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031. 2막 4장 - 검은 날개 (3) / Isaac
골목에는 태양이 들지 않는다. 미묘하게 설계된 건물들이 정확히 태양 빛을 가린다. 누가 악의로 거리를 설계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 글린다가 사라진 장소에는 정체가 불분명한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다.
"마력 탐지."
마법을 사용하면 반드시 흔적은 남는다. 골목 안쪽이 마법의 흔적으로 반짝인다. 공간 이동을 사용한 흔적도 남아있다. 보통이라면 공간 이동으로 사라진 사람을 쫓는 건 불가능. 그리고 난 보통 마법사가 아니다.
"가져오기. 공간의 추적자."
손에 옥으로 만들어진 나침반이 나타난다. 테두리에 새겨진 용 모양 장식. 이름 그대로 공간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마법 도구. 숨겨진 임무를 완수해야 받을 수 있는 전설 등급 도구다.
"가동."
나침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몇 초간 돌더니 딱 하고 멈춰 버린다. 작성된 지도 위에 파란 점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일어난 순간이동의 목적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다면 쫓아가는 건 문제도 아니지.
"공간 이동. 목표 지점. 파란 점."
이상한 주문이지만, 이게 또 가능하단 말이지. 주변이 비틀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태양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 아니. 정확히 말하면 뒷골목은 아니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거든.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 거리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뒤가 구린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주변에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다. 양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의 좁은 공간. 투시를 사용해도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이중 공간 이동인가.
"마력 탐지."
역시나. 이곳에서도 공간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직 집어넣지 않은 공간의 추적자를 사용한다. 핑글핑글 돌아가는 나침이 멈추어서고 미니 맵에 위치가 표시된다. 그곳으로 공간 이동.
"누구냐!"
고함과 함께 칼날이 들이밀어 진다. 당연히 반응은 못 했다. 내가 어디의 검술 고수도 아니고 이런 거에 반응할 인간은 못 된다.
다행히 칼은 목 앞에서 멈춰 섰다. 죽일 의도는 없나 보네. 양손을 들어 올려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알리자.
너무 어두워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쓰고 정체를 철저히 가리고 있다. 위쪽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 안쪽이거나 지하거나. 지하에 한 표를 주겠다.
"정체가 뭐냐!"
인제 보니 목소리도 울리는군. 어디 굴 같은 건가? 약간 썩은 내도 나는 거 같고. 하수도나 그런 곳 같다.
"얼른 대답해!"
질문했으니 대답은 해주마.
"글린다 양을 찾으러 왔는데요?"
"뭐?"
오히려 저쪽이 당황한 것 같다. 이제 슬슬 눈이 어둠에 적응했다. 목에 겨누어진 칼은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차피 이거에 찔린다고 죽지도 않을 테고. 약간 따끔하고 끝일 거다.
반원 모양의 하수도. 벽돌을 쌓아 만든 것 같다. 뒤쪽 벽은 막혀 있고 앞쪽에는 철문이 달려 있다. 철문의 틈으로 작은 빛이 들어온다.
"두리번거리지 마!"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하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칼을 더 바짝 목에 가져다 댄다. 좀만 움직이면 베일 정도로.
"이름을 밝혀라!"
"사람에게 이름을 물을 때는 자기 먼저 말 해줘야 하지 않나요?"
확실하게 당황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칼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칼이 목 앞에 놓여 있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처리하자.
"중력 역전."
"으어어!"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남자가 솟아오른다. 지저분한 천장에 부딪히고 헛기침을 내뱉는다. 천장에 붙은 채로 바동거리며 칼을 떨어트린다.
"이게 뭐야!"
"마법이랍니다."
밝게 웃으며 대답해준다. 그게 더 화를 돋웠는지 소리를 꽥꽥 질러댄다. 장소가 장소라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온다. 시끄럽다. 조용히 시키자.
"마력탄."
손끝에서 마나가 뭉쳐져 날아간다. 그대로 복면 남자의 머리를 때린다. 남자는 기절한 듯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니 좋군.
철문에 다가가 살짝 밀어본다. 열리지 않는다. 혹시 모르니 당겨 본다. 열리지 않는다. 잠겨있긴 한가 보군. 노크해 볼까?
쾅. 살짝 두들겼는데도 큰 소리가 난다. 살짝 놀라서 노크를 멈춘다. 반응은 없다. 다시 두드린다. 쾅쾅쾅. 문 건너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눈이 있는 높이에 작은 창이 생겨난다.
"누구야!"
신경질을 내는 목소리. 상당히 거친 말투. 살짝 검은색 눈이 보인다.
"글린다 양을 찾으러 왔는데요?"
"뭐?"
아까랑 같은 반응. 당황이 역력한 목소리. 여기 사람들은 왜 이리 쉽게 당황하지? 범죄자라면 좀 더 강해야 하지 않나?
"문지기는 어떻게 된 거야!"
"기절했는데요?"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철문 너머가 꽤 시끄럽다. 목소리도 들려오고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들어오시죠."
철문이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다. 강한 빛에 눈을 찡그린다. 내가 보고 있는 곳은 생각보다 깔끔하다. 뭔가로 작동하는 전등이 천장에 박혀 있다. 바닥에는 나무판자가 깔렸다. 벽도 깔끔하게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성함이?"
"아이작이라 불러주세요."
밖에서 만났던 사람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열 명 남짓한 숫자. 복면은 쓰지 않았다. 무기는 가지고 있지만. 나를 향한 경계심이 느껴진다. 그래도 당장 공격은 안 하겠네.
