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001. 서막 - 퍼펙트 메이지 / Isaac
숨겨진 직업을 해금하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시스템상 익힐 수 있는 모든 마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요? 이미 조건을 거의 달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 제임스 한, 아르고스 개발 본부장, 5주년 유저 간담회 당시 -
“유성 낙하.”
시야 왼쪽 구석의 파란 막대가 죽 줄어든다. 제기랄. 역시 초월 마법은 마나를 많이 잡아먹어. 그만큼 효과는 뛰어나지만.
하늘이 붉게 물들고 구름이 갈라진다. 갈라진 구름 사이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유성이 엿보인다. 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5분 정도. 이제 이 빌어먹을 싸움을 끝낼 때다 자식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앞에 세워둔 흙벽이 흔들린다. 금이 가기 시작하고 모래가 떨어진다. 저거 만드느라 1억 골드 정도 썼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냐.
“크와와와!”
귀를 찢는 고함과 함께 흙벽이 무너진다. 그리고 검은 대가리가 보인다. 우둘투둘한 피부. 피가 흐르는 상처. 노란 눈동자. 왼쪽 눈가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다. 참고로 저 상처들은 전부 내가 만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죽어라!"
순화해서 말하면 쉰 목소리. 음. 사실대로 말하자면 차마 들어줄 수 없는 괴성. 얼굴도 그렇고 목소리도 못생겼구나. 난 최소한 목소리라도 괜찮다고.
잡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놈이 입을 벌리고 머리를 들이민다.
"너 입 냄새 진짜 심하다. 양치는 하고 사냐?"
손가락을 튕겨 미리 준비된 순간이동으로 공격을 피해낸다. 놈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맛있다는 듯 깨문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나 태고룡 칼라고라를 놀리다니!"
"뭐래! 날개 달린 도마뱀이!"
뒤이어 휘둘러지는 칼라고라의 앞발. 마법도 아니고 저런 육탄 공격에 맞아 줄 생각은 없다. 다시 손가락을 튕겨 놈의 머리 위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비행."
짧게 중얼거려 마법을 사용한다. 하늘에 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칼라고라는 접었던 날개를 펴고 퍼덕인다. 곧 놈의 거대한 몸체가 떠오른다.
잠자고 있는 것을 기습했던 거라 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확실히 크다. 날개 끝에서 끝까지가 웬만한 호수를 덮을 정도다.
"네놈! 죽여주마!"
칼라고라는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나에게 달려든다. 밑으로 펼쳐진 거대한 녹색의 바다는 놈의 검은 몸뚱어리에 가려진다.
"그런 몸으로 누굴 죽인다고!"
놈의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다. 오른 날개의 피막도 반쯤 찢어져 있다. 오른발은 잘려나갔고, 꼬리도 반쯤 잘렸다. 잠들어 있던 놈의 몸뚱어리에 마법을 쏘아댔지. 지금의 칼라고라는 정상 상태보다 절반은 약해져 있다. 그러니까 일대일로 싸우고 있지. 아무리 내가 미친놈이라도 레이드용 보스 몬스터를 아무 준비 없이 사냥하지는 않는다.
"공간 왜곡."
마나가 죽 줄어들고 나에게 날아오던 칼라고라가 나의 오른쪽을 스치고 지나간다. 한동안 녀석은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 최소한 물리적으로는.
"진짜 초월 마법은 너무 비효율적이야."
동시에 효율 따위를 무시하는 위력을 발휘하지. 허리띠에 매어놓은 보라색 병을 집어 든다. 코르크 마개를 뽑고 그대로 마신다. 포도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줄어든 막대가 다시 차오른다.
하늘을 바라본다. 작게 보이던 유성의 모습이 더욱 커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죽어라!"
놈이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 번 나에게 돌진한다. 미안하지만, 안 통한다고. 공간 왜곡의 보호를 받는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검은 동체.
"안 통한다는 것도 모르겠냐?"
"크와와! 귀찮은 인간!"
밑에서 날아오던 놈이 내 앞에서 정지 비행을 한다. 그런 것도 할 줄 알았구나.
