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 최종 결전. -- >
그리고 그들의 바람은 검후가 다이달로스의 육중한 주먹에 강타당해 저 멀리 튕겨나가는 순간 최고조에 달했다. 검붉은 화염에 휩싸여 온몸을 부들거리며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끔찍했다.
화염이 환상이 아닌 이상 극심한 고통이 느껴질 것이 당연할텐데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은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화면에 고스란히 잡힌 그 처참한 모습에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비록 그녀가 순간적으로 발출한 기운에 화염이 걷어지긴 했지만, 그녀의 고운 자태는 이미 온데간데없고 그을린 머리와 화상으로 벌겋게 달궈진 피부가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보다 더욱 깊게 갈무리된 눈빛은 여전한 투지와 긍지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내몰린 전투는 처음일 터, 전에 없는 고초에 그녀의 투쟁심이 극대화된 모양이다. 그녀의 기세가 돌변했다.
날카롭게 날을 세웠던 마음의 검이 흐트러지고 한줄기 미풍과도 같은 기운이 그녀를 감
싸기 시작했다. 비록 화면 너머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변화가 크게 다가선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마음 졸이며 볼 수밖에 없었던 필사적인 기색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김형준만을 기다리던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염원이 깃들었다. 저 강인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거한을 물리쳐주기를. 지금도 끊임없이 화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능력자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멈추게 해주기를.
그녀의 주변을 감도는 한줄기 미풍이 쪼개어진다. 그리고 쪼개진 미풍이 다시 갈라지고 나눠져 미약한 바람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미약하기만 했던 미풍의 다발이 조금씩 존재감을 불려나간다. 하지만 결코 거칠지도 않았으며, 날카롭지도 않았다.
전장 전체에 퍼져 나가면서도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며 온순했다. 그저 조심스럽게 온 천지간에 불어댈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전장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능력자들이 힘겹게 내지르던 고함소리에 조금이지만 여유가 돌아온다. 극심한 피드백에 무겁던 사지가 가벼워지고 육체의 고통가 피로가 완화된다.
반대로 흉성을 터트리며 이능력자들을 압박하던 거대한 몬스터들은 주춤해버린다. 흉폭하던 포효를 터트리던 주둥이는 거친 숨만을 토해낼 뿐이었고, 피에 굶주린 듯 날뛰어대던 거체는 웬일인지 둔해져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능력자들은 막연하게 전투의 중압감이 덜해졌다고만 느꼈을 뿐이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몸에 생긴 한줄기 활력을 붙들고는 맹공을 퍼부었다. 숨을 돌려도 어차피 지쳐 나가 떨어질 몸이다. 힘이 생긴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능을 폭발시켰다.
화염이 솟구치고, 얼음기둥이 꼬나 박힌다. 섬광이 번뜩거리고 에너지의 파동이 폭발적으로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키에에엑!
몬스터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껏 자신들이 겪어온 그 어떤 공세보다 강력한 이능력자들의 맹공에 육신이 터져나가고 사지가 떨어져나갔다.
여덟 개의 팔을 잃은 용아병은 그대로 목을 베였다.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던 이무기는 수백조각으로 찢어발겨지고 수 많은 몬스터들이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었다.
TV화면을 통해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이 환호했다.
어쩌면 이 전투 이대로 승리할지도 모른다. 희망이 커진다. 이능력자들의 활약에 가슴이 뛰고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이능력자들이 공세로 전환했습니다! 이제껏 힘겹게 버텨오던 그들이 어디서 쥐어짜낸 힘인지 몬스터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하위 이능력자들의 자살공격에 오열하던 이한나가 격앙되어 소리쳤다. 화면 너머까지 들려오는 그녀의 고무된 음성에 사람들이 전율할 지경이다.
'여러분. 지켜봐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니 이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전투를 두눈 깊이 새기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울부짖는 듯한 음성이다. 울고 절규하고 소리치고를 반복한 이한나의 음성은 잔뜩 쉬고 갈라져 듣기 거북할 지경이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음성에서 전장의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전해듣고 있었다.
'공세로 전환하여 큰 타격을 입히고는 있지만...'
