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013. 1막 3장 - 작은 마을, 거대한 늑대 (4) / Unknown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늑대는 입에 누군가의 팔을 물고 있다. 입 안쪽에서 뻗어나온 팔. 그 팔의 주인은 생명을 잃었을 것이 분명하다. 늑대 또한 나를 봤는지 입에 물고 있던 고기를 삼키고 나를 노려본다. 늑대의 눈동자는 붉디붉다.
"생각보다 많이 큰데?"
숲에서 잡았던 늑대보다 크다. 마법 한 번에 쓰러지지는 않을 거 같다. 문제가 또 하나 있다면, 아까까지 진정한 꿈의 세계를 사용했기에 마나도 충분한 편은 아니다. 그래 봐야 늑대한테 지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한 번에 끝내면 재미없잖아.
"덤벼라. 똥개야."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늑대가 낮게 울부짖으며 나에게 달려든다.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하며. 이빨에는 피와 누군가의 살점도 남아있다. 손을 들어 올리고 마법을 사용한다.
"대지의 장벽."
땅이 치솟아 오른다. 달려들던 늑대의 턱을 치고 올라간다. 공격하는 용도의 마법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은 가능하지. 턱을 강하게 얻어맞은 늑대는 뒤로 펄쩍 뛰어 물러선다. 흙 너머로 보이는 늑대의 눈빛이 변했다. 나를 명백히 적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난 언제 동물의 눈빛까지 읽게 되었나. 고민은 나중에 하자.
솟아올랐던 흙이 내려앉는다. 늑대는 땅을 긁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발톱은 땅에 큰 상처를 입힌다. 땅이 신음한다. 늑대는 땅을 박차며 나에게 날아든다. 손을 뻗고, 목표를 노리고, 마법을 사용한다.
"얼음 창."
손끝에서 생성된 얼음의 창은 공중에 떠 있는 늑대를 향해 날아간다. 하늘을 날고 있는 늑대에게 날개는 없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얼음의 창을 피할 수 없다는 말.
은 나의 착각이었다. 늑대는 날아드는 얼음 창을 보고 몸을 뒤틀며 피해낸다. 허리가 상당히 유연하다. 빠르게 날아간 얼음 창을 피한 늑대는 그 자리에 착지한다. 착지하기가 무섭게 다시 나에게 달려든다.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네 발을 동시에 땅에서 떼지 않는다. 귀찮은 녀석.
갯과 동물을 공격할 때는 머리를 노리지 말고 발을 노려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렇다. 달려드는 놈의 앞발을 노리고 번개를 쏘아낸다. 늑대는 번개가 날아가기 전에 방향을 튼다. 번개는 땅바닥을 때리고 흙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늑대는 내 손가락에서 마법이 나가는 걸 이해했다. 그리고 그건 쓸모없는 정보지.
"번개 창 난사."
주변으로 번개의 창이 나타난다. 파직 거리며 푸른 섬광을 뿜어대는 창. 늑대는 달려오던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노려본다. 움직이면서 피하는 건 어렵다고 느낀 거겠지. 늑대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다. 내가 먼저 공격하기 전에는 가만히 있겠지. 그렇다면 움직여 줘야지.
"발사."
주변에 떠 있던 번개의 창들이 쇄도한다. 늑대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번개의 창들을 피해낸다. 동체 시력이 상당히 좋군. 만들어낸 모든 번개를 쏘아냈다. 늑대는 대지를 할퀴며 나를 향해 달려온다. 재미는 볼 만큼 봤다. 이제 슬슬 처리하자.
"가져오기. 흑철 대검."
양손으로 들기에도 버거운 크기의 거대한 검 한 자루. 검신부터 손잡이까지 하나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검은 대검. 달려오는 늑대의 움직임에 맞추어 크게 휘두른다. 흑색의 검신이 밤을 가로지른다. 검은 털의 늑대를 두 동강 내기 위해.
계획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 나를 향해 달려오던 늑대는 검이 제대로 휘둘러지기도 전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내 위를 넘어간다. 고개를 들어 늑대의 배를 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늑대는 가볍게 내 뒤쪽으로 착지한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간다. 저 방향에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
"귀찮아지네."
마을 사람들은 이 크기의 늑대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만약 저 녀석이 마을 사람들을 공격한다면, 그 사람들은 무참하게 살해당할 뿐. 놈도 그것을 알고 있다. 나와 싸우는 것보다 뒤쪽의 인간들을 노리는 게 쉽다는 것을. 좋은 선택이다. 효율적이기도 하고. 보내줄 생각은 없지만.
들고 있던 흑철 대검을 땅에 꽂아 넣는다. 돌아보지도 않고 달려가는 늑대를 향해 손을 뻗는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의 움직임에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도망간다. 창으로 무장하고 늑대를 잡으러 간다는 사람들은 다 죽었나. 겁 없게도 마법사를 습격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 행동들뿐이다.
"어둠의 족쇄."
손에서 검은 사슬이 날아가 늑대의 발을 묶는다. 길게 늘어진 사슬을 붙잡고 강하게 잡아당긴다. 달려가던 늑대는 발이 붙잡히자 그대로 넘어진다. 늑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바닥에 넘어진 늑대는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질질 끌려온다. 발버둥을 치지만, 어둠의 족쇄는 착용 대상의 근력을 시전자의 마력 수치에 비례하여 낮춘다. 내 마력 수치야 UMO 내에서 1등이었고.
