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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026. 2막 3장 - 밤의 여인 (1) / Isaac (26/65)



〈 26화 〉026. 2막 3장 - 밤의 여인 (1) / Isaac

밤이 내려오면 밤의 여인이 나타난다네.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왁!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네.

- 동요, `밤의 여인` 中 발췌 -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부숴 먹었소?"


"하하하. 이런저런 일이 있었죠."

다행히 더는 묻지 않았다.

"한 나흘 정도 걸릴 거요."

"그럼 잘 부탁하겠습니다."

반쯤 부서져 버린 마차를 공방에 맡기고 밖으로 걸어 나온다. 한다에서 밀란까지의 6일 동안 여덟 번의 습격을 받았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마차의 손상이 심하다. 이대로 타고 다닐 수 없을 정도. 결국, 마차를 수리 맡기기로 했다.

"나흘이라니. 너무 오래 걸리는데요."


글린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확실히 나흘이나 한 도시에 있는 건 위험할  있다. 움직이는 대상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 목표를 사냥하는 건 쉬운 일이겠지.

"오히려 사람들 틈에 끼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놈들이 그런 거 신경 쓸 거 같아요?"

대답 없이 고개만 젓는다. 글린다의 말이 맞다. 그 정도의 노력을 하는 인간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리가. 나흘 동안 머물 은신처가 필요하겠네.

"일단 식사부터 하죠."

성벽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글린다는 또 배가 고프다고 한다. 일주일 정도 관찰한 결과 글린다는 웬만한 성인 남성의 식사량을 넘어선다. 나야 먹지 않아도 되는 몸이라 조금 먹는다고 해도, 주변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도 식사량이 확연하게 비교된다. 그렇게 먹고도 체중이 변하는  같지 않다. 누나에게 들었을 때 여자는 자기 체중에 목숨을 건다고 했는데, 글린다는 그렇지 않나 보군.


"그 눈 뭐에요?"


"네?"

"저를 보는 그 눈. 엄청 기분 나빠요."

아. 시선을 들켰다. 확실히 글린다를 신경 쓰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는 했다.

"얼른 대답하세요."

회피도  하게 하네. 글린다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빤히. 거짓말은 허용하게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왜 살이  찌나 해서요."


"그게 끝?"

"그게 끝."

글린다는 한숨을 쉰다.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우와. 신랄해.


"나름 검술을 배운 상태라 근육을 유지하려면 꾸준히 먹어줘야 해요. 정식 기사들은 저보다 두 배는 먹어요."


우와. 글린다의 두 배라니. 기사의 주군은 식비를 많이 지급해야 갰군.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식당으로 가죠."

"그러죠."

침묵 속에 길을 걷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간다. 글린다는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다. 저들을 전부 적으로 상정하고 경계를 하는 거다. 뭐랄까. 약간 불쌍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저기로 가죠."

열린 나무문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가게. 문 위에는 돼지 그림과 글씨가 쓰여 있다. 맞다.  글씨도 배워야지. 가게를 발견한 글린다의 눈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어서 오세요!"


누가 소리쳤는지도 모르겠다. 가게 안은 시끌벅적 복작복작 엉망진창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과 그릇들. 술에 거나하게 취해 춤추고 웃고 노래하는 남자들. 그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점원들. 천장에 매달린 등이 밝게 비추고 있다.


"안쪽에 자리 있어요!"

점원 중 누군가 소리친다. 다른 소리에 묻혀서 못 알아들을 뻔했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점원의 모습이 보인다.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점원을 따라간다.

"여기 에요."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은 지저분하다. 술이 흐른 자국, 음식의 흔적, 심지어 칼자국까지. 점원은 하하 웃으며 흔적들을 빠르게 치우기 시작한다.


글린다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는다. 상관없는 건가. 일단 나도 글린다와 마주 보는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좋아요. 일단 돼지 바비큐. 통짜로."


"두 분 이서요?"

점원은 당황한 듯이 크게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본다. 두 분은 아닐 거다. 아마 글린다 혼자에 가깝겠지.


"가져다줘요."

글린다는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한 움큼 꺼낸다. 10 트리탄 은화 짜리 동전들. 점원은 손에 쥐어진 동전들을 바라본다,

"너무 많은데요?"

"남은 건 전부 맥주로!"


"어···. 네···."

점원은 동전들을 받아들고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간다. 통돼지 바비큐라. 문 앞에 있던 돼지 간판이 그런 걸 의미한 건가. 그나저나  먹을 수는 있는 거야? 글린다를 빤히 바라본다. 글린다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성격이군.

여태까지 도망 다니며 쌓인 스트레스가 지금 폭발하는 거다.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스트레스가 좀 쌓였으니. 글린다는 이를 갈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군.

"으자자. 여기 나왔습니다!"

이어지고 있던 침묵은 탁자에 얹어진 돼지 바비큐로 깨어졌다. 정말  마리가 통째로 놓여 있다. 생각보단 크지 않네. 그렇다고 2인분은 아니지만.

"맥주는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돼지를 들고온 점원이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글린다는 앞에 놓인 바비큐를 보고 입맛을 다신다. 확실히 맛있는 냄새가 풍겨온다. 이건 먹을 만하겠다.


"그럼 먹어 볼까요?"


"으음?"

글린다는 이미 맨손으로 고기를 뜯어 입에 넣고 있다. 잘도 먹는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귀족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 그래. 배가 고프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 있지.

좋아. 나도 먹기 시작해볼까.





"하아. 잘 먹었다."


