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028. 2막 3장 - 밤의 여인 (3) / Isaac (28/65)



〈 28화 〉028. 2막 3장 - 밤의 여인 (3) / Isaac

"내 아기! 내 아기!"

밤의 여인은 계속 울부짖는다. 계속 걸어간다. 조명은 점차 어두워져 여인의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걸까.

"너무 어두워. 너무 어두워."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여인의 슬픔에 젖어버린 목소리만이. 무대는 완전히 캄캄해졌다. 관객들도 전부 침묵을 선택한다.


"아기를 찾아야 해. 그런데 보이지 않아."


달조차 구름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빛이 필요해."

팍하고 불꽃이 인다. 무대가 환히 밝혀진다. 밤의 여인이 불타고 있다. 으엑.


"저거 마법이겠죠?"


비명조차 없이 타오르는 여인을 보며 글린다에게 질문한다. 여인은 불타는 채로 계속 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하여.


"당연히 마법이죠."

뭘 그리 당연한걸 묻냐는 표정. 이게 당연한 거냐. 이 세계의 상식은 정말 모르겠다.


밤의 여인은 점차 불타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이를 찾기 위해 걸었다. 불타는 여인이 쓰러진다.

"이렇게 불에 타 올라간 여인은 아직 자신의 아이를 찾아 해 메이고 있답니다!"


이게 끝이야? 와. 진짜 뭐지. 이 연극이 하고 싶은 말은 뭐였던 거지. 어머니의 사랑은 숭고하다? 감이  잡힌다. 이 세계는 이런  좋아하는 건가. 취향도 독특하시다.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켁. 다행히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글린다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어  눈빛을 보지 못했을 거다. 다행이다. 나도 지금 내 눈빛에 자신이 없다.

"안 그래요. 마법사님?"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말아줘. 글린다의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반짝인다. 이 눈빛은 예전에 본 적 있다. 누나가 아이돌에 빠져 있을 때 대형 브로마이드를 들고 왔을 때 보여준 눈빛. 나한테 이 사람들 어떠냐고 물어봤었지.

"음. 어. 괜찮았습니다?"

이럴 때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때도 누나한테 꿀밤을 맞았었지. 둘 다 너무 어렸던 시절. 가족에 대해 떠올리니 입안에 쓴맛이 퍼져나간다.

"별로였어요?"


역시나. 글린다는 바로 진실을 알아맞힌다.


"솔직히 조금···."

대답에 글린다는 한숨을 쉰다.


"그럴 수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이지요."


다행히도 이 연극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자! 그럼! 우는 여인에게 아이를 올려보냅시다!"

연극은 끝났지만,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상 이 축제의 본질이 지금 시작된다. 뭔가 말하고 싶었던 글린다도 고개를 돌려 광장의 중앙으로 시선을 옮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


광대가 어린아이의 옷을 입고 있는 짚 인형을 들고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끝에 장대를 꽂은 인형을 들고 춤을 추며 걸어온다. 때로는 빙글빙글 돌기도 하며 걸어온다. 사람들은 광대가 걸어갈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썰물이 지듯이 자연스럽게.

"밤의 여인이여 당신의 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장작더미를 밟고 올라선 광대가 꼭대기에 아이 인형을 꽂는다. 광대는 장작더미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아아! 이제 불꽃과 함께 당신의 아이가 올라갑니다!"

광대가 양손을 하늘로 뻗자 그곳에서 불덩이가 생겨난다. 마법사.  광대는 마법사였다.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은 마법사다.

마법사 광대가 손의 불꽃을 장작더미에 던진다. 불이 완전히 옮겨붙기 전에 장작더미에서 내려온다. 그대로 무대로 다시 걸어간다.

"밤의 여인이여! 당신의 아이를 받으시고 그저 웃으소서!"


광장이 불타오른다. 장작의 열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열기로도. 사람들은 불타는 장작과  위의 아이 인형에게 열광한다. 불이 커질수록 소란은 더욱더 커진다.

불길이 인형에 옮겨붙었다. 무대에 조병이 다시 켜지고 배우들이 악기를 하나씩 가지고 나왔다. 연주가 시작된다. 흥겨운 곡에 맞추어 사람들이 춤을 춘다. 이건 정말 일종의 제사로군.


"그거 아세요?"


"뭐가요?"

불타는 장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모두 같은 춤을 추면서. 이집트 벽화 같다.


"예전에는 진짜 어린아이를 밤의 여인에게 바쳤데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네.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지구에서도 인신 제사는 흔하고 흔한 풍습이었으니. 예전이라는 것은 지금은 하지 않는다는 거고. 그럼 된 거지 뭐.

"지금도 일부 시골에서는 아이를 태운다는 소문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침이 절로 삼켜진다. 무서운 걸 아예 못 보지는 않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냥 괴소문이겠죠?"


"당연하죠. 지금이 어느 시댄데."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진다. 광장에 집중하고 있던 글린다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불길은 하늘로 치솟는다. 사람들은 발놀림이 점차 빨라진다. 연주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광대는 신이 나서 이런저런 묘기를 보여준다.

"우리도 춤출래요?"

"전 춤 모르는데요?"

"괜찮아요. 그냥 저에게 맡기세요."


어딘가의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이 할만한 말을 듣다니.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자 우선 내려가죠."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리려는 글린다의 손을 잡는다. 글린다는 의문이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돌아본다.


"평범하게 춤을 추면 재미없죠."

그리고 난 재미없는 걸 엄청 싫어하지.


글린다의 손을  잡는다. 글린다가 당황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비행."


