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91화 (191/223)

< --  2-6. 망자의 도시  -- >

"저희도 이번 원정대의 일원인데.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까지 독자적인 움직임을 고집해왔던 성가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다.

"결계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신 점은 감사드리나, 성가대는 이제껏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단호한 김형준의 축객령에 무안할 법도 하건만 바오로는 여전히 유들거리는 얼굴이다.

"뭐 자잘한 것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스트리고이를 처리하는 데까지 그렇게 협조를 안 해서야 곤란하지 않을까요."

듣기에 따라 자잘한 놈들에게 희생당한 원정대의 이능력자들을 비꼬는 것 같기도 한 소리에 누군가의 입에서 바드득 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습니까? 말씀은 고맙지만, 성가대는 지금처럼 결계 해제에만 주력해주십시오. 스트리고이와의 전투는 저희끼리만으로 충분합니다."

점점 싸늘해지는 김형준의 말에 바오로가 조금은 정색을 했다.

"같은 원정댄데 왜 그리 거리를 두시려는지. 다 같은 형제들 아닙니까."

바오로의 말에 김형준의 눈썹이 한번 꿈틀거렸다. 당장에라도 무언가 쏴붙이고 싶어하는 기색이었지만 그는 간신히 참아내고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이다.

"이번 작전은 '이능력자'들에 한해 펼쳐질 작전이니 이만 물러가주시지요."

그 명백한 적의에 바오로는 결국 물러서야만 했다. 따지고 보면 원정대의 일원인 성가대를 배제한 김형준의 행동은 잘 못된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싸늘한 그의 태도에 바오로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더는 따지지 못한 것이다.

통신이 끝난 후에 갑자기 싸늘해진 태도를 보이는 김형준의 모습에 바오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자신이 돌아서자마자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한 김형준을 바라보며 바오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미국이 무슨 정보를 넘긴 건지, 한번 알아 봐야겠어."

김형준을 비롯한 1등급 이능력자를 중심으로 원정대는 새롭게 대열을 꾸렸다.1등급 이능력자를 대열의 한가운데에 넣고, 그 주위를 이능력자들이 감싼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을 둘러싼 하얀갈기 일족의 늑대인간들이 있다.

성가대는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들만의 진형을 꾸리고 있었다.

초조하거나, 투쟁심 가득하거나. 이능력자들과 하얀갈기 일족의 시선이 북쪽을 향해 있었다. 김형준 역시 덤덤한 시선으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불길한 기운이 스물스물 천지를 뒤덮는다.

"모두 준비하세요."

이제는 완전히 새빨갛게 변해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김형준이 낮게 지시했다.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 많은 이들이 모인 곳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적막한 평원에 거친 호흡소리가 여기 저기서 새어 나왔다.

루마니아에 도착한 직후, 수 많은 전투를 이겨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들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스트리고이와의 결전이 눈앞에 다가섰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긴장과 투기가 어우러져 너른 평원을 가득 채운다. 텁텁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유형화된 기운들이 온 사방에 아른거린다.

김형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 스트리고이가 나타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 측에서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스트리고이와의 조우가 임박했음이 확실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스트리고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스트리고이를 기다리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스트리고이의 모습이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거대해져가는 불길한 기운과 음습함, 이제는 이능을 발현하여 저항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뭔가 정보가 잘못 된 것은 아닐까요?"

곁에 있던 쟈베트 샹피뉴가 조금은 초조한 기색으로 물어왔다. 워낙에 조용했던 차라 일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김형준은 엄한 눈으로 이능력자들에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는 쟈베트 샹피뉴의 말에 대꾸했다.

"지금은 미국의 감시체계로도 놈을 잡지 못하고 있다니,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요."

스트리고이가 자취를 감췄다는 통신이 온 것이 약 30분 전이다.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한번 놓친 스트리고이의 종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를 향해 똑바로 오고 있었다니 모습을 감췄다고 해도 엇갈릴 일은 없을 겁니다."

