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010. 1막 3장 - 작은 마을, 거대한 늑대 (1) / Unknown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양치기 소년은 크게 소리쳤습니다. 하지민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거짓말쟁이란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양 떼를 습격한 거대한 늑대는 양들을 모두 잡아먹었습니다. 아직 배가 고픈 늑대는 양치기 소년까지 꿀꺽 삼켰답니다.
- 동화, `양치기 소년` 마지막 부분 줄거리 -
해는 완전히 사라졌다. 숲은 깊은 어둠에 휩싸였다. 빛 한점 없는 캄캄한 밤. 이런 어둠 속에서 길도 나 있지 않은 숲을 걷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마법을 썼지.
"사기야. 사기야. 사기야. 이건 완전히 사기야."
글린다는 머리 위에 떠서 우리의 발밑을 비춰주는 빛 덩어리를 보며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광명 마법. 언제나 유용하게 쓰이는 마법이지. 글린다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마음에 들므로 신경 쓰지 말자고.
낮에 본 늑대가 습격할까 걱정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글린다와 나는 별다른 대화 없이 숲길을 계속 걸었다.
"저기! 빛이 보여요!"
나무들 사이로 불빛이 보인다. 글린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불빛을 향해 달려간다. 앞서 달려가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 나를 행해 손을 흔든다. 아무리 봐도 흥분 상태다.
"마법사님! 얼른 오세요!"
글린다는 나를 마법사님이라고 부른다. 이름을 모르니 직업으로 부르는 거다. 지구에서도 경찰관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니 이상하지는 않다.
글린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내가 곁에 올 때까지 기다렸던 글린다는 곧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나도 적당히 글린다의 보폭에 맞추어 걷는다.
불빛이 점점 가까워진다. 앞서 걸어가던 글린다가 멈춰 선다. 글린다의 발 앞에는 세차게 흐르는 강이 있다. 다리는 다른 곳에 있나?
"다리를 찾죠."
글린다는 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걷는다.
"다리 찾을 필요 없어요."
움직이던 글린다의 다리가 멈춘다. 그대로 뒤로 돌아 나를 향해 걸어온다. 실제로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쿵쿵쿵을 의성어로 써야 할 모습. 말 그대로 위압감이 넘쳐흐른다.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내 앞까지 다가온 글린다는 눈을 치켜세우고 나를 노려본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확실하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대답한다.
"어. 다리 안 찾아도 건널 수 있어요."
"그걸 왜 지금 말하세요?"
"글쎄요?"
글린다는 깊은 한숨을 쉰다. 마른세수를 하고 나를 노려본다.
"그럼 빨리 건너가죠. 뭐 하고 계세요?"
와. 성격 봐. 이걸 걸고 넘어가면 싸울 거다. 그리고 내가 질 게 뻔해. 빨리 넘어가자.
"수면 보행."
이름 그대로 물 위를 걷게 해주는 마법. 유용한 마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비행을 사용하거나 공간 이동을 쓰지.
발밑에 작고 투명한 원판이 생겨난다. 글린다는 자기 발밑을 보고 뭔가 중얼거린다. 들리진 않지만 뭐라고 할지 알겠다. 이건 사기야.
"얼른 건너가죠."
강 위에 발을 올린다. 힘을 살짝 주자 몸이 물 위에 떠오른다. 그냥 땅을 밟은 느낌. 멀리 있는 불빛을 향해 걸어간다.
"뭔가. 평범하네요."
글린다가 강 위를 걸어온다. 뭔가 특별한 걸 기대한 것 같다. 물 위에 서서 글린다가 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불안한지 계속 흐르는 강을 보면서도 멈추지 않고 걸어온다. 긴장했는지 얼굴색이 약간 창백하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긴장을 풀었으면 좋겠다. 강이 흐르는 발밑을 보지 않고 걸어간다. 글린다의 보폭을 맞추어 천천히. 아주 넓은 강은 아니었기에 금방 건너편에 도착했다.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마법이 사라졌다. 원래 이런 마법이다. 글린다는 그것에 놀람을 표한다.
"이제 다 왔네요."
불빛은 충분히 가까워졌다. 형체가 분간될 정도의 거리. 저 불빛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다. 숫자는 스물이 넘어간다.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횃불의 수가. 사람들은 전부 기다란 무언가를 들고 있다. 창인가?
"오십 명 정도?"
그세 사람들의 수를 셌는지 글린다가 중얼거린다. 창으로 무장한 사람이 오십. 복장으로 보았을 때 병사들은 아니다. 허름하고 해어진 옷. 저런 사람들이 무장하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나와 글린다는 서로 눈을 마주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눈빛. 결론. 일단 숨는다.
"어둠의 장막."
주변의 어둠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머리 위에 떠 있는 빛의 구체마저 삼킬 정도의 짙은 어둠. 낮에 사용할 마법은 아니지만, 밤이라면 효과는 뛰어나지.
"역시 마법사는 사기야."
아. 예. 그러시군요. 나와 함께 어둠 속에 몸을 감춘 글린다가 중얼거린다. 숨었으면 된 거지 뭐가 불만인 거냐.
"들려오는 목소리."
숨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번에 사용한 마법은 멀리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법. 마법이 발동하고 잠시 뒤, 내 귀에 말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로 괜찮을까?"
겁먹은 목소리.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숫자가 오십이야. 설마 문제가 있겠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마찬가지.
"그래 봐야 늑대다. 사람의 지혜로 무찌르면 문제없어."