이한나가 결국 다시 오열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토해내는 한마디 한마디에 서린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너무나... 너무나... 희생이 큽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검후가 이뤄낸 알 수 없는 변화로 인해 이능력자들이 순간적으로 화력을 퍼부어대긴 했지만, 애초에 지칠대로 지친 몸이다. 하위 이능력자들은 자살공격을 시도할 정도로 극도의 피드백과 피로에 시달렸고 등급이 높은 이들도 움직임이 둔해지던 무렵이다.
온 힘을 다 폭발시키듯 내지른 공격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쓰러졌지만, 반대로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다 쓰러지는 이능력자들도 많았다. 화면이 이리 저리 움직이며 비추는 것은 처절함 뿐. 희망에 들떴던 스스로가 증오스러워질 정도로 전장은 여전히 처참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능을 몸에 두르고 몬스터에게 돌격해 그대로 소멸되는 이능력자들이 넘쳐난다. 고위 이능력자들이야 순간적이나마 돌아온 활력을 이용해 잘 싸우고 있었지만, 하위 이능력자들은 오히려 변화 이전보다 더욱 희생이 크다고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작정 수류탄따위를 들고 몬스터와 자폭을 시도했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효과적으로 몬스터와 공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하위 이능력자들의 얼굴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전장의 이곳저곳에서 영롱한 섬광이 번뜩였다. 아름답지만 그 번뜩임 하나가 하나의 생명이 스러져감을 상징하는 것이니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아름답다 여기지 못했다.
"제발..."
"군바리 새끼들은 뭐 하는 거야!"
집집마다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때로는 절절한 안타까움을 담고, 때로는 그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담고.
"어?"
"저거 뭐야?"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 점점이 생긴 얼룩에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혹시나 이제는 끝나버린 몬스터의 강하가 다시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가슴이 무너진다.
'아. 안 됍니다. 안 돼. 제발. 이래서는 안 됍니다. 제발. 제발.'
이한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제발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고정했다.
한 개, 두 개, 열 개. 점차 늘어가던 숫자는 어느 샌가 수십에 달해버린다. 만약 몬스터라면 저 정도의 가세만으로도 전장의 균형은 무너져 버리리라. 화면 가득한 푸른 하늘과 얼룩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검은 얼룩이 전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어떤 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다른 이는 그대로 무너져내리며 절규했다. 서울 경계선을 지켜보고 있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차마 화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이 악몽이 그대로 끝이 났으면 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버린다. 절망이라는 이름에 그렇게 사람들이 먹혀버리고 있을 때, 이한나의 음성이 스피커를 찢을 듯 터져나왔다.
'지원군입니다! 지원군!'
그 예상치 못한 말에 사람들이 다시 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고 바라본 화면에는 그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의 이능력자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멀게만 느껴지는 다른 점들과는 다르게 유독 빠르게 전장에 다가오는 점은 이제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붉은 빛이다.
검붉은 빛의 갑주로 온몸을 감싸고 거대한 날개를 편채로 전장을 향해 접근하는 인물.
피바라기 김형준이다.
순식간에 전장에 다다른 검붉은 궤적이 그대로 거한과 공방을 주고 받는 검후의 곁으로, 정확하게는 그녀의 정면에 마주 짓쳐들던 거한에게로 꽂혀버렸다.
마치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사방을 진동시켰다. 이리 저리 흔들리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이한나의 비명소리에 지켜보던 이들조차도 그 엄청난 충격파를 실감할 정도였다.
마치 핵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하늘 높이까지 먼지구름이 솟아올랐다. 단지 붉은 궤적의 출현만으로도 전장은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퍼져나간 충격파 탓에 격전을 거듭하던 몬스터들과 이능력자들도 몸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한 탓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강상태가 되어버린 전장, 이제까지의 격전이 우스울 정도로 쉽게 몬스터들과 엉켜있던 이능력자들이 물러날 기회가 되었다.
온 사방을 가득 매우고 있던 먼지구름이 무언가에 떠밀리듯 전장의 한켠으로 밀려난다. 이윽고 드러난 처참한 전장의 한가운데에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버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붉은 갑주를 걸친 인물,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염원하던 존재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피바라기 김형준이 전장에 강림했다.
