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215화 (215/223)

< --  2-7. 최종 결전.  -- >

인간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몬스터들의 흉물스러운 사지가 허공에 치솟는다. 유부에서 올라오는 듯한 끔찍한 비명소리가 귀가 찢어져라 들려오고, 그 사이로 새겨지는 이능력자들의 처절한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TV화면을 지켜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도 귀를 막지도 못했다. 그것이 비단 이 전투의 향방에 따라 자신들의 목숨이 오고 감뿐만은 아니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이능력자들과 몬스터들의 전투가 워낙에 치열했던 탓이다. 한동안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져든다 싶었더니, 급작스럽게 몬스터들이 흉성을 돋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는 처절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여느 방송과는 다르게 잔인하고 흉악한 장면들이 아무런 가감없이 화면을 타고 흘러나왔다. 전투의 양상은 혼전이었다. 애초에 대열을 갖춘 이능력자들의 사이 사이로 떨어져내린 몬스터들이다. 뒤늦게 대열을 갖추려고 했지만, 몬스터들의 흉성도 만만치 않았고 이후로 강하해오는 몬스터들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결국 이능력자들은 집단전을 포기하고 본신의 이능에 기대어 힘겨운 전투를 이어갔다. 개 중에서 활약을 보이는 고위 이능력자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였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컸다.

덧없이 죽어가는 이능력자들의 수가 더욱 많았던 탓이다.

이미 기초교육에 몬스터들의 정보가 포함된지 오래였다. 그런 탓에 사람들은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들이 얼마나 강대한지 또 얼마나 포악한지 잘 알고 있었다.

용아병부터 시작해서 이무기까지.

듣기로는 하나만 나타나도 도시를 초토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괴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이 하나도 아니고 수백 수천이다. 서울 주둔지에 모인 이능력자들의 수가 많다고 해봐야 고위 이능력자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화면에 보이는 이능력자들의 희생이 큰 것도 거기에 이유가 있었다.

나름 선전을 하고 있는 4등급 이상의 이능력자들과는 다르게 5등급 이하의 이능력자들은 말 그대로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물러나..."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간절하게 말해보지만, 그도 이능력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전방과 후방이 없는 아수라장, 물러나봐야 새롭게 강하한 몬스터에게 살해당할 뿐이다.

덕분에 덧없이 죽어가는 하위 이능력자들의 수가 너무도 많았다. 바로 전에 분배한 유물의 힘을 빌어 어렵게 버티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고위 이능력자들을 제외하고는 생존자가 남지 않을 지경이었다.

'상황은 어렵습니다! 너무도 어렵습니다!'

앵커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일전에 김형준이 처음에 언론에 노출되었을 당시에 D섹터에서의 전투를 무리하게 촬영했다가 그 무책임함 때문에 희생을 늘렸다는 이유로 매장당한 여성 앵커 이한나였다.

'몬스터들의 수는 너무도 많고, 이능력자들은 벌써 지쳐가고 있습니다!'

악을 쓰듯 중개하는 그녀의 음성에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지난 사건으로 인해 앵커생명이 끝나버린 그녀였지만, 그일로 인해 이능력자들에 대해 깊은 이해가 생겨버렸다.

그런 그녀이니만큼 지금 이능력자들이 얼마나 힘겨운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전투가 벌써 한시간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위 이능력자들은 벌써부터 이능을 사역한 대가로 피드백에 시달리고 있고! 고위 이능력자들이 그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무리한 전투를 펴나가고 있습니다!'

하위 이능력자들을 추려 전장을 벗어나게 하려고 해도, 그랬다가는 수의 균형이 깨져 고위 이능력자들이 떼죽음 당해버린다.

그렇게 되어서야 이번 전투를 승리하더라도 다음 괴수전을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피해가 늘어가는 이능력자들을 바라보던 이한나가 절규했다.

'군에서는 이능력자들과 몬스터들이 지나치게 가까워 그 어떤 지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의 개인화기는 지금 이순간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능력자들은 외롭게 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뒤로 비친 화면에서는 쉴 새 없이 이능력자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이들의 대부분은 8등급 9등급에 불과한 이능력자들이었는데 무력한 가운데에서

도 최선을 다하다 그대로 살해당하고 있었다.

투다다다다!

화면 너머로 콩 볶는 듯한 총성이 울려퍼졌다. 본신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깨달은 하위 이능력자들이 군의 지원을 받아 지원용 화기를 손에 쥐고는 고위 이능력자들의 전투를 지원한다.

효과는 미비했지만 차라리 본신의 힘으로 부딪쳤을 때보다는 효과가 있다 판단했는지, 점점 전장을 총성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위 이능력자들은 여전히 무력하게 죽어갔고, 고위 이능력자들은 무리한 이능의 사역으로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제기랄!'

