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015. 1막 4장 - 맥발라의 요정 (2) / Glinda (15/65)



〈 15화 〉015. 1막 4장 - 맥발라의 요정 (2) / Glinda

속이 메슥거린다.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공간 이동이란 거, 좋은 마법이 아니었구나. 마법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공간이동은 내장을 쥐어 잡고 흔드는 느낌이다. 제 자리에 서서 뱅글뱅글 돌다가 전력 질주 하는 느낌이다. 당연히 속이 안 좋지.

"그 공간 이동으로 오스왈츠 백작령까지는 못 가나요?"

내 질문에 마법사는 고개를 젓는다.

"제가 한  가  곳 밖에  가요."

아쉽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마법사는 내가 주저앉은 김에 점심을 해결하자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나란히 앉아 말린 생선을 씹는 중. 마법사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지만, 배가 고픈 나는 어떻게든 이 비린 생선을 목으로 넘긴다. 어떻게 말린 건지 생선의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씹을 때마다 물 냄새가 입안 가득히 퍼진다. 진짜 맛없다.

허기만 가시게 하는 식사가 끝이 났다. 문제는 없다. 빠르게 처리하고 저녁은 제대로 된 식당에서 해결할 거다. 내가 먹기를 그만두자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요정 잡이를 시작해보죠."

"그래서 그게 뭐예요?"


맞다. 이 인간 기초 상식이 부족했지. 설명해줘야겠지? 귀찮지만, 요정 잡이는 마법사만  수 있는 일이다. 일할 당사자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면 곤란하지.

"요정 잡이는 맥발라의 전설에서 기원해요. 연극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한 전설이에요."


마법사에게 전설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말해준다. 맥발라에 한 못생긴 소녀가 살았다. 지방에 따라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꼽추에, 곰보에, 머리카락은  빠져있다고 한다. 정말 못생겼겠다. 마법사도 소녀의 모습을 상상했는지 얼굴을 찌푸린다.


그 소녀가 자라서 혼기가 가득 찼다. 당연하게도 그런 못생긴 소녀를 쉽게 데려갈 남자는 없었다. 소녀는 자신의 외모에 비관하며 맥발라 숲에 들어갔다. 튼튼한 밧줄을 가지고. 나뭇가지에 밧줄을 걸고 목을 매려는 찰나. 소녀의 눈앞에 요정이 나타난다.


"잠깐. 진짜로 요정이 있어요?"


마법사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본다.

"설마 있겠어요?"


"없구나."

마법사의 표정에 실망감이 드러난다. 요정이 있다고 믿었다니. 어린애 같아, 어찌 되었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요정은 소녀의 소원을 물었다. 소녀는 아름다워지는 것을 원했다. 요정은 요정가루를 소녀에게 뿌려주고, 소녀는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아름다워진 소녀는 잘생긴 마을 청년을 잡아 시집을 갔단다. 여기서 끝나면 동화가 아니지.

소녀는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청년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외모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바라는 것도 많지.  같으면 그냥 만족하고 살았다. 소녀는 다시 숲에 가서 요정을 찾았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청년이 자신의 원래 모습을 보고도 사랑해주기를 바라면서.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녀의 원래 모습을 사랑해주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마법사는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 이야기랑 요정 잡이랑  상관이에요?"

"요정 가루라는  실제로 있어요."


"요정은 없다면서요."

정말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마법사가 되었을까. 그것도 그렇게 강한 마법사가. 어찌 되었든 찾는 건 이 사람이니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요정 가루라는 건 버섯의 일종이에요. 맥발라 숲에서만 나오고, 전설에 나온 것처럼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주지요. 많은 귀족이 원하는 선물이에요. 맥발라의 특산품이고."

대충 이해한 것인지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대로 이해한 거면 좋을 텐데. 믿을  이 사람밖에 없다.


"그럼 그 버섯을 찾으면 되는 거에요?"

"네. 하나에 150 트리탄 은화로 정가 구매 하고 있어요."


마법사가 고개를 기울인다. 설마 화폐 단위도 모르는 건가. 얼마나 상식이 부족한 거냐 이 사람은. 버섯을 채취하는 데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자. 일일이 설명해주기에는 너무 바쁘다.

"그런데 시청에서는 뭘 작성한 거에요?"

마법사는 궁금한 것도  많다. 그리고 상식이 부족하지. 이런 걸 묻는 걸 보면 글자도 못 읽나 보다. 마법사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만 더 강해진다. 덤으로 이 인간은 궁금한 건 해결해야 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이 점은 나랑 비슷하네.


"그냥 계약서  거에요. 발견한 요정 가루는 전부 맥발라 시에서 일괄 구매한다."


"그렇구나."


"알겠으면 얼른 찾기 시작하죠."


"그 버섯은 어떻게 생긴 거에요?"

"몰라요."

"네?"

마법사가  소리냐는 눈빛을 보낸다. 모른다는 것은 사실. 요정 가루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마법사만이 요정 가루를 찾을 수 있다. 아마 전설 속의 요정도 지나가던 마법사였겠지. 내 설명을 들은 마법사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일단   찾아볼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마법사가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푼다. 내가 따라간다고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 상식이 부족한 인간을 숲에 풀어놓을 수는 없다. 독이 있는 열매 같은 걸 주워 먹을  같단 말이지. 그러므로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일어난 것을  마법사는 나무 사이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뭐 알고 가시는 거에요?"


솔직히 불안하다. 내가 제시한 방법이긴 하지만, 나도 마법사가 요정 가루를 채취할  있다는 말만 들었다. 요정 가루를  적은 없다. 들어가 있는 물품은 자주 쓰지만. 솔직히 도박에 가까운 방법이다. 만약 마법사가 요정 가루를 채취하지 못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알 거 같아요."

