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92화 (192/223)

< --  2-6. 망자의 도시  -- >

콰아아아아아.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로 성가대를 덮친 어둠이 울부짖었다. 마치 수백의 성가대원을 집어 삼키고도 아직 모자라다고 외치듯 그렇게 포효하는 어둠을 바라보는 이능력자들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라도 일단은 인간인 성가대였다. 당연히 이번 전투에서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허무하게 먹혀버렸다. 그들 덕분에 결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또 어떻게 될지 앞으로의 상황이 걱정이다.

허무하게 당한 성가대도 성가대지만 이능력자들에게 그들의 죽음에 애도할 시간과 여유따위는 없었다. 지금도 사방을 잠식해오는 어둠에 저항하느라 온 힘을 다하고 있는데 누가 누구를 신경 쓴다는 말인가.

앞으로의 일은 앞으로의 일이고, 우선은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음. 아무래도 작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데요."

아야나미 로유미가 갸날픈 몸에 어울리지 않는 기다란 태도를 손에 감아쥔 채 김형준에게 말했다. 마치 성가대를 씹어 삼키듯 온몸을 꿀렁거리며 괴성을 내지르는 어둠을 바라보던 김형준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던 김형준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스트리고이-블라가와의 대비는 다른 뱀파이어들을 토대로 생각해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스트리고이의 모습은 그간의 준비가 무색할 정도로 괴이하고 압도적이었다.

어디가 머린지, 어디가 꼬린지.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도 할 수 없는 스트리고이의 모습.

스트리고이의 모습은 마치 밤 그 자체와도 같았다.

검은 장막이 휘날리듯 온 천지를 뒤덮은 모습에 압도될 만도 했지만, 김형준은 오히려 투지가 끓어올랐다.

"일단은 저게 놈의 본체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한 김형준의 양 손에 언제 만들어냈는지 붉은 빛이 어른 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미약할 뿐이었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선명한 몸체를 키워낸다.

"공격을 하다 보면 본 모습도 볼 수 있겠지요."

어느 사이엔가 거대한 꼬챙이와도 같은 모습을 갖춘 붉은 기운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며 어둠을 찢어발긴다. 그 맹렬한 기세에 잠시지만 감탄한 아야나미 로유미가 그를 따라 공격을 준비했다.

고요하게 요동치는 그녀 주변의 대기가 일순간 칼처럼 날카로워지고 수십개로 쪼개지고 갈라져 어둠을 향해 달려 들었다.

한번의 공격에 그치지 않고 어둠을 향해 공격을 이어가던 김형준은 그녀의 고요하지만 사나운 기세에 잠시 곁눈질을 하며 감탄했다. 이제껏 본신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던 그녀가 이제야 슬슬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수십개로 쪼개지고 갈라진 기운들이 다시 수십조각으로 쪼개지더니, 수백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어둠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하나에 서린 기운이 어찌나 예리하고 살벌한지 그녀의 공격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이유 모를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김형준이 내쏜 기운과 아야나미 로유미의 공격이 어둠의 지척에 도달했다. 탐욕스럽게 꾸물거리며 성가대를 집어삼킨 채 웅크리고 있던 어둠이 공격을 눈치채고는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아마치 유부에서 기어올라오는 듯한 끔찍한 괴성에 이능력자들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끔찍한 괴성이었다. 이능력자들은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수천의 망자들이 들러붙은 것만 같은 그 음습한 괴성이 한참이나 길게 이어지고 어둠이 요동을 쳤다. 마치 천지가 개벽하듯 온 세상이 진동을 하며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저 스트리고이의 비명이 터져나왔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상황이라 이능력자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하늘이 요동을 치고 대기가 몸을 떤다. 수천 수만의 망자가 내뱉는 듯한 끔찍한 울부짖음이 쉬지 않고 이어지고, 온 세상은 빛을 잃은 듯 완전한 어둠이 되었다. 그나마 이능력자들이 간간히 발현해내던 불꽃과 빛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갑게 식어 꺼져버렸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 원정대가 내뱉은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가슴을 짓누르는 막연한 불길함과 공포에 그 누구도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김형준은 갑작스럽게 닥친 어둠 속에서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제껏 정보를 전해주던 미국의 정보단체가 스트리고이의 행방을 놓친 것은 바로 지금 보이는 놈의 모습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렇게 실체를 감추고 이동을 하는데, 위성이고 뭐고 위치를 찾아낼 턱이 없다.

대인전을 상정하고 짰던 계획들이 단번에 무너지고, 성가대는 어이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당해버렸다.

다행이라면 우려했던 트루 블러드의 난입이 없다는 것인데, 지금 모습을 드러낸 스트리고이를 보면 트루 블러드가 난입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난입을

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뭣 모르던 시절 조우한 천개의 눈동자 역시 거대함과 기세로는 압도적이었다. 그렌델 역시 거인답게 그 거대한 크기와 사악함이 비교하기 힘든 존재였다. 미노타우르스는 차라리 반신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떠올려봐도 지금 눈 앞에 나타난 스트리고이-블라가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괴수라기보다는 마치 '밤' 그 자체인 듯한 스트리고이의 모습은, 괴수라는 존재를 초월하여 이미 초자연적인 무언가라도 된듯한 기분이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역시나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1등급 몬스터다.

'마스터 킴은 무슨 일이 있어도 힘을 비축하여 놈을 마무리 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합니다.'

캐더린의 신신당부가 떠올랐지만, 김형준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지금 같아서야 힘을 비축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 이대로 있다가는

힘 한번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하고 다 죽을 판이다.

