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214화 (214/223)

< --  2-7. 최종 결전.  -- >

볼품없는 모양새의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풍기는 기세가 달라지니 사람 자체가 달라보일 지경이다. 권태로운 표정을 한 다이달로스의 시선이 전장을 훑었다.

단지 눈빛이 스쳤을 뿐이지만, 전지현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그의 시선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굳게 잡은 검을 온 힘을 다해 검을 떨쳐냈다. 막대한 기세가 담긴 검격이 허공을 갈랐지만 허무하리라만치 사라져버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충돌한 듯, 아니 그 무언가에 먹히기라도 한 듯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 검세에 전지현의 등가가 축축해졌다.

전의 아바타와는 존재의 격이 다르다.

일전에 만났던 다이달로스의 아바타 역시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그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천지가 숨을 죽이고 몸을 떨었다. 그녀 역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인의 경지에 달한 인물이었지만, 다이달로스의 기세에 압도될 정도다.

마른 침이 넘어간다. 검을 굳게 잡은 손아귀에는 이미 흥건하게 땀이 흘러나와 이대로

검을 휘두를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다이달로스의 말간 눈빛이 그런 그녀를 응시했다.

"직접적인 원한은 다른 이에게 있지만, 그대도 관련이 없는 건 아니지. 탓하려면 내가 아닌 그대의 부군과 불운을 탓하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이달로스의 신형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왜소했던 노인의 몸이 근육으로 뒤덮이고, 굽었던 골격이 바짝 펴져 신장이 두배는 커져 버린다.

주름 가득하던 얼굴도 팽팽하게 당겨져 마치 젊은이라도 된듯한 모양새였는데, 그 눈빛에 숨겨진 헤아릴 수 없는 연륜만이 그가 방금 전까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변한 것은 외양만이 아니었다. 풍기는 기질 역시 판이하게 변해버렸다.

좀 전의 기세가 압도적이면서도 차분한 종류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기세는 마치 광폭한 폭풍과도 같은 기세였다. 그를 중심으로 대기가 휘몰아친다.

전지현 역시 그에 맞춰 기세를 끌어올리고 투기를 내뿜었지만,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열세였다.

산을 나온 이후로 자신이 이 정도까지 압도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그녀 자체로 이미 인간을 초월한 초인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 감히 누가 있어 그녀를 압박한다는 말인가.

자연스럽게 투쟁심과 호승심이 올라왔다. 잘 벼려진 칼 같던 기세가 조금은 거칠게 풀어지며 몸을 불려나간다.

그녀의 기세와 다이달로스의 기세가 이제는 눈에 보일 지경이 되어 전장의 한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해 나간다.

덕분에 혼이 빠진 것은 다른 이들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기운의 파동에 주변에서 격전을 치르던 이능력자들이 하얗게 질려 분분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몬스터들은 그런 이능력자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마치 명령이라도 기다리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서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몸을 빼내는 이능력자들 사이에서도 몇몇 이능력자들이 반대로 전지현이 있는 전장의 중심으로 달려왔다.

김수현과 진태식을 비롯해 검맥에 소속된 상위 이능력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이 합세해도 다이달로스의 기세에 비해 열세인 것은 분명했지만, 전지현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정련되지 않은 두 기운의 충돌에 하얗게 질린 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자신은 한명의 검사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부군은 그녀를 믿고 대한민국의 모든 전력을 맡기고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한바탕 칼부림을 하고 쓰러져서야 그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녀의 기세가 조금씩 부피를 줄여나갔다. 거칠어졌던 기운이 다시 정리되어 갈무리가 되고, 이제는 다이달로스의 기세를 조금씩 비트는 정도로 간신히 저항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얼굴에 조금 전보다 힘겨운 기색이 역력해졌지만, 다른 이들이 느끼는 부담감만큼은 확실하게 준 듯 했다. 하얗게 질렸던 이능력자들의 낯빛에 조금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면목이 없구나."

힘겨운 상황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하지만 그 안에 서린 알 수

없는 각오와 의지가 다른 이능력자들을 기이할 정도로 흔들었다.

그 순간 그녀가 이제껏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을 바닥에 내던졌다. 진태식과 김수현이 그녀의 검집이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눈으로 쫓았다.

