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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023. 2막 2장 - 마차 여행 (1) / Isaac (23/65)



〈 23화 〉023. 2막 2장 - 마차 여행 (1) / Isaac

콧노래를 부르며 떠나는 발길
흘러오는 바라 내려오는 햇살
주위를 둘러보면 산천초목
 걸음은 날 어디로 인도할까
이 여행은 날 어디로 데려갈까

-시, `떠나는 발걸음` 中 발췌 -




"좋아.다 합쳐서 2만 트리탄 은화."


글린다를 바라본다. 나는 시장 가격이 어떻게 형성돼있는지 모르기에 거래는 글린다의 조언이 잔뜩 첨가되어 있다.

"적당한 가격이군요. 그렇게 하죠."

글린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남자가 건네주는 자루를 챙긴다. 무게가 상당히 나간다. 남자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반지와 귀걸이 목걸이들을 가져간다. 이것으로 마법 물품 거래가 끝이 났다.

한다시는 거대했다. 테페리 남부 무역의 중심지라고 했던가. 길도 전부 대리석으로 깔렸고, 건물들도 맥발라보다 깨끗하다. 잘사는 도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다른 필요한 것들은 샀으니 마차만 구하고 빨리 떠나죠."


도로에서의 습격 이후 글린다의 모든 행동이 급해졌다. 지켜보는 사람이 불안해질 정도로. 언제 다음 습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거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도 한다시에 도착하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법 물품 거래점에 왔다. 해는 산등성이에 걸려 붉게 죽어가고 있다.

"저녁은 안 드시나요?"


약간의 제동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달리는 자동차는  운전자를 죽게 한다. 글린다는  말을 듣고 잠시 멈춰 선다.

"확실히 뭔갈 먹어야겠네요. 주변에 식당을 알아보죠."

다행이다. 조금 침착해진 게 느껴진다. 급히 움직인다고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빈틈만 늘어나지.

마법 물품 거래점이 있는 골목에서 빠져나와 대로로 들어선다. 한다시의 거리에는 가로등도존재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밝은 빛을 뿜는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내 옆에서 걷고 있는 글린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고. 글린다는 거리 주변의 가게들을 둘러보다 적당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간다.

따스해 보이는 내부 풍경. 주황색 전등이 식당을 비춘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간혹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도 보인다.

"어서 오세요!"


우리가 입구에 가만히  있자 어린 소년이 달려와 우리를 맞아준다. 생글생글 웃는 소년은 귀염상이라고 말할  있겠다.

"두 분이신가요? 안쪽에 자리가 있어요."


소년은 내 팔을 잡아끌며 안쪽으로 데려간다. 글린다는 머뭇거리다 내 뒤를 따라온다. 소년이 안내해준 자리는 식당의 가장 안쪽. 열려있는 창 너머로 노을빛이 들어온다.


"간단하게 먹을  있게 차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글린다의 주문에 소년은 오른손을 번쩍 들고 뒤로 돌아선다. 주변이 약간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대화하는 데 지장은 없겠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저녁만 해결하고 마차를 구해서 떠나죠."

아직도 너무 급하다. 글린다는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식당에 들어와서도 안심하지 못하는 건가.

"집중!"


손뼉을 치며 글린다의 시선을 모은다. 글린다는 놀랐는지 의자에서 뛰쳐나와 식탁을 밟고  목에 칼을 겨눈다.


..... 칼은 어디서 나왔지?


"칫. 습격인 줄 알았다고요."


글린다의 손에서 칼이 뱅글뱅글 돌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마법은 아닌 거 같은데. 마술인가. 칼을 집어넣은 글린다는 얌전히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목이 따끔하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조금 묻어 나온다. 잘못했으면 죽었겠다.


"왜 그러셨어요?"


자리에 앉은 글린다는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본다. 상처가 난 목을 몇 번 쓰다듬고 질문에 대답한다.


"너무 주변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거 같아서, 긴장을 풀어드리려고···."

끝맺음이 좋지 못한 말이었다. 대답을 들은 글린다가 한숨을 쉰다.

"제가 습격 때문에 겁이라도 먹었다고 생각한 거에요?"

고개를 끄덕인다. 글린다는 다시 한숨을 쉬고.

"그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남부 귀족도 아니고."

글린다의 말에는 남부 귀족을 향한 멸시가 담겨 있다. 북쪽과 남쪽이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군.


"그러므로 다음 계획이나 생각하죠."

그러도록 하자.

"일단 마차를 타고 왕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갈 거에요."

글린다는 탁자 위의  점을 손가락으로 찍는다. 그리고 죽 내 쪽으로 이어간다.


"7일 정도 가면 도시가 하나 나올 거에요. 이름이···. 밀란이었나?"


손가락은 책상을 두드린다.


"거기서 보급을 좀 하고 동쪽 가도로 가는 겁니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3일 정도면 저희 가문의 직할령까지 갈  있을 거예요."

열흘 정도 걸리는 여정인가. 마차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리가 꽤 되는군.

"저기······."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소년이 쟁반에 접시들을 담고 말을 걸어오고 있다. 눈은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식사가 나왔습니다."

어디서부터 들은 거지? 너무 계획에 집중했다. 글린다의 눈동자가 변한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설마 여기서  휘두르게? 저 꼬마를 상대로?

쟁반을 들고 온 소년도 뭔갈 느꼈는지 손을 떨기 시작한다. 글린다는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소년에게 질문한다. 소매에 칼을 숨겨둔 건가.

"얼마나 들었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맹수의 눈. 소년은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열심히 젓는다.


"정말이지?"


소년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정말로 열심히.


"놓고 가."

탁자 위에 그릇들이 놓인다. 그릇을 옮기는 소년의 손은 볼썽사납게 떨린다. 용케도 음식을 흘리지 않는구나.

