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211화 (211/223)

< --  2-7. 최종 결전.  -- >

대한민국의 모든 전력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 경계선은 현재 어수선하기만 했다. 전력의 핵심을 이루는 1등급 이능력자들이 갑작스럽게 해외원정을 선언한 탓이었다.

김형준이야 타국의 이능력자들 중 몇몇과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지만 다른 이들 대부분은 다른 1등급 이능력자들과의 팀워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1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로 등급이 책정된 천개의 눈동자와의 전투를 앞두고 위기감이 고조될 만하기도 했다.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무리한 원정길에 오르는 그들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실제로 괴수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그들이 스스로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말릴 방법도 없었다.

결국 모두의 우려를 뒤로 하고 김형준을 비롯한 1등급 이능력자들 중 상당수가 서울 경계선의 주둔지를 떠났다.

만약을 위해 남은 전지현 하나만이 전력의 공백이 생긴 주둔지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천개의 눈동자가 선언한 세달이라는 시간 중 채 한달이 남지 않았다. 잔뜩 사기가

올랐던 이능력자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중압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천개의 눈동자의 기파가 그대로 느껴지는 주둔지의 위치 탓일 수도 있었고, 예정 외의 작전으로 원정길에 오른 1등급 이능력자들의 빈자리가 느껴진 탓일 수도 있었다.

주둔지의 어수선한 기운을 감지한 전지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시는 김형준과 떨어지지 않기로 검에 대고 다짐했던 그녀였지만, 타국의 이능력자들에게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을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라 결국 홀로 남아야 했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위험을 무릅쓴 원정길에 오른 이들도 걱정이었고, 남은 이들의 투기가 무뎌지는 것도 걱정이었다.

부디 촉박한 일정을 두고 떠난 이들이 되도록 빠르게 무사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늘었지만, 그녀는 겉으로나마 의연하게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이따금씩 가슴을 짓누르는 불길한 예감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인물이다. 검으로 도를 이루어 반선인의 경지에

이른 그녀에게 쓸데없는 예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더 자신의 예감에 그녀가 귀를 기울였다면 어쩌면 그날의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이나 간절히 바랐건만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들이 닥쳤다.

전지현은 오늘따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늘 의연한 태도를 보이던 그녀가 오늘따라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그 곁을 수행하던 2등급 이능력자 '달무리' 김수현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절대 강자의 모습이 기이하게도 그녀를 덩달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검후께서도 긴장을 하시다니."

조심스럽게 농담을 건네보지만 불길함은 더욱 끈적끈적하게 그녀들이 있는 막사를 감쌀 뿐이ㅇ?

ㅆ다.

"아직 수행이 부족한 게야. 큰 전투를 앞두고 나니 평정이 깨진 거지. 언제 어느때라도

명경지수와도 같은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데. 수백년 수련이 헛됐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김수현의 말에 대답한 전지현은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했다. 명상을 하면 조금은 나아질까 하여 눈을 감은 그녀를 보며 김수현은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전지현의 음성이 불러 세웠다.

"현재 주둔지에 모인 이들 중 2등급 이상의 인원은 모두 어디에 있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김수현이었지만 성실하게 대답했다.

"각 부대의 지휘관으로 편제되어, 각 부대의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고 있습니다."

김수현의 대답에 전지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 모아서 주둔지의 서편에 집결시켜."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이었지만, 김수현은 지체하지 않았다. 전지현의 태도가 워낙에 심상치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에게도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짧게 대답하고 막사를 뛰쳐나간 김수현을 바라보며 전지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막사의 한켠에 놓여있던 그녀의 애검과 엑스칼리버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가 엑스칼리버를 집어들었다.

이제는 그녀의 애검과도 완전히 같은 모습을 하여 더 이상 아서 팬드래건이 사용할 당시의 모습도 남아있지 않은 신검이 오늘따라 유난히 날카로운 빛을 흩뿌렸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그녀가 검을 한손에 쥐고 막사를 나섰다.

전지현이 막사 밖을 나서자 상당수의 이능력자들이 서편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김수현이 제대로 그녀의 말을 수행한 듯 싶었다.

그래도 미진한 감이 있어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는 크게 소리 쳤다.

"들으라! 주둔지의 서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이 다가오고 있다. 연락이 없는 손님은 대개 불청객이기 마련! 스스로의 힘에 자신이 있는 이들은 주둔지의 서쪽 입구에 집결하라!"

그녀가 갈고 닦은 심후한 기운이 넓디 넓은 주둔지에 몇 번이나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에 각 막사의 천막이 찢겨질 듯 재껴지고 이능력자들이 속속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3등급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은 주둔지를 지켜라!"

능력이 모자란 이들 몇몇이 의욕만 앞서 서편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그제야 어수선하게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능력자들중 상당수가 제 자리를 찾아 도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금씩 대열을 갖춰가는 이능력자들을 보고 있을 때 김수현이 돌아왔다.

"이번에 지급된 휴대용 통신기가 전량 지급되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빠르게 이능력자들을 집결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미 지난 시간동안 효용을 입증해온 휴대용 통신기가 주둔지의 이능력자들 전부에게 지급된 것이 바로 전날이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마련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상시국이 되고 나니 톡톡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각 부대의 조장급이 모두 집결한 관계로 부조장급의 이능력자들이 지휘권을 인계받도

록 조치했습니다."

흔들림없이 제 할 일을 수행한 김수현을 보며 전지현이 조금은 든든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현대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에게는 김수현의 조력이 꽤나 적절한 도움이 되었다.