누군가가 욕설을 내뱉으며 수류탄을 들고는 몬스터를 향해 내달렸다. 맞은편에 선 거대한 늑대 모습의 괴수는 그런 사내를 그대로 입에 물어버렸다.'끄아아악! 빌어먹을 새끼야아아아!'

하반신이 거대한 늑대의 주둥아리에 완전히 먹혀버린 상태에서도 남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지켜보는 이들이 눈물이 날 만큼 처절한 광경이다.

'혼자 죽을까봐!'

그때 늑대의 주둥이에 조금씩 집어삼켜지던 남자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그리고는 늑대의 입이 벌어진 순간 오히려 자신이 그 안으로 파고들어버렸다. 이어지는 섬광과 폭음, 그리고 육편조각의 비산.

거대한 늑대의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구하려고 몸을 날리던 고위 이능력자도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순간 말을 잊었다.

자살특공과 다름이 없는 남자의 행동에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분노가 태반이었던 고위 이능력자의 침뭄과는 다르게 하위 이능력자들은 그 모습에 다른 것을 느낀 모양이다.'제길! 수류탄 줘!'

산개하여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군인들이 그 말에 담긴 기세에 눌려 수류탄을 내밀었다.

그 손에 놓인 수류탄을 낚아채는 손이 여러개다. 어느새인가 모인 이능력자들이 너도 나도 수류탄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는 한 개, 누군가는 세 개가 넘는 수류탄을 손에 쥐고는 몬스터를 노려본다. 얼결에 수류탄을 넘긴 군인 한명이 설마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류하려 하는데, 이미 전장의 곳곳에서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위이능력자들은 그렇게 죽음으로라도 고위이능력자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한나가 다급하게 내달리는 모습이 화면에 보인다. 카메라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그녀를 쫓았다.

'안돼요!'

이한나가 그대로 달려나가 이름모를 능력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손에 수류탄을 쥐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던 사내는 이한나의 난입에 이를 악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울먹임과 비명이 섞여 간신히 한마디만 내뱉은 그녀에게 사내가 미소를 보였다.

'비록 저분들에게 미치진 못하지만 저도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니까요.'

단번에 그녀가 비능력자임을 알아챈 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뒤편에 정렬한 군인들에게 그녀를 인개했다. 발버둥을 치며 울부짖는 그녀를 몇 명의 기간병들이 간신히 억눌렀다.

'이한나씨였죠? 일전에 방송 잘 봤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무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장 위로하고 싶은게 누군데, 사내가 주제 넘게도 그녀를 위로한다. 이미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이한나는 유명인이었다.

지난 D섹터에서 무리한 촬영으로 희생을 늘렸다며 자책하여 이능력자들의 일상에 관심을 보이던 인터넷 VJ. 일전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상이 그녀의 손을 거쳐 편집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평생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거라는 그녀가 이 험악한 전장에 나타난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였다.

이 처절한 사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들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방송 복귀라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온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 덕에 그가 원하는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죽는 것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없던 애국심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유니온을 통해 끊임 없이 세뇌되어온 힘에 걸맞는 책임이라는 신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저는 이현승입니다. 8등급 이능력자며 콜싸인은 없습니다.'

그가 한마디를 남기고는 혼란스러운 전장으로 내달렸다.

'안돼에에에에에에!'

이한나가 절규하며 발버둥을 쳤다.

그 모든 것이 화면을 통해 대한민국의 전역, 아니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손을 모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지금 이순간만큼은 기독교니 불교니 그들에게 상관없었다. 다만 초월적인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의 바람을 들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발.

어느 하나 제외할 것 없이 화면을 지켜보는 모두가 간절히 기원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 속에 희망 하나가 떠올랐다.

'김형준만 온다면!'

'피바라기만 있으면!'

이미 전황을 통해 김형준을 비롯한 전력의 실세들이 자리에 없음을 깨닫고 있던 사람들은 김형준이 나타나 저 모든 위기를 타개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화면이 이리 저리 흔들린다. 그리고는 괴성이 터져나오며 카메라가 거칠게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래도 카메라맨이 몬스터에게 당한 모양이다. 카메라를 렌즈에 피가 흩뿌려졌는지 일순간 화면이 벌겋게 가려져버렸다.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소리만큼은 그대로였지만 화면이 보이지 않자 더욱 애가 타고 안타까웠다.

저 피가 꼭 불길한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아 화면을 보고 있던 모든이들이 몸을 떨었다.

카메라가 움직였다. 떨어지면서 충격을 받았는지, 화면이 지지직 거린다. 조막만한 손이 렌즈를 이리저리 훑으며 피를 닦아낸다. 하지만 그게 여의치않자 무언가로 필사적으로 화면을 닦아냈다.