원정대의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차라리 스트리고이가 자신들을 지나치길 바란 모양이다.1등급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나, 긍지 높고 완강하기로 유명한 2등급 이능력자들이건만 루마니아에서 벌어진 전투가 워낙에 지독했던 탓이었다.

쉴틈도 없이 몰려드는 뱀파이어들에게 시달리고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트루 블러드의 시선에 긴장감마저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유지해온 긴장감이 지금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 차라리 정보 없이 맞닥뜨렸다면 모를까. 지금과 같은 긴장상태는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과열되가는 긴장감에 김형준이 얼굴을 굳혔다. 1등급 이능력자들의 정신마저 쥐어 흔들었던 스트리고이를 떠올리면, 지금과 같은 상태의 이능력자들이라면 무슨 수작에 넘어갈지 모른다.

조금은 긴장감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그가 막 수를 내려고 할 때, 무언가 거대한 힘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둡고 음습하고 불길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북한 기운이 갑작스레 온 사방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수천 수만구의 시체가 동시에 썩는듯한 악취가 사방에 가득차고, 기분나쁜 축축함이 등가를 적셔왔다.

그 갑작스러운 이변에 김형준을 비롯한 이능력자들이 얼굴을 굳히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벌써부터 성질 급한 몇몇 이능력자들이 이능을 발현하여 대열의 이곳저곳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은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김형준의 지시를 기다렸다.

불길한 기운의 근원을 파악하려 애 쓰던 김형준은 문득 시야가 지나치게 어두워졌음을 깨닫고 소스라쳤다. 이능력자로 각성하며 재구성된 신체의 월등한 시력으로도 사물을 분가하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다.

"빛을 밝혀!"

최대한 침착하게 외친다고 했지만 초조함이 금세 드러난다. 그의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린 이능력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양손에 가득 화염을 그러쥐고 사방을 밝히고, 어떤 이는 거대한 빛덩이를 쏘아올린다. 또 다른 이는 투명한 막을 일으켜 그 막으로 다른 이능력

자들이 발현한 빛을 증폭시킨다.

수십의 이능력자가 발현한 이능이 사방을 밝혀보지만, 어둠이 옅어지기는커녕 더욱 어두워지기만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능력자들이 정색하고 이능에 집중한다. 이곳 저곳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오며 어둠을 몰아내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다.

"제길! 빛 계열 이능력자는 아무도 없나!"

"화염이라도 모아!"

여기 저기서 다급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에 맞추어 색색의 불꽃이 사방을 수놓는다. 온 이능력자들이 힘을 모아 부산을 떨고 나자 그제야 어둠이 조금이나마 옅어졌다.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군."

낮게 읊조린 김형준이 사방을 살펴보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둠에 저항하는 이능력자들을 보니 스트리고이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금방 지칠 것 같은 모습들이다.

그렇다고 이능을 거두자니 어둠이 심상치가 않아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김형준은 온 사방을 훑어 보았다.

어둠에 가려진 저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 같지 않은 시력의 그였지만 마치 장막이라도 쳐놓은 듯 사방을 에워싼 어둠을 뚫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잠시 멈춘다. 급격하게 확장된 동공에 경악의 빛이 떠오르더니 이내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지평선도, 어둠너머도 아닌 바로 자신들의 머리 위였다.

피처럼 붉었던 하늘은 어느 사이엔가 어둠에 먹혀 온통 새까맣기만 했다. 무엇 하나 구분할 수 없는 그 어둠을 향한 김형준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치떠졌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며 김형준의 눈에 어둠이 한가득 들어왔다.

