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027. 2막 3장 - 밤의 여인 (2) / Isaac (27/65)



〈 27화 〉027. 2막 3장 - 밤의 여인 (2) / Isaac

거리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밀란의 밤은 온갖 빛으로 밝혀진다. 건물에는 반짝이는 뭔가가 잔뜩 달려있다. 마법으로 추정되는 광채가 거리를 비춘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본격적이다.

"우선 야시장을 돌아다니죠."

글린다의 눈이 반짝인다. 저렇게 바로 계획이 나오는 걸 보면 미리 준비해둔 거다. 이런 철저함으로 도주로를 생각해두면 좋을 텐데.


사람들의 사이를 헤집으며 가는 글린다. 일단은 보호자의 역할을 맡은 나로서는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적당히 인파를 헤치며 지나간다. 큰 문제 없이 글린다를 따라잡는다.


전기로 작동하지는 않을 전구들이 걸려있는 노점상들.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도 있고, 제대로 지붕까지 씌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글린다는 그중 한 가게 앞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뭘 보고 계시나요?"

"저거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글린다는 불판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꼬치를 가리킨다. 조금 전에 돼지 한 마리를 드시지 않았습니까? 글린다는 꼬치를 보며 침을 삼키고 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돈은 가지고 있을 텐데.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 눈동자 속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원하는 게 뭔지 알겠다. 지금 글린다는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거다.

글린다는 자신이 많이 먹었다는 걸 알고 있다. 양심의 문제인 거지. 배부르게 먹고  먹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속이겠다는 거다. 나를 끌어들여서. 뭐 나도 흥미가 있긴 하니 어울려주자.


"맛있어 보이네요."

"그럼 두 개 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낸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저랬을까. 이해해주자. 글린다는 양손에 꼬치구이를 들고 헤실헤실 웃는다. 그리고 그대로 두 개의 꼬치를  번에 입에 넣는다. 하나  거 아니었어?

글린다는 빠른 속도로 꼬치를 먹어치운다. 정말, 잘 먹는구나. 입을 열심히 우물거리던 글린다는 꿀꺽하고 입안의 음식물을 삼킨다. 글린다의 손에는 나무 꼬치만이 남아있다.

"맛있네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린다는 그저 해맑게 웃을 뿐.


"다음은 저겁니다!"

잔뜩 신이 난 글린다가 다른 가게를 가리키며 뛰어간다. 글린다는 과일을 뭔가에 절인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바라본다. 꿀은 아닌 것 같고, 뭘까. 약간 궁금하다.

"사과 두 개랑. 배 하나요."


동전  개와 나무 그릇에 담긴 과일들이 교환된다.


"그릇은 다른 아무 가게에나 반납하시면 됩니다."


모든 가게가 같은 그릇을 쓴다는 거다. 이 축제 기획이 탄탄하다.


글린다는 꿀 범벅인 과일들을 먹으며 웃는다. 나는 한숨을 쉬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글린다를 따라간다. 글린다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음 목표를 찾는다. 글린다는 축제에 먹기 위해 참여했다.


"아. 마법사님도 뭔가 드실래요?"

이제야 생각난 거니? 글린다는 입에 뭔가를 튀긴 음식을 먹으며 나를 돌아본다. 손에 고기 꼬치를 들고 나에게 내민다. 저건 또 언제 산 거지? 놀라울 수준의 먹성이다.

이러다가는 오늘 축제에서 음식에 돈을 전부 써버릴 거다. 돈 자체야 언제든 벌 수 있지만, 그래도 쫓기는 처지니 아껴 쓰는 게 좋을 거다. 마법 물품점과 환전소가 어디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렇다고 호의를 거절하면  되지. 글린다가 건네준 꼬치를 받는다. 노릇하게 익혀진 뭔가의 고기. 약간 노린내가 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한 입 베어 문다. 향이 너무 강하다. 이건 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 거다. 식당에서 나오는 것에 비하면 확실한 저급. 뱉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입에 고기를 문 상태로 글린다를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글린다의 눈이 반짝인다. 으윽. 차마 뱉을 수 없다. 눈을 딱 감고 입안에 있는 것을 삼킨다. 남아 있는 꼬치도 입에 물고 우물우물. 넘길 수 있을 만큼만 씹고 삼킨다.


"맛이 어때요?"

"맛있어요."


최대한 웃으며 대답한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거짓말. 하지만 난 거짓말은 자신 있지.

"역시 축제 음식은 맛있죠."

미안. 글린다. 하나도 맛있지가 않아. 나랑은 하나도  맞아. 글린다가 권유하지 않기를 빈다. 그리고 내가 빌었던 것들은 전부 빗나갔지.

"이것도 먹어 보세요. 아. 저것도 맛있어요."


뭔가 잔뜩 신이 난 글린다가 나에게 음식들을 권유한다. 하나도 입에 맞지 않는다. 달고, 짜고, 쓰고, 텁텁하고. 정말  먹겠지만, 억지로 욱여넣는다.  모습을  글린다는 계속 뭔가를 사 들고 온다. 이건 신종 고문이다.

"다음은 뭘 먹어 볼까요?"


 먹어? 진짜로? 나한테 권유하는 양의 두 배를 먹어 놓고? 글린다는 나에게 꼬치를 권유하면 자신은 두 개를 먹었다. 과일 절임을 권유하면 자신은  개를 먹고. 내가 지금까지 먹은  일곱  정도. 글린다는  두 배인 열네 개. 배에 식신이 든 게 분명하다.


