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002. 1막 서장 - Ultimate Magic Online / Isaac
여러분이 기대한 바로 그 세계! 마법과 마법이 맞부딪히는 세계! 전투와 모험! 꿈과 사랑! 그 모든 것을 위한 마법! 여러분을 위한 환상의 세계로!
- Ultimate Magic Online 광고 문구 -
Ultimate Magic Online. 통칭 UMO. 아르고스의 회심의 역작.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게임. 이 전에도 MMORPG를 주장하는 가상현실 게임은 있었지만, UMO는 특별했다.
한 번에 1억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서버를 창설했고. 여태까지 쌓아온 기술을 전부 쏟아 부었다. 모회사인 킥터의 자금력까지 끌어다 쓴 대규모 홍보들. 그리고 세계 1위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6년 정도 플레이를 해 본 결과, 확실히 세계 1위가 될 만한 게임이다.
"야! 너 뭔 생각하냐?"
"잡생각이지 뭐."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삼킨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액체가 느껴진다. 워낙 좋은 술이기에 효과가 알림으로 나타나지만, 빠르게 지워낸다.
뱃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실제로도 이런 느낌이겠지.
"지금 네놈 축하하는 자리거든? 근데 너무 뚱한 거 아니야?"
내 어깨를 두드리는 녀석은 오랜 친구. 라고 해도 게임에서만 만나봤다. 이름은 맥컬린. 당연히 본명이 아닌 닉네임이다.
지금 이 자리는 나의 퍼펙트 메이지 전직을 축하하는 자리.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전직과 동시에 모든 유저에게 알림이 갔다고 한다. 내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짓거리를 할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아이작! 여기 좀 봐봐!"
내 캐릭터 명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잠깐의 섬광이 시선을 빼앗는다.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보며 웃는 여성을 바라본다. 내가 속한 길드의 길드장인 유리카쨩. 웃기지만 저게 실제 닉네임이다.
"사진 찍지 마."
팔을 올려 얼굴을 가린다. 난 사진을 찍히는 게 너무 싫다.
"이런 날 사진을 찍지 말라니. 너무하다는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리카쨩은 사진 마법을 취소한다. 나는 그저 술을 홀짝인다.
"자! 모일 사람도 다 모인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멕컬린이 파란 액체가 가득 든 잔을 들고 일어선다. 잔을 들어 올리자 시끄럽던 회장의 조용해진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집중하자 맥컬린이 입을 연다.
"자! 우리 총천연색의 아이작의 퍼펙트 메이지 전직을 축하하며! 구호 준비!"
"구호 준비!"
한목소리로 외치며 잔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 전부 길드 총천연색에 소속된 사람이다. 5년 넘는 창립 멤버부터 갓 들어온 신입까지. 백 명은 족히 넘어가는 사람이 나를 위해 잔을 들었다.
솔직히 우리 길드의 구호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주인공이 뺄 수도 없지. 아까까지 마시던 잔을 들어 올린다.
"우리는 총천연색!"
"모든 삶은 아름다우리!"
맥컬린의 선창에 모두 한목소리로 답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구호. 유리카쨩은 그저 비밀이라고 답할 뿐이다.
각자 든 잔에 담긴 음료는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유리잔들이 책상에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고 다시 시끌벅적한 소리가 퍼져나간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다시 자리에 앉은 멕컬린이 질문을 해온다.
"뭐가?"
"목표했던 망토도 얻었고, 덤으로 숨겨진 직업도 얻었고. 다음에는 뭐 할 거야?"
"글쎄다."
"생각해본 적 없어?"
고개를 젓는다. 사실 내가 뭔갈 계획하고 살아갈 처지도 아니고.
"그러면 다음 패치 준비할래?"
"다음 패치?"
"신대륙이 새로 생긴다는 말이 있어. 우리 말고도 상위 길드들은 이것저것 준비 중이지."
"신대륙이라···."
약간 흥미가 동한다. 그때까지 시간이 되려나.
"일단 알아두고 있으라고. 널 위한 자리는 항상 비워 둘게."
"말이라도 고맙다."
"빈말 아니다. 랭킹 1위를 위한 자리는 언제라도 있다고."
멕컬린은 또 한 잔의 술을 마신다. 엄청 퍼마시는구먼. 분명 현실에서도 만만치 않을 거 같다.
"므아! 아이작!"
누군가 나의 목을 팔로 감싸며 조른다. 눌리는 감각은 있지만,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전투 상태가 아닐 때는 감각이 일부 차단되기 때문이지.
"불편하니까 그만해라."
얼굴을 바짝 붙이고 나를 보며 웃는 이 녀석은 이카야. 마법으로 타오르는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 역시나 총천연색의 일원.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인싸다.
"너 이번 정모에도 안 나오고. 창립 멤버 중 얼굴 안 비춘 사람은 너밖에 없거든?"
"말했잖아. 난 다른 사람이랑 만나는 거 싫어한다고."
그보다는 만날 수가 없는 거지만. 이건 개인적인 부분이라 다른 길드원들에게 말한 적은 없다.
"그래도 우리가 만난 게 6년이 되어가는데. 게임 속에서만 보는 것도 그렇지 않냐?"
"난 유리카쨩이 길드에 불러들일 때부터 그 부분은 명확히 하고 들어갔거든?"
이카야는 혀를 한 번 차고 말을 이어가지 않는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거지. 아키야는 매번 나를 정모에 끌어들이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을 거다. 그게 더 나으니까. 나에게도, 저들에게도.
"그래도 나중에 한 번 보자고!"
이카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자신을 부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저 녀석은 언제나 찾는 사람이 많다. 좀 부담스러운 녀석이지만 일단 나쁜 녀석은 아니니.
또 한 잔의 술을 목으로 넘긴다. 뱃속에서 불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현실에서는 먹을 게 못 된다.