어둠의 한구석이 꿈틀거렸다. 빛 하나 비춰지지 않는 그 완전한 어둠속에서 유난히 번들거리는 어둠 한조각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그렇게 한조각에 불과했던 어둠의 움직임이 조금씩 커지다가 이내 어둠 전체를 진동시킨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새까만 커튼처럼 꿀렁이는 어둠과 김형준의 눈동자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온통 새까말 뿐인 어둠이라 눈동자가 어디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지만, 김형준은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이 마주친 순간 김형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둠이 웃는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김형준을 에워싼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불이 약해지게 하지 마!"

여전히 어둠을 몰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원정대의 고함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바로 곁에 있던 이능력자들은 그가 어둠을 발견하기 전과 똑같은 모습이다.

정신을 차린 김형준이 온 힘을 다해 소리 쳤다.

"머리 위다!"

그의 고함소리에 이능력자들의 시선이 하나둘 머리 위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

렇게 수백쌍의 눈동자가 머리 위의 어둠을 주시한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수백쌍의 눈동자에 하나같이 경악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야 김형준의 고함소리를 이해했다.

어둠이 요동치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모두가 하나같이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뭘 멍청이들 있어!"

김형준이 악다구니를 쓰며 고함을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몇몇 이능력자들이 어둠을 향해 불꽃이며 섬광이며를 쏘아냈다. 처음에는 몇줄기에 불과했던 미약한 공격이 이내 수십 수백가닥이 되어 어둠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늑대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고 어둠에 압도되어 굳어졌던 몸에 다시금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한줄기 포효에 이내 수백의 포효가 합류하여 마치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장엄한 포효소리가 어둠을 몰아낸다.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나오는군요."

아야나미 로유미가 질렸다는 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흉측한 괴물이 달려들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말도 안돼는 존재가 튀어 나왔다.

도대체 머리가 어디고 꼬리가 어딘지도 구분가지 않는 거대한 어둠, 밤 하늘을 통째로 삼킨 것과도 같은 그 압도적인 기세에 어지간한 그녀도 질려버렸다.

마치 밤하늘이 쏟아지듯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어둠이 수백 수천의 공격에 잠시지만 주춤하다가 이내 몸을 비틀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향한 어마어마한 공격보다 더한 파괴력을 보인 어둠이 모든 공격을 털어버리고는 다시 대지를 향해 달려 들었다.

어둠이 향하는 방향에는 바오로를 포함한 성가대원들이 있었다.

"어? 어?"

처음 어둠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 때만 해도 당연히 성구를 이용해서 알아서 방어를 하겠지 하고 생각했던 이능력자들이 경악했다.

여전히 어둠에 압도된 채 입을 벌리고 있던 성가대원들이 미동조차 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이능력자들은 마침내 어둠이 성가대원들을 삼켜버리자 비명을 질렀다.

수백의 성가대원들이 허무하게 어둠에 삼켜졌다.

그렇게 스트리고이-블라가와의 전투는 시작부터 수백의 사상자를 내고 시작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전편 마지막 부분 조금 수정하여 이번편에 넣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연참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마침 주말이니 벌충하겠습니다!

*한가지 밝히자면 제가 지금 쓰는 부분들은 비축분이 아닙니다. 비축분을 써둔 제 회사 컴퓨터가 현재 수리중인 관계로 수리가 완료되기를 기다렸으나, 기다리다가 올해 넘어갈 것 같아 새로 써서 연재를 재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만큼 폭참을 못해 무척 속이 상합니다만, 컴퓨터 전원과 하드디스크에 관련된 손상이라 당장 복구하기가 힘듭니다. 컴퓨터가 수리되는 날 독자님들은 진정한 폭참을 경험할 것이니다. ㅎㅎ

코멘트 주신 분들 다들 감사합니다. 그 중에서도 심장사상충 말기 강아지가 있으시다는 독자님의 말씀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심장사상충 제일 골치 아픈 병이지요. 예방하자니 예방약이 부작용이 심하고, 가늘 혹사시키고.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위험한 질병이고. 역시 방법은 주기적인 검진뿐인가 봅니다.

심장사상충 이야기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 글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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