쟁반에 올려져 있었던 모든 그릇이 옮겨졌다. 소년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 글린다가  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소년의 쟁반에 올려놓는다.


"아무것도  들은 거 맞지?"

다시 확인하다니. 악마 같은 여자다. 소년은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이고 빠르게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글린다는 멀어져 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웃기 시작한다. 놀린 거였냐.

"그럼 식사나 하죠."

오늘의 저녁 식사는 간단한 고기구이.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잘 구워졌다. 소스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각종 채소를 섞어놓은 샐러드와 묽은 수프도 덤. 그냥저냥 먹을 수 있는 정도다.

그릇은 빠르게 비워졌다. 글린다는 식사가 만족스러운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잠시 앉아 있던 글린다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단 여기서 나가죠. 지켜보는 시선이 매섭네요."

확실히. 주방 쪽에서 두 개의 시선이 우리에게 날아와 꽂힌다. 건장한 남성 둘. 아마 이 가게의 주인일 거다. 적의는 없지만, 경계하는 눈빛. 아마 자리를 안내해준 소년이 말한 거겠지.

글린다를 따라 가게에서 나간다. 끝까지 뒤통수에 시선이 따라붙는다.


"마차를 사러 가나요?"

"네. 이쪽으로 가면 나올 거에요."

해는 산 너머로 넘어갔다. 거리는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만으로 밝혀진다. 돌아다니는 사람의 수도 많이 줄었다. 몇몇은 술에 취했는지 비틀비틀. 글린다와 나는 목표를 향해 계속 걸어간다.

"안 자고 바로 떠날 거예요?"

"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건 안 좋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 누군가 계속 공격을 하고 있다면 빠르게 안전한 위치를 잡는 것도 좋지. 그다음은 별다른 말 없이 글린다를 따라갔다.


"마구간인가요?"

"네. 덤으로 마차 공방이기도 하죠. 만들어진 게 있어야 할 텐데."

글린다는 반쯤 열려있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고함치는 소리,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 나무를 대패질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계신가요?"

문 앞에 멈춰선 글린다가 얼굴만 안쪽으로 밀어 넣고 소리친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 소리에 묻힌 것 같다.


"게신가요!"

 크게 소리 지른다. 잡음만 계속해서 들려온다. 나도 살짝 안쪽을 바라본다. 공터 중심에는 커다란 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마법적인 처리가 된 건지 형태가 고정되어 있다. 그 불을 중심으로 상체를 탈의한 남자들이 선반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손님 왔어요!!!"


이번에는 들렸는지 모든 소음이 멈춘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갑자기 시선이 모이자 조금 몸을 움찔했다. 우리를 빤히 바라보던 사람 중의  사람이 다가온다. 발달한 근육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거 무슨 일이요?"

남자는 글린다의 앞에 서서 말한다. 키가 정말 크다. 이이작인 상태인 나도  키지만, 남자는 나보다 머리가 하나만큼 높이 있다. 글린다와는 머리 두 개 정도의 차이.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글린다는 고개를 꺾이다시피 들어 올린다.


"마차를 사러 왔어요. 말도 같이요."


"돈은 있나?"

우리의 모습이 돈이 있어 보이는 꼴은 아니지. 남자의 말에 글린다는 아무  없이 가죽 주머니를 남자에게 건넨다. 남자는 주머니를 받고 안쪽을 들여다본다.

"빠듯하겠군."

"1만 트리탄 은화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 물품 창에 보관되어 있지. 남자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안쪽으로 몸을 돌린다.


"따라오게."


걸어가는 남자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넘었을 뿐인데 열기가  느껴진다. 한쪽에서 철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덕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쇠를 두드리는 사람들의 모습. 뭐랄까. 장인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느껴진다.


남자는 안쪽으로 걸어가다 나무문을 하나 열어젖힌다. 그곳에는 다양한 마차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원래 주문 제작이 전문이지만, 급하다면 만들어진 물건을 끌고 가도 된다네."

우리의 모습만 보고 급하다는  눈치챈 거다. 그러면서도 다른 질문은 없다. 상인의 멋진 표본이로군.

"만오천 정도는 예상합니다."

"말은?"

"따로 계산하도록 하죠."

글린다가 예산을 지정해주자 남자가 마차들을 쓱 훑어 본다. 그리고 하나의 마차에 다가가 손으로 두드린다.

"둘이서 쓰기에는 이게 적당할 것 같군. 이런저런 기능보다는 속도에 치중한 녀석이라서."

그것참 좋은 녀석이군. 확실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속도지. 남자가 소개해준 마차는 매우 단순한 형태로 되어있다. 네 개의 바퀴, 양쪽에  문, 마부석까지. 딱 필요한 것만 있는 마차.

"가격은 어떻게 되죠?"


"만삼천. 말  마리 포함해서 만팔천에 넘겨줄게."

남자의 가격 제시에 글린다는 잠시 고민한다. 나야 가격을 비교할 능력이 없으므로 묵묵히 서 있는다.

"좋아요. 그 정도면 적당하겠네요."

"아까 주머니에 든  일만이지?"


글린다가 나를 바라본다. 돈을 꺼내라는 말이군. 최근에 알게 된 건데 미리 등록한 물품의 경우 곧바로 물품 창에서 꺼낼 수 있더라.

"여기 있습니다."

남자에게 가죽 주머니를 건네준다. 정확히 8천 트리탄 은화가 들어 있는 가죽 주머니. 남자는 안쪽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끌고 오도록 하지."


은화가 든 주머니를 한쪽에 대충 던져둔 남자가 들어왔던 문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좋아. 이제 할 일은 다 했다. 그런데 마차는 누가 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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