검사가 검집을 버린다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1등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었지만, 그녀의 기세가 다이달로스에 비해 열세인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각오가 그들에게 전이됐다. 막 그녀를 만류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데 그녀가 선수를 쳤다.

"뒤를 부탁한다. 시간을 벌 테니, 대열을 정비하도록."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잡아야 한다고, 말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그녀가 몸을 날렸다.

한줄기 검이 되어 다이달로스를 향해 쏘아져나가는 전지현을 바라보는 이능력자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 그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전지현이 마침내 다이달로스에게 다다렀다.

이제는 검의 형상만이 남아 전지현의 모습은 희미하기만 했다. 검 끝에는 맑고 영롱한 빛무리가 수시로 흘러내렸다. 아름답기만 한 기운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위력은 땅을 가르고 하늘을 찢어발길 정도의 것. 소리없이 다가선 공격에 다이달로스가 양 다리를 벌리고 중심을 낮췄다.

그리고 양손을 뻗어 그녀의 검을 받는 시늉을 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경천동지할 위력을 가진 그녀의 검세를 받아내는 그의 동작은 단지 손을 내뻗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지른 검은 힘을 잃고 그가 내민 손바닥에 잡혀버렸다.

"하찮다. 하찮아."

다이달로스가 오만하게 한마디했지만, 정작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전지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검끝이 꺾여 다이달로스의 우람한 팔뚝을 타고 올라갔다. 사냥감을 노리는 뱀의 민활한 움직임처럼 검봉이 이리 저리 몸을 비틀며 다이

달로스의 목을 향해 나아갔다.

처음의 공격보다 오히려 이번 공격에 담긴 기운이 큰듯하자 다이달로스는 오만한 표정을 거두고 몸을 뒤로 뺐다.

단지 두걸음. 그 두걸음만으로도 그는 이미 전지현의 공격을 회피해버렸다.

그녀의 검이 허공에서 다시 춤을 췄다. 허공으로 솟아오르던 검이 방향을 뒤틀며 무수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다이달로스를 향해 나아간다. 전후좌우 사방 10여미터를 가리는 수 많은 검영들이 뒤늦게 대기를 찢어발기며 내리꽃히고 올려쳐지고 베어진다.

그리고 전지현은 검의 그림자들 속에 몸을 숨기고 검을 찔러나간다. 다이달로스가 무표정하게 발을 구르고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휘둘렀다. 마치 벌레라도 쫓듯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전지현이 만들어낸 수많은 검영들이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풍기는 기세에서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이런 잡스러운 공격이 먹히지 않을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시도한 것은 노리는 바가 있었던 탓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여덟 개의 검영과 그녀가 내지른 검의 진체가 다이달로스의 온몸을 그어나간다.

아홉 개의 검. 처음부터 그녀가 노린 공격은 이것이었다. 수많은 검세로 다이달로스의 공격을 대비하고 방어를 무력화한다. 그리고 뒤에 숨겨놓은 아홉자루 비수로 목을 취한다.

단순하지만 공을 들인 공격이었다. 그것을 위해 성격에 맞지도 않게 화려한 검세를 보였고, 계획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녀의 검이 그의 피부조차 뚫지 못하고 멈춰서기 전까지는.

미노타우르스-모노케라스의 철옹성같던 방어조차 뚫었던 공격이다. 비록 준비한 시간이 짧다 하나 나머지 여덟자루의 검으로 그 공격력을 보강했다.

하지만 다이달로스에게는 아무런 상처조차 줄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다시 손목을 비틀었다. 끼이이익다이달로스의 몸을 타고 검날이 듣기 싫은 소음을 내며 흘러내렸다. 이제껏 베어내지 못하는 것이 없었던 검맥의 정련된 기운이 그저 피륙에 불과한 겉껍질조차 뚫지 못하고

힘겹게 흘러내렸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열세인 바, 자신이 제대로 된 공격을 준비할 시간따위 적이 줄리 없었다.

그렇다면 쉴틈없는 공격을 퍼부으며 틈을 찾아야했다. 틈만 발견한다면 수백년 고련한 검이 베어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한번, 두 번, 열 번.

