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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024. 2막 2장 - 마차 여행 (2) / Isaac (24/65)



〈 24화 〉024. 2막 2장 - 마차 여행 (2) / Isaac

이태백의 시가 떠오르는 아주 멋진 달이다. 바람은 푸른빛으로 불어온다. 그리고 나는, 마차를 끌고 있다.


"너무 덜컹거리는 거 아니에요?"

"마차 처음 몰아본다고 했잖아요. 그냥 조용히 있으시죠."


다행히 말들의 교육이  되어 있어 초보자인 나도 무리 없이 몰 수 있었다. 덤으로 마법의 도움도 받고 있지. 특별한 마법은 아니고 다른 동물에게  생각을 조금 집어넣는 거다. 말을 조종할 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 실제 조종법은 몰라도 말이야.


그래서 지금은 고삐를 놓고 있다. 잡고 있어도 소용이 없거든. 글린다는 마차 안쪽에서 휴식 중. 글린다는 잠이 필요하고, 나는 잠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마차를 몰고 있지.


도로에는 약간의 요철이 있지만, 약간의 덜컹거림만 빼면 문제없이 주행할  있다. 그러보니까 마차에 서스펜션이 없을 텐데  이리 안정적이지? 그냥 마법으로 대충 처리한 건가. 마법은 역시 사기야.


"저 이제 잘 거니까 운전 조심히 해주세요."


와. 바라는 것도 많아. 내가 운전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알긴 할까? 사실 하나도  힘들지만. 지루한   흠일 뿐이지.

별은 영롱하게 반짝인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온다. 나는······.

엄청 지루해!


너무나도 할 게 없다. 그냥 마부석에 앉아서 가만히 있어도 마차는 움직인다. 즉, 나는 할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사, 수술을 제외하고는 뭔가를 계속했다. 수면도 빼도록 하자.

김현이 말하길 죽음을 목전에  사람은 모든 걸 포기하거나, 회피책을 찾는다고 했다. 그쪽도 정신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아마 내 회피책은 놀이였겠지. 순간의 즐거움으로 삶에 대한 생각을 잊으며 살아왔겠지. 그래서 나는 심심한 게 제일 싫어!


"으어어어."

입에서는 되지도 않는 소리가 나온다. 한숨의 끝은 괴성이로군. 얼른 뭔가를 해보자.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거다. 마부석에 몸을 눕힌다. 하늘을 바라본다. 좋아 놀 거리가 생각났다. 별자리 만들기.


별이 많다. 엄청나게 많다. 내가 평생 봐온 별보다 많다. 이곳에도 별자리는 있겠지. 하지만 난 그걸 모르지. 그럼 재밌는 별자리 만들기 시작.


저거랑 저거랑 저걸 이렇게 이으면 사자자리. 저거랑 이거랑 이걸 저렇게 이어서 전갈자리. 이거랑 저거랑 저거랑 이거를 요렇게 이으면 오리온자리. 왠지 다 지구에 있던 별자리를 흉내 내는 것 같다. 그리고 재미없다. 엄청나게 재미없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잠을 자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동안은 심심하지 않을 테니.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는 것. 그리고 마법사에겐 언제나 재밌게 놀 방법이 있지.

"공방 이동."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리고 다시 밝아진다. 앉아 있던 마부석이 아닌 온통 하얀 공간. 광원이 없으면서도 밝게 빛나는 공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러면서도 바닥을 밟고 서 있다. UMO 속에서야 게임이니까 그렇다 쳐도 여기선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 궁금해하지 말자. 이러건 생각하면 머리 아프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마법사의 공방. 주로 연금술 물품을 만들거나, 마법으로 장난을 치거나,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곳이다. 뭔갈 하겠다는 목표는 없이 들어왔다. 사실 될 거라는 생각도 안 했고. 됐으니까 좋은 거지 뭐.


"그럼  해볼까."