마법을 사용한다. 마법의 힘으로 몸이 둥실 떠오른다. 덤으로 내가 손을 붙잡고 있는 글린다도.


"비밀의 장막."


만약을 위해 마법을 사용한다. 다들 집중하느라 하늘을 볼 여유 따위는 없겠지만. 발밑에 비밀의 장막이 펼쳐진다. 나보다 강한 마법사가 아닌 이상 장막 너머를 볼 수는 없지.

"오오오."


하늘에 떠오른 글린다는 발밑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낸다. 그래도 눈은 웃고 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으면 된 거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레이디?"


손을 놓으면 글린다는 떨어진다. 글린다의 손을 잡고 어디선가 본 귀족식 인사를  본다. 어색한  모습에 글린다가 살짝 웃지만, 그녀 또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기꺼이."

글린다의 움직임에 맞추어 발을 옮긴다. 발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 상황에 글린다의 스텝이 조금 꼬이지만, 금방 적응하고 나를 인도하기 시작한다.


"왼발. 오른발. 왼발."


글린다의 말에 맞추어 발을 옮긴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이 바뀐다. 잔잔한 선율에 맞추어 밑에서는 둘씩 짝을 지어 춤을 춘다.

"허리에 손."

내 손을 쥐고 자신의 허리로 옮긴다. 약간 어색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 공중을 밟으며 빙글빙글 돈다. 잔잔한 음악에 맞추어.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불에 맞추어. 밤하늘에 펼쳐진 별과 달을 조명 삼아.

"마법사님."

"네. 글린다 양."

춤을 멈추지 않은  글린다가 질문한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 눈동자는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인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순간 발이 꼬였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비틀거렸다.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건가.

심히 당황스러워 글린다를 바라본다. 글린다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정말 궁금한 거다. 왜 궁금한 거지.

"스물여섯입니다."


아마 맞을 거다. 맞겠지? 이유진의 나이이긴 하지만. 글린다는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올해 열여덟. 이걸로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네요."


이게 목적이었군. 확실히 일주일 넘게 같이 다닌 것치고는 서로에 대해 아는  적다. 그전에 난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게 적지.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고향은 어딘가요? 행동이나 상식을 보아서는 이 근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 근처 사람이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비밀입니다."

이럴 때 좋은 건 비밀이지. 글린다가 눈살을 찌푸린다. 미안. 하지만 사람에게는 설명할  없는 부분이 있어.

"마법은 어디서 배웠나요?"

게임에서요. 라고 말할 수야 없지. 결국, 또 비밀이다.

"비밀입니다."

춤이 조금 사나워졌다. 글린다의 눈매도 사나워지고.

"만나기 전에는 뭐하면서 지냈나요?"

병실에 누워서 죽음만을 기다렸죠. 역시 대답하지 못하는 거다.


"비밀입니다."

무대에서 연주되는 선율은 점차 감미로워진다. 나와 글린다의 춤은 한층 사나워진다. 글린다가 춤의 속도를 올린다, 나도 그에 맞추기 위해 발을 열심히 움직인다. 실력이 글리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나는 결국 발이 꼬이고 말았다.

"아악!"

글린다가 발을 밟았다. 물론 내 발이 꼬이긴 했지만, 이건 고의다. 내가 대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발을 밟은 거다.


"계속 춤추시죠?"


목소리에는 한기가 감돈다. 삐죽빼죽한 가시가 나를 찌르고 들어온다. 춤은 음악에 맞추어 계속된다.


"뭐가 그리 비밀이 많아요?"


"마법사라서?"

춤을 멈추지 않으며 글린다가 한숨을 쉰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곤 알고 있다. 그래도 사실은 다른 차원에서 건너와서 비밀이 많다고는 말  한다.


음악이 멎어 들기 시작한다. 타오르던 장작더미도 서서히 무너진다. 불이 줄어들고 춤추던 사람들도 하나씩 광장을 떠난다. 그 사람들은 전부 다른 이성과 손을 잡고 간다. 가끔 동성끼리 손잡은 사람도 보인다······. 그럴 수도 있지.

"저희도 그만하죠."

글린다가 춤을 멈춘다.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 지금 내려가도 들키지는 않겠네. 글린다의 손을 잡고 서서히 땅으로 내려간다.


땅에 양발이 닿는다. 글린다도 사뿐히 땅에 내려앉는다. 글린다의 손을 놓아주고 마법을 해체한다.


"으 탄 냄새."

무너진 장작더미에서 연기가 계속 피어오른다. 아이 인형은 형체도 찾아볼  없다. 연주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무대에서 내려온다. 광대만이 마지막까지 홀로 노래할 뿐.


"돌아가죠."

"네. 내일도 남아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떠나간 광장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불어온다. 광대의 애절한 노래를 배경으로 거리를 걷는다.


여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계단을 올라 각자의 방에 들어간다. 침대에 걸터앉는다. 창문이 없는 방은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진다


"투시."


마법을 사용해 눈을 밝힌다. 벽 너머의 하늘을 바라본다. 달과 별이 가득한 밤하늘. 갑자기 너무나 외롭게 느껴진다.

이곳에는 나를 이해해  사람이 없다. 지구인으로서의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 내가 이방인으로 느껴진다.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 어디선가 떠내려온 정체불명의 인간. 그게 나다.

입맛이 쓰다. 그냥 눈을 감는다. 침대에 엎어진다. 잠은 오지 않을 테고, 그저 감은 눈으로 밤을 지새우겠지. 축제에 가서 즐겁게 놀고 이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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