. 평범한 마법사를 상대로 한다면.

 장치의 원리 자체가 마법사가 마법을 쓰려고 할  마나를 흩트려놓는 역할을 한다. UMO 내부의 설정집에 나온 바로는 그렇다. 만약  장치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마나를 끌어다 쓰면 장치는 자동으로 부서진다.


"보여드릴게요. 거인의 힘."

마법을 사용한다. 장치가 마나를 흩트려드린다. 모이는 마나를 흐트러트리고, 흐트러트리고, 흐트러트린다. 그리고 더는 흐트러트릴 수 없을 정도로 마나가 모이자 수정 구슬이 깨어진다.

"헐."


글린다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낸다. 당황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 그렇게 놀랄 일인가?

어찌 되었든 수정이 깨졌으니 마법은 적용되었을 거다. 수갑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이제 부서질 거지만. 팔에 힘을 주고 양쪽으로 벌린다. 나무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점점 커지는 균열. 곧 수갑은 부서지고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역시 마법은 사기야. 발목에 묶여있는 족쇄도 같은 방법으로 풀어낸다.


"이제  편하네요."

"네. 편하겠네요."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데. 글린다는 헛웃음을 지을 뿐이다. 일단 글린다도 풀어주자. 글린다에게 다가가 발목에 묶여 있는 족쇄를 풀어준다. 글린다는 묶여 있던 발목을 잠시 주무른다.


"이제 어떻게 해요?"

"평범한 탈출과 복수하면서 탈출하기. 두 개가 있는데 뭘 선택하실래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해 줘야지. 목을 가다듬는다.

"평범한 탈출은 여기서 공간 이동으로 가는 겁니다."


"평범한 건가요······."

평범하지 않나? 글린다는 역시나 할 말이 많은 표정.


"복수하면서 탈출하기는 뭔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곳을 초토화하고 유유히 떠나는 거죠. 전 이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글린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깊게 한숨을 내쉰다. 뭐가 문제인 거지. 한참을 그러고 있던 글리다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얼굴을 바짝 가까이 데고 삿대질을 시작한다.


"지금 제정신이세요!"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고함. 나도 모르게 귀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건 글린다를 더 화나게 했다.

"당장 저기 앉아서 제 이야기를 똑바로 들으세요!"


나도 모르게 글린다가 가리키는 곳으로  무릎을 꿇고 앉는다. 분위기에 휩쓸렸다. 글린다는 감옥 중앙에 똑바로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마법사님. 아까   다시 해보시겠어요?"

"어. 이곳을 초토화하고 탈출한다?"

"그게 잘못된 거에요!"


고함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검은 날개는 국제적 규모의 조직이에요! 여기는 비록 작은 지부라지만! 여길 초토화할 실력이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검은 날개에 평생 쫓길 거란 말이에요!"


음. 너무 목소리가 크고 말이 빨라서 절반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화내겠지. 화난 글린다는 진짜 무섭다.

"그 조직 전부를 상대할 자신 있으신가요!"

"네."

나의 담담한 대답에 글린다의 얼굴이 굳어진다. 이건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나 보군. 글린다는 다시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면 주름이 는다던데. 이걸 말하는 건 좋지 않겠지? 물론 좋지 않을 거다.

"말도  되는 소리 하지 마요!"


글린다가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진짠데. 누군가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냥 평범하게 공간 이동으로 나가요."


"네. 알겠습니다."


칫. 재미없게. 글린다가 나에게 손을 뻗는다. 뻗은 손을 잡고 마법을 사용한다.


"공간 이동. 목표 지점. 밀란 시 여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글린다가 감았던 눈을 뜬다. 눈동자가 매섭다. 너무 매섭다. 마치 비수처럼 나를 찔러온다.


"하하하. 안 되네요."


글린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난다. 아까보다 화났다. 침을 삼키고 글린다의 시선을 피한다.

"왜. 안되는. 걸까요?"

한 마디 한 마디 끊어서 말하는 게 너무 무섭다. 지금 글린다는 오해하고 있다. 내가 여길 초토화하고 싶어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글린다 양. 지금 하는 생각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정말로냐고 묻는다면, 차마 그렇다고 대답은  하겠지만.


"그럼 왜 공간 이동이 안 되는 거죠?"

"간단합니다. 공간 이동이 막혀 있어서죠."

고개를 끄덕인다. 공간이동은 간단한 방법으로 막을  있다. 간단한 방법이라는  돈이 많이 들어서 문제지. 그냥 금을 얇게 펴 바르고 마법진을 세기면 그 금으로 덮인 장소에서는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장소로 이동 할 수도 없고.


따로 공간 이동을 막는 마법도 있긴 하지. 길에서 습격했던 마법사가 쓴 공간 억제. 이건 시전자의 실력과 별개로 공간 마법들을 막아낸다. 뭐 실력 차이가 크면 시간을 들여 풀어버릴 순 있지만.

"칫. 골치 아파지네."

글린다의 태도를 보니 공간 이동을 막는 법에 대해 알고 있나 보다. 하긴. 귀족 집안이니  정도 방비는 해두겠지. 다행이다. 거짓말이 안 들켜서.

도금한 상태로 마법진을 그리면 공간 이동이 막히는 건 사실. 그런데 꼭 금이 아니어도 공간이동을 방해할  있다. 그리고 어떤 금속물질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방해의 효과가 결정되지. 금이 가장 평범하지만, 은이나 동, 철을 비롯한 각종 금속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금이 아닌 동으로 도금된 장소. 막을 수 있는 공간 이동은 50레벨까지. 내 공간 이동 마법은 무려 82레벨! 은도금 정도는 무시하고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난 기회는 놓칠 수 없지.


"공간 이동이 불가하니 초토화 작전으로 가죠."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나와요?"


"에?"

글린다의 얼굴이 구겨진다.

"초토화? 최대한 조용히 나가야죠!"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 하지만 그러면 재미없는걸.

"조심히 나가서 공간 이동이 가능한 곳에서 뿅 하고 사라지는 겁니다!"


"거기 왜 이렇게 시끄러워!"

글린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글린다가 어깨를 움찔거린다. 놀랐다는 게 얼굴에 확연히 드러난다.


"어···. 어떡해요!"

나를 바라보면 답이 나오나? 답이 나오지. 꿇었던 무릎을 피고 일어난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오른쪽. 손가락을 뻗어 그 방향을 가리킨다.


"너희 지금 갇혀 있는 건 알고 있는 거야?"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 손에는 나무로 만든 봉이 들려있다. 하품을 내뱉으며 철창 앞으로 걸어와서 나를 보고, 글린다를 보고, 다시 나를 본다.


"왜 수갑이 없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당연히 내가 풀었으니까 없지."


복면 밖으로 나와 있는 눈이 커진다. 와 사람 눈은 저렇게까지 커지는구나.


"마비."


마법이 발동되고 앞에  있던 사람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쓰러진다. 짤랑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바닥에 떨어진다. 허리춤에 매달고 있었나.

염동 마법으로 열쇠를 들어 올린다. 손으로 끌고 와 철창 자물쇠에 집어넣고 돌린다. 문이 열린다.


"이제 나가죠."


"네."

글린다는 한숨을 쉬며 감옥을 나선다. 뭐가 상당히 불만스러워 보이네. 그건 중요한 건 아니니까.  검은 날개 놈들을 어떻게 재밌게 요리할지가 중요한 거지. 감옥을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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