"가자."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각 부대의 조장급들이 모인 주둔지의 서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김수현이 짧게 자신들의 부재에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시를 남기고는 그녀를 따랐다.

전지현과 김수현이 주둔지의 서편에 갔을 때는 이미 거의 모든 이능력자들이 소집에 모여든 이후였다.

소집으로부터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흐트러짐 없이 집결지에 모인 그들을 보며 전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 군인도 아닌 이들이 이정도로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타국의 이능력자들의 해이함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은 D섹터와 유니온이라는 조직을 통해 충분히 단련을 받은 강자들이다.

자연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소집에 달려온 이능력자들은 상황을 대충 짐작했는지, 이미 각자의 무기들을 뽑아든 채였다. 그녀의 명령만 있다면 그 대상이 천개의 눈동자일지라도 당장에 달려들 정도로 날카로운 기파를 뿜어내고 있다.

"괴수가 도사린 서울 방면에서 정체불명의 무리가 접근하고 있다. 기운으로 보아 인간이 불명할테지만 그 개개인의 기운에 삿됨이 가득하니 필시 좋은 일로 방문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녀의 말에 이능력자들이 얼굴을 굳혔다. 이곳에 모인 자들이라면 1등급 이능력자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다. 그런 그들조차도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 검후였다.

그런데 그렇게 강대한 힘을 지닌 검후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투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 전지현이 다시 한번 웅혼한 사자후를 내뱉었다.

"비록 그대들이 믿고 의지하는 검맥주와 상당수의 강자들이 자리를 비웠으나, 그대들은

불안해 말라!"

온 사방의 대기가 진동할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온 천지를 흔들었다.

"나 검후가 그대들과 함께 할 것이니, 나의 검이 있는 곳에서는 물러서지 말라!"

그간 김형준의 뒤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었던 검후의 힘이 숨김없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 경천동지할 기세가 집결한 이능력자들의 가슴에 어린 한가닥 불길함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이능력자들의 투기가 다시 날카롭게 날을 세우는 것을 느낀 그녀가 그들을 등진 채 안개 속에 가려진 서쪽을 노려보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서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스로 명상을 통해 주변을 관조하려 시도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접근이었다. 기운을 수발하고 주변을 파악하는 것에 탁월한 효용을 가진 검맥의 수련을 수백년간 해온 그녀에게도 은밀하다 느껴질 정도의 은신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정신을 집중한 채 상대를 파악하려 애를 써도 접근자들의 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막연하게 느껴기를 그저 이 자리에 모인 2등급 이상의 능력자 400명보다는 수가 적다는 것 정도, 그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지난 괴수 전에 목숨을 잃은 정예 이능력자들의 죽음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수없이도 훼손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대한민국의 정기가 손에 꼽게 훼손된 사건이다.

새삼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처하고 나니 그들의 죽음에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를 포함한 400명의 이능력자들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너머를 노려보기를 잠시, 그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모습을 드러내거라!"

비록 짙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날선 기감은 상대가 안개의 경계에 도달했음을 알려줬다. 하지만 상대는 대답은커녕 모습을 드러낼 생각도 없는 듯 보였다.

자신의 일갈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대다. 결국 그렇게도 바라지 않았건만 찾아온 이들이 적임을 확신한 그녀가 기파를 날카롭게 쏘아냈다.

"허락도 없이 이 강토에 찾아온 이들에게 예의를 바란 내가 어리석었구나."

그렇게 외친 그녀가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니 그녀의 정면에 가득했던 안개가 일순간 흩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그녀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안개가 사라지자 적잖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어차피 그들의 입장에서는 숨김없이 기운을 드러낸 전지현의 존재를 진즉부터 느끼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들이 당황한 것도 몸을 가려주던 안개가 급작스럽게 흩어진 탓, 그도 아주 잠시였을 뿐이었다.

전지현은 태연하게 안개 속에서 나와 자신들과 대치한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누구 하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복장을 한 이들이 무표정하게 늘어서 있었다. 얼추 드러난 수만 해도 그녀가 파악하고 있던 수보다 두배는 많다.

전지현은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태연한 기색으로 다시 한번 그들에게 일갈했다.

"말하라! 대답 여부에 따라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이나마 귀하게 대접하는 아량을 보여줄 수도 있노라!"

그녀는 스스로가 평소와는 다르게 지나칠 정도로 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당장 느껴지는 위기감과 불길함에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 노력할 뿐이었다.

"당신이 그렇게나 명성이 자자한 마스터 킴의 아내로군."

괴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사내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견 그녀가 느끼기에도 상당한 강자라 그녀는 내심 침음을 삼켰지만 겉으로는 차갑게 대꾸했다.

"예의가 없구나. 말이야 귀물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것을 구사하나 우리의 예의까지는 배우지 못한 모양이로다. 먼저 그대가 누구인지를 밝히라."

그녀의 말에 상대방은 짐짓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누군지는 차차 알게 될테니 벌써부터 조바심 내지 말자고."

마치 파충류의 그것과도 같은 웃음을 느물거리며 대꾸한 사내의 눈이 징그럽게 그녀의 온몸을 훑었다.

경지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받아본 음심 가득한 시선에 그녀의 얼굴에 노한 기색이 떠올랐다.

============================ 작품 후기 ============================개인사를 핑계로 자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완결까지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불성실한 글쟁이에 부족한 글이나마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과 사죄의 말씀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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