"잠시 따라오시겠습니까?"
"예. 뭐."
한 사람이 내 앞에서 걸어간다. 양옆에서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의 눈길로 배웅을 받으며 그 뒤를 따라간다.
기다란 복도다. 복도가 맞나? 그냥 관이라고 불러야 할지 복도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천장의 전구는 깜빡이지도 않는다. 가끔 벽에 문도 달려 있다. 열려 있는 문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무기고로 추정되는 방도 보인다. 대부분은 닫혀 있지만.
5분 정도 걸어서 거대한 문이 달린 곳에 도착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 앞에는 갑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다. 문지기로 보인다.
"일단은 손님입니다."
나를 안내해준 사람이 나를 문지기에게 소개한다. 면갑을 내린 투구가 위아래로 끄덕여진다. 갑옷 사람은 문을 두드린다. 아무렇게나 두드리지 않고 규칙에 따라. 쿵쿵쿵. 쿵쿵. 쿵. 쿵쿵. 그런데 이걸 외워서 어디다 써먹지?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거대한 문이 열렸다. 안쪽의 모습이 보인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탁자. 주변에 주르륵 놓여있는 의자. 그 일곱 개의 의자에는 다 사람이 앉아 있다. 세 개는 왼쪽 세 개는 오른쪽. 하나는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놓여있다. 의자 뒤편에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한가득. 느낌상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주요 인물들이다. 뒤쪽 사람들은 호위병 정도 되겠지.
"아이작이라 하는 마법사입니다."
내 옆에 선 사람이 나를 소개한다. 마주 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뒷걸음질로 문밖으로 나간다. 나무문이 다시 닫힌다. 갇힌 건가? 뭐 공간 이동을 쓰면 나갈 수야 있겠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진다. 정정한다. 모든 사람은 아니다. 경호원들의 절반은 벽에 등을 기댄 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고 해두자.
"그래. 아이작? 여기는 어떤 일로 오셨나?"
맞은편의 사람, 문에서 가장 멀리 있는 상석에 앉았으니 가장 높을 듯한 사람이 나에게 질문한다. 그런데 이 세계도 상석이란 개념이 있나? 어찌 되었든 저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인 거 같다. 목소리는 뭔가로 변조되어 성별도 나이도 짐작할 수 없다.
"어. 여러분이 제 일행을 데려가신 거 같아서요. 돌려받으러 왔습니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웃는 낯에는 침을 뱉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어색한 순간을 깨는 것은 역시 미소지.
"푸하하하!"
봐봐. 저쪽도 미소로 대답해준다. 비웃는 게 분명해 보이지만. 나와 마주 보는 사람을 제외한 여섯이 책상을 치며 웃고 있다. 경호원들은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
"너. 여기가 어딘지 알고 하는 말이야?"
나를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말을 한다. 하도 웃어서 그런지 말을 하는데 호흡이 떨리고 있다. 이 사람도 목소리가 변조되어 있다.
"당연히 모르죠."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내 대답이 웃겼는지 이번에는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까지 웃기 시작한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여긴 밀란의 검은 날개 본부다. 마법사."
지금 말을 하는 사람은 왼쪽에서 두 번째. 그래서 검은 날개가 뭔데?
"너. 설마 검은 날개가 뭔지도 모르는 거야?"
"네."
웃음이 더 커진다. 짜증이 도를 넘으면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난 지금 화가 나 있는 상태.
"그렇게 웃지 말고 제 일행이나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조금 진정하자. 화를 내면 될 일도 안 된다. 그런데 저 인간들이 계속 웃네?
"하하하. 마법사.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네 녀석 일행이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는 한 번 잡은 사람을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다네."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세 번째. 말투가 너무 짜증 난다. 이제 못 참는다.
"화염구."
마법을 사용한다. 오른손에 이글거리는 불공이 생겨난다. 웃음이 싹 사라진다. 경호원들이 전부 나를 바라본다. 아직 칼은 뽑지 않았지만, 언제든 뽑을 태세. 반지도 적대적 존재들을 경고해주고 있다.
"이제 좀 대화를 나눌 마음이 드시나요?"
"이봐. 마법사. 좀 진정하시게나."
왼쪽에서 첫 번째 사람이 말한다.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일단 조금 진정한 상태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제 일행인 글린다 양을 돌려주시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상석에 앉은 사람을 바라본다. 결정을 기다리는 것처럼. 상석의 남자는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돌려주겠다는 건가?
"돌려주도록 하지. 우리도 귀찮은 건 질색이거든. 그러니 그 마법을 내려 주겠나?"
이제 좀 말이 통하네.
"그렇다면야."
손위에 떠 있던 화염구가 사라진다. 경호원들로부터 느껴지던 적의와 살기가 사라진다. 대화하기 딱 좋은 분위기군.
"물론 돌려주는 건 죽은 다음이라네."
"네?"
목 뒤가 따끔하다. 뭔가 목에 박혔다. 머리가 핑핑 돈다. 어지럽고 속이 쓰리다. 졸음이 몰려온다. 넘어지려 한 걸 책상을 잡고 간신히 버틴다. 독이라고? 독 저항 반지를 내가 안 꼈던가? 오른손을 바라본다. 약지에는 소을이 끼워준 반지가 있다. 아. 소을이 빼버렸지. 그럼 물품 창에 있겠네. 나중에 껴야지. 눈이 완전히 감겨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