울먹거리는 음성이 화면을 너머 모두에게 들려온다.

'끝까지 찍을 거야. 끝까지 찍을 거야.'

수없이 되뇌는 그 간절한 읊조림, 이한나의 음성이 되풀이되다가 이내 화면이 비교적 깨끗해졌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살공격을 감행하면서까지 이 나라를! 이 땅을!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능력자들을!'

울먹임이 잦아든 목소리였지만 잔뜩 쇳소리가 섞인 엉망진창의 음성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혼잣말인지 뭔지 끼어드는 한마디는 마치 정신나간 사람의 그것과도 같았다.

'제발. 제발.'

개인과 앵커를 오가며 이제는 카메라까지 짊어진 이한나가 무모하게 전장의 중심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그녀가 자신들의 마지막을 끝까지 남기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몇몇 이능력자들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쌌다.

자신도 동료들처럼 장렬하게 싸우고 싶다. 두렵지만 피가 끓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마음을 억눌렀다.

동료들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내리라. 그녀가 카메라를 놓치면 내가 마무리를 지으리라.

그렇게 다짐한 그들이 온몸으로 기세를 피워올리며 그녀를 에스코트해 전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잊지 않을게요. 잊지 않을게요.'

낮은 읊조림이 반복되고 화면이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 수없이 죽어가는 이능력자들의 육탄공격에 몬스터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투는 치열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을 담던 화면이 어느 순간 한적한 공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한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너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단지 여인 하나와 거대한 몸을 가진 흉악한 거한.

'꺄아아악!'

단 둘뿐인 전장이었지만 어느 전장 못지않게 살벌한 전투였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카메라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렸다. 곁에 선 이능력자들까지 나서서 카메라를 짊어진 그녀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허무하게 충격파만으로 절명하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이능력자들의 조력도 한계에 달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으로 전장을 지켜보던 고위 이능력자 몇이 다가와 그들을 둘러싸고 충격파를 막아선다.

'고맙습니다.'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아름다운 여인, 이미 방송을 통해 팬까페까지 생길 정도로 인지도가 생긴 '달무리' 김수현이었다. 검맥의 대외적인 전력으로 잘 알려진 그녀는 차분하고도 여성스러운 외모로 유명했는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평소의 아름다움따위 조금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산발을 한 머리는 어딘가에 그을리고 타버려 엉망이었고, 옷이 엉망으로 찢겨나가 맨 피부가 온통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맨 피부를 덮은 찐뜩한 선혈때문이리라.

얼굴의 한쪽이 반쯤 뜯겨나가듯이 상처를 입은 그녀가 고개를 숙여보이며 이한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가 무리해서 자신들의 마지막을 담으려는 것을 단번에 파악한 탓이다. 이한나가 그녀의 처참한 상처를 보며 손을 뻗는데 김수현이 그대로 몸을 돌려 충격파를 선두에서 막아내기 시작했다.

과연 이름높은 이능력자 답게 화면이 단번에 안정되고 소음이 줄어든다. 화면 너머의 사람들은 깨끗해진 화질에 좋아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이한나는 다시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선 고위 이능력자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고위 이능력자들이다. 한명 한명이 팬까페를 지니고 있었으며 평소에도 그 강대함이 1등급 이능력자들을 제외하고는 적이 없다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간신히 충격파를 버텨내며 겨우 겨우 전장을 지켜보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한 여인과 거한이 치르는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능력자들의 마지막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것처럼, 그들 역시도 누군가의 전투를 눈에 담고 있었다.

그제야 이한나는 전장의 정중아에서 힘겹게 싸워나가는 여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검후 전지현입니다! 피바라기의 아내이기도 한 그녀가 전투에 합류해 있었습니다!'

흥분하여 소리친 그녀였지만, 이내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김형준만큼이나 강자로 알려진 그녀가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간신히 상대와 공방을 주고 받고 있었던 탓이다.

거한의 온모을 감싼 어둡고 어두운 불길이 수시로 혀를 낼름거리며 전지현을 집어삼키려했다. 그때마다 어딘가에 상처를 입던 그녀가 끈덕지게 거한, 다이달로스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둘중에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이번 전투의 향방이 달렸다는 사실을.

============================ 작품 후기 ============================혹시 또 깜박할까봐 예약 걸고 또 한편 쓰러 갑니다.

다 쓰면 또 예약 걸어버리겠습니다.!

오늘은 최대한 최대한 많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이번주말까지 완결 내는 걸로 해서. 연참하겠습니다.

혹시 또 깜박할까봐 예약 걸고 또 한편 쓰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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