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 최종 결전. -- >
'14조 무너집니다! 예비대 바로 보강 바랍니다!'
'102조 현재 대열에서 지나치게 도출됐습니다!'
'9,15,24,107,154,188.... 전투력 상실! 예비대와 투입 요청합니다!'
통신기는 연이어 다급한 음성과 비명 따위를 내뱉었다. 그에 대꾸하는 음성 역시 급박하기 그지없었는데 하나 같이 필사적으로 아군의 위기를 구원하고자 비명을 토해낸다.
'예비대! 예비대!'
대열의 한 귀퉁이가 또다시 무너졌는지 이름 모를 이능력자가 예비대를 찾아 고함을 치지만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침통했다.
'현재 가용 가능한 예비대 전원 투입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요!'
안개 속으로 진입하며 다소 여유있게 예비대를 편성했건만 전투가 시작된 직후 예비대전력은 빠르게 소모되었다. 구원을 요청한 이능력자 역시 그런 사정을 알만도 하건만 눈 앞에서 전우가 죽어나가고 몬스터가 대열을 쪼개려 하니 다급한 마음에 억지를 부린다.
'씨발! 그럼 다 죽으라는 거야!'
욕지거리가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자 나름 침착하게 대응을 하던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질렀다.
'그냥 물러나! 병신새끼들아! 미련하게 버티지 말고!'
결국 참지 못한 것인지 욕설로 대응하는 오퍼레이터라지만 그 음성에 담긴 것은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에 가깝다.
'이 개새끼야! 우리가 빠지면 이쪽은 떼죽음이야!'
오퍼레이터라고 왜 모르겠는가. 당장 대열의 한쪽만 무너져도 잘게 쪼개어놓은 수백개의 창날 중 수십개가 꺽여버린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가용할 수 있는 예비대가 없으니 입술만 바짝바짝 말랐다.
그 모든 통신을 듣고 있던 김형준을 비롯한 1등급 이능력자들이 이를 악다문다. 전장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 것은 생과 사가 오가는 치열한 전투뿐, 고귀한 생명이 덧없이 스러지는 것에 심장이 바짝 옥죄어진다.
"제길!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김형준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각오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희생이 너무도 많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참아! 예상보다 피해가 크긴 하지만 계획대로야. 이대로라면 한시간 내로는 우리가 원하던 그림이 나온다.'
김형준의 고함소리에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를 조율하고 있던 민영모가 대답했다. 그 역시 애가 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함부로 예비전력을 투입할 수가 없어 안타까움만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한시간이면 다 죽어! 이새끼야!"
버럭 고함 친 김형준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모습으로 몸을 움찔댔지만 이내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금만 기다려. 최선을 다해 길을 열고 있어. 1등급 이능력자들이 지금 나서면 우리가 희생한 이유가 사라진다.'
민영모가 짤막하게 그를 다독이고는 다시 전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김형준은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다급한 구원요청과 비명소리따위를 듣다가 이내 신경질적으로 통신기를 내팽개쳤다.
더 이상 듣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전장에 뛰어들 것만 같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성질대로 행동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니 이내 허리를 굽혀 바닥을 나뒹구는 통신기를 주워 다시 귀에 꼽아넣는다.
어찌 보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광경이건만 그를 바라보던 이능력자들 중 누구 하나 이를 우습다고 비웃는 이가 없다.
그들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저 초조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자신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김형준을 바라보던 1등급 이능력자들이 고개를 한번 젓고는 이내 이번 일의 원흉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약 1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 그 곳에는 마치 해파리와 맹수를 합쳐놓은 듯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천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김형준과 전지현이야 이미 지난 전투에서 괴수를 본 적이 있었다지만, 다른 이들이 천
개의 눈동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는 순간 그 압도적인 크기와 위용에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렌델이니 미노타우르스니 천개의 눈동자에 비하면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물론 크기가 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천개의 눈동자는 실제로 등급외 괴수로 책정된 괴물.
미국의 드래곤이나 일본의 야마타노 오로치나 되야 저 괴수와 비슷하다 말할 수 있을까.
미동도 없이 멀찍이서 산처럼 버티고 선 괴수의 모습이 어머어마한 압박으로 그들을 내리 눌렀다.
