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018. 1막 종장 - 로테리아의 대기록원 / Unknown (18/65)



〈 18화 〉018. 1막 종장 - 로테리아의 대기록원 / Unknown

두 개의 차원이 충돌할 경우 일어나는 일들.
1)  차원의 대기록원에 엄청난 수의 악마가 쏟아져 들어간다.
2)  차원의 대기록원의 이야기가 마구잡이로 섞인다.
3) 두 차원의 현실계에 엄청난 수의 악마가 쏟아져 들어간다.
4) 두 차원 간의 물질 이동이 일어난다.
5) 그 외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지만, 위의 네 가지가 대표적이다.

- `신입 사서를 위한 대기록원의 모든 것` 中 발췌 -






하늘. 해. 구름. 바람. 초원.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누나. 내가 사랑했던 것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것들. 그런데 보이네? 꿈인가? 그런데 꿈은 잠들어야 보잖아? 난 잠을 못 자는 몸인데?


"꿈은 아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웬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다.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 정장에 담배. 지구에서는 자주 보던 물건이지만, 넘어오고 나서는 처음 본다. 이 세계에도 저런 게 있나?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당연히 없지. 이건 지구의 물건인걸."

"생각을 읽었어!"


소리를 질러 버렸다. 남자는 내 반응이 재밌는지 미소를 짓는다. 부끄럽다. 부끄사라는게 이런 건가.


"내 이름은 요하네스 필스버그. 지구 대기록원의 전투팀장이다."

요하네스 씨, 기니까 줄여서 요한 씨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 이름과 지구에서 왔다는 것만 이해했다. 일단 악수는 하자. 요한 씨는 내 손을 잡고 강하게 흔든다.

"좋아. 그럼 가자고."

"어딜요?"

내 질문에 요한 씨는 당연하다는  말한다.

"로테리아의 대기록원으로."

"에?"


뭔가 상당히 불안하다. 잡혀 있는 손을 빼려고 했지만, 요한 씨의 손힘 장난 아니다. 그대로 세상이 뒤집힌다.




"우엑."


머리가 어지럽다. 세상이 흔들린다. 서 있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구역질이 올라온다. 배 속에서 뭔가 부글거린다. 누군가 위장을 손을 잡고 쥐어짜는 느낌. 한 번도 못 느껴 보지는 않았지만, 적응되는 고통은 아니지.

"원래 차원을 이동하는 건 머리가 아픈 일이지."


요한 씨가 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요한 씨에게 기대서 어떻게든 버티고 선다. 한숨을 쉰 요한 씨는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걸어간다. 머리가 어지러워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여기 앉아. 정신도  차리고."


엉덩이에 무언가 닿는다. 의자인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대로 엎어진다. 다행히 책상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몸을 받쳐준다.

"저 친구는 왜 저럽니까?"

다른 사람의 목소리. 요한 씨보다 젊은 듯한 남자.

"원래 몸뚱어리가 허약한 친구라서."

그렇기는 하지. 원래 나는 병실에서 죽을 목숨. 차원의 충돌인가 뭐 때문에 아이작의 몸으로 살고 있지.

"어?"

몸을 일으킨다. 손을 내려다본다. 반지가 없다. 얼굴을 만지고, 가슴을 만지고, 배를 만진다.

"어?"


지금 나는 이유진이다. 아이작이 아닌. 인간이다. 마법사가 아닌. 뭐지?

"그게 네 녀석의 영혼 상태다."

고개를 든다. 요한 씨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반짝이는 금발이 인상적인 남자.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는다.


"반갑습니다. 로테리아 대기록원의 전투팀장인 슈시아 맥그리마 라고 합니다."

슈시아 씨. 기억해두자.


"소을에게 이야기는 들었지? 지금 네 상태에 대해."

"조금이요. 제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왔다는 거 정도?"

"역시 소을에게 맡기면 안 됐어요."

"나도 후회 중이다."

두 사람은 한숨을 쉬더니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일단 정확히 설명하도록 하지."

"당신의 육체가 있는 곳은 로테리아라고 합니다. 행성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좋아. 소을에 비하면 두 사람은 쉽게 가르쳐 주고 있다.

"지구와 로테리아 두 차원이 충돌했습니다."

"그 결과. 네 녀석이 지구에서 튕겨 나와 로테리아에 떨어졌다."

나, 이 설정 어디서 봤어.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에서 본 것 같다. 바라모아를 사용하면서도 PC 게임은  즐겼지. 몸이 더 안 좋아져서 손이 덜덜 떨리기 전까지는.

"원래 다른 차원에 떨어진 물체는 처분이다."


"소을이 설명했겠지만, 인간 같은 지성체의 경우에는 그 차원에서 살아가게 도와줍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 못 한다. 뭘 질문해야 하는지 모르거든. 두 사람은 내가 입을 열기 기다리고 있다. 일단 당장 떠오르는 것부터 질문하자.

"여긴 어딘가요?"


"대기록원."

"정확히 말하면 로테리아의 대기록원이라고 부르죠."

이제 생각났다. 소을이 나중에 대기록원에서 방문할 거라고 했지. 지금 이게 방문인 건가.

"그럼 대기록원이라는 건 뭐에요?"


"모든 이야기가 있는 곳. 죽은 작가들의 사회. 모든 것을 기록하는 곳."


"덤으로 이야기를 수호하기도 합니다."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아카식 레코드?"

 말에 요한 씨가 한숨을 쉰다. 슈시아 씨는 그저 웃을 뿐이고.