표정은 자신만만. 그래도  믿겠다. 지금이 만난 지 이틀째이지만, 마법사는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못 주는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내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니. 사람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가끔 든단 말이지.

마법사는 땅을 세심히 살피며 걸어간다. 땅만 바라보며 걷는 주제에 낮게 내려온 나뭇가지에 얻어맞는 일이 없다. 나는 눈높이의 나뭇가지를 치워내며 마법사를 따라간다.


"찾았다. 이래서 요정 가루구나."


진짜로? 아무것도  보이는데? 마법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는다. 무언가를 움켜쥐는 손동작. 연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법사는 손에 힘을 주더니 뭔가를 때어낸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마법사는 손에 무언가를 쥔 채로 뒤를 돌아 나에게 보여준다. 그래 봐야 나에게는 안 보이지만. 마법사와 눈이 마주친다.

"정말 안 보여요?"

"네. 정말  보여요."

"이러면 보일 지도? 가시화."


주문이 끝나자 마법사의 손안에 무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는 갈색의 무언가. 버섯이라고 하기에는 모양도 보이는 질감도 특이하다. 마법사를 바라본다. 마법사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이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어떻게 찾은 거에요?"

"기본적인···? 마법 중에 마력 탐지가 있어요. 그걸 사용하니까 반짝반짝 빛나더라고요."


중간의 의문문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말자. 저 사람에게 질문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중요한 건 마법사가 요정 가루를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은 걱정  해도 되겠네. 다행이다. 일단 옷을 좀 사고,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잠도 자야지. 욕조에서 씻을  있겠지? 돌아간 다음이 기대된다.


"하나로는 모자랄 테니 해가 질 때까지 채취합시다."

"잘 따라오기나 하세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인지 원. 마법사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걷는다. 아까는 땅만 보며 걷더니 이번에는 고개가 약간 올라가 있다. 그러면서도 발밑의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저것도 마법인가? 아니면 그냥 감각이 좋은 건가.


마법사는 걷다가 멈춰 손을 뻗고 무언가를 딴다. 나에게 보여주지는 않고 어딘가로 집어넣는다. 어디다가 넣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등 뒤에 집어넣는 시늉만 하는 것을 보인다. 건조식품도 손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저것도 마법의 일종이겠지. 너무 궁금해하지 말자.


"이 근처에서는 거의  거 같아요."

"몇 개예요?"


"다섯 개요."

750 트리탄 은화. 영지의 여관이 일주일에 100 트리탄 은화.  정도면 넉넉하겠네. 그래도 만약을 준비하는 것은 좋은 자세다.


"열 개 딱 채우고 갈까요?"

"좀 시간은 걸릴 겁니다."


"남는 게 시간이죠. 뭐."


마법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딘가로 걸어나간다. 확신에 찬 발걸음. 정확한 위치를 아는 듯이 걸어간다. 발밑을 조심하며 마법사를 따라 걷는다. 숲길을 앞서 걸어가던 마법사가 갑자기 멈춘다. 손을 뻗지도 않는다. 요정 날개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럼 뭐 때문이지?


앞쪽의 수풀이 움직인다. 드리고 보니 숲에 들어와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토끼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도 못 봤다. 집채만 한 늑대는 보았지만. 조금 긴장이 된다. 마법사의 손에 작은 불덩이가 생겨난다. 수풀의 부스럭거림이 더 심해진다.

"나오지 않으면 던진다."

수풀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고 한 사람이 양손을 들어 올리고 나온다.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 삐쩍 마른 몸. 무지개색의 망토를 걸친 남자. 좋게 봐줘도 부랑자다.

"좋아. 항복.  불덩이는 내려줄래?"


바로 반말?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마법사는 곧 손 위의 불덩이를 사라지게 한다. 부랑자는 한숨을 쉬며 양손을 내린다.


"당신 마법사지?"

"일단은."


마법사의 질문에 부랑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쪽도 마법사? 마법사라는  이렇게 흔한 거였나. 납치되었더니 구해준 것도 마법사, 숲 속에 있던 부랑자도 마법사. 세계에는 마법사가 참 많구나.

부랑자 마법사는 마법사를 보고 미소를 보인다. 마법사는 뒷모습만 보고 있어서 표정은 잘 모르겠다. 분위기로 봤을 때 좋아 보이지는 않네. 그나저나 둘 다 마법사니 부르기가 불편하다. 이름을 빨리 알아야지. 앞으로 보름은 더 같이 다녀야 하는데 마법사님이라고만 부르기는 뭣 하잖아.

어쨌든 두 마법사는 서로를 바라본다. 부랑자 쪽은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나와 같이 다닌 쪽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을 거다. 아마도.

"그나저나 당신도 요정 가루 채집?"

부랑자 마법사는 너무나 친근하게 질문을 던진다. 다른 사람이 보면 10년은 알고 지낸 사이라 착각하겠네. 나랑 같이 다닌 쪽은 한숨을 쉰다. 그게 느껴진다.


"나도 요정 가루를 채집하는데 같이 다닐래?"

와. 뻔뻔해. 저런 것도 능력이다. 마법사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내 의견을 묻는 거다. 같이 다닌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냥 싫다. 고개를 저어 내 의견을 전달한다.

"싫다."

"아쉽네. 그럼 잘 가."


부랑자는 손을 흔들고 등을 돌려 숲으로 들어간다. 마법사도 그런 행동에 당황한 것 같다.

"저희도 계속 움직이죠."

"네. 그게 좋겠어요."

우리는 부랑자와 반대편으로 움직인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저녁은 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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