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218화 (218/223)

< --  2-7. 최종 결전.  -- >

"그러지 않으셨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을."

전지현이 샐쭉한 눈으로 김형준을 바라본다. 그 눈에 담긴 원망의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김형준은 짐짓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모르는 척 의뭉을 떠니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 말입니다. 공간 뒤로 숨는 기술이 성가시긴 했지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김형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겼잖아요. 결국."

그 장난스러운 반응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마지막 일격을 주고 받는 도중에 다이달로스가 갑자기 가슴어림을 부여잡는 바람에 허무할 정도로 쉽게 승리를 거머쥔 그녀였다. 만약 다이달로스가 그러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만만치 않은 부상을 당했을 터였는데 덕분에 치명상 없이 전투가 끝이 났다.

당연히 김형준이 뭔가 수를 썼음을 짐작했지만 저리 나오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전의 그녀였다면 불같이 화가 날 상황이다. 신성한 무인의 결투에 개입을 하다니, 모욕이라도 받은냥 화를 냈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오히려 그의 염려와 걱정이 느껴져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이제는 무인 이전에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어미임을 절실하게 자인한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검을 놓을까 합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은 갑작스럽기만 한 그녀의 말이다. 그가 혹시라도 자신의 개입에 그녀가 마음이 상한 것일까 걱정되어 다급하게 입을 열려는데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수백년이나 검을 잡아왔으니 이제는 저도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심 하나 없이 맑은 그녀의 음성에 그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물었다.

"그럼 뭐 하려고 이제..."

자신의 아내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검을 놓지 않은 그녀를 보아왔던 그다. 이제 와서 검을 잡는다니 도리어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당신과 연아를 위해서만 살아볼 겁니다."

짤막한 한마디지만 그 안에 담긴 한결같은 애정에 김형준의 입가가 저도 모르게 치켜 올라갔다.

"에이. 그러지 말아요. 검이 없는 당신이라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보지만 이내 그녀의 한마디에 입을 쏙 다물었다.

"입이 웃고 있습니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결국 그도 여느 남자와 다를게 없었다. 자신의 아내가 위험스러운 일에 나서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되던 차에 들은 그녀의 선언이 반갑기만 한 듯 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더 이상 검을 들 일도 없을 거예요."

김형준이 그리 말했다. 왜 아니겠는가.

괴수만 사라지면 D섹터는 언제나처럼 다른 이능력자들이 관리를 할 것이고 그 일에 자신까지 뛰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전처럼 일반인과 이능력자들이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지만 전과는 다를 것이다.

음지에서 싸워오던 이능력자란 존재는 이미 일반인들에게 비밀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전보다는 훨씬 그의 바람과 가까운 세상이 될 것이다.

그 때쯤이면 자신 역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살아갈 계획이다. 이제 전투라면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니 그 결심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백년 고련해온 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 역시 D섹터와 괴수에게 얽매여 평생을 바쳐왔다. 이능의 각성을 통해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돌이켜보면 자신이 이룬 것이 무엇인가 씁쓸하기만 했다.

"우리 이번 일이 끝나면 어디 한적한 곳에 집 짓고 우리끼리 알콩달콩 살아요."

허공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김형준이 말했다. 그녀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이렇게 별이 많이 보이는 곳에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고요."

예전이라면 별따위는 보이지도 않던 서울 인근이건만, 몬스터가 창궐한 뒤로 서울의 대기가 회복된 것일까. 밤하늘을 가득 매운 별무리가 말없이 그들을 지켜본다.

결전의 날이다. 천개의 눈동자와 약조한 세달 중 아직 3주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김형준을 비롯한 이능력자들은 서둘지 않았다.

다이달로스를 비롯한 배후의 무리들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온 세계 각지의 이능력자들이 대한민국에 집결해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봐야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상황이라 수뇌부가 모여 바로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추가적인 1등급 이능력자의 지원은 없었지만 각국에서 지원나온 2등급을 비롯한 고위 이능력자들이 대거 보강되었고 지난 전투에서 희생된 하위 이능력자들을 제외하고도 더욱 강해진 전력의 원정대가 준비되었다.