"재로 만들어주마!"
놈의 입에서 붉은 화염이 넘실거린다. 이빨 사이로 솟아나는 불꽃들. 어어. 저건 좀 위험한데.
"절대 방어. 화염 방패. 악으로부터의 보호. 불꽃의 축복. 수호자의 방패. 빛의 신념. 흐름 돌파."
사용 가능한 모든 방어 마법을 사용한다. 이것으로 채운 마나는 전부 사용되었다.
내 주변을 반짝이는 빛들이 가득히 채운다. 빛의 신념의 부가 효과. 성능도 준수하고 효과가 멋져서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사용하고 다니지.
멀리서 열기가 느껴진다. 칼라고라의 입이 벌려지고 한줄기 화염이 나에게 다가온다. 계산이 맞으면 지금 내가 친 방어를 뚫지는 못할 거다. 문제라면 여태까지 누구도 칼라고라의 브레스의 공격력을 측정해본 적 없다는 것.
화염이 나를 중심으로 갈라진다. 방어마법이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시야 우측 상단 구석의 방어력 수치가 시시각각 깎여나간다. 공간 왜곡으로 마법 공격들도 50% 절감된 위력으로 들어오는데도 10만이라는 방어력은 금세 깎여 나간다.
"인간! 어째서 살아있느냐!"
놈의 화염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다. 방어마법이 전부 깨져 나가고 체력의 4분의 3을 깎은 공격이었다. 확실히 어마무시하군.
"당연히 내가 너보다 강해서지!"
되지도 않는 허풍을 친다. 공간 왜곡의 효과도 끝났기에 지금 놈이 달려와서 때리면 나는 그대로 절명. 추가적인 마법을 사용할 마나도 없다.
물론 놈도 움직이지 못한다. 드래곤 계통의 몬스터들의 공통점 하나. 브레스를 사용 후 3초간 경직. 그 정도 시간이면 마나 회복은 문제없지.
허리띠에서 또 다른 병을 뽑아낸다. 이번에는 검은색. 코르크 마개를 뽑고 그대로 들이킨다. 이번에는 콜라 맛이다. 끝내주는구먼. 0에 도달한 마나가 다시 차오른다. 한 절반쯤 차올랐을까. 놈이 다시 나에게 달려든다.
"미안하지만. 타임 오버야."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진다. 칼라고라의 몸통만 한 불타는 돌덩이. 칼라고라는 자신의 비행 방향에 유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이 게임에서 행동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크와와와!!!"
등에 유성이 적중한다. 칼라고라는 비명을 지르면 유성과 함께 추락한다. 바닥에 도달한 칼라고라의 몸을 수십 톤은 족히 될 바위가 짓누른다.
폭음과 함께 유성이 터진다. 마법의 사용자인 나는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지만, 주변 숲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이 상태면 칼고 숲이 아니라 칼고 황무지라고 불러야 할 게 분명해.
크레이터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칼라고라에게 내려간다. 칼라고라는 움직이지 못하고 숨만 헐떡인다.
"죽음은 어떠냐?"
빈정거리는 나의 말에 칼라고르가 감은 눈을 뜬다. 그 노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너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걱정하지 마. 알고 있으니까."
유성 낙하의 30초간 기절 때문에 칼라고라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제 놈에게 죽음을 선사해줄 시간.
"용 사냥."
내 오른손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대로 천천히 칼라고라의 얼굴을 건드린다. 워낙 덩치가 커서 턱 정도밖에 손이 닿지 않는다.
검은 불꽃이 천천히 칼라고라에게 옮겨간다. 용을 불태우는 불꽃. 발동만 하면 드래곤 계통의 몬스터는 무조건 즉사. 손을 직접 대야 하고, 상대에게 마법적인 방어 능력이 없어야 하며, 나의 최대 체력이 적의 현재 체력보다 많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달려있긴 하지만.
칼라고르가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다. 곧 불꽃이 타오르던 자리에는 한 줌의 재만이 남는다.
[대륙의 악몽 칼라고라가 사망하였습니다.]
[사냥꾼들에게 엄청난 경험치가 차등 분배됩니다.]
