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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030. 2막 4장 - 검은 날개 (2) / Isaac (30/65)



〈 30화 〉030. 2막 4장 - 검은 날개 (2) / Isaac

감은 눈으로 밤을 새웠다. 밤이 새도록 쓸데없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빛 뒤에는 어둠이 있다고 했던가. 축제를 즐기고 나서 우울감이 나를 뒤덮었다.


투시로 하늘을 바라본다. 태양은  높은 곳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아. 너무 우울하다. 병실에 누워서 잠이 들기 직전에 느끼던 감각을 지금 느끼고 있다.

축제의 밝은 분위기가 오히려 나의 어둠을 깊게 만들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거기서 또 스트레스를 받지. 이런 미친 정신머리 같으니라고.

"마법사님. 안에 계시죠?"


글린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일어난 건가? 준비해야겠군.

"금방 나가겠습니다."


일단 대답을 하고 누워 있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가볍게 옷을 가다듬고 문을 향해 걸어간다. 오늘도 힘차게 화이팅!


의욕이 하나도 안 난다. 그렇다고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야 없지. 웃자. 항상 하던 데로 나를 숨기자.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자.


문을 열자 글린다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 보았던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그대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밝게 웃는다.

"오늘은  할까요?"


내 질문에 글린다가 한껏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질문이 이상했나? 그래도 당장 뭔갈 하지 않으면 못 버티겠는걸.


"따로 할 만한 건 없는데···."


실망이다. 이런 것도 준비해 놓지 않았다니. 동행자라면 내 정신 관리도 해줘야 하지 않나?


"일단 상점가 구경이라도?"

"좋은 생각입니다. 얼른 움직이죠."


기대된다. 아니다. 기대되는 척을 한다. 열쇠로 문을 잠그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간다. 뒤에서 글린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위쪽이라고 하는 게  적당하겠지만. 글린다가 계단을 내려올 때까지 잠깐 기다리고 문을 열어젖힌다.

태양이 내리쬐는 거리.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보기 나쁘지 않지만,  마음은 무지 나쁜 상태.


"상점가는 어디죠?"

"저쪽이에요."

글린다는 가리키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최대한 밝고 신나는 걸음으로. 가볍고 가볍고 가볍게. 글린다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글린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사실 딱히 좋은 건 없어요. 그냥 좋은 척하는 거랍니다. 안 그러면 미쳐버릴 거 같아서요. 지금 너무 우울해요.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야 없지.


"그야 세상은 즐거우니까요."


양팔을 좌우로 펼치고, 밝게 웃으며 글린다를 바라본다. 글린다의 눈동자가 얼어붙는다. 들켰다. 내가 지금 나를 포장 중이란 걸. 알려지고 싶지 않은 내면이 따로 있다는 걸.


글린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때리려고? 갑자기? 맞는 건 좋아하지 않으니 화제를 돌리자.

"뭐가  못 됐나요?"

"됐어요. 얼른  길이나 가죠."

고개를 저으며 대화를 끊는다. 앞서 걸어가는 글린다의 뒤를 따라간다. 글린다의 어깨가 들썩인다.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겠지.


여관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지 금방 상점가에 도착했다. 정확히 상점가의 위치를 모르므로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주변에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가끔 보이는 골목은 어둠을 내뿜는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과 가게들. 가끔 보이는 유리창 너머에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번뜩인다.

"처음 보는 물건들이 많네요. 사람도 많고요."


확실히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주변에는 색다른 것들이 가득. 눈을 한곳에 둘 수 없을 정도다.


"가고 싶은 곳 있어요?"

가고 싶은 곳이라. 조금 있는 편이지.


"마법 물품점 있을까요? 약초상이랑 광물상도 좀 가보고 싶고. 무기점도 덤으로."


일단 마법사로 살아가는 이상, 이 세계의 마법에 대해 알아두어야 한다. 얼마나 발전해 있는지, 가격은 어느 선에 선정되어 있는지. 마법 물품을 팔아본 경험으로 대충의 시세를 파악할 능력은 갖췄다. 이제 직접 부딪혀봐야지. 덤으로 장비도  맞추고.