허공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미국 히어로즈 소속의 이능력자들을 비롯해 각국에서 지원나온 이능력자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날개를 가진 이능력자라니 진즉부터 들어보긴 했지만 눈 앞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고 나니 감탄이 절로 나온 것이다. 높게 솟아오른 먼지구름이 자신들마저 밀어내자 욕지거리를 내뱉는 이능력자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내 쏙 들어가버렸다.
일순간 밀려난 먼지구름 안에서 드러난 거대한 크레이터에 할말을 잊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예상했던 것보다 처참한 전장의 상황에 경악한 것이다.
허공에서 내려다본 터라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눈을 가득 채운 전장 전체는 몬스터들의 체액과 이능력자들의 피로 질척질척해져 차라리 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온 사방에 늘어진 처참한 시체는 그 어느 하나 온전한 꼴을 유지하는 것이 없었으며, 그나마 물러선 이능력자들 중 태반이 사지 멀쩡한 이가 없었다.
이미 작전 브리핑때부터 상황을 듣기는 했지만, 정도 이상의 격전에 각국의 이능력자들이 혀를 찼다.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이 호구라던 새끼 누구야!"
유니온에세 수탈당하며 살아가던 대한민국 이능력자들을 비꼬던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이의 한마디였다. 그에 답하는 이능력자는 반대로 독종으로 소문난 대한민국 이능력자들 답다는 말을 하며 감탄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토해냈다.
"왜 후퇴하지 않았지?"
공군의 도움으로 고공에서 낙하산을 편채로 떨어져 내리던 이능력자의 말에 저 멀리 있
던 인물 하나가 대답했다.
"저들에게는 저 곳이 마지막 경계선이지. 저런 몬스터군단에게 뚫려버리면 사실상 대한민국 전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의 대꾸에 의문을 표했던 이능력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근에 군부대가 빽빽하게 전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무려 2등급과 3등급에 달하는 몬스터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 몬스터들 중 몇 마리만 새어나가도 부대는 전멸이다.
하물며 한둘도 아니라 수백 수천이다. 보는 것만으로 질려버릴 정도의 엄청난 몬스터 대군. 이들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그날로 사라지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도 이능력자가 살아남아야 수복을 하던가 반격을 하던가 하지."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나서도 그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 혼전이 벌어졌다면 당연히 이능력자들의 피해도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였다면 당연히 이능력자들을 빼고 그 자리를 다른 이들로 채웠을 것이다. 비록 피해가 어마어마하겠지만 이능력자 없이는 지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그것이 옳은 결정이리라.
"알 수 없지. 이들이 왜 그랬는지."
그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에 낙하산이 지상에 가까워졌다. 몇몇 성격 급한 이능력자들은 낙하산을 버리고 그대로 지상에 착지했다. 그렇게 지상에 내려선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하늘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욱 끔찍한 전장의 모습에 질려버린 것이다.
질척이며 발을 잡아채는 피웅덩이와 육편조각들에 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작품 후기 ============================허리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눌님은 단호하시더군요. 다친 동안에도 마찬가지 일정을 소화해내야 했었습니다. 덕분에 쉬면서 글을 쓴다는 계획은 무산되었지요. 그리고 허리도 악화되었습니다.
오늘도 출근 못하고 쉴 것 같습니다. ㅠㅠ아픈 김에 마눌님 눈치를 보며 할 게 없어서 노블 소설 봤는데 재미있는 신작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그 중에서 미래신문. 매끄러운 필체면서도 조아라 노블 특유의 공감코드와
각종 흥미요소들을 잘 버무린 게, 보면서 이 작가님 납치해서 글 좀 배워보고 싶다 싶었습니다.
일단은 완결까지 정말 몇편 안남았습니다. 오늘 오후 열두시에 또 한편 올라갑니다!
*여덟달 된 도고 아르헨티노 옥희 말고 저먼 복서란 놈을 데려와 달봉이란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개가 두마리가 되니 일감이 두배가 아니라 열배는 는 느낌입니다. 허리도 아픈데 이유식 만들어주랴 똥치우랴 밤새 낑낑대는 거 달래주랴 죽겠네요. 그래도 행복한 건 아직 제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자식처럼 생각해서 인가봅니다.
친한 형님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꼭 영화에 나오는 악역 마피아 같다고 하더라고요.
"돈하고 개는 거짓말 안해."
하며 사람들 괴롭히는 ㅋㅋㅋ저는 개덕훕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