정말 한 마리를 다 먹었다. 팔뚝만 한 잔에 담긴 맥주 다섯 잔과 함께. 놀랍다. 나도  많이 먹었지만, 저게  어디로 들어가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심지어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다. 도수 자체는 높지 않더라도 양이 많아서 취할 법도 한데 말이다.

"이제 숙소만 구하면 되겠네요."


숙소는 조금 문제가 있지. 평범하게 숙소를 구하면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 마차가  고쳐질 동안 버틸 수 있는.


"숙소는 어떻게 하죠?"

"그런  나중에 생각하죠."

배가 부르니 생각이 너무 긍정적으로 되었다. 이건 조금 문제가 있는데. 글린다는 그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쁀.  어떻게든 되겠지. 누가 습격해도 내가 열심히 하면 내쫓을 수 있을 거다. 지난 습격들은 전부 처리했으니까.

"저기가 좋겠어요."

글린다가 손가락으로 건물을 하나 가리킨다.  그대로 평범한 여관. 그래. 내가 열심히 하지 뭐.

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판 사이, 글린다는 이미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다. 한숨을 쉬며 글린다를 따라간다.


"방 두 개 빌렸어요. 3층 4호래요."

벌써 계산을 처리한 글린다가 열쇠 하나를 나에게 던진다. 열쇠에 뭔가 쓰여 있지만, 나는 읽지 못한다. 글린다는 바로 계단을 올라간다. 계산대에 서 있는 중년 여성과 눈인사를 하고 글린다를 따라 올라간다.


"며칠 빌리셨어요?"

"하루요. 여관은 매일 바꿀 거에요."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은 하고 있군.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먹혀 나흘 동안 빌릴  알았다.

 계층의 계단은 금방 올라올 수 있었다. 위로 한 층이 더 있는지 계단은 끝나지 않았다. 3층 복도에는 양옆으로 문들이 주욱 늘어져 있다. 각 문에는 뭔가 쓰여 있고. 열쇠에 쓰인 글씨와 비교해가며 내 방을 찾는다. 글린다는 벌써 방으로 들어갔다.


맥발라의 여관보다는 상태가 좋다. 그래 봐야 침대 하나와 옷장 하나인 건 변함없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다는 이야기다. 침대에 걸터앉는다. 창문이 없는 방이기에 밖을  수는 없다.


좋아. 이제 어떻게 하지?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랑 맞지 않는다. 요새화를 해볼까.


"마법사님. 들어가도 되죠?"


글린다가 문을 두드린다. 염력을 통해 문을 열어준다. 글린다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열린 문 앞에 아무도 없어서 그렇겠지.

"들어오세요."


작게 한숨을  글린다가 안쪽으로 걸어온다. 글린다를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자리를 마련해준다. 글린다는 침대에 앉지 않는다. 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밖에 나가실래요?"

"네?"

밖에? 왜? 글린다는 머뭇거리다 말을 이어간다.

"오늘은 여름의 끝날이라 축제를 하거든요?"


지금  인간이 뭐래냐. 자기가 쫓기고 있다는  알고 있는 건가. 배부르게 먹고 행복 회로가 불타면서 헛소리를 하는 건가. 확실한 건 제정신은 아니란 거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자기가 한 말을 곱씹어 봅시다."


"지금 제가 놀러 간다고 생각하신 거에요?"


글린다가 눈썹을 들썩인다. 저건 화가 난 건가.

"아니었나요?"

"아니거든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화난 게 분명하다. 나오려는 한숨을 틀어막는다.

"그러면?"

"한곳에 오래 머물면 습격이 위험이 있죠. 그리고 이 주변 지리를 알아야 습격에 대비하죠. 그리고 또···."

글린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간다.


"놀러 가는 거죠?"

"네. 놀러 가는 겁니다."


뭐가 저리 당당할까. 그래도 보기 나쁘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소녀가  거 같다.


"뭐 나쁘지는 않겠네요. 계속 웅크리고 있는 거도 좋지는 않으니까."


솔직히 나도 놀고 싶다. 여태까지 너무 지루했다고. 습격도 한두 번이어야 긴장감이 넘친다. 계속 지속하니 재미없는 반복 작업이 되어 버린다. 마침 기회가 생겼으니 옹 몸을 불살라 놀자. 내일 죽을 것처럼.

약간 기대된다, 이 세계의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것은 언제나 재밌는 법.

"좋아요! 그럼 갑시다!"


잔뜩 신이 난 글린다가 방을 나선다. 열쇠를 챙기고 방문을 잠근다. 혹시 무르기에 마법까지 사용해둔다. 이러면 도둑 걱정은 없겠지.

글린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건물 밖에서는 벌써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즐거운 웃음소리. 누군가의 고함. 뭔가 터지는 소리. 여기도 폭죽이 있나?


"이건 무슨 축제인가요?"


"여름의 끝을 기리는 축제에요. 내일부터는 가을로 접어드는 거죠."


다행히 이곳도 사계절이 있나 보다. 아. 남극도 사계절은 있지.

"그리고 동시에 밤의 여인의 분노를 잠재우는 축제에요."

"밤의 여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글린다는 잠시 고민을 하고 설명을 시작한다.

"유령 비슷한 건데. 아이가 울면 잡으러 온다고 해요. 어린아이를 좋아해서 매년 짚으로 만든 인형을 태워서 달랜다고 하더라고요."

음. 잘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축제는 축제 자체로 즐거운 법. 의미를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 축제의 좋은 점이지.

"자. 그럼 나가 볼까요?"


글린다가 여관의 문을 연다. 소리가 더욱 커진다. 사람들의 열기가 훅하고 밀려든다. 오늘은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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