"돌아다니다 찾으면 들어가요. 저도 지리를 다 아는  아니라서."

"그렇군요."


하긴. 글린다도 이곳에는 처음 와 본 걸 테니. 그런데 용케 상점가의 위치는 알고 있네. 그럼 좀 돌아다녀 볼까.

각 가게에는 간판과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게의 종류를 설명해주는 그림들. 대충 짐작이 가는 그림도 있고, 뭔지 모르겠는 그림도 있다.


"저건 무슨 가게인가요?"

하나하나 글린다에게 물어보면.


"양장점이네요."


전부 대답해준다. 약간 짜증을 내는 것이 포인트. 대답해줄 때마다 글린다는 나를 흘겨본다. 손에 주먹을 쥐고.  하다가는 진짜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화제를 돌리자.

"저 그림은 마법 물품점!"

지팡이 그림이 그려진 가게를 가리킨다.

"정답입니다."

글린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행동을 멈춘다.

"그런데 마법사님은 왜 지팡이를 쓰지 않으세요?"

그러게. UMO 내에도 지팡이는 존재한다. 마나를 늘려주거나 공격력을 늘려주는 장비지. 언제부턴가  쓰게 되었는데. 왜였지? 일단 떠오르는 대로 대답한다.

"귀찮아서?"

왜 대답이 의문문일까. 글린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 이건 대답이 안 되지. 생각해보자. 내가 왜 지팡이를 안 쓰지? 이유가 떠올랐다.

"아니다. 필요 없어서예요."

일단 물품  안에는 지팡이가 들어있다. 그걸 꺼내쓰지 않을 뿐이지. 왜냐하면. 도움이 안 되니까. 이게 정답이다. 들고 다니기도 귀찮을뿐더러 효율적이지가 않다. 실제로 상위 랭커들은 전부 맨손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고 보니 저번에  마법사도 지팡이를 쓰지 않았다. 이 시계는 지팡이가 대중적이지 않은 걸까? 내 대답을 들은 글린다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나저나 한 번 들어가 봐야겠지?

"들어가도 되죠?"

"시간도 남아도니 구경이나 하다 가죠."

글린다의 허락도 받았겠다 가게의 문을 연다. 생각보다 잘 되어 있는 가게군. 대충 둘러봐도 있을 건  있다.

"와."

가게를 본 글린다가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처음 보는 사람은 놀랄 만도 하지. 익숙해지면 별거 아니지만.


"어서 오세요."

마법이 담겨 있는 목걸이가 놓인 탁자. 그 탁자 너머에 서 있던 어린 종업원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지금은 저런 인사를 받을 때가 아니다.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벽에 걸려 있는 지팡이들. 탁자에 놓여 있는 마법 물품들. 티아라와 목걸이 반지와 팔찌. 당연히 전부 마법이 부여되어 있다. 마나석이라든가, 괴물들에게서 뜯어낸 것이 분명한 각종 재료까지.


"작은 가게치고는 있을  다 있네요."

속이 꽉 찬 만두 같다. 이상한 표현이군.

"이건 가격이 얼마 정도 되나요?"

검은색으로 빛나는 마나석을 들어 올린다. 상당히 고급품이네. UMO 기준으로는 3,000 골드 정도. 저번에 마법 물품을 팔아봤을 때의 경험으로 골드와 트리탄 은화 사이의 환율을 유추할 수 있었다. 2 대 1 정도.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충 그 정도 된다.


"1,200 트리탄 은화입니다."

예상했던 가격보다 상당히  편이다.


"생각보다 싸네요."


"최근에 큰 광산이 발견돼서요. 전체적으로 마나석 가격이 내려갔답니다."


종업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살 생각은 없다. 이미 물품 창에 잔뜩 들어있기도 하고. 마나석을 제작할 수 있는 마법도 있지.