"어떻게 오는 사람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아카식 레코드를 입에 올리지?"


"로테리아에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 세계에는 없는 개념이니까."


아카식 레코드는 금기어 비슷한 건가. 입 밖에 내뱉을 생각은 하지도 말자.

"다른 질문 할게요. 사신이라는 게 뭐에요? 소을에게 반지를 받았는데."

보여주고 싶지만, 지금 이 몸은 이유진의 몸.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다.

"사신은 세상의 수호자. 현실 세계에 스며든 악마를 제거하는 걸 주요 업무로 삼는다."

"덤으로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존재를 처분하기도 하죠."


악마? 악마라는 게 실제로 있는 거야?


"있다."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머릿속 질문에 대답한다. 생각을 읽는 건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만약 사신에게 그 반지를 보여주면,  도와줄 거다."


"나름의 대가는 받겠지만요."

"어떤 대가죠?"

"악마사냥."

이번에는 완벽하게 똑같은 말을 한다. 악마 사냥 같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미안한 말이지만, 다른 차원에 던져진 이상 네 녀석 주변에는 악마가 얼쩡거릴 거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악마를 사냥할 수밖에 없게 되죠."


나중에 가서 생각하자. 너무 깊은 생각은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럼 지구에 있던 저는 어떻게 된 거에요?"


다른 질문을 하자.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죽었어."


"차원을 넘는 것은 영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이 인간들은 심각한 소리를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하는 재주가 있다. 난, 죽었구나.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구나.


"돌아갈 수는 없는 거죠?"

"만약에. 아주 운이 좋아서. 지구와 로테리아가 충돌했을 때. 네 녀석이 그 충돌지점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가능하지."


"확률적으로 따지면, 번개에 연속으로 스물다섯  맞고 살아난 다음  다시 번개를 스물다섯 번 맞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 두 사람이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불가능이란 거다.

"전 왜 다른 사람과 대화가 통하는 거죠?"


궁금했던 질문. 다른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여태까지 말을 못 알아들은 경우는 없다.

"영혼어의 문제지."

"한 번이라도 영혼 상태였던 사람은 말의 의미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


"차원을 통과하는  영혼만 가능한 일."

"지구에서 로테리아로 오는 동안은 순수한 영혼 상태였던 겁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의 의미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고요."


하지만 내가 말뜻을 이해  하겠는데? 어떤 말이든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이해했다. 다행이네.

"덤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생명유지도 필요 없지. 소화도, 수면도, 호흡도, 배변도 필요 없는 몸이다."


호흡도 필요 없는 몸이라니. 이건 좀 무섭다. 죽지도 않는 거 아니야?

"노화와 성장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피는 흘릴 테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을 읽은 슈시아 씨가 머릿속 질문에 대답한다. 조심해서 살아가자. 죽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른 질문 할게요. 저는 왜 아이작의 모습이죠?"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건 오직 영혼뿐."


"육체가 없는 영혼은 물질계에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차원이 영혼에 맞는 육신을 준비해주죠."

"그리고 당신이란 인간은 게임 속에서 캐릭터로 죽었기 때문에 그 캐릭터의 옷을 입은 겁니다."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요한 씨와 슈시아  사이에 젊은 남자가 하나 앉는다. 나보다 어려 보인다.


"반갑습니다. 지구 대기록원의 전투팀 소속 김유빈입니다."

"한국인이세요?"


"살아있었을 때는요."


마치 지금은 죽어있는 상태라는 듯이 말한다. 궁금하면서도 묻고 싶지 않다. 왠지 묻고 싶지 않다. 대답도 별로 좋은 게 돌아올 거 같지도 않고.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지.

"덤으로 차기 전투팀장 내정자지."


"그래서 저를 이렇게 굴리시는 거에요?"


김유빈의 눈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다. 거의 광대에 닿을 정도. 과로사 직전의 사람으로 보인다.

"어···. 그···. 아까 했던 말 이해 못 했는데요?"

내가 입을 열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인다. 약간 부담스럽다.


"쉽게 말해서. 로테리아는 아이작의 몸을 당신의 원래 육체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역시 이해  하겠군.

"중요한 건 아니니 이해 못 해도 상관없다."

"그냥 지금 그대로 사시면 됩니다."


요한 씨와 슈시아 씨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된다.


"마지막 질문이 있는데. 저는 누구인가요?"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본다.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김유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연다.


"저희도 몰라요."

"네?"


"자료가 없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서로 다른 존재는 붕괴되서 죽는 게 정상입니다."


"전 살아있는데요?"

"그러니까 말이다."

요한 씨가 한숨을 쉰다.

"한 육체에  개의 영혼을 가진 존재는  적 있지만, 두 육체에 한 영혼이라니.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전 누구인가요?"

"누구이고 싶으신가요? 아이작? 아니면 이유진?"

슈시아 씨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역으로 던져버리다니.


"그에 대한 질문은 차차 나중에 알아가시고. 슬슬 시간이 되었다."


"무슨 시간이요?"


"네 녀석이 돌아갈 시간."


주변이 흔들린다. 뒤틀리고 깨어져 나간다. 아까 마지막 질문이라고 했던가? 다시 아이작의 몸으로 돌아가기 전에 물어볼 것이 생겼다.

"전 어떻게 해야 하죠?"


흔들리고 깨어져 나가는 시야 속에서 요한 씨가 입꼬리를 올린다.


"원하는 대로 살도록."

정말 어려운 말이군. 세계가 무너진다. 깨어진 바닥으로 떨어진다. 검고 검고 검은 곳으로.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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