게다가 바로 전의 전투에서 대한민국군의 화력도 어느정도 성과를 보였고. 타국의 주도 하에 벌어진 현대무기의 화력보강 계획, 무언가 특수한 방버을 쓴 모양이었지만 밝혀지진 않았다.

아마도 세계의 이변을 정리하는 도중에라도 막대한 이득을 챙길 모양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해타산을 따지는 국가간의 관계가 매정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해 못할 상황도 아니었던지라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은 철저하게 원정준비를 점검했다.

타국의 이능력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천개의 눈동자가 도사린 일산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영토, 자신들이 주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제는 신격화될 지경에 이른 피바라기 김형준이 있었다.

"이번 일 반드시 성공합니다."

작전개시를 코앞에 둔 원정대의 앞에 서 김형준이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저 사소한 한마디였을 뿐이지만, 신화와도 같은 업적을 이룬 그가 말하니 말에 힘과 염원이 깃들어버린다.

국가를 떠나 이능력자들이 허공에 주먹을 치켜올리며 소리없는 함성을 질렀다.

며칠전에 벌어진 격전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높이 오른 그들의 모습에 김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위 이능력자들의 피해가 막대하여 안타까움과 슬픔이 아직도 가슴 한켠을 내리눌렀지만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으로 그들을 위령할 것이다.

아야나미 로유미를 비롯한 1등급 이능력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던 그의 시선 끝에 전지현이 보였다. 아직까지 자잘한 상처가 가득한 모습이지만 눈빛만큼은 자신감에 차 있다.

'꼭 우리 바람을 이뤄요.'

입모양만으로 자신의 의지를 전한 그녀의 모습에 그가 미소를 지었다.

곁에 있던 민영모가 통신기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받고는 김형준에게 전했다.

"포격이 곧 시작될 거야. 그리고 히어로즈도 작전을 시작했어."

대한민국의 소탕전에 맞춰 미국을 비롯한 타국의 이능력자들도 모종의 작전을 시작한다. 그것이 이 자리에 추가적인 1등급 이능력자들이 자리하지 못한 이유다.

지난 습격을 주도했던 미국 히어로즈의 1등급 이능력자 필립 헨리 셰이던은 잡지 못했다. 검후 전지현과의 공방으로 중상을 입었지만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각국에서 차출된 정예 이능력자들로 추살대가 결성되었다. 그 중에는 그가 루마니아에서 만났던 하얀 갈기 일족의 장로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니 아마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세계의 이변에 관련된 것이 비단 그만은 아닐 터, 히어로즈와 미국정부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파악한 그들의 본거지와 배신자들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들을 일망타진하지 않고서야 언제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괴수를 격퇴하는 것에 못지않게 그들의 작전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쪽만 성공해서는 의미가 없는 협동작전이다. 1등급 몬스터중에서도 최상위로 밝혀진 괴수의 격퇴 가능성과 이번 일을 일으킨 배후를 일망타진 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말할 수 없이 전부 중요한 일들이다.

부디 자신들과 그들에게 승리가 있기를 기원하며 김형준은 원정대를 향해 외쳤다.

"군의 포격이 시작된다! 충격에 대비하라!"

그 말에 잠시 대열이 어수선해지만 이내 잠잠해진다. 그리고 들려오기 시작한 공기를 찢는 소음들, 포탄이 허공 가득 떠올라 그들을 지나친다. 전투기 역시 질새라 온몸 가득 실고 온 포탄을 그대로 내쏟는다.

이능력자들의 이동에 앞서 계획된 군의 화력전이다.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강화된 각종 무기들은 아마도 전과는 다르게 꽤나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점이 이 곳에 모인 이능력자들이 승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만들고 말리라.

한참이나 이어지던 포성과 굉음이 멈춘다. 요동치던 안개가 다시금 잠잠해지는데 김형준이 손을 치켜들었다.

"출발합니다!"

그의 한마디에 수천 이능력자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그들을 하나하나 집어삼킨다.

"오는가."

나지막한 음성이 안개 속에 울려 퍼진다. 앳되고 여린 음성이지만 그 안에 담긴 어마어마한 힘에 주변의 몬스터들이 몸을 움츠렸다.