박동하는 심장을 따라 돌고 도는 피가 느껴진다.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부드럽게 온몸을 타고 도는 그 생생한 생명력에 김형준은 온몸에 활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흐르고 흐르던 생명력이 어느순간 꼬이고 비틀려 인위적으로 이끌린다. 김형준의 의지가 이끄는데로 이리 저리 흐르던 생명력이 몸안을 벗어나 몸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뭉클거리며 허공에 뭉치기 시작한 생명력이 단단하게 형체를 갖추고 김형준의 전신을 차례로 감쌌다. 그리고 그 단단한 피의 갑주가 마침내 김형준의 얼굴까지 덮었을 때, 김형준의 눈동자가 붉게 번뜩였다.

어둠, 어둠, 어둠.

그 원시적이라고 해도 좋을 태초의 어둠과도 같은 온 세상 속에서, 김형준의 눈이 빛을 발하며 사방을 훑어보았다.

생명의 근원이 활성화된 김형준은 믿을 수 없게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불안하다기보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짝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원정대의 이능력자들이 보인다. 하나 같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동자만 데굴 거리는 모습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무력해보였다.

전지현과, 아야나미 로유미를 비롯한 이능력자들이 보인다. 굳건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다른 이능력자들과 대조적으로 담담해보이기만 한다.

다시 어둠의 너머로 시선을 돌린 김형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둠 너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하얀 갈기 일족들이 새파란 광망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한 탓이다.

어느 틈엔가 거대한 늑대로 변이한 하얀 갈기 일족들이 하나 둘 압도적인 몸을 일으켰다. 은빛과 백색이 태반인 그들 일족의 몸에 은은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몸을 감싸던 빛이 조금씩 짙어지다가 끝에 가서는 그들 자체가 빛에 휩싸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온몸을 감싼 빛이 더욱 강렬해지다가 종내에는 그들 자체가 빛인 듯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그 완전한 어둠을 걷어내는 빛무리들 덕에 이능력자들의 얼굴에 짙게 깔려있던 어둠과 공포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빛이 걷어낸 것이 단순한 어둠과 불안함뿐만은 아니었는지,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하던 사방에 조금씩 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한줄기 울부짖음이 길게 이어진다. 이내 그 뒤를 따라붙는 수십 수백의 포효가 침묵을 밀어내며 그 자리를 대신했다.

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한덩이 한덩이 따로 존재하고 있던 빛덩이들이 합쳐지고 뭉쳐 마침내는 태양과도 같은 빛이 되어버린다.

온 세상에 가득했던 어둠이 완전히 거두어지며, 주변의 정경이 이능력자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헉!"

여기 저기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악과 충격이 가득한 신음이 금세 전염되듯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돼는..."

김형준의 잇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크게 뜨여진 눈에는 불신과 경악이 가득하다. 어지간한 일로는 충격을 받지 않을 그 역시도 다른 이능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그만큼 사방에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마른 들풀이 가득하던 평원은 온데간데 없고, 질척질척한 액체가 가득 고인 바닥이 끔찍스럽게도 붉은 핏빛 그 자체다. 대지를 받쳐주던 흙따위는 보이지 않고, 흉물스러운 바닥이 마치 사람의 내장과도 같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탁 트인 평원에 서서 스트리고이와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던 원정대였지만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평원도 아니고 인세의 장소도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괴물의 뱃속이라도 되듯 흉물스러운 표피로 둘러싸인 온 세상의 모습이 지독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이건 대체..."

상황을 파악해보려 애써보지만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필사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김형준이 다시 주변을 살펴보는데 뜨뜻한 무엇인가가 그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어라?"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무언가가 이내 비라도 쏟아지듯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피다!"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따뜻한 액체는 비도 무엇도 아닌 피 그 자체였다. 섬뜩한 붉은 빛으로 온 세상에 내리기 시작한 피의 비에 이능력자들이 허공으로 시선을 쳐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수십의 이능력자들은 동시에 숨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저 높은 허공 너머로 펼쳐진 검붉은 장막은 좀 전에 보았던 어둠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한가지 차이라면, 마치 투명하게 보이는 검붉은 표피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박동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다.

혈관과 신경을 전부 살려놓은 채로 인간의 피부를 넓게 펼쳐놓으면 저런 모습일까. 그 끔찍한 모습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검붉은 표피 너머로 보이는 수백의 사람들. 원래는 새하얀 빛이었을 옷을 붉게 물들인체 온몸으로 피를 떨궈내는 수백의 사람들이 마치 푸줏간의 고기처럼 표피 너머로 널려있었다.

지금 원정대의 몸으로 떨어져 내리는 피의 비는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이능력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몇 번인가 들어봤던 음성,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고 가식적이나마 온화한 빛을 띄우고 있던 음성이 지금은 그저 공포와 고통만을 담고 있었다.

"바오로?"

수백의 성가대를 이끌던 성가대의 바오로가 처참한 모습으로 그들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의 시작과 동시에 어둠에 삼켜졌던 성가대가 마치 푸줏간에 널려진 고깃덩이들 처럼 원정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십수분 전까지만 해도 위풍도 당당했던 그들이 처한 처참한 꼴에 이능력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렇게 원정대의 이능력자들이 피의 비를 맞으며 검붉은 장막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낯선 음성이 불쑥 끼어 들었다.

============================ 작품 후기 음. 주말이어도 마나님이 허락하지 못하는 주말은 제게 자유시간이 아니었나봅니다. 차라리 사무실에 출근하는 평일에 글을 써서 올립니다. 오전중으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

니다. 차라리 사무실에 출근하는 평일에 글을 써서 올립니다. 오전중으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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