[대륙에 사냥꾼들의 명성이 널리 퍼집니다.]
[가장 큰 피해를 준 한 사람에게 특별한 마법이 추가됩니다.]
[신화적인 물품이 각자의 가방에 추가됩니다.]
[모든 사냥꾼에게 특별한 칭호가 부여됩니다.]
[위대한 의지의 뜻에 따라 칼라고라는 한 달 후 모든 기억을 잃고 깨어납니다.]
레벨 업을 알리는 알림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도대체 경험치를 얼마나 주는 거냐. 나중에 시간 되면 또 잡아야겠는데.
가방에 들어온 아이템을 확인해본다.
"미친."
진짜 이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모든 물품이 신화적인 등급이다. 심지어 이빨 같은 사소한 재료도. 재료 물품을 제외하고 얻은 것은 열세 개. 두 개는 마법서라 쓸 필요가 없다. 일곱 개는 소모 물품. 효과가 끝내주긴 하지만, 내 목표는 아니다.
네 개의 물품은 장비용. 두 개의 반지. 한 개의 목걸이. 한 개의 망토.
떴다. 다른 것들은 모두 제치고 망토를 확인한다. 이걸 얻기 위해서 망토만큼은 특별 제작을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감정."
[신화적인 흑룡의 검은 비늘 망토]
[대륙의 악몽 칼라고라의 비늘로 만들어진 망토.]
[무척이나 가볍고, 무척이나 튼튼하다.]
[드래곤 특유의 위압감이 서려 있다.]
[흑룡의 사냥꾼 칭호를 가진 사람만 착용 가능]
[방어력 2,000]
[내구도 무한]
[마나 최대치 +30,000]
[모든 능력치 +200]
[지능 + 100]
[운 + 50]
[다섯 개의 초월적 등급 미만의 마법 저장]
[화염 마법 효율 3% 증가]
[모든 마법 효율 1% 증가]
[5등급 이하의 마법 무시]
[착용자보다 레벨이 낮은 적에게 위압 효과 부여]
[공격받으면 일정량의 마나 흡수]
[알려지지 않음]
[알려지지 않음]
[알려지지 않음]
[알려지지 않음]
"미친."
또 미친 이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알려지지 않음이 네 개라니. 분명 내 감정 마법은 최고 레벨이다. 이건 다른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겠군. 일단 착용하고 생각하자.
이제 새로 얻은 마법을 확인할 때. 마법 창을 확인한다. 엄청난 숫자의 마법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여기 있는 마법 중 절반 정도는 두 번 이상 사용한 적이 없다.
"검색. 초월적 등급."
알고 있는 마법은 지나치고 처음 보는 것을 확인한다. 용의 숨결. 딱 봐도 브레스를 쏘는 마법이군. 사용해 보면 확실히 알겠지. 앞쪽으로 손을 뻗고 작게 중얼거린다.
"용의 숨결."
[많은 양의 마나가 일시에 빠져나갔습니다. 1분간 현기증에 시달립니다.]
머리가 띵하고 아파져 온다. 내 최대 마나가 몇인데 현기증이라니. 한번에 90%를 사용한다고? 심지어 레벨 업과 망토로 추가적인 마나를 얻었는데도······.
손끝에서 불꽃이 날아간다. 모든 것을 태울 듯이 이글거리며. 유성 낙하를 용케 피해냈던 나무들이 그대로 불살라진다. 역시나 초월적인 마법은 비효율적이다. 위력은 효율을 따질 수준이 아니지만.
새로운 마법의 위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알림음이 하나 들려온다.
[축하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당신에게 특별한 선물이 주어집니다.]
[직업 위대한 마도사가 퍼펙트 메이지로 변합니다.]
[모든 능력치 + 100]
[마나 최대치 + 10,000]
[모든 마법 효율 1% 증가]
[최초로 숨겨진 직업을 획득했습니다.]
[특별한 칭호를 획득합니다.]
[전 세계에 당신의 위대한 명성이 퍼져나갑니다.]
"미친."
오늘은 특히 입에서 욕이 많이 나오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