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003. 1막 1장 - 이유진 또는 아이작 (1) / 李有盡 (3/65)



〈 3화 〉003. 1막 1장 - 이유진 또는 아이작 (1) / 李有盡



결국 삶이란 죽음과 걷는 것
죽음은, 나의 곁을 걷는다

- 시, `죽음은 나의 곁을 걷는다`  발췌 -




"콜록. 콜록."

잔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전신 거울을 바라본다. 입가 주변에 피가 묻어 있다. 새어 나오는 기침을 손으로 막는다. 손에 뜨거운 것이 잡힌다. 입가에서 때어낸 손에는 한 움큼의 핏물이 잡힌다.

"젠장."

코에서도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오른손으로 코를 막으며 침대에 달린 호출 버튼을 누른다. 문밖에서 울리는 비상음을 들린다. 이제 곧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오겠지.

다리에 힘이 풀린다. 쓰러지듯 침대에 걸터앉는다. 코에서는 계속 피가 흐른다. 쉬지 않고.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저 멀리 검은 옷을 입은 해골이 나에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이유진!"

내 이름을 외치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성. 내 주치의인 김현.  뒤를 따라온 하얀 가운의 의사무리.

"아. 피가 좀 나가지고."

잔뜩 당황하며 들어온 사람들에게 피가 잔뜩 묻은 손을 흔들어 보인다. 점점 눈이 침침해진다. 아 또 기절인가.

몸이 서서히 기운다. 침대가 내 몸을 받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는다.





꿈을 꾼다. 아주 어릴 적 꿈. 내가 죽음과 동행한다고 믿지 않았을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 누나와 즐겁게 뛰어놀던 꿈.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 발밑에 밟히는 초록의 풀들. 그리고 나는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나의 유전자에는 사망 스위치가 있었다. 그것이 켜진 것이다.

내가 보인다. 지금의 모습을 한 내가 과거의 모습을  나를 바라본다. 풀밭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나. 가족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온다.

장면이 바뀐다. 나는 조금 더 커졌고 침대에 누워있다. 1년쯤  건가?  때의 나는 나에게 주어진 죽음이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벗어나고자 온종일 울었을 뿐이지.

다시 장면이 바뀐다.  병실에 기계 한 대가 놓인다.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준 물건.  때문에 밖을 나갈  없는 나에게 밖을 보여준 물건. 가상현실 구동장치 VARAMOA.

바라모아라고 읽는 이 기계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바라모아를 통해 나는 병실을 벗어났다.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 바라모아의 세 번째 버전이 나오고 UMO가 출시되었다. 열아홉이었을 거다. 쓰러진 지는  년이 되었고. UMO가 출시되자마자 게임에 빠져 살았다. 어차피 현실의 삶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 벗어날 때는 잘 때, 먹을 때, 검사와 치료를 받을 때뿐. 그 의외의 시간은 전부 게임 속에서만 지냈다.

다른 사람들이 현실의 삶을 걱정할 때 나는 오직 게임 속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돈을 걱정할  나는 오직 게임 속에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했다. 그 결과 나는 UMO의 랭킹 1위이며, 유일한 퍼펙트 메이지다.

내가 보는 세계가 부서져 간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죽음과 동행하며 걸어갈 시간이다. 다시 고통을 느끼고 절망 속에 허덕이다 게임 속에 들어갈 시간이다.





몸에 덮여있는 이불이 느껴진다. 팔을 뚫고 들어가 있는 바늘이 느껴진다. 내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액체가 느껴진다. 감겼던 눈을 뜨고 불이 꺼져 있는 천장을 바라본다.

"정신이 드냐?"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본다. 하얀 가운을 입은 김현이 나를 보고 있다.

"얼마나 지났어?"

"네 시간 정도."

"심각하지는 않았네."

나와 김현 사이에는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다.

"아버지는?"

"연락 안 했다. 너도 그러길 바랄 거고."

"잘했네."

"저건 언제까지 맞아?"

바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왼손으로 링거를 가리킨다. 김현은  손가락을 따라가다 링거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한 시간은 더 맞아. 너 또 게임 때문에 그러지?"

김현은 내가 게임에만 몰두해 있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을 하는 건 어떠냐고 권유한 건 당신이거든요?"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도 후회한다."

그렇겠지. 단순히 정신 건강을 위해 시작해보라고 한 게임에 내가 이렇게 빠질  나도 몰랐다. 이렇게 누워 있기 전에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쉬고 있어. 때 되면 뽑으러 올게."

김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선다. 이제  방이자 병실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내 몸으로 들어올 수액을 바라본다. 저걸  맞고 있을 시간은 없다. 어차피 맞든 안 맞든 나는 오래 못산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김현은 그다음으로  알고. 내 생명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것이 김현의 목표라면, 내 목표는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에 대한 찬가.

왼손으로 오른팔에 들어간 바늘을 조심스레 뽑아낸다.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기에 수월하게 뽑는다. 창문에 걸린 커튼을 찢어 붕대를 만든다. 팔에서 흐르는 피를 닦고 급조한 붕대로 묶어둔다.

링거줄을 조작해 더는 수액이 나오지 않게 만든다. 아래로 죽 늘어뜨려진 줄을 정리한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방에 설치된 바라모아로 다가간다. 지금의 바라모아는 버전 4. 맨 처음 내 방에 들어왔던 존재에 비하면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냈다. 1 버전에서는 인터넷도 안 되었으니.