나는 이제  못 먹는다. 배가 꽉 찼다고. 속이 더부룩하다. 수면도 배변도 필요 없는 몸도 과식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을 했다. 일단 말은 그렇다.

"먹을 거 말고 다른 즐길 거리는 없을까요?"


있을 거다. 이 정도 규모의 축제면 분명 뭔가 있을 거다. 제발 있다고 해줘.


글린다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래.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 음식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렴.

"공연은 어떤가요?"


"그거 괜찮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음식을 제외한 모든 것이 괜찮다. 그나저나 공연이라. 서커스 같은 건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중앙 광장에서 하고 있을 거예요."


글린다가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지나간다. 나 또한 미안하단 표시로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을 지나쳐 간다.

"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온다. 글린다를 따라 도착한 중앙광장. 수백 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사람 진짜 많다. 그 사람들은 모두 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무대.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조명들이 무대를 비춘다. 빨간빛, 파란빛, 노란빛. 정확히 말하면 다홍빛, 청록빛, 노란빛이겠지만. 빛의 삼원색으로 구성된 조명들. 이 정도면 프리즘이란 개념도 있을 법하다.

"마법사님! 이쪽이에요!"

멀찍이서 글린다가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언제 저기까지  거지. 걸음이 참 빠르군. 나와 글린다 사이에는 사람이 한가득. 한숨을 쉬며 인파 속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자리 잡아 놨어요."


"저게 자리입니까?"


글린다는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킨다. 그 손끝에 걸리는 것은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나무. 확실히 나뭇가지는 우리 둘의 무게를 충분히 버틸 정도로 두꺼워 보인다.

"저흰 너무 늦게 왔어요. 아니면 다시 시장으로 갈까요?"


그건 안된다. 진짜 안된다.  음식들을 다시 내 입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그냥 저기서 보죠."


그래. 좀 불편해도 참자.


"제가 먼저 올라갈게요. 고개 들지 마세요."

과장된 손짓으로 눈을 가린다. 어차피 바지 입고 있으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글린다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


"됐어요. 이제 올라오세요."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뗀다. 글린다는 2층 정도 되어 보이는 높이의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있다. 나를 바라보며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입가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내가 힘겹게 나무를 오르는 모습을 보며 놀리려는 거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쉽게 안 당한다?


"비행."

마법에 의해 몸이 둥실 떠오른다. 그대로 글린다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까지 날아오른다. 잔뜩 벌어진 글린다의 입을 보고 비웃어주며 발로 나뭇가지의 상태를 확인한다. 내가 걸터앉아도 문제없을 정도로 튼튼.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법을 취소한다.

"마법은 사기야."


"네. 마법은 사기죠."


글린다가 중얼거리는 말에 대답해준다. 그동안 무대의 준비가 끝났는지 조명들이 전부 꺼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어둠 속에서 톤이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름의 끝을 맞이하는 축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대의 불이 밝혀진다. 조명들이 한 사람을 가리킨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는 광대.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빨간 눈과 빨간 미소가 있는 광대. 광대는 모여있는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광대는 무대 위를 걸어 다니기 시작한다. 걸을 때마다 모자와 신발에 달린 방울들이 딸랑딸랑 울어댄다. 아무 말도 없이 무대 위를 돌아다니던 광대가 갑자기 멈춰서 관객들을 가리킨다.

"옛날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아주 작은 마을에는  여인이 살았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지만, 귀에 똑똑히 들려온다. 거리가 상당한데도. 확성 마법이다. 생각보다 이 세계에 마법이 상당히 보급된 듯하다.


"그런데 이 공연 제목이 뭐에요?"

광대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글린다에게 속삭이듯 질문한다. 글린다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대답한다.


"밤의 여인이요."


이 축제의 주인공이군. 사실  축제는 축제보다는 제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밤의 여인의 분노를 달래는 제사. 세대를 거치다가 축제의 형태로 변해버린 거겠지. 그래도 제사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광장 중앙에는 장작이 잔뜩 쌓여있다. 저기서 짚 인형을 태우겠지.

"그리하여 여인은 슬피 울고 슬피 울었습니다."


생각에 잠긴 사이 극은 진행되고 있다. 광대는 관객들을 향해 깊게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물러났다. 조명이 전부 사라진다. 너무 멍을 때렸나.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하겠다. 글린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너무 공연에 집중 중이다. 물어보기 미안할 정도로.

무대 조명이 다시 들어온다. 이번에는 붉은 조명. 황혼을 표현한 듯하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조명을 받으며 검은 드레스를 입은 배우가 들어온다. 배우라고 부르는 게 맞나?

어찌 되었든 여배우는 얼굴에 하얗게 분장을 하고 있다. 검은 눈물이 눈에서 흘러나온다. 아마  배우가 연기하는 게 밤의 여인이겠지.

"내 아가! 내 아가!"

우는 여인은 울면서 자신의 아이를 찾는다. 귀가 찢어질 듯한 고음. 그러면서도 불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실력인가.

극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여인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온 마을을 돌아다닌다. 산을 쏘다니고, 들판을 헤집는다. 슬피 울면서. 계속 울면서. 여인은 아이를 찾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가!  아가!"


그 울음은 쉬이 멈추지 않는다. 조명이 약해진다. 마치 밤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듯이. 여인은 아이를 찾지 못했다. 계속 울며 계속해서 걸어 다닐 뿐.


"이제 하이라이트에요."

옆에서 글린다가 말을 걸어온다. 하이라이트라.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약간 기대되는 전개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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