자신감을 느끼고 있는 목소리. 이 사람은 자신의 승리를 믿고 있다. 그나저나 늑대라. 낮에 봤던 크기의 늑대라면 일반인 오십으로는 힘들지도.
"그거 집보다 크던데···. 정말 괜찮을까?"
"집보다 크긴. 그냥 잘 못 본 거라니까."
잘못 본 게 아닐 거다. 내가 감히 장담하지. 그 늑대는 실제로 집보다 클 거다.
"어떻게 할까요?"
"네? 뭐가요?"
아.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에게만 적용된다. 글린다는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짧게 저 사람들이 나눈 대화를 설명한다. 거대한 늑대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 글린다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연다.
"도와주죠. 빛을 지워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광명 해체. 어둠의 장막 해체. 들려오는 목소리 해체."
작용하는 마법을 전부 취소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마법을 쓰고 가면 경계를 사겠지.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닐 거다.
횃불을 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간다. 글린다는 내 뒤를 반짝 따라온다. 저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숨긴다는 듯이.
"누구냐!"
발소리를 들은 것인지 몇 명의 남자가 내 쪽으로 횃불을 들이민다. 표정에서는 경계심이 역력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횃불이 비추는 곳으로 걸어간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긴장이 조금 사라졌다. 사람이라 안심한 것인가?
"안녕하세요?"
이쪽의 인사 예절은 잘 모른다. 하지만 웃는 낯에 침은 못 뱉겠지. 최대한 온화하고 선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글린다는 아직 내 뒤에 숨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퍼져나간다. 인파를 헤치고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이 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이 무리의 지도자 정도 되겠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이 존댓말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 분명 아이작의 신체 나이는 스물둘. 맨 처음 아이작을 만들었을 당시의 나보다 조금 많은 나이. 저 사람은 딱 봐도 마흔은 넘었다. 그런 사람이 존댓말을 하니 기분이 좀···.
"어. 저는 지나가는 마법사입니다."
나를 소개하기에 마법사라는 단어만큼 적당한 건 없을 거다. 일단 이름으로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마법사라고 말하자 사람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커진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변화한다. 주로 처음 보는 존재에 대한 신기함과 약간의 공포.
눈동자를 읽는 방법은 지난 10년간 병실 생활을 통해 배웠다. 김현은 절대 나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 몸 상태가 어떤지, 기대 수명이 얼마인지. 오직 괜찮아지고 있다는 거짓말뿐. 그 거짓말에는 가족들도 동참했다.
나는 내가 괜찮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괜찮지 않은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어야 했다. 말투를 읽어야 했다. 상태가 정말로 호전 된 건지, 나빠지고 있는 건지. 오직 눈동자와 표정만으로 꿰뚫고 있었다.
"마법사님 꼐서 이런 곳에는 웬일이십니까?"
나를 향해 질문하는 중년 남성의 말에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 세계에서 마법사는 두려움을 사는 존재인가. 나중에는 마법사라고 밝히는 건 자제하도록 하자.
"그냥 지나가는 길 이였습니다만···. 여러분들은 뭔가 문제가 있나 보군요?"
그저 단순한 질문이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가 퍼져나간다. 뒷걸음질 쳐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려는 사람도 보인다.
"조용!"
나와 대화하던 남성이 창대로 바닥을 친다.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그 동작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고요함이 이곳을 채운다.
"마법사님 뒤쪽에 계신 분은?"
글린다가 내 옷을 잡는다. 들켰구나. 하긴 안 들키는 게 더 신기하지.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길 가다가 주었습니다? 웃기는 표현이군.
"여동생이에요."
뒤쪽의 글린다가 말한다. 예정에 없던 여동생이 생겨 버렸군. 글린다가 머뭇거리며 내 뒤에서 나온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바라본다. 숲에서 자신을 납치한 남자를 고문하던 글린다가 만자 의문이 든다. 글린다가 살짝 고개를 틀어 나를 본다. 눈빛이 날카롭다.
알겠다. 글린다는 연기 중이다. 자신을 숨기고, 마법사의 순진한 여동생의 역할을 자처한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제 여동생입니다."
연기 중이라면 맞춰줘야지. 나도 연기라면 자신 있다. 가족들에게 언제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연기력은 필수지.
"아 그렇군요."
역겹다. 글린다를 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변한다. 드러나는 것은 욕망. 아주 추잡하고 더럽고 역겨운 그것. 그래도 웃어 보이자. 나를 숨기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것이 적의라면 더욱더.
"촌장님."
뒤쪽에 서 있던 남자가 내 앞에 있던 사람의 어깨를 붙잡는다. 저 사람이 촌장인가. 내 머릿속의 촌장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노인인데. 여기의 촌장은 상당히 젊네. 두 사람은 귓속말로 잠시 속닥거린다. 눈동자가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알린다. 엄청나게 수상쩍은 계획을 짜고 있군. 들려오는 목소리를 사용하고 올 걸 그랬나.
두 사람은 이야기를 끝낸다. 촌장이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혹시 저희를 조금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커다란 늑대가 마을을 습격해서 말이죠."
원래 도와주려고 하기는 했다만,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 저런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별로 좋지 않지.
글린다가 살짝 옆구리를 친다. 저들을 도와주라고 말한다. 뭔가 계획이 있는 거 같으니 한번 속는 셈 치고 넘어가 주자.
"좋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대가를 받을 겁니다."
내가 내민 손을 촌장이 마주 잡는다. 좋아. 악수라는 개념은 있는 거군. 촌장의 손이 끈적하니 기분이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