점차 공세가 늘어간다. 아직까지는 다이달로스의 무표정한 얼굴도 단단한 피륙도, 어느 것 하나 뚫어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내 다이달로스의 피부를 긁고 베고 찌를 뿐이었다. 그녀가 검을 내지르는 중간 중간 다이달로스가 손을 휘두르거나 했지만, 어쩐 일인지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지는 않았다. 그것이 못내 불안하면서도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녀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른 아침, 원래대로라면 출근하는 인파로 넘쳤어야 할 도시의 도로가 한적하기만 했다. 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이따금씩 보였지만 그마저도 금새 사라져버린다.

그나마 도시의 외곽지역에 사람그림자가 모여 있었는데, 온통 얼룩덜룩한 전투복을 입은 대한민국의 육군들이 그림자의 주인이었다.

"상황이 심각하다."

중령의 계급장을 단 사내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하자, 곁에 있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힘에 부쳐 보입니다."

다른 이의 말에 중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모인 막사의 정 중앙에는 투박한 군용 통신기와는 다른 조그만 통신기가 놓여있었는데, 쉴새없이 비명과 고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제길! 뚫리면 안 돼!'

'끄아아악'

'지원! 지원을!'

'이쪽도 용아병이 둘이야!'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는 서울 경계선에 위치한 이능력자들의 것이다. 이번만큼은 정말 제대로 된 연계를 펴기 위해 대대단위로 소량씩 지급된 이능력자들의 통신기는 쉴 틈 없이 다급한 상황을 토해내고 있었다.

진즉에 정체불명의 무리로부터 서울 주둔지가 공격을 받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던 군부였다. 다만 현재 모인 이능력자들의 전력을 믿고 있었기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상황이 급박하게 변해버렷다.

갑작스러운 무리의 습격에 이어, 몬스터들의 난입까지.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난입한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고등급의 괴물들이었다. 서울을 잃고 난 이후부터 꾸준히 연구해온 군부의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검토해 보아도, 일반인이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원하는 만큼의 타격을 입히려면 개인 화기가 아닌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할 터였다.

"제길. 저렇게 뭉쳐 있어서야..."

하지만 격전을 펼치는 이능력자들의 수가 원체 많아 폭격을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천개의 눈동자가 군부의 능력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이능력자들의 피해를 무시하고 폭격을 가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는 중령과 다른 인물들은 입술이 바짝 바짝 말랐다.

지금은 부디 큰 피해 없이 이능력자들이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해내기를 바랄뿐이었다. 검후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여인이 활약을 하고 있다니, 어쩌면 그들의 바람대로 상황이 마무리 지어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통신기를 통해 전해져 온 이후의 상황은 그들을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검후라 불리는 절대강자가 정체불명의 인물과 대치를 하느라, 상황 타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갑작스레 나타난 적의 조력자는 검후 이상의 초강자라고 한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공격하고는 있으나 그녀의 공격이 대부분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니, 어쩌면 서울 주둔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화면이 잡혔습니다!"

통신기의 주변에 모인 장교들 뒤편에서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던 사내가 소리 쳤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몇 번이나 헬리콥터를 띄우고 원거리 촬영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인명피해만 냈다. 그 탓에 비명소리와 고함소리만이 가득한 통신기를 통해 답답한 마음으로나마 상황을 파악하려 하고 있었는데 화면이 연결 됐단다.

장교들이 황급히 자리를 옮겨 모니터가 놓인 책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꽤나 근거리에서 촬영한 화면에는 무수한 몬스터들의 시체와 이능력자들의 시체가 가감없이 보이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희망이 모인 서울 주둔지는 지금 지옥과도 다름없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새벽에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은 놀랍게도 같은 이능력자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황당하게도 화면은 민간 방송국의 그것이었다. 제법 얼굴이 반반한 여자 리포터가 악을 써가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녀의 주변에 이따금씩 스쳐가는 그림자들이 그녀가 격전지의 한 가운데에 있음을 알려준다.

장교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주시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장면들은 아무런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전파를 통해 대한민국의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마침 허리를 다쳤습니다. 마침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덕분에 하루 이틀은 출근하지 않고 글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귀하면 또 글을 언제 쓸 짬이 날지 모르니,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픈 김에 글만 써서 쉬는 동안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 내일 시간 상관없이 업뎃 들어가겠습니다.

마침 허리를 다쳤습니다. 마침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덕분에 하루 이틀은 출근하지 않고 글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귀하면 또 글을 언제 쓸 짬이 날지 모르니,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픈 김에 글만 써서 쉬는 동안 마무리 짓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