그런 몬스터들을 차갑게 내려보던 여인, 이현지가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그녀의 앞에 선 천개의 눈동자의 거체와 상반되어 위태롭게만 보이는 걸음이지만 그녀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침내 괴수의 거체에 닿은 그녀가 잠시 안개 너머를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 흉물스러운 표피에 어루만진다.

몇 번이나 축축한 표피를 쓰다듬던 그녀의 손이 어느 순간 쑥하고 그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마치 빨려들 듯 그녀의 몸이 괴수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버렸다.

괴수와 동화되듯 사라진 그녀의 가녀린 몸이 나타난 곳은 거대한 괴수의 몸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솟아오른 여섯쌍의 눈동자 사이. 흉물스러운 촉수를 가득 늘어트린 몸뚱이 위에 솟아난 가녀린 여인의 모습은 기괴하기만 하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잠시 무덤덤한 눈동자로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거체를 살피기에는 턱없이 작은 몸뚱아리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이나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살핀다.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잠시 미간을 찡그리던 그녀가 순간 허공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수백, 수천줄기의 궤적. 시뻘건 화염이 탐욕스러운 궤적을 남기며 그녀의 주변에 내리꽂힌다. 대기를 찢어발기는 굉음과 안개를 통째로 태워버리는 거대한 화염이 솟구친다. 굳건하게 자리를 버티고 서 있던 몬스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화염에 집어삼켜진다.

하지만 그렇게 수백 수천의 몬스터가 재따위로 변하는 와중에도 움직이는 몬스터는 하나 없었다. 바로 곁에서 화염이 타오르고 바로 눈앞의 몬스터가 재로 화하는 것을 보면서도 미동조차 없었다.

아마도 그들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원정대가 들이닥치고 나서야 일 것이다. 주변에 늘어선 수만의 몬스터들 중 많은 수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천개의 눈동자와 동화된 이현지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자신의 명령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충실한 수하들이자 수족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에 일말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기괴한 모습으로 괴수와 융화된 상태라고 하나 어디까지나 가녀린 여인의 형상을 한 탓인지, 그 무감정한 모습이 더욱 기괴하게만 보인다.

이현지라 불리던 시절과는 다르게 소름끼칠 정도로 감정이 배제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던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오거라."

생명도 영혼도 담기지 않은 듯한 까만 눈동자가 투명한 유리알처럼 번뜩였다. 오직 공허함만을 담은 그녀의 눈빛이 안개 너머에서 진군을 시작한 원정대를 꿰뚫어본다.

그리고 그렇게 고정된 그녀의 눈동자는 저 너머 수천의 이능력자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뜨이는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2차 일산 괴수전은 그렇게 대한민국군의 포격으로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오늘 여러모로 뚜껑 날라가네요. 엔딩부까지 써놨던 글 일부 날아가고, 예약 걸어놨더니 예약 된 것도 제대로 등록 안되고 사라지고. 후기고 뭐며 퇴고한 부분까지 두번이나

날아가고.

가뜩이나 전에 비축분 20화 넘게 날려먹고 복구 못하면서 의지 상실이었는데 울고 싶은 사람 뺨 치는 격입니다.

원래대로라면 투베지수, 노출시간 계산해서 올려야 하겠지만 글 날려먹고 이런 저런 일 생기면서 멘탈이 완전이 무너진 상탭니다. 덕분에 완결까지 얼마 안 남았음에도 글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고되서 아주 죽을 맛이네요. ㅠㅠ여튼 잦은 잠수와 약속불이행, 휴재로 실망하여 떠나가신 독자님들께 죄송할 뿐이며 아직까지 남아 완결까지 함께 가실 독자님들꼐는 감사드릴 뿐입니다.

지금은 너무 지쳐서 완결만 나기를 고대하고 있겠지만, 아마도 완결이 나고 나면 미친듯이 후회할 것들만 보이겠죠. 그래도 일단은 어떻게든 완결을 목표로 써 나가겠습니다.

미비한 부분은 이북으로 편집하면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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