버튼을 눌러 뚜껑을 연다. 기기 내부에는 푹신한 의자가 놓여 있다. 침대보다는  하지만 나름 편한 의자다. 안쪽으로 들어가 뚜껑을 덮으려는 찰나. 방의 문이 열리고 김현이 들어온다.

"....."

"....."

"나와."

"네."

김현의 말에 바라모아에서 나와 다시 침대에 눕는다. 김현은 한숨을 쉬며 침대로 걸어온다.

내가 정리해 놓은 링거의 줄을 푼다. 바늘을 잡고 다시 팔뚝에 꽂아 넣는다.

"한 시간. 절대 벗어나지 마."

"알겠습니다."

김현은 끝까지 나를 바라보며 방을 나선다. 이미 한 번 걸렸는데 또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다. 그냥 얌전히 있어야지.

게임을 제외하면 특별히 가지고 있는 취미는 없다. 그냥 누워서 시간이나 보내자.

이 병실에 들어온 지도 15년이 넘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지냈다.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웬만한 것은 전부 가능해진다. 나야 누워 있다 보니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적었지만.

가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몸이지만, 부모님과 형, 누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보러 왔다. 지금은 다들 바빠져서 자주 보기는 힘들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만나지 못한다. 끽해야 의사와 간호사들뿐. 게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유진아!"

내 이름을 부르는 경쾌한 목소리. 미닫이문이 열리고 편한 복장의 여성이 들어온다. 나의 가족. 나의 누나. 이하진.

"누나. 오랜만이네."

"거의 한 달은 못 봤지?"

하진 누나는  달 동안 미국으로 출장을  있었다. 아직은 젊지만, 나름 한 회사의 사장이라 할 일이 산더미다.

누나는 내 팔에 꽂혀있는 링거에 대해서는 일절 물어보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나의 모습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나야 뭐 항상 똑같지."

내 대답에 누나의 얼굴에 잠시 쓸쓸한 빛이 지나간다. 그러나 언제 그랬다는 듯 밝게 웃는다. 가족들은 내 앞에서 항상 웃는다.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쓸쓸해도, 외로워도, 괴롭고 힘들어도 나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마치 그렇게 하면 내가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듯이.

"누나야말로 요즘 바쁘지는 않아?"

"내 걱정은 아직 멀었다. 짜샤."

하진 누나는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머리 안 감아진 지 3일은   같은데.

"그래도 바쁜 건 사실이지. 오늘도 오래는 못 있어."

그렇겠지. 내가  병실에 묶여있는 몸이지만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 바라모아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수 있다. 어디든지.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는 현재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가족들도 덩달아 바쁠 수밖에.

"다른 사람들은?"

"오빠는 무슨 회의 있다고 하고, 아버지는 미국에서 다음 주에나 돌아오셔."

그래서 김현이 아버지에게 연락하지 않았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 남은 시간 동안 내 가족들이 나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절대  앞에서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지만.

"으아. 시간 다 됐다."

누나는 손목시계를 바라보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벌써 가?"

"미안 요즘 진짜 바빠서. 다음에 보자."

"잘 가."

마지막으로 누나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물론 링거가 꽂히지 않은 왼손이다.

"잘 지내."

문 너머에서 하진 누나가 손을 흔든다. 문이 닫힌다. 다시 나 혼자다. 링거에 들어있던 수액은 거의 줄어들었다. 이 줄에서 해방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은 새하얗다. 너무나 새하얗다. 아무런 색채도 모양도 없다. 마치 나의 남은 삶과 같다.

어떠한 색도 칠해지지 않을, 어떠한 모양도 존재하지 않을, 그저 무채색으로 끝나버릴, 나의 인생을 닮았다.

아무런 색도 없이 그저 서서히 스러져갈 나. 나는 그것이 두렵다. 모두가 나를 잊는 것이 두렵다.

가족은 나를 기억하려  것이다. 그래도 지워져 가겠지. 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흐릿하다. 나도 죽는다면 기억에서 지워지겠지.

"누나는 잘 만났냐."

김현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뺄 시간이구나.

"잘 만났지."

내 대답에 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팔에서 바늘을 뽑아낸다. 능숙한 솜씨로 피를 닦아내고 지혈 밴드를 붙여준다.

"이제 끝. 마음대로 놀아라."

할 일을 마친 김현은 그대로 방을 떠난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라모아를 작동시킨다. 안쪽에 있는 의자에 몸을 얹는다. 버튼을 눌러 뚜껑을 내리고 전원을 작동시킨다.

파란색으로 VARAMOA라는 글씨가 나타난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로고가 사라진다. 머리 위에서 헬멧이 내려온다. 얼굴과 머리를 완전히 감싼다

음악이 들려온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나쁘지는 않다.

[VARAMOA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이유진 님.]

단아한 여성의 목소리. 바라모아의 인공지능 바라모아. 제작사의 작명센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참고로 제작사 이름도 바라모아다.

"UMO 가동."

[Ultimate Magic Online을 가동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약간의 부유감. 그리고 떨어지는 느낌. 이제 나는 인간 이유진이 아닌 마법사 아이작이 된다. 또 다른 세상이 나를 기다린다. 그곳에서의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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