김형준이 애꿎은 바닥을 걷어차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른 이능력자들 역시 그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심정인지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투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다.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전선의 뒤편에 가진 바 화력을 전부 내쏟고는 그대로 전장을 이탈한다. 그리고 그 사이로 끼어드는 포성과 폭발음 전투기가 지나가고 나서도 화염과 굉음은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그나마 이능력자들이 엄청난 몬스터의 수에 압도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대한민국군의
지원이 있었던 덕이었다. 지난 전투에서는 이능력자들 패퇴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던 군이 오늘은 작정을 했는지 제대로 그들을 서포트 했다.
전투기와 폭격기가 허공을 가르고, 저 멀리 후방에 전개한 각종 포들이 천개의 눈동자를 때려댄다. 흉성을 터트리며 이능력자들을 향해 내달리던 몬스터들이 그 막강한 화력에 이리저리 휩쓸리느라 전선에 합류를 하지 못한다.
돌입 직전에 퍼부은 폭격으로 자잘한 몬스터들은 실상 거의 정리가 된 상태, 당연히도 남아 있는 몬스터들은 전부 고등급의 흉포한 놈들이다. 그러니만큼 실질적으로 그들의 포격에 소멸되는 몬스터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이능력자들은 더욱 힘겨운 전투를 해야 했으리라.
'1조, 2조, 5조 12조, 44조, 57조가 천천히 전진 중입니다!'
초조한 심정으로 전장을 노려보고 있던 김형준의 눈이 번뜩였다. 조금만 더 지나면 명령이고 뭐고 전장에 난입할 판인데 때마침 그가 기다리던 신호가 떴다.
'3조 조장 진태식입니다. 몬스터들이 많아 선봉에 합류가 불가능하니 선봉대의 좌측을 보강하겠습니다!'
'8조 조장입니다! 조원들의 피해가 크니 뒤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1조에서 30조까지의 타격대들이 이번 전진에 발을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전투가 너무 치열했던 탓인지 중간에 통신이 두절된 조들도 다수였고, 그나마 전력을 보전하고 있던 이들도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나버렸다.
덕분에 통신기가 한동안 바쁘게 대열을 정리하고 전진에 합류하는 타격대들의 음성으로 넘쳐난다.
'저항이 거셉니다! 이대로라면 중간에 서게 됩니다!'
'이무기, 용아병 다수 출현!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능을 전력으로 발휘하며 몬스터들의 바다를 가르고 있던 최전방의 선봉대가 연이어 힘이 달림을 알려온다.
'마지막 남은 예비대 투입합니다!'
온갖 지원 요청에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최후의 예비대마저 이능력자들의 전진에 합류했다. 애초부터 몬스터들을 가르는 창으로 준비된 이들이다. 공격력만큼은 발군이라 인정받은 이들이 모인 예비대가 합류하자 느리기만 했던 전진이 점차 빨라진다.
또한 넓게 전개되어있던 수십개의 창날이 선봉대의 좌우를 받치며 밀착하니,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격 또한 무시 못할 수준이 되었다.
예비대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 붓고는 잠시 주춤하자, 바로 뒤를 받치고 있던 이능력자들이 전면으로 나서며 온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지친 그들을 대신해 자리를 채운 또 다른 이능력자들이 맹공을 퍼붓는다.
수십개의 작은 창이 번갈아가며 창날이 되어 몬스터들의 대군을 찌르고 갈라나간다. 순간적으로 전력을 폭발시키는 공격들이니만큼 몬스터의 대열이 속수무책으로 갈라지고, 이제는 전진이라기보다는 돌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수백 수천의 이능력자들이 내달린다. 중간에 그들을 잡아채는 몬스터의 손길에 무수한 이능력자들이 스러지고, 또 성공적으로 선봉에서 창날의 역할을 한 이들조차 탈진하여 낙오되어버린다.
그렇게 낙오된 이능력자들은 끔찍한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진다. 후미에서 달려오던 이능력자들이 그들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지만 가늘게 이어진 대열의 양 옆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또한 전력을 다한 공격 뒤에 찾아온 피드백에 무력해진 이능력자들이 그런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가서 단 1미터라도 더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라고.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쓰러져 가는 이능력자들의 모습이 눈물 겨울 지경이다.
희생이 크다. 아니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조차 없는 처절한 공격이다. 차라리 피로 길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상황이다.
"개새끼들."
그렇게 그들이 피로써 일구어낸 길을 따라 1등급 이능력자들이 내달린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무력하게 몬스터의 손아귀에 잡혀 그대로 으스러진 한 이능력자를 보며 김형준이 양손을 내뻗었다. 막 육편이 질펀하게 묻은 손아귀를 핥으며 포효하던 용아병 한 마리가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발겨진다.