"글린다 양?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계세요?"

글린다가 나를 바라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뭐 하는 거지? 가끔 글린다는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당신이 너무 빛나 보여요."

이건  무슨 헛소리인가.


"무슨 소리인가요?"


"그냥 하던 일이나 하세요."


다행히 글린다는 금방 손을 눈에서 뗀다.


"혹시 마법사세요?"


"네. 일단은요."

종업원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본다. 뭔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눈빛.

"그럼 감정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답은 해 드릴게요."


감정이야 못 할  없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종업원은 탁자 뒤에서 뭔가를 꺼내온다. 돌돌 말려있는 두루마리. 종이 재질이 아니고 양피지로 보인다.

"저번에 거래한 물품인데 아직 감정을 못 했어요."


"담당 마법사가 없나요?"

내가 잘 모르기는 해도, 이런 가게라면 알고 있는 마법사가 따로 있을 것이다. 가게 주인이 마법사거나.

"고향에 돌아가야  일이 생겼다고, 열흘 전에 떠나셨어요. 한 닷새 정도면 돌아오실 텐데 미리 해 두면 좋을 거 같아서요."


마법사가 고향이  먼가 보군. 종업원이 건네주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받아 펼쳐본다. 알 수 없는 글자들이 한가득. 글자들이 문양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주문서일 것이다. 읽지는 못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있지.

"절대적인 감정."

[마법사 코콘 자베르의 화염검 주문서]

[정해진 규칙대로 주문서를 사용할  마법 화염검을 발동한다.]


[규칙 : 주문서에 마나를 집어넣으며 찢는다.]


화염검이면 기본적인 마법  하나. 쓸만하다고 말하기는 묘하지. 일단 상위 마법인 지옥의 화염검도 있고.


"코콘 자베르가 만든 화염검 주문서입니다."

"감사합니다. 200 트리탄 은화면 되겠죠?"

돈은 그다지 필요 없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저 다른 가게  둘러보고 있을게요."

글린다가 지루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하긴. 잘 모르는 대화를 듣는 것만큼 지루한  없지. 뭐 설마 잠깐 나가 있다고 납치라도 당하겠어? 고개를 끄덕여준다. 글린다는  가게를 벗어난다. 나도 일만 처리하고 따라가야지.

"마법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뭐 그냥 적당히 배웠습니다."

종원원과 대화를 하는 건 나름 즐겁다. 오늘 아침에 쌓인 우울을 푸는 기분. 나를 되찾는 기분이다. 쓸데없는 잡담들. 이유 모를 대화들. 쓸모없는 언어들. 그것들 오히려 나를 잔잔하게 만든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일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같지만요."


농담에 종업원이 웃는다. 이제 해어질 시간이다. 글린다를 혼자 오래 두는 것은 좋지 않지. 어쨌든 공격의 대상이니까.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가게를 나선다. 글린다는 어디로 갔을까. 헤어진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라면.

"파티원 추적. 글린다."


마차를 타고 습격받고 다닐  확인한 적이 있다. 이 세계에도 파티 시스템이 적용된다.  번도 꺼진 적 없는 지도 작성 마법으로 만들어진 미니 맵에 글린다의 위치가 녹색 점으로 나타난다. 어디 골목에 들어가 있는 건가.


[파티원 글린다가 상태 이상 수면에 빠졌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걸음을 멈춘다. 수면? 상태 이상이라고 떴다는 것은 지금 글린다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 거다. 괜히 `이상`이 붙는 게 아니지. 습격받았다. 누군가 약이든 마법이든 뭔가를 사용해 글린다를 재웠다.

글린다가 움직인다. 누군가 옮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다.


[방해로 인해 파티원 글린다의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미친. 탐지 방해 마법이다. 적측에 마법사가 있다. 내가 지루한 것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좋아해도 귀찮은  더 싫어한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엄청 귀찮지. 일단 글린다를 찾자. 우선 마지막까지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누군지 몰라도 걸리면 그대로 박살 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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