"혼자 마시지 말고."
새로 술을 따르고 잔으로 가는 나의 손을 멕컬린이 잡는다.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고 나서야 잡은 손을 놓아준다.
멕컬린은 잔을 들어 올린다. 살짝 웃으면 그가 든 잔과 내 잔을 부딪친다.
모였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축제의 흔적뿐. 그래 봤자 한 시간 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현실 시간으로는 새벽 한 시. 상당히 늦은 시간. 나야 내일을 살아가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다른 길드원들은 내일의 삶을 위해 침대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이야말로 나의 활동시간이지. 사실 시간대가 다른 외국인들은 득실거리지만.
"공간 이동. 목표 지점. 가을의 대지."
눈에 보이던 회장의 모습이 사라지고 오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산이 나타난다. 현재까지 밝혀진 최고 레벨의 사냥터 가을의 대지. 내 레벨에 맞는 사냥터는 이곳밖에 없다. 신대륙에 가면 더 높은 레벨의 사냥터가 있겠지. 그런데 내가 그때까지 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잡생각은 지워버리자고."
우울한 생각은 몸에 좋지 않다. 의사도 말했지. 오래 살고 싶으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무차별적인 사냥만큼 우울함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벗어날 수 없는 눈동자."
미니 맵이 나타나는 시야 오른쪽 하단에 빨간 점들이 나타난다. 마법으로 찾아낸 몬스터들의 흔적. 이제 사냥의 시간이다.
"대규모 매혹."
내 몸을 중심으로 분홍빛 원이 퍼져나간다. 미니 맵의 붉은 점들이 움직인다. 나를 향해서.
"유성 낙하."
원래 사냥용 마법은 아니지만, 효과는 끝내준다. 이 자리에서 버티기만 하면 나에게 다가오는 저 존재들은 전부 죽는 거다.
남아 있는 마나 수치를 확인한다. 망토에 담긴 효율 증가 덕분에 사용되는 마나가 줄어들었다. 역시 게임은 아이템 빨이야.
"공간 왜곡. 마법 방어. 수호 의지."
남아 있는 마나 내에서 사용 가능한 방어 마법을 사용한다. 숲의 나무들을 가르고 두 다리로 선 사슴같이 생긴 존재들이 나타난다. 가을의 대지의 대표적인 몬스터 가을의 두르이드.
뿔로 들이받는 공격과 각종 원소 마법들을 주 무기로 활용한다. 수십 마리가 나를 둘러쌌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칼라고라를 잡기 전부터 이 정도 숫자는 쉽게 잡아 왔다.
"어머니의 대지에 침입한 적에게 죽음을!"
불꽃, 번개, 얼음 등등의 마법들이 나에게 날아온다. 공간 왜곡으로 약화된 마법들은 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못한다. 여유롭게 허리띠에서 물약을 꺼내 마신다. 이번에는 딸기 맛이다.
마나가 충분히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체력이 조금씩 깎여간다. 최대 체력의 사 분의 일이 줄어들었다. 마나는 절반을 넘게 차올랐고.
"영혼 단지 개방."
내 어깨 위에 하늘색의 항아리가 생겨난다. 내가 죽인 적들의 영혼을 수집하는 마법. 이것 자체로는 다른 효과는 없지만, 다른 마법과 연계하기 위한 디딤발이다.
"인간을 죽여라!"
"아 진짜 시끄럽게."
다시 나에게 마법들이 날아든다. 여태까지는 맞아 줬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거다.
"죽은 자의 손."
놈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손을 뻗는다. 가을의 두르이드들이 서 있는 땅이 검게 물든다. 검게 물든 땅에서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이 튀어나와 그들의 다리를 잡는다. 떨쳐내려고 버둥거리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되면 마법이 아니지.
해골 손들은 잡은 다리를 놓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 땅 밑으로 끌고 간다. 비명을 지르며 반항을 하지만, 그대로 땅 밑으로 묻힌다. 땅에서 푸르스름한 것이 나와 내 어깨의 영혼단지에 들어간다. 뭔가를 하려면 앞으로 한참 모아야 한다.
"화염 폭풍."
나를 중심으로 불꽃의 바람이 불어 나간다. 가까이 있던 가을의 두르이드들은 몸에 불이 붙은 채 살기 위해 뛰어다닌다.
"저주받은 벼락."
손끝에서 검은색으로 빛나는 번개가 쏘아진다. 한 마리가 쓰러지고 영혼이 뽑혀 나와 단지에 담긴다.
그렇게 몇 번의 마법이 오가고 시간이 다 되었다. 하늘에서 타오르는 바위가 떨어진다. 그리고 대충돌.
거대한 폭음과 먼지가 일어난다. 충격파가 대지를 뒤흔들고 바람이 공기를 찢는다. 불꽃이 사방으로 비상하며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땅을 두들긴다.
먼지가 가라앉는다. 오색으로 빛나던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거대한 구덩이 위에 내가 서 있을 뿐. 사방에서 영혼이 솟아오른다. 모두 영혼 단지에 곱게 담긴다. 이 정도면 되겠네.
"쉼 없는 망자의 땅."
가득 차 있던 영혼 단지가 빠르게 비워진다. 내 주변의 모든 땅이 검은색으로 물든다. 그리고 쓰러졌던 가을의 두르이드들이 일어난다.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를 하고서.
"가서 전부 죽여."
가을의 두르이드들은 발굽으로 땅을 디디며 다른 생명을 찾아 걸어간다. 이제 나는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경험치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가끔 심심하면 다른 녀석들을 찾아가 마법을 사용해 마법 레벨이나 올리면 되고.
아주 멋진 게임이다. UMO는 정말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지게 해준 게임이다. 난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내 삶이 끝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