땅을 긁으며 저항하는 늑대가 내 앞까지 끌려온다. 한 손을 사슬을 붙잡고 반대 손으로 대검을 들어 올린다. 그대로 내리치며 늑대의 머리를 베어낸다.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피는 흙을 적신다. 밤은 붉게 물든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네."
살아있는 생명을 베었다는 감각이 손에 전해진다. 고기를 썰어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것과는 다른 기분이겠지. 이곳이 또 다른 현실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검에 묻은 피를 얼른 털어낸다. 흑철 대검은 물품 창에 다시 집어넣는다. 늑대의 사체는 마법으로 깔끔하게 태워 버린다. 제조차 남지 않게. 늑대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
강한 열기로 그을린 땅을 등지고 얼어붙어 있는 사람들에게 걸어간다. 늑대가 죽은 후로 마을 사람들은 도망가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다. 나의 움직임을 눈동자에 담으며. 침을 삼키고 내가 걸어오기만을 기다린다.
사람들을 바라본다. 굳어버린 눈동자. 공포에 잠긴 눈동자. 저들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저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마치 악마.
"얼른 물건을 가져와라!"
"네!"
촌장이 청년들에게 명령한다. 나를 지나치며 창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남자들. 나를 피해서, 최대한 멀리 피해서 가는 그들의 눈에는 공포가 담겨 있다. 나에 대한 거부감이 담겨 있다. 생리적으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눈빛들이 너무나 싫다. 나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눈빛.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저들은 나를 규정하려 한다.
사람들의 중앙에 멈춰 선다. 모두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로 두려움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낸다. 나도 모르게 이를 갈기 시작했다. 그만두자. 사람들이 무서워한다.
"마법사님. 혹시 필요하신 거라도?"
촌장이 몸을 낮게 숙이며 다가온다. 걸음걸음마다 몸이 덜덜 떨린다. 보는 이가 안쓰러울 정도. 이전에도 나를 보는 시선에 두려움이 있기는 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대하는 두려움이. 언제든 자기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을 대하는 두려움이. 지금은. 나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보기에 두려워한다. 나를 악마로 본다. 나를 괴물로 본다. 나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본다.
나도 모르게 또 이를 갈기 시작했다. 이런 버릇 없었는데. 촌장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나와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겠군.
"가져왔습니다."
청년 다섯이 등에 지고 있는 물건들을 내려놓는다. 내 앞에 상당한 양의 물건들이 쌓인다. 딱 봐도 쓸모없는 잡동사니가 대부분.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공포에 절어버린 눈으로. 이것들을 거절하면 더 무서워하겠지. 대충 빠르게 필요한 것만 골라내자.
마법으로 물건들을 전부 공중에 띄운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내 행동거지를 바라본다. 눈동자에 놀라움은 없다. 오직 공포. 또 이를 갈았다. 치아 건강에 좋지 않다.
공중에 떠오른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역시나 잡동사니들. 이런 걸 왜 창고에 모셔두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빨 빠진 검. 낡아 버린 방패. 빛바랜 보석. 감정 마법으로 살펴도 쓸만한 건 없다. 어쩔 수 없다. 공중에 들어 올린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내가 물건을 고르지 않자,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해간다. 좋지 않다.
"별로 필요한 것이 없군요.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분명 친절하게 말했다. 밝게 웃으며 말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몸을 떨고 있는 것일까.
"얼른 준비하겠습니다!"
촌장이 크게 소리치며 손짓으로 마을 사람들을 부린다. 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공포를 원동력으로. 금방 내 앞에 천 조각으로 쌓인 무언가가 잔뜩 놓였다. 아마 건조식품 정도? 내용물을 여기서 확인하는 건 좋지 않겠지. 땅에 놓인 것들을 집어 든다. 물품 창에 집어넣어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될 거 같다.
"보관."
손에 들고 있던 물품들이 사라진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하나 확실하게 물품 창에 보관한다. 내 앞에 놓인 모든 물건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약간의 안도감을 표한다.
"저기 마법사님."
멀찍이 떨어져 있던 촌장이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다가온다. 눈에는 긴장감이 한가득. 내가 얼른 떠났으면 좋겠나 보다. 나도 여기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다.
"내일 아침. 동이 트면 떠날 겁니다."
내 말에 작은 한숨들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간다. 안도의 한숨. 또 이를 갈고 있다. 욕지거리가 치민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속으로 씹어 삼킬 뿐.
"자. 볼일은 끝났으니, 모두 돌아가시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린다. 왜? 내가 무서워서? 너무 싫다. 이런 건.
"제 말 안 들립니까? 얼른 꺼지세요."
나도 모르게 강하게 말해버렸다. 별로 좋지 않은 행동이다.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마을의 작은 광장에는 나 혼자만이 남아있다. 방으로 돌아가자. 침대에 누워버리자. 모든 것을 잊고, 빠르게 떠나버리자.
열려있는 창문이 보인다. 내려올 때는 저기로 내려왔지. 지금은 마법을 쓸 기분이 아니다. 그냥, 걸어 올라가자.
아무도 없는 빈집. 촌장은 아내와 함께 다른 집으로 옮겨 갔다. 그렇겠지. 나처럼 무서운 사람과 한 지붕이라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간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글린다는 아무것도 모른 체 곤히 잠들어 있다. 부럽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이런 공포 어린 시선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침대에 눕는다. 절대 편하다고 말 못 할 침대. 불편하고 삐걱거리는 침대. 잠이 오지 않는다. 아예 피곤하지도 않다. 배고프지도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이 가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인간일까? 역시나 잠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