공방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른다. 아마? 아니면 조금 문제가 곤란해진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들어와 있는 건데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난 미칠  분명해.

"연금술 작업대 가동."


내 앞에 탁자가 하나 올라온다. 작동하는구나. 유리로 만들어진 각종 병과 어디다 쓰는지 알 수 없는 기구들. 이것들은 그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존재할 뿐.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들은 아니다. 일단 고정된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좋아. 뭔갈 만들어 볼까나. 재료 자체는 충분하다.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지. 레벨이 오를수록 물품 창이 늘어나는 UMO의 특성 덕분. 덤으로 재료들의 경우에는 9만 개까지 중첩할 수 있다. 1,000레벨이 넘어 초월의 경지에 들어갈 경우, 물품 창을 꽉 채우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론상 UMO 내의 모든 물품을 모으면 채울 수 있다지만, 그걸 시도해 본 사람은 없다.


"소환. 만드라고라 열 개."

연금술 탁자에 눈코입이 달린 뿌리식물이 나타난다. 비명을 듣는다면 죽게 된다는 전설 속의 식물. 실제로는 4등급의 평범한 재료일 뿐이다. 지금 만들려는 것은 연금술의 기본적인 제작 물품인 중급 마나 물약. 나는 쓸 일이 없는 물건이지. 단지 시험용으로 만들어  뿐이다.

재료는 만드라고라가 전부. 재료를 준비하고 연금술 작업대에 올린 뒤 마법을 사용하면 완성. 과학적인 원리 따위는 없는 방법이다. UMO 내에서는 그랬다. 여기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심호흡하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만약 완성된다면 내 마법은 이 세계의 물리법칙 따위 초월한다는 거다. 약간 긴장이 된다. 혀로 입술을 계속 핥는다.


"연금술. 중급 마나 물약."

탁자 위에 올려놓아 진 만드라고라들이 녹기 시작한다. 완전히 녹아 버려서 파란 액체로 변해버린다. 만드라고라 열 개 분량의 액체는 하나로 뭉쳤다 떨어진다. 열 덩이로 나뉜 액체들은 갑자기 나타난 병에 담긴다. 방금 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리병을 창조했다.


"미친."

떨리는 손으로 물약을 집어 든다. 이제 이게 실제로 작용하는지 확인할 시간. 덤으로 마시고 나서 유리병이 남는지도.


"마나 해일."

물약을 집어 들지 않은 왼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한다. 마나 물약의 효과를 보려면 마나가 줄어들어야지. 왼손에서 마법이 날아간다. 날아간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군. 왼손을 중심으로 마나가 요동친다. 파도를 이루며 쏟아져 간다. 만약 누군가 정면에 있었다면 있었으면 갈려 나갔겠지.

"훔쳐 보기. 대상 자신."

[이름 : 아이작]

[레벨 : 초월++]


[체력 100%]


[마나 91%]

[레벨이 동등하여 다른 사항을  수 없습니다.]

이름이 나타났다. 이제 나는 아이작이다. 이유진이 아닌 마법사 아이작. 약간 씁쓸하다. 20년 넘게 살아온 나를 버린 거다. 자신의 선택으로.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들고 있는 물약의 코르크를 딴다. 알싸한 향이 퍼져나간다. 등급이 낮은 물약일수록 맛이 없다. 눈을 딱 감고 목으로 물약을 넘긴다.

"훔쳐보기 대상 자신."


[이름 : 아이작]

[레벨 : 초월++]


[체력 100%]

[마나 92%]

[레벨이 동등하여 다른 사항을 볼  없습니다.]

마나가 회복되었다. 사용에 문제는 없겠네. 그리고 유리병은 내 손에 남아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방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거다. 유리병은 광원이 없는 빛을 받고 빛난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확하다면, 중세 유럽에는 유리로 병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다. 그게 이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가정하자.  지금 순식간에 떼부자가 될 수 있다. 유리병을 누군가 사준다면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물품 창에는 금화가 잔뜩 있긴 하다. 환전이 문제일 뿐이지. 그냥 녹여서 팔까? 녹긴 하려나?