다른 1등급 이능력자들 역시 손을 뻗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이능력자들을 구원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멈출 수 없는 상황, 그들이 지나고 나면 저들은 그대로 몬스터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다.
본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들이 후방으로 후퇴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어줄 수 있으련만, 그렇게 해서야 그들이 목숨과 맞바꾸어 만든 혈로가 무색해진다.
이를 악물고 그들을 지나쳐 달려가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그들의 승리를 기원한다.
"본때를 보여줘!"
"죽여버려!"
"꼭 성공해라!"
그들이 지난 자리에 몬스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지고, 그리고 그들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이능력자들이 스러진다.
그렇게 피로 만든 길을 밟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원정대의 선봉대가 보인다. 이제는 조를 구별할 것도 없이 한데 뭉쳐 이능을 퍼붓는 이들의 모습이 필사적이다. 그들의 바로 뒤에 따라붙은 1등급 이능력자들을 힐끗 본 그들이 더욱 힘을 뽑아낸다.
필시 지금의 저들은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직 하나, 그들이 그토록이나 자랑스러워하는 피바라기를 저 너머에 존재한 천개의 눈동자에게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그 어떤 힘의 낭비도 없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괴수와 맞붙을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그들의 과제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1등급 이능력자들의 기세에 어깨를 펼친 선봉대가 가열차게 몬스
터들을 공격한다.
"이제 200미터만 더 나가면 돼."
언제 선봉에 합류했던 것일까. 거대한 늑대의 모습으로 화한 민영모가 김형준에게 따라붙는다.
"아직도다."
이제는 이라고 말하기에는 지금까지 흘려온 피가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흘릴 피가 얼마나 될지 상상만으로 끔찍하기만 하다.
고작 800미터를 달려오면서 얼마나 많은 이능력자들이 희생되었는가. 초반의 돌진력을 거의 상실하다시피한 지금의 선봉대에게 남은 200미터는 얼마나 멀기만 한 길인가.
김형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선봉에 합류한 민영모가 포효를 하며 몬스터들을 쓸어간다. 하얀갈기 일족 특유의 몸뚱이가 몬스터들의 체액과 육편으로 물들때까지 민영모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피드백에 시달려야 하는 다른 이능력자들과는 다르게 이 이종족의 전사는 거칠 것 없이 몬스터들을 유린했다. 덕분에 잠시 주춤했던 돌격이 다시 제 흐름을 찾는다.
하지만 그 하나의 합세로 상황이 나아지기에는 몬스터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들을 막아선 몬스터들 하나 하나는 최소한 3등급 이상의 막강한 괴물들.
미친 듯이 날뛰던 민영모의 몸동작이 느려지는 것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150미터... 아직도 남은 거리는 길기만 하다. 140미터... 이제는 민영모마저 몬스터들의 뚫는 것을 버거워한다.130미터... 마침내 선봉대의 힘이 다한 그 순간, 전지현이 앞으로 나섰다.
"다이달로스와의 전투로 온전치 않은 몸입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천개의 눈동자를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판단 한 것일까.
120미터...110미터...100미터.. 군의 폭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 탓에 선봉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희뿌연 막을 쳐 그 공격을 막아낸다.90미터..
"우린 여기까지다. 부탁한다!"
평소에 그토록이나 자랑스러워 했던 강인한 육체가 만신창이가 된 민영모가 씁쓸하게 외쳤다. 몬스터에게 당했는지 팔꿈치부터 뜯겨져 나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건만 그는 지혈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빠르게 전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80미터..
"방향을 돌린다! 가자! 우리가 할 일은 끝났다! 이제부터 우리 일은 살아남는 것이다!"
힘겹게 퇴각을 시작할 선봉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김형준은 내달렸다.
50미터..30미터..20미터..10미터.. 그리고 마침내 눈 앞을 가득 가린 몬스터들의 대군이 사라졌을 때, 그들이 그토록이나 간절하게 기다리던 도약지점이 보였다.
김형준을 비롯한 1등급 이능력자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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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휴재와 약속 불이행으로 독자님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 무척 가슴이 아픕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유료 연재를 하고 있지만 제가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얻을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각설하고 이러한 상황이 가슴아프고 죄송할 뿐입니다. 완결까지는 앞으로 3편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