"정신 차리자. 정신."


쓸데없는 생각에 집중해 버리기 전에  뺨을 두드린다. 남은 마나 물약들은 전부 물품 창에 보관한다. 연금술의 작동은 확인되었고, 다음은 마법 창조를 시험해볼까.


"마법 창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기능은  되는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걸까나.  시험해보고 싶은 건 없다. 그냥 마법이나 쓰고 놀아야지.


그 순간 등골을 쑤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 공방의 가장 큰 특징  하나는 이곳에 오는 건 정신뿐이라는 것. 육체는 원래 공간에 그대로 존재한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공방 해제."

하얀색으로 빛나던 공간이 사라진다. 다시 달빛만이 내려오는 어두운 길로 돌아온다. 눈을 몇 번 껌뻑이며 시야를 되찾는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의 위치가 변해있다. 공방 속에서도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는 듯하다.

말은 발굽을 다그닥거리며 도로를 걷고 있다. 마차 안쪽에서는 특별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왼손 중지의 반지는 적이 있다고 알리고 있다.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나.

지금 마차가 달리는 길 양옆으로는 허리 높이 정도의 수풀이 자라있다. 기습하기 나쁘지 않은 지형. 언제 공격해 올지 살짝 기대된다. 습격을 받으면 지루하지는 않겠지.


양옆의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게 보인다. 어두워서 잘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달빛에 그림자가 조금씩 흔들린다. 앞으로 나아가는 마차를 따라 수풀의 움직임도 따라온다. 왼쪽과 오른쪽이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둘 사이의 호흡이 뛰어나다. 언제 달려들려나. 기다리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이다.


"완벽한 수면."


마차에 마법을 사용한다. 글린다가 잠에서  걱정은 사라졌다. 준비는 끝났고 덤벼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습격에 대한 긴장감과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다. 그다음은 약간의 지루함과 이대로 그냥 지나가는 건가 하는 불안감. 지금은 그저 짜증이 난다. 안 온다면, 내가 가주마.


마법을 통해 말들에게 명령한다. 지금 여기 멈춰 서라고. 두 마리의 말은 동시에 걸음을 멈춘다. 양옆의 수풀 속의 무언가가 크게 동요하는 게 전해진다. 처음으로 둘 사이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동시에 멈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마부석에서 일어난다. 수풀이 계속 흔들린다.  긴장감이 너무 좋다. 들썩이는 수풀을 향해 양손을 뻗는다.


"뼈 화살."


손가락 끝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뼈 화살이 나타난다. 그대로 양옆의 수풀을 향해 날아간다.


"캬아악!"

괴성과 함께 은빛 털을 휘날리는  마리의 늑대가 솟구친다. 양쪽에서 한 마리씩. 수풀에서 뛰쳐나온 두 마리는 마차를 끌고 있는 말 앞에 착지해 이빨을 드러내 보인다.

고작 늑대였어? 심지어 덩치가 크지도 않다. 말 그대로 평범한 늑대. 말조차 겁먹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늑대. 재미없어. 빨리 처리하고 말이나 몰아야지. 늑대들을 향해 손을 뻗고 마법을 사용한다.

"화염구."

앞을 가로막는 늑대를 향해 불덩이가 날아든다. 늑대들은 재빨리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지만, 그것이 내가 노린 거다.

"뼈 화살."

공중에 떠 있는 늑대들을 향해 뼈로 만들어진 화살이 날아든다. 몸을 피할 길이 없던 두 마리의 늑대는 그대로 마법에 몸이 꽤 뚫린다. 붉게 물든 은빛 털이 하늘에서 휘날린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다.

"가자."


말에게 마법을 통해 명령한다. 두 마리의 말은 달밤의 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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